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이 되어서 한달 일하고 그 수고비로 일한 댓가를
받는 사람을 월급쟁이 혹은 봉급쟁이라고 합니다.
전에는 월급봉투를 직접 당사자가 받아서 월급날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월급봉투를 부인에게 내밀면서 어깨에 힘좀
주고 으쓱해 보입니다.
그러면 부인은 남편을 믿음직? 대견스러워 하고
고마워 합니다.
그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온 라인으로 월급이 지정계좌로 자동이체가 되어서
예전 같은 설레임이나 들뜬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월급받는 사람들은 자기가 받는 월급료가 올라가는
것을 원 합니다.
현재 받는 월급료 보다 더 많이 받으려고 열심히 일
하고 연구하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업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성과가 좋아지면
당연히 비례하여 급료도 올라 갑니다.
자신이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하여 능력
을 나타내 그만한 댓가를 받는것은 당연한 거 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고 일하는 것은 고작 가령100원
어치 정도인이니 급료도 거기에 준한 급료를. 가져
가야 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500원이나 1.000원을
가져가려고 한다면 이건 분명히 크게 잘못된 것
입니다.
헌데 이런 현상이 비일비재 하게 우리 나라에서 일어
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에 대한 지적과 비판이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들의 성과를 자기들이 심사하고 그에
따른 성과금도 자기들이 결정하는 식도 있습니다.
즉 자기들이 자기들에게 일 많이 일 잘했다고 점수
를 높이 주고 그러니 너는 자기는 이만큼 급료를 받아
야 한다는 식도 있습니다.
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입니다.
팔이 안으로 굽어지는 것 보다 지독히 자기 중심주의
입니다.
이건 누워서 죽 먹기보다 쉬운 거 입니다.
어차피 내돈도 니돈도 아닌데.
내가 좀 많이 가져가겠다는데 뭔 상관이냐? 식이라고
아니라고 할수가 없습니다.
사실상 알고 보면 눈 먼 돈은 있어도 주인 없는 돈은
없습니다.
국민이 그돈의 주인입니다.
침례자 요한은 당시 외칠 때 병사들에게 지금 현재
너희들이 받는 급료에 만족하라고 하였습니다.
(마가복음 3 장 14 절)
병사들은 자기들이 받는 급료가 자기들의 수고에
비하여 적다고 여겼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요한은 그것으로 만족하라고 하면서 불만족
하여 더 받는 방법으로 착취하는 것을 경고합니다.
오늘도.
이런 경고를 받아야 할 대상이 분명히 있습니다.
당시 병사들은 그 신분이 지금으로 적용하면 공무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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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님들! 샬롬.
수고의댓가에 만족이란 없는것 같습니다..최선을 다할때 주님 주시는 상급으로 예비하심을 믿고 순종의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의복된삶으로 살찌우길 소망해봅니다..복된소망님 말씀 감사해요..샬롬!!.
있는 것과 받은 것만 생각하면 늘 감사인데 사람이기에 쉽지는 않은것 같읍니다.주님께 받은 생명에 감사드리고 누리는 은혜의 해를 바라보며 찬양 드립니다"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10:8)"이 비밀이 크도다.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5:32)"말씀에 은혜 받읍니다.복된소망님도~샬롬!고맙 읍니다.
샬롬!주님안에서 늘승리하는 삶 되어요~
욕심은 화를 불러 오기에 충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