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패망 후 연합국은 전범들에 대한 재판을 준비합니다. 재판의 목적은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을 통해 죄를 지은 자들을 응징함으로써 정의를 실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의라는 것은 승리자의 정의였다는데 논쟁의 여지가 있기는 했지만 복수를 위한 재판이 아니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재판의 초점은 주로 전투 중 국제법 위반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전쟁 기간 중 민간인 학대(학살)에 관한 내용도 중요한 내용이었습니다. 뉘른베르크 재판이 진행되면서 인류는 나찌의 상상을 초월한 만행을 목도하게 됩니다. 이는 연합국(미국)측이 계획한대로였죠.
히틀러는 이미 자살을 했지만 나치의 제 2인자인 괴링은 건재했습니다. 괴링은 엉뚱하게도 (아니 사실 충분히 가능성은 있었죠) 소련과 자유진영과의 분열 속에서 자기의 입지가 살아날수도 있다고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의 기대와는 달리 소련과 영.미 진영의 결속은 그 때까지 굳건했고 괴링은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나치 제 2인자답게 괴링은 천부적인 연변과 날카로운 두뇌로 검사가 당해내기에 무척이나 힘든 상대로 떠오릅니다.
이러한 뉘른베르크의 재판 과정을 미국인의 시각에서 본 영화가 영화 뉘른베르크 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출시된지는 얼마 안되었습니다. 보통 비디오 가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인기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재밌는 영화입니다. 물론 전투씬 같은 것은 없기 때문에 그걸 바라고 보신다면 실망할 것입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독일의 항복 후 어느 한 포로 수용소. 어느날 괴링이 승용차에 가족을 태우고 나타난다. 차에 탄 뚱뚱한 남자가 괴링임을 안 미군들은 돌연 나타난 거물에 아연 놀란다. 전쟁이 끝나고 긴장이 풀린 미군들, 사병들은 괴링을 몸소 봤다고 기뻐하며 방정을 떤다.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는 미군 간부들, 전쟁이 끝난 뒤라 그럴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거물 괴링에게 적대적이지도 않고 신사적이고 친절하게 대한다. 괴링은 사악한 나치 거물답지 않게 점쟎고 유머가 있는 인물이라 오히려 수용소 내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다. 더욱 엉뚱한 것은 수용소 내의 미군들 사이에 나치 거물들에 대한 인기(?)는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미군들은 나치 독일의 경제,순수 책임자였던 알베르트 슈피어의 전시의 탁월했던 행정을 경영학 강의를 받는 학생들처럼 놀라운 눈으로 강의를 듣는 것이었다.
어이없는 광경이 잠시 벌어지긴 했으나 미국측은 이들을 모두 점범 용의자로 규정, 돌연 체포한다.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나치의 거물 포로들은 한 감옥에 집합이 된다. 감옥의 소장은 엄한 인물로 이들을 모두 교수대에 보내기로 작정을 한 자다. 첫날부터 거친 대우에 항의를 하는 장군의 견장을 잡아 떼 수모를 주는 등 강경하기만하다. 괴링의 처지도 마찬가지.
좁은 독방에 갖힌 괴링. 자존심이 강한 괴링은 하루는 당당 미군 사병과 실강이를 하게 된다. 바닥을 닦는 걸레를 괴링에게 주며 닦으라고 명령을 한다. 괴링은 밀대를 던지고 양동이를 발로 차며 항변하다 소리를 치는 미군과 몸싸움을 벌이다 심장 발작이 일어난다. 달려온 의사의 응급조치로 간신히 살아난 괴링. 소장은 이들을 산채로 다 목을 매 달아야 한다며 사병을 나무라고 좀더 온순한 성격의 윌리스 중위에게 괴링의 감시병으로 임명한다.
한편 미군측은 괴링의 검사로 잭슨을 임명한다. 잭슨은 그들은 패배자이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은 의미가 없으며 공정한 재판을 하다가는 그들에게 무죄가 선고될 수도 있다고 하며 거절하지만 설득당하고 만다.
드디어 재판, 이날을 기다렸다라고 호기만만한 괴링. 괴링은 교묘한 언변으로 좌중을 휘어잡으며 전범 피고들을 단결시킨다. 그는 나치 독일의 정당성과 그들의 조국과 퓨러를 위한 충성을 미화시킨다. 괴링이 좌중을 압도하자 잭슨은 말을 끓으며 위압하려고 하나 재판장은 괴징에게 계속 말할 권리를 인정 잭슨을 제지한다. 괴링은 열변을 토하며 할 말을 다하고 잭슨은 분통이 터지지만 참을 수 밖에 없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되고 만 것이다.
