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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샘편지 32신]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의사 38년’을 잠시 접은 친구야.
그동안 심신이 지쳤다고? 왜 아니겠냐?
그래서 아무 생각없이 얼마가 됐든 일단 좀 쉬겠다고?
그래, 잘 생각했다. 병원을 운영하고 있으면 쉽지 않겠지만,
페이 닥터이니 진작에 한번쯤 쉬었어야 했다.
달리는 기차도 기름칠을 하지 않으면 어딘가 고장이 나게 마련이지.
그래서 훌쩍 떠나고 싶었다고?
아니, 그 사실을 안 막역한 친구들이 너와 함께 짧은 여행을 자청했다며.
아래의 글은 너와 함께 한 2박3일의 주마간산격 여행기라고 할 수 있을까,
이 글로 너에게 쓰는 편지를 대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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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2월 1일 월요일) 오후, 우리 동네 마을회관 주차장에
‘벗길맛(벗따라 길따라 맛따라)’ 3인조와
오수역에서 합류한 순천의 상남자 등 네 명이 불쑥 나타날 줄은 짐작을 못했다.
나는 그날 모처럼 작업을 해보겠다고,
비닐하우스에 세워둔 참나무 토막 60여개를 거꾸로 세워
물을 홈톳하게(듬뿍) 준 후,
뒷밭 감나무 묘목 30그루 주변에 퇴비 한 푸대씩을 뿌리는 중이었다.
아주 춥지도 않고 봄맞이 일하기에 딱 좋은 날씨,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고 옷도 엉망인 나를 보고,
자네가 그랬지. “농부가 다 되었구만. 그리고 왜 그렇게 집이 좋대?
내 마음에 딱 드네. 진작부터 와보고 싶었는데, 이제사 왔네”
부랴부랴 샤워를 하고 임실 청웅의 독림가篤林家 친구를 만나러 가며
우리의 2박3일 ‘벗길맛 여행’이 시작되었다.
그보다 자네는 여행을 자청한 친구들이 속으로 얼마나 고마웠을까?
내려오는 길에 전주 남부시장의 유명한 ‘조점례 피순대’집에서
점심을 했다지. 어떻던가? 가성비 짱이지? 언제나 가고 싶은 맛집.
누구에게나 강추할 맛집이 많은 우리의 고향 전주.
‘장광설長廣舌 대마왕’인 독림가 친구는 ‘벗길맛’3인조 방문 소식에 입이 벙그레해졌다던가.
귀한 백봉오골계 두 마리(지인이라고 6만원에 샀다함)를 느슨하게 묶어놓은 바람에 그만 놓쳐
집 뒤의 대나무밭을 뒤져 잡으려다 쇼를 했다고 하더군.
다행히 한 마리는 잡았는데, 6명이 백숙으로 먹기는 부족하다며 찹쌀을 몽땅 넣었다고 너스레를 떨며,
닭 잡으려다 큰일날 뻔했다는(신발이 벗겨져 맨발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는) 친구의 구수한 입담에
우리는 박장대소부터 터트렸지. 그날 처음 알았네.
털이 하얀 백봉오골계(뼈와 내장은 일반 오골계와 같이 검음)가 남성들의 스태미너에 최고인데, 흔치 않다고.
그러니까 시작부터 보양식保養食 만찬이었지.
하이라이트는 달아난 닭 한 마리가 어둑어둑해지자 집주변 밭으로 내려와 꼼짝하지 않고 있더군.
닭은 어둠이 몰려오면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처음 알았는데,
대나무밭에 있으면 영락없이 삵괭이 밥이 되는 것은 불문가지.
친구는 채로 덮치려 하고, 우리는 주변에서 닭몰이를 하려고 대기하고 있는데,
덮치는 채를 용케 피한 닭이 수채로 달아나자, 민중의 지팡이 출신인 친구가 들고 있던 막대기로
머리를 한방에 쳐 기절을 시켰으니, 얼마나 재밌는 일이었던가.
“역쉬-”를 연발하며 또 하나의 무용담武勇談이 탄생했으니, 닭을 쳐든 채 인증샷을 찍었었지. 흐흐.
