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pe diem, 현재에 집중하자
유수연
나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대한 기대가 많았다. 혼자 가는 여행이 처음이기도 했고, 내 맘대로 다 할 수 있다는 것이 많이 기대되었다. 그때 나는 갑자기 ‘어떤 부분에서 기대가 되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멘토쌤과 대화를 해보며 사소한 계획을 너무 많이 세워 머리를 비우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멘토쌤께서 덧붙여서 말씀하셨다. “계획을 무너뜨려 보는 연습을 해보면 어때?”. 사실 나한테는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는 평생의 문제가 있다.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불필요한 ‘계획’을 없애야 한다. 쓸때 없는 계획을 세우게 되면 더 많이 기대하게 되고 계획에 미치지 못하면 자책하게 된다. 그래서 나를 믿고 싶었다. 실패해도 다른 길은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를 믿고 현재에 집중하기’가 주목표가 되었다.
먼저 내가 가고 싶은 장소를 고민했다. 나는 시골과 동해를 가고 싶었다. 그렇게 추리고, 추려서 강원도 고성을 가기로 했다. 고성은 강원도 해변에서 유일한 군이었고 조용한 해수욕장도 찾아서 근처 숙소에서 자려고 생각했다. 내가 운이 정말 좋았던 게 숙소도 정말 빨리 찾았다. 그다음 나의 목표를 세웠다. 바다를 보기 위해 [첫째, 매일 일출과 일몰을 본다. 둘째, 적어도 10시에 취침하고 7시에 일어난다.]를 세웠고, 깊이감 있게 느끼기 위해 [셋째, 핸드폰 집중모드로 설정해 필요시에만 사용한다.]를 세웠다. 계획표를 세우면서도 바다를 볼 생각에,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간다는 생각에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은 예상보다 훨씬 더 행복했다. 많은 사람과 대화를 나눴고, 바다도 많이 봤고, 책방도 많이 다녀온... 그야말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 이루어진 여행이었다.
나는 여행에서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다른 분들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을 걸어주셔서 대화를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먼저 일요일에 <당신의 강릉>의 대표님이자, 작가님이시기도 한 김민섭 작가님과 인터뷰를 했다. 사실 거의 인터뷰가 아닌 대화를 했다.
작가님께서는 정말 좋은 말을 많이 해주셨다. ‘성장한다’라는 것은 어떠한 사람으로 살 것인가, 어떠한 삶의 태도를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생각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삶의 태도’를 더 좋게 가꿔나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것’을 먼저 할 것이 아니라 나를 먼저 ‘알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야지 나의 선택들에서도 더욱 배울 게 풍성해진다고. 나를 잘 아는 게 중요한 이유가 어떤 일을 선택할 때 타인의 선택의 휩쓸리게 된다면 그 타인을 원망하게 돼 점점 불안해져 간다고 말씀하셨다. 거기서 ‘완전 나잖아’ 싶었다. 나는 나를 몰라 결정을 잘 못 내린다. 그리고 ‘뭐가 더 나에게 이득일까’를 먼저 생각했다. 나를 알고 나서 하는 선택은 잘해도, 실패해도 모든 배울 게 많을 것 같았다. 앞으론 나를 알려고 노력해야겠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작가님과 독자분들께서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고 요청하셨다. 그래서 찍어주고 나오려 하는데 작가님께서 “금산간디중학교 3학년 학생이 인터뷰하러 오셨어요”라고 말해주셨다. 독자분들은 강릉학교의 선생님이시라는데 간디학교를 아셨고, 마스크 팩과, 크래커도 나누어 주셨다. 긴장이 풀릴 수 있게 해준 감사한 만남이었다.
월요일 아침엔 비가 오려 하고 있었다. 첫 일출이었는데 회색빛밖에 안 보였지만, 갈매기도 보고, 오랜만에 바닷바람도 맞아 기분이 좋았다. 해가 다 뜬 후, 돌아가려던 찰나 어떤 할머님께서 “왜 혼자있어?”라고 말을 먼저 거셨다. 왜 그랬는진 잘 모르겠지만 갑자기 나의 입에서 많은 질문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할머니와 나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여기는 왜 이렇게 외국인이 많아요?”라고 물으니, “가까이 있는 경동 대학교가 4년 전까지만 해도 조카가 다니는 대학교였는데, 갑자기 교환학생이랑 유학생이 많아졌어”라고 답하셨다. 검색을 해보니 글로벌 캠퍼스가 되어있었다. 또 할머님께서 하셨던 말이 “대학생들이 싫다”라는 말이었는데 “맨날 술집에서 밤에 시끄럽게 떠들고 술 마시고 또, 해수욕장 보면 알겠지만 분리수거도 안 하고 간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착한 사람은 있지 않았어요?”라고 내가 여쭤보니, 그중에서도 착한 애는 있었다고 하셨다. 근데 그 친구는 한국이 싫어서 결혼하면 싱가포르를 가겠다고 했다고 하셨다. 항상 하는 생각이긴 하지만, 시골에 사람들이 여행만 많이 오지 정착은 안 해 휙 왔다가 사라져 주민분들은 힘들어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할머님께서 저기 아야진(옆동네)에도 아파트가 지어지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 왜 짓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나도 여행을 온 거지만, 갑자기 왔다가 휙 사라지는 거겠지만, 난 반드시 다시 올 것이다. 똑같은 숙소로.
