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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하시의 탐욕
열왕기하 5:19-27
세월호의 참사는 얼마든지 구조해서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을 죽게 했다는 것입니다. 선장과 선원들이 자기 맡은 직무에 충실했더라면 모두를 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고가 난 시간이 한 밤중도 아닌 아침입니다. 파도가 높고 비바람이 몰아치지도 않았습니다. 8시 55분에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해경에 연락을 했습니다. 해경이 와서 구조를 하기 시작할 때 제일 먼저 선장이 탈출했습니다. 선장이 탈출한 시간이 9시46분이였습니다.
선장과 기관장 조타수 선원 15명은 이미 세월호에서 탈출하고 없는 동안 선실에는 학생들을 비롯한 선객들은 탈출하라는 명령과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학생이 마지막 카톡을 보낸 시간이 10시 17분입니다. 선장과 선원은 선객들을 살리는 책임이 있습니다. 배가 침몰하기까지 약 2시간 정도는 얼마든지 구조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저는 세월호의 침몰 사건을 교회로 비유해 보았습니다. 우리교회는 천국을 바라보고 항해를 하고 있는 동성호 입니다. 그리고 목사는 선장이며 장로와 집사, 권사는 선원들입니다. 목사와 장로 집사 권사들이 자기 위치에서 자신이 맡은 책임을 하지 못할 때 교인들은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엄청난 사람들이 죽고 물질적 정신적 손실을 가져 오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탐욕입니다. 탐욕이 가장 큰 원인입니다. 일본에서 사용 할 수 없는 폐선을 구입해서 더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불법 개조하여 정상보다 3배나 넘는 화화물을 선적한 것입니다. 그리고 배 한척에 여러 갈래의 연결고리가 있는 비리들이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정치권과 행정 관계자들까지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어떤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의 교회가 세속화되어 성도들의 신앙을 오염시키는 문제 역시 탐욕입니다. 지도자들의 탐욕이 교회를 빠르게 세속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탐욕 때문에 순진한 성도들을 어둠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아만이 가져 온 예물을 대하는 두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나아만의 예물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게하시는 그 예물에 탐욕을 가졌습니다. 엘리사는 예물을 받으라고 강권하였지만 끝까지 받지 않았습니다.
목사인 저는 엘리사가 왜 예물을 받지 않았을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아만이 받으라고 하는 예물은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검은 돈도 아닙니다. 자신의 병 고쳐 준 것을 감사해서 받치는 예물입니다. 그 예물을 받아 선지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사용하였다면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더 잘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아만이 가지고 온 예물은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입니다. 주석 학자는 은 십 달란트는 343kg, 금 육 천개는 68.4kg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현금으로 환산을 하면 수백억 원이 됩니다. 만약 엘리사가 이 예물을 받았다면 자신의 사역이나 선지자들을 훈련시키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엘리사는 많은 생도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도들의 거처가 좁아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다 넓히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무를 벨 도끼도 없어 빌려야 할 정도였습니다(왕하6:1-7). 이처럼 어려운 때 나아만이 주는 예물로 선지학교를 세우고 웅장한 성전을 지었다면 많은 선지자를 훈련 시킬 수 있고, 더 효과적인 하나님의 사역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엘리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까지 하며 받지 않았습니다.
오늘의 교회는 이러한 예물을 거절하지 않습니다. 감사 예물을 바치면 몇 갑절의 복을 받는다고 하며 강요합니다. 주의 사자를 잘 대접하면 복 받는다고 합니다.
가령 허목사의 설교를 듣고 큰 축복을 받은 어떤 사람이 감사해서 수 억 원을 가져와서 받으라고 하였을 때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예물은 한 푼도 손대지 않고 교회당을 웅장하게 다시 지을 것입니다. 저는 엘리사처럼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 예물을 엘리사처럼 거절했다면 제일먼저 교인 여러분들이 목사를 크게 나무랄 것입니다. 저 뿐 아니라 대부분의 목사님들이 거절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당을 새로 잘 지어 대형교회가 되면 교인들 역시 좋아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있는 목사라는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올 것입니다. 서울서도 KTX타고도 올 것입니다. 서울 어느 교회 목사님은 자기 설교를 듣기 위해 제주도에서 비행기 타고 온다고 자랑합니다.
노회 고시부가 매년 부교육자를 교육합니다. 몇 년 전에 저가 고시부원으로 있을 때 이웃 노회에 목회를 성공적으로 하시는 목사님을 주강사로 모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교인들로부터 대접 받았던 것을 자랑하는 것을 듣고 크게 실망을 하였습니다. 백화점에 가서 쇼핑을 하다가 백 몇 십만 원 하는 양복을 한 벌 사 입고 카드로 계산한 영수증을 자기 교회 모 권사님께 드리면 즉시 입금해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목회를 꿈꾸고 있는 부교역자들에게 자신이 이런 대접을 받고 있다는 자랑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사님은 결국 재정 문제로 총회에서 상회권을 박탈 당하므로 노회원이나 총회원이 될 수 없는 벌을 받았습니다. 아직 한참 목회를 할 수 있는 나이지만 더 이상 목회를 하지 못하고 쫓겨나듯이 은퇴를 하고 무임 목사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선교한다는 명분으로 중국 어딘가에 숨어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 성공한 목사님들이 탐심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의 예물을 받아 선지학교를 세우고 선지자들을 부담없이 교육을 시켰더라면 나름대로 성공은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의 대형 교회들의 목회자들에게 탐심목회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목회 말로가 아름답지 않습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이 가져온 예물을 받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을 제일 먼저 게하시가 못 마땅하게 여겼습니다. 나아만의 예물은 뇌물이 아닙니다. 아무도 고치지 못하는 나병을 고쳐 준 것에 대한 감사 예물입니다. 받아도 탈이 없습니다. 게하시는 속으로 ‘내 주인이 나아만이 가지고 온 것을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20)고 했습니다.
