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07년3월11일(일요일),
신촌 연세 세브란스병원 신관 3층(로비) 엘리베이트 앞,
집안 어른의 병 문안 왔다 지하 주차장으로 갈려고 엘리베이트를 기다리고 있는데....
옆에 같이 서있는 남자, 머리는 반백이요 나이는 60정도 보이는 이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아~ 어디서 본 사람이고 분명 내가 아는 분인데....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지하 3층에 같이 내리면서 그분도 나를 보고 또 보고 한다.
제가 먼저 저....하니!! 저쪽에서 저도 어디서 많이 뵙분 같습니다.
그때 부터 추차장으로 가는중에 고향은?군대는?직장은?하다가...
아이고~ 대우개발 총무과에 계시던 000대리님 아니십니까?
이렇게 하여 옛날 거래하던 거래처 담당을 만난 것이였다..자짠~~
그후 자판기 커피로 안부를 묻고 하면서...그래 여기는 왠일로??
어른이 여기에 계셔서....한다.
아~그럼 회장님께서 여기에...건강은...아직 사면은...
돌라오는 차 안에서 나의 머리에는 소낙비 내리는 필림이 다시 돌라가고
있었던 것이였다.
아~ 그렇게 끝나는구나!!
내가 종경하던 기업가의 한 사람이 노년의 아타까움에 씁슬하기만 하다
우리카페에도 과거 대우맨이 많은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의 심정은 어떠할지!!
작년 김우중회장의 구속을 보면서 쓰다 만 글을 찾어 여기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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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씨의 구속을 보면서
누가 김우중씨 에게 돌을 던지는가?
대우 관련 주식에 투자했다 휴지로 버린 사람들? 또 대우에 근무하다 하루 아침에 실직한 사람들? 꼬박꼬박 세금낸 돈을
국가가 공적자금으로 써버린 것이 억울해서?…이런 사람들이 지금 김우중에게 돌을 던지고 있다면 할말은 없다.
그러나 지금 인간 김우중에게 돌을 던지는 자들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분명 40조원의 분식회계,10조원의 불법대출,25조원를 해외로 유출시킨 실정법을 위반한 범죄자 이다
그러나 나는 대우 폐망의 본질은,경제논리 였는지?,정치논리 였는지? 아직 불분명 하며 아직 검찰에서 조사중인 끝나지 않는
사건으로 보고싶다 정면 돌파의 명수가 누가 무엇 때문에 해외도피를 권유 했는지도 밝혀야 할 사항이며 아직 형(刑)이
확정되기 까지는 무죄 상태인 피의자 김우중이다.
그런데 어찌 무지막지하게 돌 팔매질을 하는가? 그들이 기업을 이르키고 사업을 해 봤을까?
암울한 시대에 와이샤스를 수출하며 시작한 기업인,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세계 곳곳을 누비고 젊음이 들의 신화를 만들며 수출입국을 지향하며 그들의 우상으로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나라 산업화의 견인차 역할을 훌륭히 해냈던 사람을, 능력도 열정도 없는 아마츄어 3류 정치꾼과 얄팍한 지식의 글로 또 한번 죽이기 보다 조사중인 검찰의 조사를 끝까지 지켜 보고싶다
지난 16日 저녁 서초동 검찰청 현관, 검찰청 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서울 구치소로 가는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모습을 보고
이글을 쓰는 오늘 이 시간 까지 찹찹한 희한의 마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왜 일까?