화요일에는 지친만큼 많은 것을 얻은 날이었다. 북끝서점에서 정말 나와 말이 잘 통하는 사장님과 대화를 했다. 1시간 30분 동안 책을 고르고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려는 찰나 사장님께서 “커피 좋아해요?”라고 말을 먼저 거셨다. 사실 대화를 해보고 싶었는데 먼저 말을 걸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서점을 어떻게 만드셨는지부터 학창 시절, MBTI, 대안학교 등등 정말 짧지만 깊은 대화를 나눴다. 사장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기억에 남는 말은 “꿈을 못 찾았다고 조급해하지 말아요. 꿈은 이 책방처럼 운명적으로 자신에게 찾아가거든요”였다. 이 말은 나에게 많은 위안이 되었다. 항상 좋아하는 것이 없어 찾으려고 노력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사장님과 나는 닮은 점이 많았다. 학창 시절 때 좋고 싫음이 명확하지 않았다는 게 제일 닮은 점 같다. 사장님과 대화를 하면 살아왔던 삶이 말로도 전해 지지만 마음으로도 전해지는 것 같았다. 이제서야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 들었다. 사장님께서 고등학교 들어가면 다시 놀러 오라고 하셨다. 사실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꼭! 다시 올 것이다.
북끝서점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카페에 갔다가 숙소로 돌아가려는 그때, 어르신 부부 분들께서 곧 마감인데 들어가려고 하시길래 “그 카페 곧 닫아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부부 분들께서 되게 고마워하시며 “혼자 여행왔어요?”라고 먼저 말을 거셨다. 그렇게 짧은 대화를 하게 되었다. 사실 어르신 부부분들을 보며 부러웠다. 나도 여행을 늙어서 꼭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말씀드렸더니, 어릴 때 훨씬 더 많이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런 말을 들어도 부러웠다. 사랑하는 사람과 늙어서 여행이라니... 정말 행복하실 것 같다.
저녁에 소품샵을 다녀온 후 숙소로 가려 갔던 버스 정류장. 또 다른 할아버님을 만났다. 그 할아버님께서는 고성으로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냐고 물어보셨다. 그렇게 또 대화는 시작되었다. 여쭤보니 할아버님께서도 용인에서 오셨다고 하셔서 정말 반가웠다. 할아버님께서는 통일전망대를 가고 싶으시다고 하셨는데 통일전망대가 문을 닫아서 내일 9시쯤에 가실 수 있으시다고 하시니, 아쉬워하시긴 했지만 계속 같이 수다를 떨어 주셨다. 그 점이 참 감사했다. 할아버님께선 7~80대 같이 보이셨는데 외국을 많이 다녀오셨다고 하셨다. 레트로 하면서도 힙한 패션이 거기서 나오셨나보다. 목소리나 귀가 좋으셨던 점이 젊은 사람이 할아버님의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버스가 너무 빨리 와서 깊이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정말 매력적인 분이셨다.
이렇게 다섯 분과 대화를 나눴다. 혼자니까 이야기를 나눴던 분들도 쉽게 다가올 수 있으셨던 것 같고, 눈치 안 보고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나한텐 정말 좋았던 경험이었다. 대화를 한 번 하니 이젠 시골 어느 지역에 떨어져도 사람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어렸을 적 이야기나, 행복했던 기억, 힘들었던 기억을 들으며 세상이 넓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었다. 사실 사람들이 나한테 먼저 다가왔지 내가 먼저 다가왔던 적이 없어서 말을 걸으셨던 분들께 정말 감사하다. 그분들 덕분에 심심할 줄 알았던 여행이 정말 즐거워졌다. 사람을 만나며 생각이 고여 있지 않고 새로운 물이 들어와 선택의 폭이 넓어져 고민을 조금이나 해결할 수 있었다. 다섯 분께선 나에게 꿈 같은 여행을 선물해 주셨다.
여행하는 동안 워낙 혼자였다 보니까 나를 믿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 같다. 여행하며 실수를 하면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월요일 저녁에 바다를 보러 갔는데 사진을 찍다가 파도가 와서 뛰다가 넘어졌다. 바지의 종아리 부분이 져졌는데 원래 같았으면 바로 짜증이 났겠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고 혼잣말이 나왔다. 생각해보니, 숙소에 가서 빨래하고 말리면 되는 일이었다. 거기서 스스로 되게 많이 놀랐다. 사건을 해결하려는 긍정적인 마음. 그게 바로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과거에 사로잡히지 않고 계속 이런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면 좋겠다. 그리고 혼자이기 때문에 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해주고 싶어지는 것 같다.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곳 사람들은 어떤 분위기인지 더 알고 싶었다.
고성에서의 하루하루는 매 시간마다 행복했다. 바다, 시골, 혼자, 나를 모르는 사람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만 모아뒀던 곳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참 착했다. 고성은 다시 한 번 더 가고 싶다. 지금의 감정과 기억과는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나찾여로 고성에 가며 정말 많은 것들을 얻었기 때문에 다시 고성에서 보답하고 싶다. 처음으로 혼자 간 여행이다 보니 고성의 기억은 더욱 더 선명하게 남았다.
담배를 안 피는 사람을 더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담배를 많이 피시고 다니는 공사장 아저씨들과 식당의 사장님이신 할머님들, 경동대학교를 다니며 한국말 엄청 잘하는 편의점 알바생, 바닷가에서 아침 산책하시는 아저씨...
정말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