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저는 욕심이 없어서 참지를 못해요. 그런데 이제는 참으면서,
좀 여유를 가지면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배우가 여러 작품을 하는 게 굉장히 좋은 건데, 힘들 거라고, 넘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번 딱 한 번만 고생하자,절충하면서 하자 그랬어요. 이제
다시는 세 편, 중복해서 하는 일은 없을 거예요.
V.g. 권력을 조롱하기 위해 블랙 코미디를 표방했지만, 가수들의
개인기로 버무려졌던 <긴급조치 19호>를 선택한 것은 좀 의외였는데….
효진 처음엔 우정 출연이었는데,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비중이 커졌어요. 하지만 어떤 작품이든 배우는 건 있으니까요.
V.g. 예전 모 인터뷰에서 '조연일 때는 맥이 빠진다'란 말을 했던데, 여전히 그런가요?
효진 음…. 처음 했던 영화 <여고괴담> 촬영할 때는 그저 '아, 주인공 저렇게 힘들어서 어떻게 해? 나는 주인공은 안 되겠다. 내 그릇이 아직 못 되는구나'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영화 개봉하고 나서야
스포트라이트나 이런 것들 보고서, 어린 마음에 그런 거였죠. <서프라이즈>에서는 우정 출연이었어요. 처음 했던 영화 <여고괴담>
영화사의 작품이고, 또 친한 배우들이 하니까. 요원이, 하균 오빠도
<킬러들의 수다> 때 같이 했으니까 알고, 도와드리고 싶었고, 또 재미있었어요.
V.g. 영화계에 발을 들이기 전에는 모델이었죠?
효진 연기자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구요. 그냥 내 나이 너무 젊은데, 작업실에 처박혀서 패션 공부를 하기에는 내 젊음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델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겠다 싶었던 거지, 허황된 생각은 없었어요. <여고괴담>에서 그렇게 자연스럽게
연기할 수 있었던 건 카메라 앞에서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영화 개봉 후에 쏟아진 사람들의 시선과 '칭찬받는 기쁨이 대단한
것이구나'하는 아주 원초적인 깨달음에서 시작된 개울물 발 담그기는 이때부터 온 몸을 흠뻑 다 적실 만큼의 물놀이로 전이된다.
V.g. 연기할 맛 나게 효진 씨를 자극하는 것이 있다면 뭔가요?
효진 상대 배우들이 굉장히 중요해요. 내가 더 잘해야지, 내가 더
압도해야지 이런 마음이 생기잖아요. <네 멋대로…>도 그렇고, <품행제로>도 그렇고, 워낙 상대 배우들이 연기 절정에 계신 분들이잖아요. 그래서 하면서 '아, 내가 뺏기지 말아야지' 하는 그런 욕심 같은 게 생기더라구요. 특히 드라마는 대본을 받아야 내용을 알게 되잖아요. 시청자들의 반응도 빠르고. 그런 것에 대한 욕심이 굉장히
컸어요.
V.g. <네멋대로…>에서 했던 수많은 대사들 중에서도 자신에게
가장 아프게 느껴졌던 것은?
효진 제가 했던 대사 중에…, 너무 많은데…. 그냥 지금 생각나는
게 "복수는 나한테 남자가 아니라 내 가족이야, 이 기집애야." 그 말이 제일 그랬던 것 같아요. 복수 아버지한테 복수가 아프다는 얘기를 해서 자살하게 만들었을 때, 미안한 마음으로 그 집을 찾아가는
대목도 슬펐구요. 작가님도 지문에 그렇게 쓰셨더라구요. 복수와
경의 슬픔보다 더 어두운 슬픔이다. 그 드라마 참 희한한 게 욕도
참 자유롭게 해요. '알았다 개새끼야. 안다 개새끼야. 진짜 미안하다 개새끼야'. 개새끼야를 세 번 반복하고. 미래라는 역할이나 드라마 자체가 굉장히 아까웠고, 한 신 한 신 찍어가는 게 되게 아깝다고 느끼면서 했어요.
V.g. 드라마와 더불어 영화 작업까지 병행했는데, 그래도 마음이
더 가는 것이 있지 않나요?
효진 <철파테>는 한가할 때 시작했어요. <화려한 시절> 끝나고 나서 쉬는 동안에. 첫 주연 작품이기도 하고, 평범한 역도 아니어서
준비하는 기간이 좀 있었고, 신경도 많이 썼어요. 역할을 많이 생각하고, 많이 파악하고 들어갔죠. <품행제로>는 남자가 워낙 주인공인 영화고, 또 좋아하는 배우(류승범)이기도 하고, 내가 작품에 도움이 됐으면 싶었고, 역할도 되게 재미있어요. 난 내일 찍어야 될
이 장면을 어떻게 해야 될까 고민하고 그러지 않거든요. 현장에서
처음 받은 느낌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잃어버리지 말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얘기하느냐 하는 분위기를
무시할 수 없잖아요. 다행히 그게 잘 맞아떨어져서 저 연기하면서
진짜 고생 안 한 편이에요.
V.g. 많이 배웠다고 생각하는 작품을 꼽을 수 있을까요?
효진 뼈 아프게 상처를 많이 받았던 <화산고>에서도 많이 배웠구요. 매 작품 하면서 많이 배워요. 참, 저는 왔다갔다 해요. 딱 한 가지가 없어요. 얼마 전에 승범이가 그랬어요. '너는 고민도 안 하고
왜 그러냐? 왜 맨날 낙천적으로 흐르는 대로만 살고 싶어하냐?' 걱정하더라구요. 그런데 진짜 제가 그래요. '나는 고민하기도 싫고,
그냥 운명이라는 게 있지 않냐? 난 그냥 운명인 것 같은데. 고민하는 게 힘들어.' 그랬더니 제 인생의 8/10을 자기가 고민해주겠대요. 그러면서 나 보고 2/10만 고민하래요. 진짜 고맙고 그 말 한 마디만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낸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왜 자꾸 질문은 까먹고 딴 얘기를 하고 있지? 맞아. 많이 가르쳐준 작품. <화려한 시절>이죠. 최고예요. 연기에 대한 디테일한 면이나 이론을 감독님한테 많이 배웠어요.
V.g. 대본을 보고 본인이 감지한 캐릭터와 감독이 가진 것과의 합일점을 찾지 못해 어려웠던 경험은 그럼 단 한 번도 없었나요?
효진 <화산고>가 진짜 정말 힘들었어요. 감독님(김태균)하고 전혀
조율도 안 되고. 서로의 스타일이 안 맞았던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그냥, 촬영이 워낙 힘들었고 조건이 안 좋다 보니까 힘들었을
수도 있고. 그런데 다른 배우들 역시 대부분 감독님과 생각이 달랐던 것 같아요. 배우들 생각에는 작품에 대한 감독님의 욕심과 애착이 너무 커서 배우들에게 그 역을 내어주질 않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꼭 잡고서는 흉내내기를 원하셨던 것 같아요. 그 많은 캐릭터를요. 정말 많은 캐릭터를.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그래서 어떻게 연기할까, 연구해도 소용 없고 반영도 안 됐죠. 힘들면서도 의욕은 떨어지고.감독님이 그린 대로 억양, 톤까지 흉내를 내야만 O.K가 났어요. 저는 제게 맡겨주고 자신감을 줄 때 더 편하게 연기하고 더
많이 보여줄 수 있는 그런…, (미소) 모난 성격을 갖고 있어요. (함께 웃음, 또 웃음) 모났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