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불꼬불 산길을 올라가면 하늘과 마주한 곳에서 '구름속의 산책' 농장지기 한정섭·조인경 부부를 만날 수 있다. 농장 아래 구름 속으로 내려다보이는 아랫마을이 한폭의 풍경화처럼 아련하여 작명을 이리하였나 싶다.
3년 전 지리산 자락 산청에 터를 잡아 당귀 농사와 방사 유정란, 곳감 만들기를 즐겨하며 살고 있는 한정섭·조인경 부부. "아이들에게 자연을 벗 삼을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또 성인이 되어서는 언제 든지 도시 생활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갖은 상념들을 털어버리고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들어 주고자 귀농을 결심했습니다.
당시 고 3이었던 큰 아이를 끌고 부랴부랴 짐 챙겨 내려와서 '잘했나?' 자문하기도 여러번이었으나 '역시 그러길 잘했다'며 가슴 뿌듯해 합니다. 한그루의 나무도 1년만에 자라지는 않으니까요." 비단 아이들 문제만으로 귀농 결정을 한 것은 아니었다.
웨딩 포터그래퍼로 활약하던 한정섭 씨는 10년 후의 삶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귀농하기 전인 2007년에 벌써 44세였습니다. 도시에서 계속 산다고 해도 3~4년 후면 웨딩 포터그래퍼로서의 수명이 끝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은 인생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했습니다. 도시생활에 이미 실증이 난 상태로 아내와 상의해 시골로 내려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안개와도 같던 계획, 교육을 통해 방향 설정
귀농을 결정하고 약 6개월 정도 무작정 살 곳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안개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듯 귀농에 대한 방향을 잡지 못했다. 그러다 인터넷을 통해 천안연암대학 귀농 센터를 알게 되었고, 4기로 교육을 수료했다.
"갈팡질팡하던 귀농의 방향 설정에 어스름한 빛을 주었다고 할까요? 교육을 받으면서 실제 농사에 관련된 여러 배움이 도움 되었습니다. 특히 도시민의 농 촌정착에 관한 전반적인 개요를 다루어 주어 농촌에 대해 정말 일말의 지식이 없던 저에게 귀농의 방향을 정해주신 좋은 교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귀농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허방을 짚을 수도 있는 교육생들에게 채상헌 교수의 명 쾌한 교육은 헛된 꿈을 심어주는 것이 아 니라 있는 그대로의 교육이었다. 때문에 농촌의 현실을 알게 됐고, 그에 따른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는 한 씨가 '무턱대고 귀농은 절대 반대'를 외치는 이유 이다.
장기적으로 귀농을 생각하고 있다면 정부의 인가를 받은 곳의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교육을 받으면서 어찌 보면 비슷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동료들과의 교류를 넓힌 것도 큰 자산으로 꼽았다.
별이 아름다운 산청으로 귀농지 선택
교육 수료 중 마음이 맞는 동기 3명과 함께 산청 으로 도제 교육을 받으러 내려왔다. 당시 산청군은 약초클러스터를 만들고 있어서 귀농을 할 경우 지원이 많았기 때문이다. 1년간 도제교육처 농가와 함께 당귀 농사를 지은 한 씨. 그러나 결과는 참담 했다.
"1년 동안 직접 농사를 지으면서 '내가 왜 귀농을 한다고 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암담했습니다. 도제교육처의 농가가 너무 부풀 려 이야기 했었죠. 1년 농사 수확 결과가 단지 400만원에 불과했습니다."
이때의 상처로 3명의 교육생들은 뿔뿔이 흩어 져 각자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한 씨는 일은 힘들었지만 올려다 본 하늘의 별이 무척 아름다운 산청에 남아 모든 걸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때 아내 조 씨의 '지금 당장 산청으로 내려가고 싶다'는 전화 한통은 한 씨에게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보다 더한 힘이 됐다.
산청으로 내려오기 전에 아내와 가족은 서울에 남겨두고 한 씨 먼저 내려와 1년 정도 사태파악을 한 뒤 가족의 귀농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상태였다. 그러니 3개월만에 산청으로 내려오겠다는 아내의 말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하기로 한 원동력이 되었다.
