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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8.4. 주일찬양기도예배 설교문【교회신앙의 달】- 두배부흥전도주일
제목: 본보기는 삶이다.
본문: 빌립보서 2:1~11절
1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5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사람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사람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아멘.
찬양: 311장(통 185장) - 내 너를 위하여,
315장(통 512장) –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316장( ) – 주여 나의 생명,
325장(통 359장) – 예수가 함께 계시니,
620장(미 1683장) - 여기에 모인 우리.
할렐루야!! 사랑하는 교회 공동체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은총이 교회 공동체여러분과 교회 공동체 여러분의 가정에 그리고 교회 공동체여러분의 사업과 가정 위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오늘은 8월 첫째 주일인 교회 공동체 두배 부흥전도주일입니다.
주제: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설교(sermon)
오늘은 예수님과의 동행 말씀으로 ‘본받음’에 관한 내용입니다. 예수님과의 동행은 친밀한 믿음을 위한 기초단계입니다. 사람은 누구와 함께 동행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닮게 되어있습니다. 사람은 모방 본능을 잠재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방은 자연적이고 무의식적이며 본능적입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함께 있고 누구와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닮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환경적 전이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환경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 원리입니다.
그러나 의식적 이식이 있습니다. 누군가를 꼭 닮고 싶어서 모든 노력을 다 쏟아 붓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지혜, 성품, 태도, 삶을 그대로 옮겨 심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인생의 동기와 열정과 끝이 그를 닮은 것으로 매듭 항상 짓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행에서 말하려는 목표가 바로 의식적 이식(conscious transplantation)입니다. 누군가를 선정하여 그를 그대로 닮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방이나 흉내, 장점과 이득을 골라내고, 할 수 있는 것만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그의 전부를 그대로 옮겨 놓는 것을 말합니다. 부분적으로 닮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닮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와 동행의 목표가 예수님을 그대로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전부를 닮는 것이 예수님의 동행입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스스로 자신을 만들도록 하지 않고 가장 완전한 모델을 그에게 맞추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교회 공동체들의 모델입니다. 이것은 믿음생활에 아주 중요한 방향입니다. 믿음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하여 터득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따르도록 하셨습니다. 마치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광야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의하고 서로 의견을 내고 특별한 체험을 통해 스스로 인생의 길을 가도록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방향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방향대로 따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민수기9:16~23절입니다(참고 출40:34~38절).
16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17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18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19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20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 21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22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23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참고 출40:34~38 34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35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36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37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38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다시 민수기10:33~36절입니다.
33그들이 여호와의 산에서 떠나 삼 일 길을 갈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가 그 삼 일 길에 앞서 가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고 34그들이 진영을 떠날 때에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그 위에 덮였었더라 35궤가 떠날 때에는 모세가 말하되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가 주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 하였고 36궤가 쉴 때에는 말하되 여호와여 이스라엘 종족들에게로 돌아오소서 하였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진은 ‘여호와의 명령’에 따르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구름이 머물면 그대로 머물고 두름이 떠오르면 그대로 따르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언약궤가 가면 따라가고 서면 멈추면 되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까지 도달하는데 그들의 행진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전쟁을 치루고 산을 넘고 물을 건너며 회의하고 작전 세우고 전략을 짜고 무기를 만들고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방법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진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구약 전체의 메시지 중심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진하도록 한 교과서입니다.
예수님의 시대도 하나님의 의도가 같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직접 하셨다면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에서 출애굽 시켜 인생의 광야를 지나 천국에 도달하는 행진코스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천국에 도달하는 행진도 구약에서처럼 예수임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임이 따르라면 따르면 되고, 예수님이 할 수 있다고 하면 하면 되고, 예수임이 걸으라고 하면 걸으면 되고, 믿으라면 믿으면 됩니다. 예수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천국까지 가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천국 가는데 회의하고 작전 짜고 치고 빠지고 머리 쓰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기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예수님을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좋은 믿음이고 예수님에게 인정을 받는 믿음입니다. 만일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아주 잘못된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이나 무리들, 사람들에게 항상 말씀하신 주 내용이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어디에서든지 예수님의 말씀은 같았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하셨던 말씀은 한 마디였습니다(나를 따르라).
