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포의 새벽 편지-1125
법망계본031
동봉
스님네 갈마 짓기作僧羯磨(2)
보통 주고 받는 대화체로 하되 진솔하게
교수사가 묻고 유나維那가 답합니다
문 : 대중이 다 모였습니까?
답 : 이미 다 모였습니다.
문 : 화합합니까?
답 : 화합합니다.
문 : 대중이 모여 화합함은 무엇을 위함입니까?
답 : 보살계를 설하여 포살하기 위함입니다.
문 : 보살계를 받지 않았거나 부정한 이는 나갔습니까?
답 : 보살계를 받지 않았거나 부정한 이는 없습니다.
문 : 보살계 수계와 청정을 위임한 이가 있습니까?
답 : 어느 것도 위임한 이는 없습니다
교수사가 짓는 마무리 갈마 한 마디
"있다면 여법하게 위임한 사실을 말하고
없을 경우 모두들 잠자코 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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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갈마僧羯磨가 무엇일까요?
'스님僧네를 위한 갈마'가 아니겠습니까.
스님네는 알겠는데 갈마는 무슨 뜻일까요?
한문에 조예가 있다는 이가 찾아왔습니다
"동봉 큰스님, 제 생각으로는요!"
말을 꺼내놓기는 했는데 잇지 못했습니다
내가 물었습니다
"거사님, 뭐 하실 말씀이 있으신 거지요?"
그가 용기를 내어 말했습니다
"네, 큰스님. 제 생각에는요."
"네, 말씀하십시오. 거사님 생각에는요?"
"제가 한문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입니다"
"아! 네 거사님, 그러시군요"
"갈마羯磨에 대해 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습니까? 거사님, 매우 궁금합니다."
"네 큰스님, 갈마를 찾아보니까~"
"네, 찾아보니까 답이 나오던가요?"
교수는 처음과 달리 말에 힘이 붙습니다.
"네 불깐 양 갈羯에 갈 마磨 자이니~"
내 눈치를 힐끗 살피고는 말을 이었습니다
"한자로 놓고 보면 거세된 양羯이~"
"거세된 양이?"
"아무래도 '종족보존의 본능'이 없겠지요?"
불깐 양, 곧 '거세된 양'이란 말과
'종족보존의 본능'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내가 재촉하듯 물었습니다
"그래요, 그래서요?"
"족종보존 본능에 무심한 양羯과 같아질 때
비로소 마음을 닦을磨 수 있지 않을까요?"
"아, 네. 그런데요?"
우리말이 분명 맞긴 맞는 듯싶은데
이 말들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치매癡呆일까, 내가 치매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고개를 흔듭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그의 지루한 얘기는
한 마디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언어란 때로 느낌대로 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함부로 해석할 수 없습니다
가령 '오줌'이란 단어를 놓고 볼 때
'오줌'을 통째로 이해함은 가능하겠지만
'오' 자와 '줌'자를 따로 나누어 풀이한다면
되려 더 이상하게 꼬일 수 있습니다
오줌은 혈액 속 노폐물과 수분이
신장에서 걸러져 방광 속에 괴어있다가
요도를 통해 몸 밖으로 나오는 액체입니다
빛깔은 누렇고 지린내가 나지요
이럴 경우 '오줌尿urine'에 대한 단어를
'오'와 '줌'으로 나누어 풀 게 아니라
통째로 풀고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갈마羯磨karma/kamma'도 마찬가지지요
소리 옮김音寫이 아닌 뜻 옮김意譯으로서
대표적인 단어 '업業/업장業障'이라든가
작법作法, 변사弁事 따위로 전해졌다면
그래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갈마羯磨'로 음사된 단어를
음사된 발음기호에서만 찾는다면 어떨까요
이미 눈치 챘겠지만 '갈마羯磨karma'는
불깐 양 갈羯 자와 갈 마磨 자와는 무관합니다
두 글자에는 뜻이 들어있지 않습니다
이는 그냥 발음기호일 뿐이지요
그럼에도 그 교수 말이 참 재미있습니다
'갈마'에 그런 뜻이 들어있다고 봄이 말입니다
불 깐 양羯처럼 욕망을 벗어나야
마침내 소중한 마음을 닦을磨 수 있다니요
정말 말대로 그런 내용이면 참 좋겠습니다
그럼 불 깐 양은 욕정이 일지 않을까요?
