며칠전 서가에 눈길을 두다가 오래묵은 다짐을 실행하기로 결정했다.
저자 사인이 있는 산서들을 정리하여 소개하기로 말이다.
책을 모으는 건 능하지만, 정리에는 젬병이라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책을 하나씩 뽑아야 했다.
50여권을 일단 찾았는데, 앞으로 얼마쯤 더 찾으려나.
유명인사라면 모를까, 저자 사인본을 우편으로 증정받는 처지는 아니라서,
사인본들은 옛날 것은 헌책방에서 구입했고, 최근에는 주로 한국산서회 모임에 받았다.
그 처음으로 김영도 선생님의 사인을 모셔본다.
사람들 근기에 맞는 다른 글들을 써 주신다.
따라서 사인보다 어떤 내용을 썼는지 중심으로 보면 좋겠다.
2002.6.28 노스페이스가 후원한 박영석, 정승권 그리고 박정헌 3인방 등반 보고회가 열렸다.
그들의 사인을 받을 겸 해서 챙겨간 책이 하필이면 '77에베레스트'였다.
엘레베이터를 탔는데, 키가 자그마한 노인과 함께였다.
눈은 웃고 있었는데, 눈빛이 살아 있었다.
처음 보았지만 한눈에 그가 누구인지 느낄 수 있었다.
3명이 차례로 발표한 다음, 마지막 순서로 그는 단상에 나가서 '고도-태도'라는 논지의 총평을 하였다.
자리를 파하고 떠나는 시간에 그에게 다가가서 사인을 부탁드렸다.
이 책 표지를 보더니 함께 있던 중년의 남자를 돌아보며, '** 책 없어요?'라고 묻더라.
지금 돌아보면, 그 책은 1997년 수문출판사에서 낸 '에베레스트 '77 우리가 오른 이야기'였다.
그 중년의 남자는 그러니까 수문출판사의 이수용 사장이었고 말이다.
세사람의 사인은 주최측에서 준비한 사진엽서에 받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들의 사인도 이 책에 함께 받았으면 좋았을텐데 싶다.
그날 직접 받은 첫 사인이다.
그냥 김영도라고 적는 대신에 '새로운 친구 김진덕씨를 위하여'라고 적었다.
사람은 나이들수록 의전이나 권위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고, 그들은 대화보다는 강연을 좋아한다.
옆에서 지켜본 바 김영도(이하 존칭 생략)는 강의보다 격의없는 대화를 더 즐겨하는 분이다.
그런만큼 새로운 친구라는 이 표현이 지금도 마음에 든다.
사인 컬렉션 중에는 헌책방에서 구입한 두개가 있다.
가장 오래된 그의 사인은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기념 사진엽서의 것이다.
'대장 김영도'라고 적혀 있는데, 아마 그해 원정보고회 자리에서의 사인일 것이다.
이 사진엽서집의 발행양은 엄청나서 그해의 등반이 한국을 얼마나 들떠게 했는지 짐작하게 된다.
참고로 김영도의 도(棹)는 ① 배를 젓는 노 도 ②책상 탁의 뜻이다.
산악계를 이끌어 오고 3,40여권의 산서를 써온 인생하고 이름이 잘 맞아떨이지는 것 같다.
1980년 평화출판사에서 나온 '나의 에베레스트'는 소년소녀용의 책이다.
여기에 김은옥에게라며 역시 한자로 김영도라고 적고 있다.
날짜를 적지 않았는데, 아마 출판기념회같은 자리여서가 아닐까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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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가 직접 받은 사인들을 보자.
2006년 한국 산서회에 가입했는데, 몇년이 가도록 이런 생각을 못했다.
최근에 와서야 '뜻한 바'가 있어 아래와 같은 사인과 '좋은 글'들을 부탁드렸다.
2012년 4월, 수문출판사에서 새로 편집하여 낸 '우리는 산에 오르고 있는가'
김영도는 1980년대에는 산악계에서 공적인 활동을 지금처럼 많이 하지 않았던 걸로 보인다.