<베드로와 안드레>
마4:18~20 18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태>
마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야고보와 요한>
막1:19~20 19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빌립>
요1: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리고 주의 길을 가려는 주의 종들에게 조건을 제시할 때도 한마디로 따르는 것에 대한 말씀이었습니다.
<제자의 길을 가는 것>
마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16: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참된 양이 되는 것>
요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예수님을 잘 섬기는 것>
요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빛 되게 하는 것>
요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왜 예수님을 따르라는 것입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목적은 예수님을 닮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예수님을 본받고 예수님을 닮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의 무엇을 본받아야합니까?
첫째, 예수님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최우선주의와 하나님 중심주의 믿음으로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길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6~8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충만했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습니다.
40일을 금식하신 후 기력이 쇠하여진 예수님에게 마귀는 찾아와 3가지 시험을 했습니다(마4:1~11 1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3가지 시험은 돌이 떡이 되게 하라(3절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6절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엎드려 경배하라(9절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마귀의 시험과 유혹을 믿음으로 이겼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능력보다 더 강한 믿음의 능력을 소유한 분이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떤 믿음을 가지고 계셨습니까? 모든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하나님의 이름과 권세와 능력으로 시험과 유혹을 이기는 믿음이었습니다.
<돌이 떡이 되게 하라 할 때>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라(4절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고 할 때>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7절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엎드려 경배하라고 할 때>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분을 섬기라(10절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하나님을 최고의 자리에 두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믿음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의 믿음으로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믿음은 모두가 하나님과 관련된 믿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19: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막12:3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예수님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사신 분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는 예수님이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믿음으로 사셨던 것처럼 예수님을 본받는 믿음이 있어야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들도 신앙생활을 할 때 마귀와 사탄의 시험이 왔을 때, 물질이나 질병, 고난과 어려움이 닥치는 문제, 흔들리며 방황하도록 하는 각종 세상적인 죄의 유혹이 있을 때 예수님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이기셨던 것처럼 우리 교회 공동체들도 예수님의 믿음으로 이겨야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믿음을 닮고 본받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문제 앞에서도 근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믿음은 흔들리지 않았고 언제나 용기와 자신감과 담대함으로 어떤 역경과 고난과 시험과 아픔도 이겨냈던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 공동체들은 믿음이 약합니다. 자주 넘어지고 유혹에 흔들리며 근심하고 쉽게 포기하고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또한 심각한 질병도 아닌데 병이 들고, 돈 때문에 시달림이나 넉넉하지 못하면 기쁨도 사라지고 근심에 묻혀 삽니다. 교회 공동체들과의 관계로, 직장의 문제가 올 때 믿음으로 극복하는 힘이 약합니다. 이제는 믿음의 수위를 높여야합니다. 지금 믿음보다 믿음을 높이길 원한다면 체험하는 믿음이나 공부하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믿음을 닮은 믿음을 구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우리 교회 공동체들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12절)