다음날 잭슨은 선배의 조언대로 다른 작전으로 나간다. 나치 독일의 비정당성 보다는 나치독일이 저지른 가혹행위를 부각시켜 재판장과 방청객의 공분을 자극하는 전략을 세운다. 유태인 등의 피해자의 진술과 수용소의 참상의 기록 영화를 통해 그들의 죄상을 낱낱이 고발한 것이다. 이에 괴링은 자기는 몰랐으며 히틀러도 몰랐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치밀한 준비를 한 윌리스, 괴링이 서명을 한 잔혹행위 명령 공문서를 보여주며 괴링의 유죄를 주장한다.
검사(재판측) 측의 다음 목표는 나치 전범들이 그들의 행동들이 죄악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게 하여 나치의 정당성을 말살하는 것이었다. 괴링을 중심으로 똘똘 뭉쳤던 전범들 중 몇몇은 이미 자신감을 잃고 흔들렸으며 몇몇은 사죄를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경제장관 알베르트 슈피어가 45년 초 히틀러의 암살계획을 한 것을 윌리슨이 폭로하였던 것이다. 괴링 등은 격분하지만 그것으로 나치의 이너서클 내에서도 균열이 있었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서 윌리슨은 또 다른 승리를 거둔다.
유럽의 유태인에 잔혹행위에 대한 괴링의 합리화는 계속되고 그는 절대로 그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원폭이 독일에는 안 떨어지고 일본에 떨어진 것은 독일인이 Cocasian(백인) - 이 대목에서 영화에서는 오역, 무엇으로 오역했는지는 기억안남 - 이기 때문이 아닌가? 미군 내의 훅인들은 어떤가? 당신들도 명백한 인종차별을 자행하면서 우리가 유태인을 박해한 것을 문제 삼는 것은 무슨이유인가? 라며 열변을 토하는 괴링 앞에서 연합국 장교는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다.
결국 괴링을 비롯한 많은 전범들이 교수형을 선고 받는다. 괴링은 어느덧 그의 친구가 된 윌리스 중위에게 기념으로 나치 휘장이 새겨진 라이터를 선물하고 그의 가방을 가져다 주기를 부탁한다. 비장한 눈길이 서로 오가는 두 사람. 총살이 아니라 교수형이었던 것도 수치였던 괴링은 가방에 숨겨둔 극약으로 자살한다.
감상
괴링을 좀 인간적으로 그린 것 같다. 스필버그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족을 돌보는 모습이나 비굴하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서 리더십을 발휘하는 괴링에게 연민이 간다. 괴링이 미국내의 인종차별을 비난하는 부분에서 미국인이 상당히 솔직하게 그들의 치부를 드러낸 것 같다.
전범들의 케스트에 있어 좀 아쉽니다. 독일의 기라성 같은 A급 전범들의 모습이 그냥 시골 영감들 같아 매우 안 어울린다. 괴링을 빼고는 눈에 총기도 하나 없고 어벙한 모습이다. 아무리 남루한 죄수복에 부시시한 머리카락이라도 그렇게 어벙한 모습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좀 심하다. 대화가 조금 나오는 조역인 알베르트 시페어 같은 경우는 매우 지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대사가 거의 안 나오는 루돌프 헤스나 리펜도르프 같은 사람은 걍 엑스트라 중 아무나를 세운 것 같다.
재판에 있어서 과연 그것이 공정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승자가 전범재판에 붙여진 경우는 없으니까. 연합군이라고 전범을 전혀 안 저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조직적인 전쟁범죄는 없을 지라도. 아니 소련 같은 경우는 독일인만큼이나 잔혹했다. 카친 대학살에 대해 누가 책임을 지고 처벌 받았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다. 4,000 명이 때죽음을 당했는데도 말이다. 하여튼 그것이 독일인의 범죄 – 특히 유태인의 대량 학살 – 가 면책되지는 않는다.
뉘른베르크에서 나치 잔당을 모조리 없앴기 때문에 독일에서는 극우주의가 다시는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고 한다. 일본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라고 한다.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진 군인과 정치인들이 가엾긴 하지만 정의를 실현시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일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