1990년 낸 이 책은 서구적 근대 알피니즘과 일본식의 '정관적' 등산관이 결합된 에세이이다.
"김준범의 자랑스러운 앞날이 보고 싶다" 2013. 6.22 김영도
좋은 말씀을 부탁드릴때, 그는 곧바로 일필휘지 하지 않았다.
상대방과 교감을 하려는 듯 뜸을 들인 다음 이렇게 어린 아해에게 '축원'의 마음을 담았다.
'77인에게 묻다'는 미수를 맞은 그에게 헌정한 '서프라이즈' 선물이다. 다른 예가 또 있으려나.
산악계 인사 뿐 아니라 일제하 학교 친구, 해방 후 대학교 친구들의 우정과 존경의 염을 담았다.
"2013년 8월 2일 생인, 내가 지켜보고 싶은 삼봉(三峯) 어린이의 앞날을 위해' 라는 글을 주셨다.
애정과 축원이 듬뿍 담겨있는 자애로운 할아버지의 글이라 찡하다.
그때 막 태어난 둘째 아이라 아직 이름을 짓지 못했고, 삼봉은 태명이었다.
첫째 아이 태명은 도봉(道峰)인데, 우리 부부가 도봉산에서 처음 만난 걸 기념해서였다.
'세로 토레'(메스너, 수수께끼를 풀다)는 대중적으로도 관심이 많은 쎄로토레 초등에 관한 이야기이다.
산서회에서 공개적으로 저자 사인회를 열었다.
엄청나게 쌓여 있는 책을 모임에 앞서서 미리 한권한권 만년필로 적고 있다.
이날 선택한 문구는 '오늘의 주인공에게'였다.
만년필과 함께 그가 평생 사랑하는 것은 6.25전쟁때 미군과 함께 하면서 접한 커피이다.
단둘이 자리를 함께 해본 적이 없고 - 앞으로도 그러고 싶은 바램이 없어 - 잘 모르지만,
범속한 것, 이를테면 '맛집'을 찾아다니거나, 이야기 하는 식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이 책에 나에게 따로 써준 말씀은 '내가 늘 기억하는 金珍德에게'였다.
한국산악계의 큰 우산인 손경석 선생님의 평전 '우산 손경석 평전'(2015년)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고, 실제 도움도 되지 못했지만 그분을 존경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게도 평전편찬위원회에 나의 이름을 올려 주었다.
출판기념회 날, 기념삼아 위원 6명의 사인을 받았다.
이용대 코오롱등산학교 교장. 이규태 성균관대산악부 OB, 김영도, 서울대 문리대산악회 OB 최중기, 사람과 산 발행인 홍석하 그리고 하루재북클럽의 변기태.
2017년 11월 산서회 월례 모임날에 나는 이 책을 들고 나가 아이들에게 줄 좋은 말씀을 부탁드렸다.
고개를 내려 책을 보다가 또 강연을 듣다가 하더니 십여분 뒤에 글을 이렇게 적어 주셨다.
착하고 멋진 준범과 홍범에게.
산은 올라가지 내려가지 않아요.
언제나 앞을 보고 높이높이 올라가지요.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길이에요.
에베레스트 다녀온 김영도가 준범과 홍범에게 하고 싶은 말이예요. 2017.11.6
언젠가 모임에서 딱한번 그분을 뵌 적이 있는 애들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말씀과 행동하시는 게 참 고결해 보이더라고요''
내가 기억하는 그 분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사모님의 장례식장에서이다.
그는 문상객을 맞는 틈틈이 시간을 내어 신발집게로 문상객들의 신발을 반듯하게 정리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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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다음주 월요일 뵙겠습니다.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문자로 드리겠습니다.~
승혁이네 집이 한옥이래매, 봄에 인문산행 송동으로 가야쥐.
차 한잔 주게.
"사랑합니다."
지난 모임때 선물 진심으로 감사하이..~
설날 잘 내려가고 가족친지들과 뜻깊은 시간 만들고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