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안게임 야구에서 짜릿한 금메달의 감격을 맛본 야구팬들의 관심은 이제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다. 올해 포스트시즌은 1~3위팀이 결정난 상태에서 4위 한 자리를 놓고 LG, 두산, 롯데, SK 4개팀이 경쟁을 벌이는 구도다.
2014 프로야구의 최고 인기팀은 넥센 히어로즈다. 넥센은 10월 2일 현재 71승46패로 안정적인 2위 확보와 함께 1위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2012년 10월 염경엽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래 넥센은 불과 2년 만에 모든 팀이 두려워하는 강팀으로 변모했다. 감독 한 사람이 바뀌었을 뿐인데, 만년 하위팀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변신할 수 있을까. 서울 목동야구장 홈팀 관중석에는 ‘염갈량’이라는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염경엽과 제갈량을 합성한 이름이다.
지난 9월 30일 목동야구장에서 염경엽 감독을 만났다. 넥센 히어로즈 김기영 홍보팀장의 안내로 감독실에 들어섰을 때 기자는 깜짝 놀랐다. 감독실이 바로 더그아웃과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붙어 있었다. 목동구장이 비좁아 어쩔 수 없는 공간 배치라고 했다. 감독실에서는 경기장 안이 다 보이지만 밖에서는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는 반투명유리창이다. 감독실 크기는 초라할 정도였지만 선수들과 소통하기에는 최적의 조건처럼 보였다.
감독실에는 2인용 소파 두 개가 마주 보고 놓여있고 그 가운데 탁자가 있었다. 탁자 위에 각종 자료들이 차곡차곡 정돈되어 있었다. 벽면에는 작은 책상이 있었고 ‘감독 염경엽’ 명패와 함께 책 50여권이 꽂혀 있는 게 보였다. 감독 명패 없이 책들 제목만 보면 꼭 CEO의 책상처럼 보일 법했다. 야구 관련 책은 모두 4권에 불과했고 ‘승자의 안목’ ‘관찰의 힘’ ‘하루 10분 독서의 힘’ ‘삼성 출신 CEO는 왜 강한가’ ‘브랜드 임팩트’ ‘세종처럼’ ‘세종이라면’ 등이 눈길을 끌었다. 책 얘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야구 관련 책은 별로 없네요.
“다른 분야의 책에서 야구에 접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어떤 책도 최소 다섯 가지는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하면서 책을 읽습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메모를 합니다.”
- 미국 MLB 경기를 자주 보는지요.
“그럼요. 류현진과 추신수 경기는 꼭 봅니다.”
초임 감독이 하위팀을 맡아 좋은 성적을 낸다는 것은 리더가 그만큼 코치진·선수진과 소통을 잘한다는 뜻이다. 넥센 히어로즈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선수는 투수 조상우(20)다.
- 신세대 야구선수들과 대화하면서 많은 것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어린 선수들에게 극심한 한계상황을 주면 극복을 못합니다. 형제가 한 명 아니면 두 명인 가정에서 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루 종일 야구를 했던 반면 어린 친구들은 학교 수업을 들으며 야구를 했습니다. 우리는 합숙을 했지만 그들은 부모가 데려다 주고 데리고 가는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정신력으로 이겨내라고 하면 30% 정도는 가능하지만 나머지는 이겨내지 못합니다.”
- 신세대 야구선수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합니까.
“참을성이 없습니다. 자제하는 능력이 떨어집니다. 어렸을 때 문제가 터지면 다 부모가 해결해 주잖아요. 우리 때는 얻어터지며 본인 스스로 극복을 했습니다. 예전에는 배고픈 집안 아이가 운동을 했지만 요즘은 먹고사는 사람들이 운동을 시킵니다. 그러니까 더 이겨내는 게 힘들다는 얘기죠.”
- 코끼리도 칭찬 앞에 춤을 춘다고 하는데, 잘하는 선수에게 칭찬은 어떻게 합니까.
