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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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영상
갈 1:4,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26.8-9
날씨가 무더워지고, 회사에서 휴가를 줘서 지난 1주일 중에 3일을 쉬었습니다. 쉬면서 교회차 엔진오일도 교환하고, 또 집에서 무더위와 싸우다가, 하루는 날을 잡아서 건강검진을 했습니다. 왜 건강검진을 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듯이 혹시 암이나 이런 질병이 발생하면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50대가 접어들면서 대장 쪽에 용종이 생기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용종이 혹시나 암이 되지 않을까 해서 보통은 4년 주기로 대장암 검사를 하기도 합니다. 이번에도 대장 내시경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갑작스런 검진이라 내과 진료를 받아야만 대장내시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냥 위내시경만 하기로 했습니다. 내시경을 하고 나면, 그 전에 앓았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보통은 위염의 흔적들입니다. 건강검진을 통해서 조기에 암을 발견하면 수술을 통해서 완치가 가능합니다. 다른 부위에 전이가 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건강검진에 있어서 암세포가 공포의 진단이라면, 인간에게 있어서 죄가 바로 그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 왜냐하면 죄는 그 결과 사망을 가져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암에 걸리면 수술하면 완치도 가능하지만, 죄는 완치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죄의 댓가나 결과는 사망입니다. 이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이렇게 아무런 희망도 없던 타락한 인간에게 소망이 생겼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입니다. 갈라디아 교회에 보내는 서신에서 사도 바울은 십자가 사건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첫째,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예수는 인성을, 그리스도는 신성을 강조하는 기독론적인 용어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강림하신 역사적 예수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는 메시야 곧 기름부음을 받은 구세주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예수님이 메시야, 구주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 구주가 되셨는데, 어떻게 되셨느냐?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구주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을 따랐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신분과 지위의 완전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거지가 부자가 된 그 이상의 넘치는 축복입니다.
갈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은 죄인 된 인간을 구속하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하기로 뜻을 정하셨습니다.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도 있고, 따르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다니면 회사의 사규가 있습니다. 어떤 것들은 정부의 노동 지침에 따라서 정해 놓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회사가 반드시 정부의 지침(산업안전보건법)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하나는 회사는 직원들에게 매년 건강검진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회사가, 또는 직원이 정부의 지침을 따라서 건강검진을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받아야만 하는 정한 규율입니다(사무직-2년 1회, 비사무직은 1년 1회). 만약에 회사가, 또는 직원이 건강검진을 받지 않으면 사업주와 근로자 모두에게 과태료부과(최대 1천만원/300만원 이하-최대 30만원)가 됩니다. 그래서 회사나 직원들은 정부의 지침(공단 유료검사)을 따라서 기쁘게 건강검진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기쁘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랐습니다. 거기서 말할 수 없는 기쁨과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기쁨을 누리려는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죄인이며, 불신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인들입니다. 여러분은 아버지의 뜻을 따르기를 기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기쁨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풍성한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한 뜻입니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셨습니다.
먼저 본문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갈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특징은 어느 시대이고 간에 단적으로 ‘이 악한 세대’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들이 악한 것입니다. 여기서 악하다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 측면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판단하기에도 이것은 악하다고 여겨지는 그런 것들입니다. ‘악(惡)’은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못하고 나쁘다’는 말입니다. 주로 마음이나 행동, 성품 등이 바르지 못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경은 일관되게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악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치, 신념, 도덕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니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예배하지도 않는 것도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으로써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인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더듬어 찾다가 ‘하나님을 버러지의 형상으로’ 바꿔 버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모독’이며, 그 결과 그들이 ‘새겨 만든 우상을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을 경멸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롬 1:21–25,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욕되다’(아티마조), ‘능욕하다, 창피주다, 업신여기다, 수치를 당하다’, ‘수치를 주거나 부끄럽게 하여 존중되지 못하도록 하다’.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섬긴 결과는 수치스럽고 부끄럽게 되어 절대로 존중받을 수 없는 그런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부끄럽고 수치스러워 견뎌낼 수 없는 그런 우리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지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건지다’(엨사이레오), ‘빼내다, 구조하다, 구하다’, ‘보통은 어떤 힘이나 노력으로 적출하다’, ‘어떤 사람을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곳으로 들어 옮긴다, 누군가를 구하거나 구조하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주에 하나님께서 ‘만민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셨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누구도 자기 영혼을 내어 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죽어야 되지만, 또 죽는다 할지라도 자기 영혼을 누군가에게 줄 수 있는 그런 능력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편재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모든 만민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냥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제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주셨다고 선포합니다.
갈 1: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그리스도께서 하신 세 번째 일은 다 같은 의미인데, 구체적으로 ‘우리 죗값으로 자기 몸을 내주셨습니다’. 죄인이 죗값을 다 치뤄야 감옥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도 죄인이라는 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된 우리 죗값을 지불하기 위해서 십자가형틀에서 죽으셨습니다. 죄인이 당할 지옥의 감옥에서 건져내사 천국 아버지 집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더 이상 지옥 자식이 아니라 천국 아버지의 자녀로 살게 하셨습니다.
롬 5:7–8, 7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