이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할 수 있으면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보다 믿음의 수준을 높여 믿음 없는 자처럼 살지 말고 믿음의 칭찬을 받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믿음이 약하고 부족하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믿음이 모든 것의 답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정신이란 예수님의 생각, 의식, 뜻, 마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어떤 정신으로 공생애 기간을 사셨을 것이라고 판단하삽니까? 예수님의 정신도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각을 이 세상에 깊이 뿌리 내리기를 원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나라를 건설하고 추종자를 세우고 자신의 명예와 권력을 위해 성을 세우는 세상의 최고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높임을 받고 영웅이 되어 이름을 날리는 것이나 이기심과 지배욕으로 군림하는 것이 예수님의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은 기회만 있으면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성공과 권력과 명예를 위해 모든 것을 던집니다. 사람들의 목적은 성공이든지 출세, 부자가 되는 것이기에 나쁘든 좋든, 잘못 되었든 잘되었든 상관없이 그것만 보고 달려가다가 결국은 불쌍한 인간으로 마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도적하고 부패하고 악한 짓을 하면서도 잘못을 느끼지 못하고 그 길을 갑니다. 인간을 쓰러지게 하는 유혹들은 장소와 상관없이 초월적으로 어느 곳이든 일어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입신출세를 위해 사신 분이 아니었습니다. 바울 사도의 고백대로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8절)고 한 것처럼 예수님은 평생을 하나님이 주신 생각에 몰두하며 사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자신을 위한 생각에 사로잡혀 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사셨습니다. 그런 분명한 목적에 따르는 의식 때문에 예수님은 넘어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은 예수님의 정신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생각으로 넘쳤습니다. 우리 교회 가족들도 그렇게 되어야합니다. 나의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생각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잘되고 자신의 이름이 높여지는 것을 위해 터지도록 싸움을 하며 이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보여주신 정신으로 살아야합니다.
예수님은 3가지 정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첫째는 낮추는 정신입니다.
마태복음23:2~7절입니다.
2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3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4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5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6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7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행위를 본받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무거운 짐을 지우고, 외식적이고, 높은 자리에 앉고, 사람들에게 대접 받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사람들에게 그런 행위를 절대로 본받지 말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12절) 원리를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지만 인간으로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들도 죽기까지 낮추려고 해야 합니다. 교만하고 높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닮지 않은 사람입니다.
둘째는 섬김의 정신입니다.
요한복음13:4~5절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4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발 닦아 주는 모습을 보여주셨는가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15~17절입니다. 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본을 보여주신 대로 따라하도록 하신 것인데 왜 그렇게 섬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까? 주인이 아니라 종이며, 보냄을 받은 자이지 보낸 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받아야할 이유가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 섬길 사람이라는 신분입니다. 예수님도 섬김의 정신으로 사셨는데 우리 교회 공동체들도 그렇게 살아야합니다. 주인행세하고 마치 보낸 자처럼 사람들 위에 서있으려면 안됩니다. 섬김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을 본받는 교회 공동체여러분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해야합니다. 마가복음10:43~45절입니다. 43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44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셋째는 희생의 정신입니다.
누가복음14:26~27절에는 제자의 길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26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27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제자의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희생’입니다. 사람을 살리려면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제자의 길은 자신이 살려는 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버리는 것이 조건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처자, 형제와 자매, 자기 목숨까지 희생하도록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살리려고 자신은 희생하셨습니다. 요한복음12: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고 희생 없이 열매를 기대할 수 없음을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희생할 때 사람을 살립니다. 세상은 자신이 살기 위해 사람을 희생시킵니다. 믿음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희생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5:1~2절에서 1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2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고 예수님의 희생에 대해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의 의식은 세상 사람들의 의식과 다릅니다. 하나님이 주신 정신으로 일생을 사셨고 죽기까지 정신을 잃지 않고 지키셨습니다. 교회 공동체이면 예수님의 정신으로 살아야합니다. 믿지 않는 자의 의식을 버리고 믿는 자로서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고 살아야합니다.