그 친구가 혼자서 죽을둥살둥 리모델링한 집의 천장을 보고 깜짝 놀랐네.
믿기지 않을 정도의 작업과정을 설명하는데, 우리의 혼을 뺐지.
기존의 서까래를 고스란히 살리며 회칠을 하고, 검정 그을름을 일일이 깎아내느라 3개월여 고생한 보람이 있더군.
어떻게 그것을 직접 할 생각을 했을까? 비계를 설치하고, 그 위에서 거꾸로 누워 일일이 색칠을 하다니, 참말로 용하네이.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도 봤을 것이네. 배우 문소리가 요리하는 데 간간히 보여주던 주방의 천장 서까래.
그 고졸한 느낌이 너무 좋아, 나도 지난해 집을 리모델링하며 그렇게 하려고 했건만,
단열문제로 그만 ‘가짜 서까래’로 하고 말았다네.
장작불로 땐 구들목 방에 반해 허리를 지지자며 자네와 또 한 친구는 그 방에서 자기를 고집하고,
나머지는 우리집으로 돌아와 따로 밤을 보냈지만,
저녁을 먹으여 친구의 재미난 ‘이빨’듣느라 시간가는 줄도 모른, 아름다운 첫날밤이었네.
자네는 나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나는 자네들이 고마웠다네. 흐흐.
이틑날, 친구의 부인이 다 끓여 냉동시켜놓은 실가리국과 누룽지밥으로 아침을 때우고,
오전 10시 다음 행선지로 향하다, 남원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친구가 보고 싶다는 자네의 한 마디에 차를 돌렸었지.
아, 법 없이도 살 ‘진국’인 친구는 최근 ‘코로나 벼락’을 맞았다며 얼굴조차 상해 있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네.
환자 중 한 명의 양성 확진 판정에 병원은 2주간 폐쇄되고, 의사를 포함해 직원, 환자들의 자가격리조치.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더군. 우리 친구가 겪은 코로나 역병이 얼마나 무서운 역병인지를 보니 더욱 실감이 나더군.
얼굴 본 것을 위안삼으며 우리는 광양으로 달렸지. 광양에서 여성병원을 경영하는 친구는,
몇 년 전 순천에서 독립했다지.
그 친구는 순천에서 30여년 동안 한 NGO 이사장을 역임하며 시민운동에 혁혁한 성과를 이뤘더군.
의대 다닐 때 운동권이었던 친구답다며 같은 의사인지라 십 수년만에 만나도 서로 반기는 데 보기 좋더군.
광양 의사친구는 학창시절 나와 절친이었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고교 1학년때까지 5년 동안 같은 반을 했었다네.
흐흐. 점심을 팥칼국수로 맛있게 먹고 짧은 만남을 아쉬워했지만, 이렇게라도 서로 얼굴을 본다는 게 어디인가.
여수의 6시 만남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있기에, 우리는 승주의 선암사仙巖寺를 찾았지.
태고종의 총림인 ‘꽃절’은 봄이 아닌 스산한 겨울인데도 꼭 가볼만한 곳이지.
‘태백산맥’의 조정래 작가가 이곳에서 태어났다던가. 시조시인 조종현이 대처승으로 선암사에 있었다던가.
절 입구 승선교에서 바라본 강선루는 보기 드문 작품이었지.
식물박사인 친구는 친절하게도 삼나무와 편백나무의 잎을 따다가 비교하며 그 차치점을 알려줘 상식을 넓혀주기도 했지.
동백나무 50여그루가 꽃을 피우면 보지 않아도 장관일 것이고,
선암매仙巖梅는 또 어떨 것인가. 탐매객들의 눈을 홀려놓고도 남을 것이네.
아아-. 이 고즈넉한 절은, 좋아도 참 너무 좋았지. 스릴 만점의 깊은 똥깐(해우소解憂所)조차 마음에 쏘옥 들더라.
그 입구에 적어놓은 정호승의 ‘선암사’ 시를 소리내어 낭송해 보시라.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려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시인이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왜 가라고 했는지, 그 뜻을 되새김질해볼 필요도 있으리라.