배란기에 접어든 암컷을 만나더라도
불 깐 양은 욕정이 전혀 일지 않을까요?
불 깐 양과 달리 욕정은 별개이기 때문에
때로는 욕정이 일어나기도 하고
때로는 욕정이 일어나지 않기도 할까요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아는 사람이 애완견을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강아지를 분양 받아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할 일이 '정관수술'이었습니다
그러나 정관수술을 마친 강아지지만
수컷으로서의 마운팅 행위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녀석은 암컷에게뿐만 아니라
같은 수컷이거나 주인의 무릎, 발등에서도
동일한 마운팅 행위를 계속했습니다
그렇다면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비록 정관수술을 마쳤다고 하더라도
욕망의 세계는 실로 원초적이란 것이지요
마음 자체에서 비워내지 않는다면
'불 깜'만으로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갈마의 전혀 엉뚱한 뜻이기는 하지만
불 깐 양과 갈마에는 열결점이 있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교수는 이를 이미 알고 있었을까요
단언하건대 그는 분명 몰랐을 것입니다
그건 그렇고却說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갈마羯磨는
카르마karma/캄마kamma의 음사입니다
대표적인 뜻이 크게 3가지인데
첫째는 업業/업장業障이고
둘째는 작법作法/예법禮法이며
셋째는 변사弁事/변증辯證입니다
물론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뜻이 들어있으나
여기에서는 둘째와 셋째의 뜻입니다
작법에는 또 4가지가 있는데
크게 법法, 사事, 인人, 계界로 나누지요
보살계를 설하거나 포살布薩함에 있어서
이들 4가지가 모두 들어있습니다만
너무 어렵게 생각하기보다는
하나의 의식儀式으로 보면 간단합니다
새벽예불에는 새벽예불 의식이 있고
사시마지에는 사시마지작법이 있습니다
결혼식에는 결혼에 따른 의식이 있고
장례식에는 장례절차가 있겠지요
쉬운 예로 장삼을 입고 가사를 걸친다거나
옷 하나를 입는 데도 절차와 예법이 있듯이요
보살계를 주고 받는 수계식受戒式에서도
또는 보살계를 외는 포살布薩에서도
반드시 그에 합당한 예법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작법이고 예법이며 갈마입니다
보살/포살에서는 세 분의 스승을 모시는데
첫째는 전계대화상傳戒大和尙이고
둘째는 교수아사리敎授阿闍梨이며
셋째는 갈마아사리羯磨阿闍梨입니다
'아사리'도 '갈마'처럼 음사音寫이기 때문에
한자漢字에 뜻이 있는 게 아닙니다
제자를 가르치고 행위를 바르게 지도하여
그 모범이 될 수 있는 수행자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변사弁事는 또 어떤 뜻일까요?
쉽게 말해 '사건事의 변증辯證'이며
사건에 대한 변호辯護입니다
변사弁事의 '변弁'은 고깔 변弁 자이나
말씀 변, 즐거워할 반, 갖출 판으로도 새깁니다
보살계를 받을 자격을 갖추었는지
보살계를 욀 수 있는 그런 자인지
행동과 언어와 마음이 모두 깨끗한 지를
하나하나 판단하고 가려내는 변사입니다
예나 이제나 삶에는 패턴pattern이 있습니다
세간世間에서의 삶만 그러한 게 아니라
출세간出世間 수행자들 삶도 그러합니다
이 '스님네 갈마 짓기作僧羯磨' 속에
살짝 숨어 있는 삶의 패턴을 한 번 엿볼까요?
차 한 잔 들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내일 새벽 '범망계본032'를 기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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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如君子性無邪
차는 군자와 같아 성품에 삿됨이 없다
시인, 의학박사, 서예예술학박사인
초림初林 김수창 선생님 휘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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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11/2018
종로 대각사 '검찾는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