셋째,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도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도 중요하셨겠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과 가까이하며 친밀한 시간을 더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관계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먼저 생활로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의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쁘게 사역을 하셨고 열심히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결코 소홀하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위하여 별도로 기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마14:23절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26:36절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눅9:18절 예수께서 따로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이 주와 함께 있더니 물어 이르시되 무리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6:12절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예수님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도를 하기보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위하여 동행하는 삶을 위하여 기도를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생활화 한 것입니다. 믿음은 관계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예수님과 깊이 있게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닮고 본받는다는 것도 예수님과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에 중요한 것은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깊은 관계가 체질화와 생활화가 되면 무엇을 하든 하나님의 뜻과 바라시는 목적에 따라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언제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4). 예수님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사셨습니다. 요한복음8:54절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요8:50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셨기에 자신의 뜻은 과감하게 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본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을 닮은 것입니다. 교회 가족들은 예수님처럼 살려는 삶보다 예수님처럼 능력을 행하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의 삶인가? 능력인가? 물론 예수님처럼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더욱 닮아야할 것은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들이 바라는 것이 특별하고 특이한 일들이 자신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기적이나 표적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11:1), 사도 바울도 예수님을 본받고 사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을 본받고 사는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살지 않습니다. 다시 바울 사도의 고백을 보십시오. 고린도전서10:31~33절입니다.
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32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이렇게 사는 삶이 예수님을 본받고 사는 믿음의 공동체들이 삶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예수님처럼, 사도 바울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 본문 9~11절입니다.
9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 교회 공동체에게 예수님을 주신 목적은 예수님을 이용하거나 필요할 때 찾고 부족할 때 오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동행의 최종적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여러분의 삶은 예수님을 닮는 삶입니까?
교회 공동체여러분은 예수님이 사셨던 생활을 따르고 계십니까?
교회 공동체여러분은 예수님을 본보기로 살고 계십니까?
예수님의 사랑, 소망, 베풂, 긍휼, 겸손, 섬김, 희생에서 보여준 완벽한 삶의 본보기를 그대로 닮은 모습이 되어 그분이 행하신 대로(요일2: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삶을 살아야합니다.
예수님의 동행은 예수님을 본받고 닮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첫째, 예수님의 믿음을 본받는 삶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는 삶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삶입니다.
우리 교회 공동체 모두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 예수님을 배우고(마11: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예수님을 바라보고(히12:1~2 1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과 하나 되길(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4:12) 사는 예수님을 본받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 교회 공동체들의 모습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교회를 위한 기도
1. ‘예수님이 주님과 그리스도이다’는 절대적 신앙 고백을 가지고 전도하게 하소서.
2. 목사님의 복음증거에 능력을 주시고 온 교회 가정 공동체가 전도자가 되게 하소서.
3. 모든 교회 가정 공동체가 전도의 명령과 사명을 받아 새 생명을 낳게 하소서.
4. 내 주변에 복음이 필요한 관심대상자를 찾아내어 만나게 하소서.
5. 관심대상자를 지속적으로 섬김으로 복음의 영향력이 나타나게 하소서.
6. 최선을 다해 11월17일에 예배에 참석하여 복음의 열매를 맺게 하소서.
2배 부흥 전도축제 5대 헌장 첫 째 (명령)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한다. 둘 째 (사명) 전도의 사명을 이루어 하나님 앞에서 상급 받는다. 셋 째 (구원) 사람들이 날마다 구원받는 교회가 되게 한다. 넷 째 (헌신) 전도를 위해 서로 기도하고 힘을 주고 격려하고 헌금한다. 다섯째 (희생) 2배부흥 전도축제를 위하여 생명 걸고 전도한다. |
마침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 교회 공동체가 예수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예수님의 믿음을 본받는 삶인 것과,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는 삶인 것과,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삶인 것이므로, 부르심의 기회를 응답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어 교회 공동체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이 교회 공동체의 주님과 구세주와 그리스도임을 전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축복기도: 지금은 구세주 예수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우리교회 공동체가 예수님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은, 예수님의 믿음을 본받는 삶인 것과, 예수님의 정신을 본받는 삶인 것과, 예수님의 삶을 본받는 삶인 것이므로, 부르심의 기회를 응답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시어 교회 공동체의 죄를 회개하고,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변화되어 예수님 그리스도가 교회 공동체의 주님과 구세주요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을 전파하는 교회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시옵기를 구세주 예수님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교회 공동체와 함께 하시기를 구세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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