“잘하는 선수에게는 칭찬을 안 합니다. 오히려 잘하는 선수에게는 싫은 말을 합니다. 자신감에 충만해 있을 때는 어떤 싫은 말도 잘 받아들이는 시점입니다. 잘하고 있을 때 경계를 하고 조심을 하게 만들어줘야만 그 감각을 더 오래 끌고 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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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경엽 감독의 메모수첩 /사진=조성관 기자
- 질책을 할 때는 어떻게 합니까.
“팀의 원칙에 반했을 때 질책을 합니다. 평등하게 선수들을 대한다는 게 제 원칙입니다. 자기 레벨에서 최선을 다하라는 게 제 원칙입니다. 자기 레벨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경우 저는 질책을 합니다. 하지만 잘못하고 실수하는 것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얘기하지 않습니다.”
- 아마추어 시절이나 프로 시절에 크게 이름을 얻지 못했는데, 스타선수들의 그늘에 있으면서 많은 좌절을 했을 텐데요.
“저는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야구를 했습니다. 집안이 부유해서 아버지가 원하는 걸 다 해줬습니다. 대학 선택 때도 연세대에서도 오라고 했지만 아버지가 고려대를 나와 고려대를 선택했고요. 1991년 프로(태평양 돌핀스)에 가서도 신인이었지만 첫해부터 주전에 들었고요. 그런데 쉽게 주전을 차지하면서 거기에 만족을 했어요. 집앞에 팬들이 몰려오고 그러니까 더 이상 노력을 안 한 거죠. 팀이 현대 유니콘스로 바뀌면서 제게 위기가 왔어요. 1996년 개막전 때 후보로 밀렸지요. (박)진만이가 유격수로 서있는 것을 보면서 애국가가 울려퍼지는데 눈물이 나왔어요. 그때 깨우친 거죠.”
- 그게 무슨 말입니까.
“모든 게 쉽게 이루어지니까, 내 생각대로 다 됐으니까 간절함이 없었던 겁니다. 그때는 제가 김재박 감독을 겁나게 욕했어요. 왜 나를 선발로 쓰지 않느냐면서요. 자기는 자신을 모르잖아요.(웃음) 주전에서 ‘삐꾸’(후보)가 되는 순간 내게 주전의 기회가 좁아졌다고 생각했지요. 내 야구인생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이렇게 끝나는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때는 결혼한 해였으니까 책임감이 더했죠. 그때 비로소 내 야구인생을 되돌아본 겁니다. 그 순간이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습니다. 아내와 태어날 아이에게 빌빌거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습니다.”
그때 나이 28살이었다. 또 든든한 후원자였던 부친의 건강이 나빠지면서 위기의식은 가중되었다.
-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시작했습니까.
“제2의 인생도 30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수로서는 실패의 길에 들어서는 것이지만, 백업으로서도 1등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를 생각한 겁니다. 그때부터 1군의 대주자와 대수비 전문요원이 됐습니다. 야구를 다시 보게 된 거죠. 그때부터 메모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매일 감독님과 코치님으로부터 보고 느낀 것을 다 메모했죠. 감독이나 코치가 선수들에게 잘한 것과 잘못한 것까지 다 적어놓고 혼자 생각했습니다. 저에게는 모든 감독이 스승이었습니다.”
그의 메모 습관은 프로야구에서 유명하다. 자기 분야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습관 중의 하나는 메모하는 습관이다. 염 감독에게 메모한 수첩을 보여달라고 했다. 깨알보다 조금 큰 글씨체로 빈틈없이 색깔을 달리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19년째 기록한 메모수첩에는 상대팀별로 여러 상황에서 느낀 것들을 기록했다. KBO도 갖고 있지 못한 승리와 패배의 노하우를 염 감독은 머릿속에 저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2001년에 강제은퇴를 당한다. 현역에서 은퇴를 한 다음 그는 현대 유니콘스 구단 운영팀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 당시 선수 출신으로 운영팀에 간 게 사실상 처음이었죠.
“전체로 보면 SK 민경삼 단장에 이어 두 번째였죠. 현대에서는 제가 첫 번째였습니다. 은퇴를 하기에는 좀 이른 나이였어요. 898게임을 했는데, 2년만 더해 1000게임만 채우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러다 생각을 바꿨죠. 코치가 목표라면 2년 더 빨리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왕 하는 거면 빨리 시작하자라고 생각했어요.”
