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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社說)〉
2023년 7월 12일
‘불꽃의 도쿄대회’로부터 66년
광포(廣布)는 권력의 마성(魔性)과의 투쟁
사제(師弟)의 7월, 잊지 말아야 할 광포사(廣布史)를 확인하고 싶다.
1957년 봄, 참의원(參議院) 오사카(大阪) 지역구 보궐선거(補闕選擧)가 치러졌다. 이때, 일부 학회원(學會員)이 일으킨 선거 위반의 지시(指示)를 했다는 무고한 혐의로 젊은 이케다(池田) 선생님이 체포됐다.
은사(恩師) 도다(戶田) 선생님이 출옥한 지 12년 후인 같은 7월 3일이었다. ‘오사카사건(大阪事件)’이다. 당시 새로운 민중세력의 대두(對頭)를 두려워한 권력(權力)의 마성(魔性)이 학회에 송곳니를 드러냈던 것이다.
학회가 이 부당체포에 항의(抗議)하기 위해, 66년 전인 7월 12일에 개최한 것이 ‘도쿄대회(東京大會)’다.
다이토구(台東区)의 쿠라마에국기관(蔵前國技館)(당시)의 장(場) 내외에는, 도다 선생님 아래, 4만 명의 동지가 참집(參集). 내리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의(正義)의 불꽃을 타오르게 하여 규탄(糾彈)의 사자후(師子吼)를 쏘아 올렸다. 그야말로 ‘불꽃의 도쿄대회’가 되었다.
“불법(佛法)의 승부(勝負)는 엄(嚴)하다. 머지않아(곧, 이윽고), 모든 것은 명확해진다.” - 그렇게 외친 은사는 대회 종료 후, 오사카로. 서거(逝去) 전년의 일로 몸의 쇠약(衰弱)은 심해, 오사카지검의 계단을 오르는 데도 동지에게 부축(副軸)을 받았다. 그럼에도 생명을 쥐어짜 엄중항의(嚴重抗議)를 했던 것이다.
거기에는 오사카로 향하는 이케다 선생님을 하네다공항에서 배웅했을 때 말한 “만약, 자네가 죽게 된다면, 나도 즉시 달려와…”라는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제자를 지키는 스승의 모습이 있었다.
옥중에서 이케다 선생님은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학회를 손질해(덮쳐), 도다 회장을 체포한다.”라는 협박적(脅迫的) 언사(言辭)를 농(弄)하는(부리는) 검찰에 대해, 스승과 학회를 지키기 위해, 일단은 무고한 죄를 인정, 법정투쟁(法廷鬪爭)을 결단. 7월 17일 출옥했다. 재판은 4년 6개월 후인 1962년 1월 25일, 무죄판결을 쟁취했다.
불꽃의 도쿄대회 50년 후, 도쿄우에노평화강당(東京上野平和講堂) 내에 설치된 현창(顯彰)의 비문(碑文)에는 “만대(萬代)에 걸친 ‘창가(創價)의 승리’ 즉 ‘민중승리(民衆勝利)’의 초석(礎石)을 반석(盤石)과 같이 하기 위해 염원(念願)한다.”라고 오사카사건이 창가(創價) 인간주의(人間主義)의 인권투쟁(人權鬪爭)의 원점(原點)이라는 것이 새겨졌다.
비문에는 더욱이 ‘만년(萬年)의 창가(創價)의 승리’와 ‘사제개가(師弟凱歌)의 욱일(旭日)’을 보여주는 것이 ‘본진(本陣)·도쿄(東京)의 책무(責務)인 사명(使命)’이라고 새겨져 있다.
또 선생님은 수필에 수도 도쿄는 권력의 마성(魔性)의 작용이 강하다고 하며 광선유포(廣宣流布)란 “이 마성과 끊임없이 끝까지 싸워 진실한 민중의 평화와 행복을 계속 확대하는 법전(法戰)”이라고 썼다.
7월 12일은 ‘총도쿄 여성부 행복·승리의 날’ ‘총도쿄 청년부의 날’이기도 하다. 본진·도쿄에서부터 학회정의(學會正義)를 선양(宣揚)해 가는 언론전에 도전해 가고 싶다.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매일매일 의노고에 진심으로 깊이 깊이 감사드립니다. 노고많으셨습니다.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