게하시의 마음속에 탐심이 있었습니다. 그 예물을 가지기 위해 나아만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게하시는 엘리사의 사환으로서 시키는 일을 해야 합니다. 엘리사의 곁에서 명령을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였습니다. 엘리사 몰래 나아만의 뒤를 쫓아갔다는 것은 자신이 해야 할 직위를 떠난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만이 멀리 가기 전에 쫒아가서 소리쳐 세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자자의 제자 중 두 청년이 산지에서부터 와서 청하건데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벌을 주라고 하시더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탐심은 거짓말을 참말처럼 잘 합니다. 게하시는 자기가 달라고 하면 주지 않을 것 같아서 엘리사가 보내서 왔다는 아주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아까는 주인이 예물을 받으라고 강권해도 거절하더니만 이제는 생도들이 산에서 공부하다가 어려워 그들에게 필요하여 달라고 하니 오히려 달라고 하는 한 달란트에 한 달란트를 더해 두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게하시 혼자가 지기에는 무거울 것 같으니까 나아만은 자기 종 둘에게 지워서 주었습니다. 동네 가까이 언덕에 왔을 때 게하시는 나아만의 두 종에게 지고 온 예물을 내리게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까봐 언덕에서 내리게 하고 아무도 보지 않게 가만히 자기 집에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엘리사 앞에 섯습니다.
게하시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가장 가까이 모시고 섬기는 자로서 누구보다도 복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탐욕 때문에 자신은 물론이고 온 가족과 자손까지 영영토록 나병으로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환은 심부름 하는 사람입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말씀 한 마디로 아무도 고칠 수 없는 나병을 고쳐 주는 것을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이렇게 능력있는 분을 모시는 사환이라면 복 받은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잘만 하면 장차 엘리사처럼 능력있는 후계자도 될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게하시처럼 하나님의 교회에 사환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전해 주어서 병들어 죽어 가는 사람들을 고치고 살리는 일을 하는 하나님의 사환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복 받은 자들입니다. 오늘도 여러분은 복 받을 수 있는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지금 들은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면 반드시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말씀이 주는 복을 받고 있습니까?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는데 말씀이 주는 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게하시의 탐심이 여러분에게도 있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이 사업이 잘 되는 축복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업이 어렵고 힘들어서 그 말씀대로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십일조를 하면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주신다는 말씀은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말3:10). 사업이 어려우면 십일조를 더 잘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업이 어렵기 때문에 십일조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업이 어려워서 십일조를 할 수 없다면서 자기 쓸 것은 다 씁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할 때 에누리를 합니다. 가령 11,000원을 해야 합당한 십일조가 되는 데 10,000원을 한다면 마음속에는 탐심이 있습니다. 정상적인 것보다 좀더 해도 탈 안납니다. 오히려 더 많은 축복을 받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소유를 팔아 그 얼마를 감추고 사도들에게 받쳤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재산을 팔아 받치고도 저주를 받았습니다(행5: ). 이렇게 탐심은 사람을 속이고 나아가 성령까지도 속입니다.
만약 엘리사가 예물을 받았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더 이상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보다는 예물을 더 의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 예물을 받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더 큰 능력을 주셨습니다. 생도들이 빌려온 쇠도끼로 나무를 찍다가 물에 빠져 걱정하고 있을 때 엘리사는 물속에 빠진 쇠도끼를 물 위로 떠오르게 하여 건져 주었습니다(왕하6:6).
아람 군대가 이스라엘 왕을 죽이려고 왕이 다니는 길목에 매복하고 기다리면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라고 가르쳐 주기 때문에 왕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람 왕은 엘리사를 죽이려고 엘리사가 머물고 있는 사마리아 성을 에워 샀습니다. 물유가 유통되지 않으므로 사마리아 성중에는 굶주려 죽게 되었고 물가는 폭동하여 비둘기 똥을 아주 비싸게 사서 먹기도 하고 아들을 삶아 먹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때 엘리사는 내일 아침에 성문 앞에 먹을 것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을 비롯한 성 사람들은 하늘에 창을 내신들 가능하겠느냐 하며 그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에 아람 군대가 음식을 먹다가 급히 도망치고 가버렸기 때문에 엄청난 군량미를 비롯한 먹을 것이 있었습니다. 엘리사의 말대로 먹을 것이 넘치게 되었습니다(왕하 6:24- ). 어쩌면 선지자들 중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장 많은 기적을 할 수 있었던 엘리사라고 봅니다. 이처럼 엘리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실 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없는 하나님의 능력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탐욕은 게하시를 망하게 했습니다. 나아만으로부터 받은 은과 옷을 집에 감추고 가족들에게 지키게 하고 엘리사 앞에 나아갔습니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네가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습니다. 게하시는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탐심은 계속 거짓말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을 때냐’고 하시며 무섭게 책망하였습니다.
책망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게하시는 거짓말을 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속인 것입니다. 나아가 성령을 속인 죄가 되므로 더 이상 용서 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가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는 무서운 저주를 하였습니다(26). 탐심은 자신을 망하게 할 뿐 아니라 가족들까지도 멸망하게 하는 무서운 것입니다.
탐심은 누구든지 망하게 합니다. 여러분은 탐심으로 망하게 된 게하시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는 엘리사가 되어야 합니다. 물질을 의지하는 자가 되지 말고 엘리사처럼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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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은혜의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