난 개인적으로 어릴 때 김우중씨를 세번 만날 기회을 가졌다
한번은 1969년 9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하여 답십리에서 광화문 까지 재수 한답시고 학원 다니던 시절,
추석을 하루 앞둔 날로 기억된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청량리 시대 극장에서 답십리 쪽으로 철길 굴다리 지나 동대문 여중옆, 얼마전 지나다 보니 지금도 그 7층 건물이 있는 “한성 실업”건물, 대우그룹의 시초가 된 한성실업 와이쌰스 공장이다
그날 추석을 하루 앞두고 임금을 못 받은 공원들이 돌맹이로 건물 유리창을 다 부수고 농성을 하는데 어떤 회사 관계자가 앞에
나와 공원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가 김우중씨 였다
두번째는 10년후 1980년 경남 거제도 옥포 지금의 대우중공업, 당시 국영기업 대한조선공사에서 건설하고 있던 옥포조선소를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인수받아 건설할 때 나는 서울역 앞에 있는 대우빌딩 그룹홍보실 홍보담당 김현대리(김현= 대우그룹 홍보실 대리로 근무할 당시 88서울 올림픽 호돌이 마스코트와 엠불램을 고안하여 체택 되었고 그 동안 국내외 수많은 기업의 CI 와 심벌 마크을 디자인한 분, 지금은 디자인회사 “디자인 파크”대표)의 지시로 거제 대우조선소 홍보물을 제작에 필요한 자료을 구할려고 대우조선에 갔을 때였다
게제 옥포만에 도크와 골리앗 크레인만 웅장하게 서있고 아직 공장과 건물은 짓고있는 그곳에서 공장 한쪽 옆 사원숙소 막사에서 김우중 회장과 직원들이 도면을 앞에 두고 회의하고 있다가 홍보물 제작 보고에 이곳은 옛날 이순신장군이 거북선으로 왜군을 물리친 유명한 지역 이므로 세계최초의 철갑선 거북선을 우리회사의 홍보물 안에 살입 시켜주시오? 하며 나와 우리회사 사장에게 말했던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세번째 만남은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무역 종합전시장, 지금은 그 건물을 헐고 몇해전 새로운 건물을 짓고 아샘타워와 코액스,건물이 있지만 우리나라 최초 종합무역 전시장을 지을때 나는 건설 시행회사 대우개발에서 하청을 받어 전지장내 안내 표시판, 샤인물을 제작 설치하고 있었다 그해 여름 장마철 어느날 밤,근처 봉원사 절 쪽에서 내려온 지하수맥을 잡지 못해 기초공사 구조물이 봉괴의 위험에 빠저 있을 때 김우중 회장이 직접 나와 진두지휘 하면서 수많은 그레인으로 구조물을 고정시키고 위험의 순간을 함계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나는 옛날 대우의 직원도 아니요 소위 대우가족도 아니였다 하지만 위 세번의 김우중 회장과의 만남과 대우빌딩 앞에서 티코자동차가 처음 나왔을 때 티코를 타고 출근하는 것을 본것처럼 먼 발자취 에서는 수많이 보아온 김우중씨에 대한 기업인으로서의 동경과 이미지,추진력과 대우조선 노조 파업때 현장에서 정면으로 해결하는 돌파력,모두가 김회장을 존경하는 한사람 이였다.
어느 기업이나 그 기업의 스타일과 특징이 있다. 나는 직업상 여러 기업을 방문하고 그 기업의 사람들과 업무상 만나고 느낀점은
당시 삼성은 알려진대로 완전 제일주의로 업무추진에 있어 조그만 일이라도 제일 윗선까지 결재라인이 있고 현대는 결정된 사항은 속전속결로 해치우는 불도저 였고 대우는 웬만한 일은 대리급에서 전결되는 권한이 많이 부여되어 내부진행 효율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나 개인의 위 모든 대우에 대한 좋은 감정들이 오늘 이즈음에서 영웅이 꿈을 완성하려면 天 空 時 人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하늘의뜻, 한반도란 공간, 지금의 시간과 나이, 주변 인물등 어느 것 하나 김회장의 웅지를 펼칠수 있는 조건이 아니다. 김회장은 승천의 최종단계에서 다시 추락한 용이 못된 이무기로 남을 수 밖에 없음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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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여러분 우리 아프지 맙시다.
병원 가보니 우째그리 아픈 사람들도 많은지..그리고 암 환자들은 우째 그리 많은지...
2007/3/12 말죽거리 배박사.
첫댓글 배박사님도 건강하소서.
^*^ 요며칠 감기 몸살과 싸우면서도 만사가 귀찮아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 다른 아픔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하면서도 그 사소한 감기에도 좌절도 했는데... 나이? (죄송합니다 어르신 앞에서 ㅠㅠ) 들어가니 면역력도 약해지고 전국이 안아픈곳이 없으니 ... 앞날은 또 어떻게 될지... 건강 많이 챙기십시요. 사업도 번창하시구요^*^
요사이 병원나오는 드라마가 많습니다..봉당리 허연거탑 등등.참으로 아픈사람이 많더군요 아푸지맙시다
오랫만입니다... 건강하시군요.. 북경에서
저도 한 때 대우맨이었습니다. 김우중 회장의 소식, 줄줄이 무너졌던 계열사들... 그러나 대우맨들의 피땀으로 건설에서 조선에서 전자에서 우뚝 일어서는 모습에 위안을 삼기도 합니다.
맞아요... 아프지 말아야 하는데 '가는세월'과 함께 '몸'도 함께 가니 이거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그저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릴수 밖에...
항상 건강하시길 빕니다. 잘 지내시죠?
말배님은 앞으로 50년은 현장에서 팔팔하실겁니다..김우중씨는 이번 사면에서 빠졌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