- 어떤 마음가짐으로 프런트를 했습니까.
“코치를 하려면 투자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지도자가 되려고 유학도 가는데 최소 5년간 모든 어려움과 설움을 이겨내자고 결심했죠. 선수를 하다 프런트를 하니까 거의 1년에 3000만원 이상을 까먹었죠. 저는 그걸 유학비로 생각했습니다.”
- LG팬들은 염 감독에 대해 섭섭한 감정이 남아 있는 것 같더군요. 혹시 염 감독을 어떻게 부르는지 아십니까.
“(웃음)‘염레기’죠.”
염경엽과 쓰레기를 합성한 말이다. 본인에게는 모멸적인 별명일 수도 있다. 그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팬들은 제가 LG를 망가뜨렸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맞다고 생각합니다. LG에서 프런트 1년 반 하고 코치를 2년 했지만 저는 LG를 좋은 팀으로 만들려고 최선을 다했어요. 하지만 당시 성과가 안 좋았잖아요. 지금은 좋아졌지만. 저는 팀을 만드는 과정에 있었던 거죠. 프로야구는 1년 안에는 절대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최소 3~4년은 지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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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경엽 감독과 그의 주요 프로필. /사진=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 LG전에서 특히 성적이 좋아 일부에서는 LG전에 총력을 기울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건 없고요. 저는 지금도 LG가 잘되길 바라는 사람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일했고, 또 가장 상처도 많이 받았던 시간이었습니다. LG 시절 배운 건 야구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겁니다.”
- 야구팬들은 프런트가 힘을 가지면 감독이 힘을 못 쓰고 결국 팀 성적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동의하십니까.
“과거 현대 같은 팀은 프런트가 팀을 끌고 가는 능력이 있었죠. 제일 중요한 것은 프런트가 능력이 있느냐 여부죠. 그게 갖춰지지 않으면 감독에게 맡겨야죠. 프런트 조직의 내공인 거죠. 실력이 있는 사람이 실력을 발휘하는 건 문제가 안 되죠. 리더는 좋고 나쁜 것을 구별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잘못 가는 원인을 분석해 팀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2012년 10월 감독에 취임했을 때 대부분이 ‘깜짝 발탁’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그런데 결과는 이장석 대표가 사람 보는 눈이 정확했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 솔직히 언제부터 감독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까.
“저는 0.5%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우리나라와 일본은 잘하는 선수만이 감독이 되는 문화거든요. 저도 오히려 선수 출신 단장이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단장을 꿈꾸고 단장에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준비하고 있었지요.”
- 뛰어난 선수의 조건과 뛰어난 감독의 조건은 다른 것 같습니다.
“야구를 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프런트를 하는 7년이란 시간 동안에 코치를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프런트를 하면서 용병 뽑으러 미국에 갔던 시간을 빼놓고는 매년 모든 게임을 시청했고, 운영팀장 하면서 용병스카우트팀장도 같이 했습니다. MLB 마이너 전 팀을 다 돌아다보고 왔습니다. 어떤 팀이 어떻게 운영되고 색깔이 뭔지를 관찰하고 분석했지요. 이게 제 미래를 준비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하는 것과 가르치는 건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우쳤죠.”
- 프로야구감독으로 성공하기 위한 조건은 뭐라고 보나요.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하는 리더는 조직의 색깔을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계획과 방향, 그것을 실천해서 결과가 나와야 색깔이 만들어지는 거죠. 둥글게 가는 건 모든 사람이 하는 것입니다. 디테일한 분석을 바탕으로 조직의 방향을 정확하게 하고 중장기 전략을 짜지 않을 때는 실패할 수도 있죠. 자기의 색깔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팀에 맞는 색깔이 뭔지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감독이 팀을 자기 색깔로 만들려고 하면 70~80명이 다 자기에게 맞춰야 하는 겁니다. 운이 좋아 그게 맞으면 다행이지만 팀과 안 맞으면 실패하는 거죠.”