봄에 아내와 함께 꼭 다시 오리라. 아니, 가을 단풍도 절정일 것은 보나마나.
눈이 와도 반드시 좋을 터이니, 사계절을 통틀어 아내와 손을 잡고 거닐어 보겠다고 마음 먹은 것만도 어디인가.
오후 5시반 출발. 여수 해오름식당 6시 도착예정. 어느 누가 초대했는지를 모르는 저녁모임.
여수에 일시 거처를 둔 친구는 이 시간을 대느라 서울에서 비행기로 날아왔다고 한다.
'새조개 샤브샤브'를 드셔보셨는가? 제철이라는 새조개, 엄청 비싸다.
3인이 먹을 량은 대자 15만원로 맞춤이지만, 비싸다. 흐흐.
한 방에 들었는데도 탁자 하나를 가운데 두고 따로따로 먹는 게 ’거리두기‘인가?
서로 모른 체하자는 웃지 못할, 이것도 진풍경이다.
친구는 법카(법인카드)가 있을까? 우리가 너무 민폐를 끼치는 것은 아닌가?
친구의 사택아파트에 짐을 푼 후 SD(섰다) 한 판에 웃고 떠드느라 정신이 없다.
홀로 사는데 방이 3개, 호화판이다. 가끔 형수가 내려와 1주일여씩 있는다지만 쓸쓸해도 한참 고적하겠다.
식탁에 놓여 있는 ‘반야심경’역주본이 눈에 띈다. 60대 중반에 마음수양 쌓기에는 최고인 듯하다.
사람 좋은 친구의 초대와 접대가 새삼 감격스럽다.
다음날, 아침 8시 20분 집주인인 친구는 출근을 하고,
우리는 주인없는 집에서 냉장고를 뒤져 밥을 하고 국을 끓였지.
순천의 쉐프는 유감없이 솜씨를 발휘하여 금세 재첩국을 끓여내고, 나는 밥을 안쳤지.
사과를 깎는 등 우리집이 따로 없었으니. 그새를 못참아 고스톱 1시간을 할애하고 집을 나선게 10시 반.
웬일인가, 산 지 몇 개월도 안된 ‘모하비’가 시동이 안걸려 서비스를 불러대는 촌극도 있었지.
해안드라이브 코스로 잡은 게 둔병대교부터 시작하여 팔영대교까지 연육교連陸橋 6개를 건너는 ‘백리섬섬길’.
이런 장관이 없어 탄성을 내지른다. 앞으로 5개의 다리를 더 놓아야 명실공히 40km 백리길이란다.
문과 체질인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게 첨단 건축기술이다. 멋지다. 대단하다. 오직 그 말밖에.
아하, 우주선을 발사한다는 나로도가 여기에 있구나.
적금공원에서의 모닝커피 한잔과 다육식물 눈구경도 좋았다.
참, 이런 호사스런 일이 연속적으로 이뤄지다니,
길 안내해 준 순천 친구도 고맙고, 모두가 고마울 뿐이다.
이제 ‘꼬막의 고장’ 벌교읍내로 들어서다. 어찌 참꼬막 정식을 먹어보지 않을 수가 있으랴.
눈을 번쩍 뜨고 코를 벌름거리며 찾은 식당이 ‘홍교집’. 알고보니 신문에도 대서특필된 맛집이다.
새꼬막 한 접시와 호롱이(낙지 꼬챙이)까지 나온다.
꼬막전, 꼬막무침, 두 종류의 삶은 꼬막, 꼬막 된장찌개.
흠이라면 1인분에 2만3천원으로 비싼 것일 테지만, 우리가 이만한 호사도 못누릴까 싶다.
우리는 ‘벗길맛’의 영구 종신회원이 아니던가.
더구나 눈물 겨운 것은, 나홀로 운전을 독차지한 친구의 형수 코멘트이다.
그동안 고생한 남편의 의사친구에게 맛있는 것 사주라며 거금 10만원을 주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 갸륵한 마음씨여. 무궁무진 복받을진저.
