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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신급(特信級) 십계문
1. 공중사(公衆事)를 단독히 처리하지 말며, 2. 다른 사람의 과실(過失)을 말하지 말며, 3. 금은 보패 구하는 데 정신을 뺏기지 말며, 4. 의복을 빛나게 꾸미지 말며, 5. 정당하지 못한 벗을 좇아 놀지 말며, 6. 두 사람이 아울러 말하지 말며, 7. 신용 없지 말며, 8. 비단 같이 꾸미는 말을 하지 말며, 9. 연고 없이 때 아닌 때 잠자지 말며, 10. 예 아닌 노래 부르고 춤추는 자리에 좇아 놀지 말라. |
[5조]
제가 10여년 이상 청소년 상담을 하면서 다양한 학생들을 상담하고 있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학부모님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중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네 맞습니다. “우리아이가 원래 착했는데 친구를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되었다.” 거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면 똑같이 말씀하시죠. 어떤 게 진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 실제로는 그 학생이 친구를 물들였을 수도 있습니다. 상담을 해 보면 항상 나쁜 친구들만 있지 나쁜 자녀는 없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그렇습니다.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모의 말에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공부하실 내용은 특신급 5조 정당하지 못한 벗을 좇아 놀지 말며 입니다. 이와 관련된 부처님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때, 부처님이 기사굴산에서 정사로 돌아오시다가 길에 떨어져 있는 묵은 종이를 보시고, 비구를 시켜 그것을 줍게 하시고 그것이 어떤 종이냐고 물으셨다. 비구는 여쭈었다. "이것은 향을 쌌던 종이입니다. 향기가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다시 가시다가 길에 떨어져 있는 새끼를 보시고, 줍게 하여 그것이 어떤 새끼냐고 물으셨다. 제자는 다시 여쭈었다. "이것은 생선을 꿰었던 것입니다. 비린내가 아직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사람은 원래 깨끗하지만 모두 인연을 따라 죄와 복을 부른다. 어진 이를 가까이하면 곧 도덕과 의리가 높아 가고, 어리석은 이를 친구로 하면 곧 재앙과 죄가 이른다. 저 종이는 향을 가까이해서 향기가 나고, 저 새끼는 생선을 꿰어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다. 사람은 다 조금씩 물들어 그것을 익히지만 스스로 그렇게 되는 줄 모를 뿐 이니라“ |
자기도 모르는 가운데 조금씩 물들어가는 것이죠. 그게 더 무섭습니다. 이런 말씀은 대종사님도 말씀해주신 법문이 있습니다. 대종경 수행품 30장을 보면 [사람의 성품은 원래 선악이 없는 것이나 습관에 따라 선악의 인품(人品)이 있어지나니 습관은 곧 당인의 처음 한 생각이 좌우의 모든 인연에 응하고 또 응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좌우의 인연을 따라 습관 되는 이치가 선과 악이 서로 다르지 아니하나, 선한 일에는 습관 되기가 어렵고 악한 일에는 습관 되기가 쉬우며, 또는 선한 습관을 들이기 위하여 공부하는 중에도 조금만 방심하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악한 경계에 흘러가서 처음 목적한 바와는 반대로 되기 쉽나니 이 점에 늘 주의하여야 착한 인품을 이루게 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의 한 생각과 좌우의 인연이 만나면 습관을 이루고 그 습관이 나의 인품을 만드는데 그 좌우의 인연이 정당한 벗이면 좋은 습관과 인품이 형성되는데 정당하지 못한 벗이면 나쁜 습관과 나쁜 인품이 형성되게 됩니다. 이것을 한 문구로 줄여보면, 결국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를 결정합니다. 지금 내가 어떤 친구를 만나고 있느냐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줍니다.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과의 화학 작용을 통해서 만들어진 습관, 인품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수행품 30장