- 이런 분석을 혼자 메모하면서 준비한 겁니까.
“제가 혼자 단장을 꿈꾸며 준비했다고 했잖아요. 내가 단장이 되었을 때 우리 팀의 색깔을 내가 정확히 알고 있다면 거기에 맞는 감독을 정확히 선택할 수 있잖아요. 단장이라면 그 정도는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만 보고 우리 팀 생각 안하고 데려오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죠. 우리 팀에 어떤 스타일의 선수들이 많으니까 거기에 맞는 감독을 선택했을 경우 성공할 가능성이 많을 겁니다. 제가 넥센에 처음 코치로 왔을 때 우리 팀은 하위권이었고, 아무 색깔이 없었어요. 그냥 흘러가는 팀이었죠. 그래서 우리 팀에 맞는 색깔 야구를 생각하게 된 거죠.”
- 넥센 히어로즈에 맞는 야구는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김성근 감독의 디테일 야구와 로이스터 감독의 ‘노 피어(No fear) 정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넥센에 이 두 가지만 들어가면 4강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수를 대하는 것은 로이스터처럼 하고, 경기는 김성근 감독처럼 디테일하게 하는 것이지요. 선수들이 경기장에 나올 때 즐거운 마음으로 나오게 하면 절반은 성공하는 거죠. 우리가 직장생활을 할 때도 눈치를 보며 나오는 것과 즐거운 마음으로 나오는 것은 천지차이잖아요.”
- 로이스터 리더십에서 배운 걸 간단히 설명해 주세요.
“선수들의 생각만 바꿔도 팀이 이렇게 바뀔 수 있구나 하는 걸 느꼈죠. 롯데 선수들이 연습도 훨씬 적게 했는데 4강에 갔잖아요.”
- 박병호·강정호와 서건창 선수는 스타일이 다른 타자인데, 어떻게 훈련을 하게 합니까.
“박병호가 해야 할 야구와 서건창이 해야 할 야구는 엄연히 달라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야구를 할 때는 박병호 스타일이나 서건창 스타일이나 똑같이 연습하고 똑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저는 연습방법도 선수에게 맞게 다 쪼갰습니다. 서건창에 맞는 연습을 하게 하는 거죠. 박병호에게는 병호에게 맞는 연습을 시킵니다. 또 4번타자는 치기만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주루와 수비도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시켰죠. 강정호와 박병호가 20-20클럽에 가입하게 되면서 선수의 가치가 확 달라졌잖아요.”
- 감독으로 선수 개개인을 어떻게 판단하고 키웁니까.
“저는 선수 한 명을 두고 과연 A+가 될 수 있느냐를 심사숙고합니다. A+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포지션에 두는 게 유리한지를 생각하는 거죠. A+가 되어야만 선수 개인이 살고, A+인 선수가 많아야 팀도 A+ 된다는 거죠. 강정호가 쇼트(스톱)에 있기 때문에 MLB에 갈 수가 있는 거죠. 정호가 서드도 볼 수 있지만 서드에 있어서는 A+가 될 수 없죠.”
- 내년에 강정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 가면 어느 정도 할 것으로 전망하십니까.
“타율 2할7푼, 20홈런, 70타점만 해도 성공이라고 봅니다. 그 정도로 적응하면 계속 성장할 수 있다고 봅니다.”
- 박병호 선수는 또 어떤가요.
“병호가 MLB에 가려면 1루보다는 3루에 있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합니다. 1루에는 병호보다 더 센 타자들이 많거든요.”
- 염경엽 감독의 리더십은 한마디로 뭡니까.
“나보다는 상대를 먼저 배려해서 마음을 움직여 이끌어 가는 리더십이라고 할까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는 쉽잖아요.”
- 야구인생에서 힘겨운 시기를 굽이굽이 돌아와 감독 자리에 올라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인생이 안 풀린다고 생각하는 젊은 세대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면.
“일단 안 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한번 돌아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대개 실패의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계획을 짜서 노력했는지를 살펴보라는 겁니다. 정확한 방향을 잡아서 열심히 시간을 투자하면 80%는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