그러기에 미국 유학한 딸내미가 현지적응을 넘어 유명 약학대학에 진학하지 않았을까.
둘째딸내미도 어찌 그리 예쁘게 잘 자라며 공부까지 잘 할까?
그러니 나는 그저 ‘딸바보 친구’가 부러울 뿐이다.
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보성여관’을 아시리라. 아, 이곳이 보성여관이고, 이곳이 정하섭 아버지의 주조장이었구나.
‘태백산맥’을 다시 한번 꼼꼼히 읽어보고 싶다.
점심 후‘태백산맥 문학관’을 찾으니 코로나로 당분간 휴관, 아쉽게 발걸음을 돌리다.
이제 가야 한다. 헤어질 시간이 가까워진다.
순천 해룡면 신대리의 한 아파트가 집인 순천 쉐프친구를 데려다 주는 길에
그 형수와 반짝상봉을 하고
순천∼전주 고속도로를 탔다. 여기에서 임실 오수까지는 1시간여.
기어이 데려다주겠다는 눈물겨운 의리와 우정 덕분에 편하게 도착한 나는
커피 한잔을 끝으로, 아무리 즐겁고 좋았어도 오후 3시 헤어질 도리밖에 없지 않은가.
제발 잘 올라가야 할텐데, 중부지역 눈이 많이 쏟아진다는데, 교통체증은 없어야 할텐데.
참 재밌었다. 2박3일 짧다면 너무 짧다. 다음을 또 기약한다.
설연휴 직후, 제주도 어떤가? 모두 실실 웃는다.
우리 너무 재밌게 사는 것 아니야? 이 코라나 난리판속에 말이야.
벗길맛 3인조는 서울 송파 도착 6시 반에 또 한 명의 팔방미인 재주꾼을 불러내어
기어이 홍어애탕으로 저녁을 기똥차게 먹고 헤어졌다며 인증샷을 보내왔다.
징한 친구들, 아무튼 무사히 잘 귀가하여 다행이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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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자네는 이번에 친구들과 함께 한 힐링여행이 어땠냐?
아마도 감격적이었겠지.
보고 싶었던 동종업계의 친구 2명도 만났고,
맛기행도 이 정도면 고급이지 않더냐?
내가 2008년에 펴낸 ‘은행잎편지 108통’이라는 책을 찾아보니,
그때에도 자네에게 쓴 편지가 있더라. http://yrock22.egloos.com/1749546
다시 읽어보니 참 새삼스럽다. 벌써 13년 전이다.
언젠가 광화문 교보빌딩에 걸렸던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글판 문구가 생각난다. 천직인 의사는 인술仁術이기도 하지 않던가.
38년의 세월 동안 열심히 일했으니, 이만한 휴식을 취해도 될 터.
이제 홀로, 아니면 옆지기와 둘이 여행을 떠나보라.
자신과 자신의 인생을 성찰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이번 기회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기회는 찬스chance라고 하지 않던가. 흐흐.
언제든 불쑥 내려와 우리 사랑방에서 하루 자고 가소.
그때 하고 싶은 얘기도 몽땅 나누며,
‘우천길’이라 지은 나의 산책로도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
더듬어보니, 꿈같은 2박3일 ‘벗길맛 여행’ 이 아니 좋을손가.
‘우정의 탑’에는 앞으로도 돌을 무한정 올려놓을 공간이 많을 터이니,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세나.
여행기 겸 중언부언 너스레, 이만 줄이네. 잘 지내소.
2월 6일
고향 임실 우거 '구경재'에서 우천 쓰네
첫댓글 나도 친구들과 같이 여행을다녀온것 같이
가슴이 멍하네
친구란?
같이 술을 마셔보고.
화투를 쳐보고
여행을 해봐야 비로소
그 친구를 알수있다고
했던가?
같은 차를 타고 같이 어울린것같이
친구가 다시 보고싶고
어울리고싶다.
친구
친구
젖떨어진 강아지마냥
부모님 다 돌아가시고 나면
곁에 남는건 형제지간보다도
가까운건 친구라한다.
설대목을 앞둔 주말 친구들에게
카톡이라도 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