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을 잇는 다리’가 되겠다던 당신의 마음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어요. 일본에 더 많은 친구가 생겼으니 하늘에서 외롭지 않기를 기도할게요.” 이수현 씨가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2001년 1월 26일. 요시오카 후유키(吉岡芙由紀·와세다대 교육학부 3학년) 씨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한국인 유학생이 일본인을 위해 숨졌다는 뉴스를 TV로 지켜보았을 때 받은 충격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고 한다.“한국인들은 일본인을 싫어할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목숨까지 잃어가며 일본인을 살렸다니 이해할 수 없었죠.”》
요시오카 씨는 철이 들수록 이 씨의 행동이 얼마나 힘든 결정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무한한 고마움으로 다가왔다. ‘뭔가 보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음의 빚을 갖고 있던 그는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고인의 부모에게 감사편지를 보냈다.
이후 이 씨 부모와 편지 왕래가 이어졌고 요시오카 씨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더 깊어졌다.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한국 역사를 공부했다. 2009년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지뢰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단체에 가입하고 1년에 한 차례 이상 방한해 휴전선 부근 농가를 찾아 농촌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처럼 10년간 일본에는 한국과 일본의 가교가 되고 싶어 하는 ‘제2, 제3의 이수현’이 많이 생겨났다. 성별과 세대를 초월해 이 씨가 못다 이룬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제2, 제3의 이수현’
일본의 한류(韓流) 성지로 일컬어지는 신오쿠보(新大久保). 한국 음식점과 드라마 DVD, 음반 판매점이 즐비해 한국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신오쿠보역의 1층 개찰구를 지나 2층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중간계단 벽에는 이 씨를 기리는 추모의 글이 새겨진 기념물이 있다. 10년이 지났어도 해마다 1월이면 찾는 사람이 적지 않다.
10주기를 닷새 앞둔 21일 오후 3시경 이곳을 찾은 50대 중년 부인 4명이 추모 글을 읽어보며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이들은 “지날 때마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추모 글을 한 번씩 읽어보고 묵념을 한다”고 했다.
첫댓글 개인 같이 작은 사람은 의인이 아닙니다 그냥 교회에 구걸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작은 실천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오늘은 방구석에 굴러 다니는 궁뱅이 생활을 하고 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