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이 비판적 사고 능력 키운다
논술은 ‘일정한 주제를 논(論)하여 자신의 의견을 서술(敍述)하는 것’이다. 즉 어떤 주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따지고 가려서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것이다. 물론 이때 서술은 논리적이어야 하므로 논리적으로 사고하는 훈련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논술은 이러한 논리적 사고와 더불어 사물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고 능력도 매우 중요하다.
비판적 사고력은 우리 삶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문제 해결과 결정을 해야 할 일을 자주 접하게 되며, 그러한 일들은 대체로 우리의 삶에서 중요한 일들이다. 그럴 경우 비판적인 사고 능력을 가졌다면 비합리적인 결정을 피할 수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미국의 9·11 테러 같은 돌발 사태가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이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상황이 주는 두려움 때문에 공황 상태에 빠질 수도 있고, 우왕좌왕하며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행동은 무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비상구가 어디에 있는지 침착하게 확인하고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을지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생존의 확률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비판’이라고 하면 그 말이 주는 어감 때문에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런 근거 없이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비난’과 구분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비판과 비난은 분명히 다르다. 비판은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따지는 것이기 때문에 사물에 대한 판단이 부정적일 수도 있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 반면 비난은 일정한 근거 없이 남의 잘못이나 흉을 책잡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판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근거 없는 비난이 아니라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따지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면 비판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주장을 전개할 때 아무 이유나 댄다고 해서 비판적 사고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야구를 하는데 “내가 투수를 해야 해. 왜냐하면 내가 가장 힘이 세니까”라고 한다면 비판적으로 사고한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무조건 이유를 제시한다고 해서 합리적인 비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정당한 이유와 정당하지 않은 이유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논술에서는 이러한 능력이 토대가 되어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할 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 이러한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우선 제대로 읽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독서는 글쓴이와의 대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글쓴이는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하여 자신이 지니고 있는 사상을 한 권의 책 속에 녹여내게 된다. 그런데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항상 진리가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글쓴이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전개되고 있는지, 그것이 사회의 보편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타당성을 얻을 수 있는지,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따지면서 읽어야 한다. 즉 말이 되느냐 안 되느냐 차원을 넘어서서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고 현실적인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등을 생각하면서 읽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이 자연스럽게 길러질 수 있다.
그리고 항상 ‘왜?’라고 묻는 태도가 필요하다. 아무런 비판적 의식을 지니지 않은 삶이란 남이 다들 그러니 당연히 나도 그렇게 한다는 식으로 살아가는 태도이다. ‘왜?’라는 물음은 올바름, 참됨을 추구하는 비판적 태도다. 비판적 관심과 의문이 생기면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의지도 생겨난다. 그러므로 이러한 태도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실이나 단순히 암기해서 알고 있는 지식을 반성하는 태도와 직결된다.
반성의 간단한 형식은 자기성찰이다.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듯이 자신의 내면 세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도 반성이고, 자신의 삶의 문제와 관련해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도 반성에 해당한다. 논술과 관련된 반성은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문제적 사고를 가지고 다시 생각해 보는 태도이다. 반성적 사고는 문제 의식을 심화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는 따로 시간을 잡아서 길러지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사물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가지고 있을 때 길러진다. 오늘 아침 신문에서 본 기사 내용이나 학교에서 수업 시간 중에 들은 새로운 내용, 귀가를 하면서 바라본 사건 등이 모두 중요한 소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사물들을 그냥 보아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고, 나는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등을 일상적으로 사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길러질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토론이다. 토론을 할 때 중요한 것은 논의하고 있는 주제를 명확히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논의의 과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하며, 자신의 주장을 지지할 적절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영어 조기 교육과 관련된 토론을 할 경우 사교육 시장의 문제점을 언급하는 ‘사오정’식의 논의 전개,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다는 식의 ‘그까이 꺼 뭐 대충’이라는 식의 입장 표명, 자신의 주장은 어느 누구로부터의 비판도 용납할 수 없다는 식의 논지를 전개하는 태도 등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비판적 사고의 훈련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전형적인 문제점을 보여주는 예이다. 논술 능력은 이처럼 학교에서의 토론 과정을 통해서도 자연스럽게 길러질 수 있다. 내가 주장하는 내용과 다른 주장들 사이에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어느 주장이 옳은지 차분하게 따져가는 과정 속에서 비판적 사고력은 길러진다.
결국 비판적 사고 능력이란 일상 생활 속에서 무의미하게 보아 넘길 수 있는 예들을 바탕으로 그것이 과연 타당한지, 문제점은 없는지, 우리의 삶, 좀더 넓게는 인류의 삶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등을 자연스럽게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길러진다. 항상 번민하는 젊은 소크라테스가 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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