대종사 말씀하시기를 [사람의 성품은 원래 선악이 없는 것이나 습관에 따라 선악의 인품(人品)이 있어지나니 습관은 곧 당인의 처음 한 생각이 좌우의 모든 인연에 응하고 또 응하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라, 가령 그대들이 공부에 발심하여 처음으로 이 도량에 와서 스승과 동지를 만나고 법과 규칙을 지켜나갈 때에, 처음에는 모든 일이 서투르고 맞지 아니하여 감내하기가 어려우나, 그 발심을 변하지 아니하고 오래 계속하면 차차 마음과 행동이 익어져서, 필경에는 힘 들지 아니하고도 자연히 골라지게 되나니 이것이 곧 습관이라, 이와 같이 좌우의 인연을 따라 습관되는 이치가 선과 악이 서로 다르지 아니하나, 선한 일에는 습관되기가 어렵고 악한 일에는 습관되기가 쉬우며, 또는 선한 습관을 들이기 위하여 공부하는 중에도 조금만 방심하면 알지 못하는 가운데 악한 경계에 흘러가서 처음 목적한 바와는 반대로 되기 쉽나니 이 점에 늘 주의하여야 착한 인품을 이루게 되리라.] |
그러면 우리가 정당하지 못한 벗과 좇아 놀게 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제 경험과 정산종사님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첫째, 유유상종이라 내 안에 공부심이 없고 사심이 발동할 때입니다. 내가 술이 먹고 싶으면 술 먹을 건수와 술 먹을 친구를 만들어 냅니다. 얘기를 들어보면 그래요. 술 좋아하는 사람은 술 먹을 건수가 많습니다. 기분이 나빠서, 좋아서 마셔야하죠. 우리가 한번 공부나 법회에 빠지는 것도 그렇죠. 한번 빠지게 되면 계속 이유가 생깁니다. 안 빠지는 사람은 안 빠지게 되죠.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기도 하지만 법회 가기 싫다는 한 생각이 동하게 되면 법회에 가지 않을 이유를 만들어내고 이유를 만들어내다보면 이유가 생깁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한 생각 사심이 동하면 그 사심에 맞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내 안의 사심은 정당하지 못한 벗을 끌어당깁니다. 유혹당할 준비가 되어야 유혹도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한 생각 일어날 때 불같이 무서워해야 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작은 생각이라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죠. 한 생각 사심이 무량세계를 전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한마음 내는 것을 조심하고 신중해야합니다. 내가 마음먹은 대로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내가 하려고 하면 도와줍니다. 내가 정말 해야 한다고 마음이 있으면 주변에서 기운이 도와주게 되고 하기 싫으면 자꾸 그런 이유가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한 마음이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사심을 일으키지 말아야합니다. 둘째, 제 능력을 헤아리지 않고 중생을 건진다는 제생의 본의만 생각할 때입니다. 제가 원불교 대학원 대학교에 입학할 때 초고속 인터넷이 기숙사에 연결되어 졌습니다. 이때 크게 기뻐하는 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 무리는 PC게임을 즐겨하는 동기들 이였습니다. PC게임을 즐겨하는 동기들은 항상 그들끼리만 잘 몰려다녔고 우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게임용어로 신나게 대화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과도 어울리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는 두루 사귀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의지가 강해서 게임을 하는 동기들과 함께해도 절대 게임에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삼대력은 매우 빈약했기에 2-3일 만에 게임에 완전히 빠져버렸습니다. 게임 때문에 밤을 샌 적도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게임하는 동기들을 건지러 갔다가 완전히 물들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청소년 교화를 하러 갔을 때에도 PC방에 게임을 하러가서 학생회원들을 건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만물이 상종하게 되면 서로 닮아가는 이치가 있으며 특히 약한 것이 강한 것에 물들고 합류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힘을 갖추기 전에는 정당하지 못한 벗과 가까이 하면 안 됩니다. 정당하지 못한 벗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약하기 때문에 휩쓸려갑니다. 교전공부를 쓰신 각산님께서는 이를 헤엄칠 줄 모르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고자 물에 뛰어드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대종사님의 본의를 생각해보면 왜 특신급에 정당하지 못한 벗을 좇아 놀지 말자고 하셨을까요? 