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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이 열리는 이야기 나무] 복남이네 꽁당보리밥 |
글 : 김선희
행운동 삼거리는 늘 공사 중입니다.
지난 여름에 파인 보도 블록 공사를 하고, 맨홀 뚜껑을 열어 전화선 공사를 합니다. 높이 치솟은 가로수 나뭇가지를 치는 날이면 보도에도 도로에도 온통 나뭇가지로 뒤덮입니다.
벌써 며칠째 ‘깎고뽂고’ 미용실 옆 가게도 ‘점포수리 중’입니다. 쿵쿵, 쾅쾅. 벽에 못을 박는 소리, 바닥을 파내는 소리, 나무 자르는 소리.
‘깎고뽂고’ 미용실 박아영 사장님은 참다 못해 문을 열고 나와 신경질을 냅니다.
“어우, 시끄러워 죽겠어 정말.”
수리 중인 가게 옆에는 ‘웃기는 짜장’ 간판이 걸려 있는 중국집입니다. ‘웃기는 짜장’ 주방장 양씨 아저씨도 더러워진 앞치마를 두르고 나와 있습니다.
지금은 오후 2시, 미용실에도 중국집에도 파리만 날립니다.
미용실 박아영 사장님이 궁금해서 못 참겠다는 듯이 말합니다.
“도대체 이번에는 뭐가 들어올까?”
마음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미용실은 제발 들어오지 말아야 할 텐데 말야.’
중국집 양씨 아저씨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합니다.
“아마 웰빙에 관련된 가게가 문을 연다고 한 것 같은데.”
“뭐? 웰빙?” 미용실 사장님은 귀가 솔깃합니다. 일단 미용실이 아니라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맞아. 요즘 사람들 건강에 꽤 신경 쓰잖아. 생각은 좋은데 말야. 잘 될까?”
두 사람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공사 중인 가게를 보고 있습니다.
며칠 뒤, 공사 중인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웰빙에 관한 업종이라는 소문은 맞았습니다. 그러나 간판을 본 미용실 사장님과 중국집 양씨 아저씨는 한참 동안 할 말을 잊었습니다.
미용실 사장님이 간판을 한 글자씩 읽었습니다.
“복남이네 꽁당보리밥?”
양씨 아저씨가 비어져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미용실 사장님은 웃음을 도저히 참지 못하고 마구 웃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간판은 유리창에 써 놓은 광고 문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미용실 사장님은 서툰 글씨로 쓴 글을 읽고는 눈물까지 흘리며 웃었습니다.
‘영양가 좋은 보리밥 먹고 뀐 방귀 냄새가 향긋한 집’
미용실 사장님은 배를 움켜쥐고 웃었습니다.
오후 늦은 시간, 미용실 안으로 한 아이가 들어왔습니다. 아이는 열두세 살쯤 되어 보였는데,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 꽤 똘똘해 보였습니다.
미용실 사장님은 졸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물었습니다.
“머리 자르러 왔니?”
아이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아니요.”
“그럼?”
아이는 들고 있던 쟁반을 앞으로 쑥 내밀며 말했습니다.
“저 옆에 새로 문을 연 복남이네 꽁당보리밥에서 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이었습니다. 그때 ‘웃기는 짜장’ 주방장 양씨 아저씨가 머리를 자르러 들어왔습니다. 미용실 사장님은 양씨 아저씨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네 이름이 복남이니?”
설마, 하고 물었는데 아이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예. 제 이름이 김복남이에요.”
“김복남? 무슨 이름이 그렇게 촌스럽니? 뭐 동건이라든가, 용준이, 빈 뭐 이런 이름이면 좋잖아.”
미용실 사장님은 아이를 데리고 놀리는 게 재미있었습니다. 그때 의자에 앉아서 신문을 뒤적이고 있던 중국집 양씨 아저씨가 불쑥 한마디 했습니다.
“그러는 사장님 본명은 뭐였더라?”
미용실 사장님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습니다.
“이봐요 양씨.”
미용실 사장님은 이름 얘기가 나올 때면 어디론가 숨고 싶어집니다. 얼마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주인공 이름인 ‘삼순’이 바로 미용실 사장님 본명이었던 것입니다. 이 삼거리에서 미용실 사장님 본명을 아는 사람은 양씨 아저씨밖에 없습니다.
복남이는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제가 노래 하나 불러 드릴까요?”
미용실 사장님과 중국집 양씨 아저씨가 동시에 복남이를 보았습니다. 복남이는 밝은 얼굴로 노래를 하 기 시작했습니다.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옹기종기 모여앉아 꽁당보리밥. 꿀보다도 더 맛 좋은 꽁당보리밥. 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양씨 아저씨가 박수를 쳤습니다. 복남이는 미용실 안을 향해 인사를 꾸벅했습니다.
“우리 복남이네 꽁당보리밥집을 많이 애용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복남이네 꽁당보리밥’은 저녁때가 되면 발 디딜 틈 없이 만원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보리밥이 건강에 좋다고 찾았고,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옛날 맛을 느껴보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단골들도 제법 생겼습니다. 그중에는 ‘깎고뽂고’ 미용실 사장님과 ‘웃기는 짜장’ 주방장 양씨 아저씨도 있습니다.
복남이네 집 사연이 이 삼거리에 알려지게 되면서 손님은 더 늘었습니다. 복남이는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습니다. 2년 전 복남이네 아빠가 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평생 집에서 살림만 하던 복남이네 엄마는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때 힘을 준 것이 바로 복남이입니다. 복남이는 큰 절망에 빠져 있던 엄마에게 용기를 주었고, 새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었습니다.
요리솜씨가 좋은 엄마는 식당을 하기로 했습니다. 엄마는 옛날 할머니가 해 준 꽁보리밥 맛을 잊지 못했습니다. 열무김치와 고추장을 넣고 쓱쓱 비벼 먹던 그 꽁보리밥은 꿀맛이었습니다. 엄마가 그 얘기를 꺼냈을 때 복남이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습니다.
어렸을 때 복남이는 ‘꽁당보리밥’이라는 노래를 가장 싫어했습니다. 아이들은 복남이가 지나가면 꼭 그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름을 지어준 할아버지를 원망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복남이는 철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절망에 빠진 엄마를 구해 주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복남이네 꽁당보리밥’이라는 가게 이름은 복남이가 지었습니다.
엄마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친구들이 놀리지 않을까?”
복남이는 의젓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진짜 복남이니까 우리 복남이네 꽁당보리밥집은 진짜 대박 날 거예요.”
‘복남이네 꽁당보리밥’집에서는 특별 서비스가 있습니다. 밥을 먹고 나면 복남이는 방긋방긋 웃으며 손님들에게 ‘꽁당보리밥’ 노래를 불러줍니다.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옹기종기 모여 앉아 꽁당보리밥. 꿀보다도 더 맛 좋은 꽁당보리밥. 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공동기획 :소년 조선일보 주니어 김영사 |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