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손흥민 이제 정말 심상치 않다.
물론 지난 해부터 손흥민은 불이 붙기 시작했다.
손흥민은 15/16 시즌에 토트넘에 왔는데 그 시즌에는 부진했다.
그래서 팀에서도 분데스리가 방출을 고려했었고
손흥민도 돌아가려고 했고 구체적으로 팀도 정해 졌었다.
하지만 16/17 시즌에는 21골을 넣었고,
리그에서만 14골 6도움, 공격포인트 20점을 기록하여 가능성을 보였다.
17/18시즌에는
월드컵 출장 때문에 부상도 있고 해서 초반기에는 다소 부진했는데,
12월부터 완전히 불이 붙어 버렸다.
현재 시즌 총 11골이고 리그에서만 8골 4도움으로 공격포인트 12점을 기록 중이다.
오늘도 루니의 에버튼을 상대로 1골1도움을 기록하여 경기의 MOM이 되었는데
이번 골은 토트넘 소속 선수 중 홈경기 연속골 타이기록이다.
손흥민은 오늘 골로 홈경기 연속 5골을 넣었고 이는 구단 역사상 타이기록이다.
2.
정말 심상치 않다고 했던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다.
손흥민은 분데스리가 시절부터 득점원으로써 치명적인 두 가지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오프더볼(골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때의 움직임..
현대축구에서는 팀플레이의 아주 중요한 조건이다)이 매우 좋지 않았다.
뻑하면 공을 가진 선수 옆에서 얼쩡거리기 일쑤이거나
그 반대로 필요한 때 딴데서 얼쩡거리기도 했다.
둘째, 연속경기 골이 없었다. 전혀 없었다.
그게 지켜보면서도 신기했다. 스포츠는 동기와 기운이 중요해서 한번 필 받으면
일정 기간 계속되어 좋은 스코어도 나오는 법인데,
손흥민은 2골을 넣어도
다음 경기에서는 그 선수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플레이를 보이곤 했다.
이런 약점에도 손흥민이 기용될 수 있었던 것은 '한방'이 있었기 때문이다.
손흥민의 슈팅능력은
볼간수 능력이 더 받쳐주면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건실하다.
그래서 그점도 희안했다.
플레이가 형편없고 화면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어느 순간 골을 넣고는 했다.
EPL에 와서도 첫 시즌에 위의 두 가지 약점은 그대로 반영되었다.
게다가 분데스리가보다 빡센 EPL의 조건때문에 체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었다.
16/17 시즌부터 위의 두 가지 약점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선발로 뛰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골이 늘어났고
다른 공격진들과 팀워크가 생기면서
볼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어디로 움직여야 하는지 깨달아가는 것 같았다.
16/17시즌은 그래서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리그에서만 14골 공격포인트 20점을 얻었고 EPL 이달의 선수에도 2번씩이나 올랐다.
그러나, 지금의 손흥민은 16/17 시즌과도 또 달라졌다.
3.
손흥민의 2017년 12월 이후의 경기들을 한번 챙겨보시기 바란다.
시간이 없는 분들은 1/14 경기와 1/05 경기만 챙겨보셔도 된다.
위에서 내가 지적한 두 개의 약점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딴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진화했다.
한 전문가는 오늘 경기를 보고나서 의미심장한 평을 냈고 나는 완전히 동의했다.
손흥민이 볼을 받기 전에 머리를 쳐들고 주변을 둘러본다는 것이다.
이건 게임메이커들이 하는 행동이다.
바르샤의 사비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고개를 쳐들어 둘러보는 횟수가 1.5배는 된다.
맨유에서 박지성과 함께 뛰었고 나이도 같은 수비형미드필더 캐릭은 지금도 맨유의 현역이다.
그에게 하는 칭찬 중 중요한 점이 "고개를 쳐들고 전방을 살피는" 버릇이다.
캐릭은 상대의 공격 경로를 예상하여 그것을 끊는데도 능하지만,
그 관찰력 때문에 필요한 전방패스에도 능하다.
오늘 경기평을 낸 그 전문가는 손흥민이 "오프더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썼고,
그 중요한 증거 중 하나로 "고개를 쳐들어 주변을 살피는" 행동을 장착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건 내가 어디에 있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 물색한다는 뜻이고
동시에 공을 받으면 드리블, 슛, 패스 어떤 것을 선택할 지의 환경을 분석한다는 뜻이다.
연속골이 없다는 약점도 이제 옛말이 되었다.
12월부터 지금까지의 연속 득점들만 봐도 쉽게 확인되니까...
약점이 크게 줄어드니 가진 장점이 돋보이기 시작한다.
1월5일 웨스트햄점에서 성공시킨 27미터 중거리슛 동영상을 찾아보기 바란다.
손흥민의 최근 축구쇼는 뚜렷한 약점을 상대방에게 노출하지 않는 선수의 여유로움에서 비롯된다.
4.
손흥민의 최근 경기를 보면 몇 가지 느낌과 특징을 발견한다.
1. 팀에 완전히 녹았다. 케인-알리-에릭센-손흥민 편대의 필수적인 일원이다.