특신급은 아직 힘이 없습니다. 정당하지 못한 친구를 만나게 되면 좇아가게 되어있습니다. 특신급일때는 술 마시는 친구 만나면 술 마시게 되고요. 본인이 못 당겨오고 자기가 딸려갑니다. 법마상전급도 열 번 싸우면 다섯 번 지는데 특신급이 어떻게 다 이기겠어요. 그래서 정당하지 못한 벗을 좇아 놀지 말라는 것은 피경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아직 힘이 없을 때는 힘을 자신하지 말고 피해라. 우리 교도님들이 법위가 다양하시겠지만 법강항마위가 되기 전까지는 실력을 자신할 수 없습니다. 그전까지는 지기도하고 이기기도 하고 그렇죠. 세 번째는 대의를 모르고 잔정에 치우쳐서입니다. 때로는 친구를 위해준다고 하는 일이 친구를 망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친구를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직언을 해야 할 때 친구와의 사이가 불편해질까봐 그냥 두거나 잘못 된 줄 알면서도 함께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은 인정 때문에 큰일을 망치는 경우입니다. 정말 좋은 친구는 솔직한 충고를 해주는 친구입니다. 내가 잘못을 하고 있을 때에도 듣기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 친구는 나를 어둡게 만듭니다. 공적인 일을 제쳐두고 사적인 일을 먼저 도모하는 친구는 정당하지 못한 친구입니다. 그리고 대의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공적인 일에 마음을 합해주는 사람이 대의를 아는 사람이며, 때로는 자기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공적인 일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대의가 있는 사람입니다. 단체의 규칙을 소중히 여기고 지키는 사람은 대의가 있는 사람이지만 단체의 규칙을 가볍게 알고 어기는 사람은 대의가 없는 사람입니다. 제가 교당에서 우리 청년, 일반 교도님들을 구속할 마음은 없습니다. 저는 비교적 시간은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거든요. 법회도 거의 정각에 시작하는데, 법회 시간이 늦어지기 시작하면 계속 늦어집니다. 거기에 동조하는 한사람이 그 규칙을 가볍게 여겨서 어기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도 어기게 되고 자연스럽게 늦어지게 되죠. 대의가 없는 사람이 많으면 그 단체는 무너지게 됩니다. 이럴 때 올바른 친구라면 대의를 어기거나 규칙을 어겼을 때 충고를 해주고 대의를 바로잡아줘야 하는데 내가 불편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불편한 관계를 맺지 않기 위해서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그 단체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못되고 친구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의를 쫓고 사사로운 정에 끌려가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의를 쫓지 않고 사사로운 정을 쫓다보면 정당하지 못한 벗과 어울리게 되겠죠. 조금 불편하더라도 대의를 지키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6조]
계문은 법위등급과 함께 연관지어서 공부해야 대종사님의 본의를 파악하여 공부할 수 있습니다. 계문의 목적은 구속과 금지가 아니라 보호와 인격의 성숙 즉 법위향상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먼저 특신급을 살펴보면, 특신급은 보통급 십계를 일일이 실행하고, 예비 특신급에 승급하여 특신급 십계를 받아 지키며, 우리의 교리와 법규를 대강 이해하며, 모든 사업이나 생각이나 신앙이나 정성이 다른 세상에 흐르지 않는 사람의 급이 특신급입니다. 이것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특신급 십계문이 있는 것입니다. 특신급이라는 것은 크게 모든 사업이나 생각이나 신앙이나 정성이 다른 세상에 흐르지 않게 하기위해서 특신급 십계문이 만들어졌고, 우리가 특신을 하게 되면 독선으로 흐를 수 있습니다. 어느 종교든 처음 믿을 땐 강력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포용력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 특신급 계문에 보호 장치를 두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첫 번째로 모든 사업이나 생각이나 신앙이나 정성이 다른 세상에 흐르지 않게 하기위해서 만든 조항이 3,4,5,9,10조입니다.
3. 금은 보패 구하는 데 정신을 뺏기지 말며,
4. 의복을 빛나게 꾸미지 말며,
5. 정당하지 못한 벗을 좇아 놀지 말며,
9, 연고 없이 때 아닌 때 잠자지 말며,
10, 예 아닌 노래 부르고 춤추는 자리에 좇아 놀지 말라.