"아내의 전화를 받고 서울로 올라갔습 니다. 당장 이삿짐을 싸는데 딱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게 있었습니다. 고 3인 큰 아이의 입시문제였죠. 자는 아이를 깨워 의사를 타진하니 '본인은 상관없으니 가 족의 의견에 따르겠다'였습니다. 일말의 지체없이 한밤중에 가족 모두를 데리고 산청으로 내려왔습니다."
제2의 고향에 가족의 보금자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연고지가 전혀 없는 곳에서 집을 짓고 새로 시작할 땅을 사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자금이 많이 소요됐지만 농촌에 주어지는 혜택, 사소한 것을 꼼꼼히 챙겨가면서 살뜰히 보금자리를 마련 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과 아내의 적응이 걱정됐지만 귀농하자고 한 본 인보다 가족이 더 적응을 잘했다.
보다 많은 아이들을 숲으로!
그러나 1년동안의 농사 경험을 실패라고 생각 하지 않았다. 본인에게 맞는 귀농 방향을 찾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직접 농사를 지어보니 제가 농사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꼭 밭을 갈고 씨를 뿌려야만 귀농인건 아니지 않습니까? 관광농업으로 방향을 설정했습니다."
먼저 지역 인맥을 넓히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산청군내 공공근로를 시작했다. 그러다 매년 꽃 나눔 행사와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을 숲으로 데리고 가는 일을 하는 단체인 '초록교실 씨밀레'를 알게 됐다. 자연과 친근감을 가지게 해서 자연을 사랑 하게 만드는 단체의 목적과 숲에서 아이들이 행복한 모습이 좋아서 이 단체와 손을 잡고 일하게 됐다.
산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거창, 함양, 진주, 사천, 칠곡, 통영, 거제, 함안, 창영, 합천등 경남 서부 45개 지역 3,000명 아이들을 단발성이 아니라 연간 8회씩 숲으로 데려가고 있다. 씨밀레의 교 육 취지에 공감한 지리산국립공원은 '열린 숲속 나무병원 프로그램'에 5,000만원을 지원 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별 선생님으로 불리며 함께 숲에서 놀다보니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자연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숲 놀이 전문학교 씨밀레 초록교실'을 사단법인으로 만들고 사무차장을 맏게 됐다.
"(사)숲과문화의향기는 우리 아이 들이 자연을 느끼고 방과 후 건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 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산청군으로부터 청소년 문화존 위탁을 받고 '너의 끼를 보여줘'라는 타 이틀로 락 페스티발을 개최했습니다."
철저한 소수 회원 관리제의 방사 유정란 판매
한 씨가 귀농을 포기하고 오로지 취농만 한 것은 아니다. '구름 속 산책' 농장지기로 방사 유정란을 생산하고 있다. 도시민 고객 150명만을 대상으로 소수 회원들을 철저히 관리 하고 있다. 이유는 부부가 완전 유기농으로 키울 수 있는 닭의 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농사는 자기 규모에 맞게 해야합니다. 요즘 농촌진흥청에서 얘기하는 '강소농' 처럼 작지만 강한 농장입니다. 방사 유정란의 시장 형성가격은 한 알에 500원이 지만 저희는 600원에 판매하고 있습니다."
한 알에 600원 이면 40알 1판에 24,000원이다. 다소 비싼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자식같이 정성들여 키우고 반짝반짝 윤기 나도록 닦는 인건비, 먹을거리 안전 불신이 팽배한 현실에서 믿고 먹을 수 있는 안전성을 생각하면 비싸지 않다. 그리고 고객에 게 달랑 달걀만 보내지 않는다.
계절별로 직접 재배한 농산물로 만든 된장, 오디 음료, 매실음료, 곶감, 수정과, 식혜, 천연비누, 나물장아찌 등을 동봉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닌 고객과의 인연이 소중하기 때문에 함께맛보고자 나누는 것이다. 관광농원 준비도 바쁜 와중에 진행되고 있다.
현재 1개의 황토방을 늘려 대화가 단절된 가정이 진솔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인연은 허투루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니기에 또 다른 만남을 기대한다는 한정섭· 조인경 부부의 귀농은 새벽하늘의 별처럼 오롯이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