2. 좋은 패싱을 보인다. 이건 분데스리가 레버쿠젠 시절과 비교해 보면 너무 확연하다.
3. 볼간수 능력도 좋아졌다. 두 가지가 영향을 미쳤다. 연습도 있었고 피지컬도 좋아졌다.
4. 치달(sprint)이 훨씬 날카로워졌다.
EPL에서 손흥민은 그리 빠른 공격수가 아니고 종종 윙백들보다도 느리다.
그러나 치달에 의한 득점의 극적 효과는 더 커 보인다.
아무 때나 치달하는 게 아니라 결정적인 순간을 잘 포착하여 치달을 하고,
팀에서 그런 치달에 의한 득점을 하는 유형의 선수가 혼자라서 그렇다.
5. 수비가 좋아졌다. 체력에 대한 문제제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손흥민의 수비는 이제 지적받을 사항이 아니다.
6. 골넣는 방식이 다양해 졌다.
중거리 슈팅, 치달, 줒어먹기, 아크로바틱골, 심지어 헤더까지...
물론 헤더는 극히 드문 예이지만.
지금 리그는 15경기가 남았고
손흥민은 리그에서 8골 4도움이다.
작년의 14골 6도움은 경신될까?
난 된다고 본다.
무엇보다 연속골이 가능해진 컨디션 관리 능력 때문이다.
15골만 되면 EPL TOP 10의 스코어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양이 문제는 아니다.
이번 시즌 손흥민의 득점은 그 이전에 비해 훨씬 고품질이다.
동료들과의 협력플에 의한 득점이 눈에 띄게 늘었고,
득점기술도 수준급이 되었으며, 동료가 없으면 혼자라도 넣는다.
이제 손흥민이 공을 잡으면 청중들의 기대가 함성으로 터져 나온다.
이렇게 팬들에게 '저 선수가 뭔가를 해줄거야'라는 판타스틱한 기대를 갖게 하는 스타를
우리는 판타지스타라고 부른다.
5.
손흥민에 대한 해외반응을 보면 일본이나 중국의 축구팬들에게도 이미 스타다.
그들은 "손흥민은 이미 아시아 선수가 아니다"라고 한다.
아시아 출신 선수가 가진 약점, 버릇 등등이 전혀 보이지 않고
그냥 얼굴만 아시아인인 유럽 선수로 보이기 때문이다.
주력, 기술, 키와 체격, 자유분방함 등등에서 유럽선수와 차이가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손흥민이 아시아 선수임을 확인케 해주는 것은
그의 얼굴 모습과, 그가 "아직도 더 배워야 한다...
다른 동료들이 잘해서 내가 잘할 수 있었던 것" 등과 같은
동양식의 겸양을 표시하는 인터뷰 스타일정도뿐이다.
그런데, 일본과 중국의 손흥민팬에게서는 종종 그런 질문도 나온다.
"손흥민은 저런데, 한국 국대는 왜?.."
손흥민은 월드컵을 위한 컨디션이 충분히 준비되었다.
너무 컨디션이 좋아서 월드컵 시점에 떨어져 있을까봐 걱정될 정도로...
손흥민에 대한 기대가 고조될 수록 월드컵국대에 대한 기대도 고조될 수밖에 없다...
국대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품질 높은 스포츠 감상하라고 권하려는 것뿐이다.
손흥민의 플레이가 EPL과 라리가의 난다긴다하는 선수들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플레이 자체가 고급스러워졌다.
골도 더욱 고품질이 되었지만 골까지 가는 과정의 움직임도 세련되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입장에서 느끼는 긍정적인 감정은
손흥민이 '독립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팀플에도 잘 녹아들지만, 필요하면 자기 판단으로 골문을 직접 공략한다.
그리고 적잖게 성공한다.
스스로 승부를 결정짓겠다는 태도는 몰입과 리더십을 만들기 때문에 아주 중요하다.
* 아시아팬들에게 손흥민이 주는 격렬한 감정도 이 점과 관련이 있다.
아시아팬들이 느끼기에 유럽에서 아시아 선수들은 유럽 선수들의 보조자 역할에 머문다.
열심히 뛰지만 기술이 부족해서 그렇고, 체격이 좋지 않아 더 잘 넘어진다.
또 득점 능력이 부족해서 대체로 골을 넣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에 머문다.
그러나, 손흥민은 이 모든 아시아 선수의 전형을 모두 벗어나 있다.
키도 유럽인만큼 크고 주력도 좋고 기술도 좋고....
무엇보다도 손흥민은 자기가 원할 때면 골문을 직접 공략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시아팬들은 열광한다.
골문을 직접 공략할 수 있는 능력, 그걸 할 수 있는 팀내 위상 등을 느끼는 것이다.
축구 잘 안 보시는 분들도 최근 경기를 한번 일별 하실 것을 권해 드린다.
선수는 컨디션 올라올 때가 있고 내려갈 때도 있다.
지금이 피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번 시즌에서 지금이라도 손흥민을 보지 못하면 손해다.
지금이라도 챙겨보시라..
찌릿찌릿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