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유림의 본향, 안동/靑石 전성훈
조선왕조 시절 사대부 집안에서 출세하기 위한 길은 관리가 되는 것이다. 관리가 되기 위해서는 문과나 무과 과거시험을 통과하여 급제(及第)하는 게 일반적이다. 문과와 무과를 합하여 양반(兩班)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조선왕조 역사상 과거에 급제한 인물을 가장 많이 배출한 문중(門中)은 어디일까? 인터넷을 찾아보니 문과에 급제한 인재가 가장 많은 집안은 전주 이씨이고 다음이 안동 김씨이다. 경상도에서 학문과 문예에 뛰어난 인물이 많이 나온 지역으로 낙동강 좌측과 우측의 대표적인 고을인 안동과 함양을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렀다고 한다. 안동은 조선왕조 후기 당쟁이 치열하던 1680년 경신년(숙종 6년),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으로 노론과의 권력투쟁에서 패하여 축출당한 남인 계열 영남 유림의 본향으로 불리는 고을이다.
처서도 지나고 가을의 전령이 오는 9월 초순에 찾아가는 인문학 기행지는 안동(安東)이다. 트로트 명곡으로 알려진 ‘안동역’의 고장이다. 이번 인문학 기행은 도산서원, 병산서원, 하회마을 그리고 봉정사이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해서 마음속으로 언젠가는 꼭 가야지 하고 별러왔던 곳이 봉정사이다. 봉정사를 비롯하여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송광사, 해남 대흥사 등 일곱 사찰이 ‘산사, 한국의 대표적인 산지 승원(僧院)’으로 2018년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며칠째 비가 내리더니 떠나는 날 아침에 비는 내리지 않아도 하늘은 시커멓고 습도가 높다. 혹서기인 한여름 8월에는 인문학 기행이 없어서 2개월 만에 떠난다. 오전 7시 관광버스는 문화원을 출발한다. 문화원 임원 중 한 분이 기증하신 떡을 아침 식사로 대신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고 나서 일용할 약을 삼킨다. 문화원을 출발한 지 1시간 반, 길이 막히지 않아서 양평휴게소에 도착하여 잠시 쉰다. 가랑비가 조금씩 내려 땅을 촉촉이 적셔준다. 멋진 산안개가 자욱하게 낀 주변 산을 가만히 바라보며 마음에 평화를 느낀다.
도봉문화원 해설사의 재미있는 설명이 이어진다, 하회마을에는 우물이 없다고 한다. 우물을 파면 땅이 가라앉는다는 전설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그 옛날에 식수와 허드렛물을 어떻게 이용했는지 궁금하다. 하회마을을 휘감고 도는 강물인 화천 건너편에 있는 부용대에 올라서서 하회마을을 바라보면 연꽃 모양 또는 배 모양으로 보인다고 한다. 하회별신굿탈놀이의 탈은 12가지 종류로 남자 탈 8개, 여자 탈 3개, 그리고 턱을 만들다 그만둔 이매탈(턱이 없는 탈) 1개라고 한다. 전해 오는 이야기는, 역병이 도는 마을의 허도령에게 꿈에 신령이 나타나 ‘탈 12가지 만들 때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고 보여 주지도 말라’고 했는데 11개를 만들고 나서, 그만 어느 여인에게 발각되어 허도령은 즉사했고 허도령이 죽은 다음에 마을의 역병이 사라졌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한다.
퇴계 이황 선생을 기리는 도산서원(陶山書院)을 찾아가는 길에 관광버스 운전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서 예정보다 30분가량 늦는다. 낙동강 임하댐 건설로 수몰 위기에 처한 도산서원을 이전하여 현 위치에 복원하였는데, 대학 1학년 답사 때 들렸던 곳과는 기억 속의 위치가 다르다. 도산서원 하면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가 있다. 탁본할 때 사용할 먹물을 갈아서 선배가 빈 콜라병에 넣어둔 것을 모른 채 콜라인 줄 알고 한 모금 삼켜서 웃음거리가 되었던 에피소드이다. 햇볕이 나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아 구경하기에는 좋은 날씨다. 서원 앞의 커다란 왕버들의 우람한 자태에 입이 벌어진다. 나무 아래에 ‘벌 조심’이란 팻말이 있다. 도산서원을 나와 서애 류성룡 선생을 기리는 병산서원(屛山書院)을 찾으니 서원 앞 작은 가게에 ‘아이스크림 점빵’이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점빵은 한자로는 점방(店房)으로 쓰며 잡동사니를 파는 작은 가게를 뜻한다. 어린 시절에 자주 들었던 정겨운 어휘라서 무척 반갑다. 병산서원에서 본 특이한 곳이 ‘달팽이 모양 뒷간‘이다. 입구도 지붕도 열려 있는 개방형 뒷간인데 볼일 보는 곳은 다소 깊숙이 안에 있어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도산서원과 병산서원을 비롯하여 소수서원, 남계서원, 필암서원, 무성서원, 돈암서원은 ’한국의 서원‘으로 201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풍산 류씨의 씨족 마을인 하회마을은 여러 번 갔었지만, 제방길은 처음 걸어본다. 화천 백사장에 만송정(萬松亭)이라고 불리는 소나무 방풍림이 있고, 방풍림 끝을 지나면 제방 좌우에 온통 벚나무가 사열하듯이 강바람을 막아주고 있다. 봄날 벚꽃이 화창하게 필 때는 그야말로 화사한 꽃세상이 펼쳐져 뭇 여인의 넋을 훔칠 것 같다. 하회마을은 마을의 주산(主山)인 화산 자락을 화천이 휘돌아 가면서 생성된 지형에서 마을 이름 하회(河回)가 유래하였다고 한다. 신라 능인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천등산 봉정사(天燈山 鳳停寺), 절집이야 평지 사찰이 아닌 산중의 사찰은 대부분 비슷한 분위기를 느끼기 마련이다. 하늘로 오른다는 천등산 봉정사, 봉황이 머물렀다는 전설이 깃든 절이다. 대웅전 앞 만세루(萬歲樓)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눈앞이 탁 트여있지 않아서 답답하다. 정자나 누각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볼 때 앞이 막힘없이 훤하게 보여야 속세에서 찌든 욕심과 욕망덩어리를 훌훌 털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봉정사는 조금 아쉬움을 느끼게 한다. 봉정사에 대한 기대가 커서 느낌이 다르게 왔는지도 모르겠다.
인문학 기행에서 뵙던 낯익은 분들이 점점 적어진다. 그만큼 세월이 흘렀나 보다. 인문학 기행을 따라다닌 지 15년이 넘는다. 이제 슬슬 하산 준비할 때가 다가오는가 보다. 아직은 잘 걸을 수 있어서 몇 해 정도는 함께 다녀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하다. (2026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