왜냐하면 이 다섯 가지가 우리의 정신을 빼앗아갑니다. 금은 보패, 의복과 외모, 정당하지 못한 벗, 내 과거 습관의 잔재들이죠. 그리고 나태. 이런 것들이 내 신앙이나 수행, 사업이나 생각이 다른 세상으로 가게하기 때문에 이 다섯 가지 조목을 통해서 내 신앙 생각 정성이 우리 법으로 끌어 당겨줍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특신을 세우다보면 독선적이 될 수 있습니다. 기독교도 초입교도들이 선교를 많이 나갑니다. 그때 믿음이 강렬하거든요. 그러다보면 독선적 행동에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최고다. 내가 믿는 것,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최고다. 그 부분을 경계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조목은 1조와 2조와 6조입니다. 믿음이 강력하긴 하지만 순숙이 덜 된 것이죠. 첫 번째 독선적 행위는 공중사 단독처리입니다. 재주와 능력이 있는 사람이 특신이 되고 보면 교단이나 교당에 도움을 주려는 마음과 본인이 그 일에 대해 능하다는 아만심 때문에 공중사를 단독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그래서 대종사님께서는 특신급 1조에 ‘공중사를 단독히 처리하지 말며’를 넣으셨습니다. 두 번째로 대종사님께서 경계하신 독선적 행위는 다른 사람의 과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특신급에 오르고 보면 우리의 교리와 법규를 대강이해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원불교와 원불교의 교리를 안다’는 상이 생기게 됩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자신의 허물은 잘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은 잘 보입니다. 그리고 아직 공부가 미숙한 특신급 교도의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교리 공부가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특신급때 이런 마음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교리 공부를 하게 되니까 신심이 올라가고, 그것으로 세상을, 사람을 재단하려합니다. ‘교당을 10년이나 다녔다는 사람이 왜 저럴까?’, ‘원불교는 이것이 문제야’, ‘법호도 있으신 분이 저렇게 행동을 하시네’, ‘교무가 저렇게 행동을 해도 되는거야’ 등등 다른 사람의 과실이 자꾸 눈에 띕니다. 즉 조금 아는 교리에 대한 지식이 죄업을 짓는 도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신급 십계문 2조에 ‘다른 사람의 과실을 말하지 말며’를 넣으셨습니다. 다른 사람의 과실을 말하지 말며가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의 과실을 많이 말하게 될 상황이 생길 것임을 대종사님께서 예상하신 것이죠. 초기에 들어올수록 시선이 날카롭거든요. 세 번째 독선적 행위는 두 사람이 아울러 말하는 것입니다. 사업이나 신앙이나 생각이 원불교에 정착할 수 있도록 하기위해서 만든 것이 있고, 이 뒤에는 내가 조금 아는 교리 지식으로 독선적으로 흐르지 않게 하기위해서 만들어진 조목이 ‘두 사람이 아울러 말하지 말며’입니다. 이것은 청년회장님이 앞선 강연에서 충분이 설명을 잘 해주셨습니다. 그대로 아시면 될 것 같고 이것과 관련된 경험을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서 저는 박사과정에서 상담을 전공해서 15년 동안 청소년 상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상담기법과 이론을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해왔던 상담기법과 이론 중에서 가장 효과적인 상담기법을 뽑으라고 한다면 제가 어떤 것을 뽑을까요? 경청. 들어주기입니다. 실제로도 증명이 되었지만 대부분의 고민은 들어주기만 해도 80%는 해결이 됩니다. 상담의 고수냐 하수냐를 판단하는 것은 상담자가 더 말을 많이 하는가, 내담자가 말을 많이 하는가로 판단합니다. 진정한 상담의 고수는 상담자가 거의 얘기를 안 합니다. 내담자가 얘기를 거의 다 하고 스스로 답을 찾습니다. 계속 이야기하다보면 제가 답을 이야기해준 것도 아닌데 스스로 ‘아 그렇군요!’ 하고 돌아갑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가져온 고민은 본인이 제일 전문가입니다. 본인이 제일 많이 고민해왔잖아요. 다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한 것이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한번 내보일 시간이 필요한 것이죠. 자기 생각에 갇혀 있다가 누군가가 옆에서 들어주다보면 그것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두 사람이 아울러 말하는 경우는 내가 뭔가 그 사람에게 가르쳐주려고 할 때 그리고 무엇인가 그 사람에게 내가 잘났다는 생각이 있을 때에, 내 생각이 옳다고 생각할 때에 아울러 말하게 되죠. 무엇인가를 해주려는 그 마음, 무슨 이야기든지 해 주고 알려주려는 그 마음이 오히려 병입니다. 최고의 의사소통은 오히려 들어주는 것이 더 좋은 의사소통일수 있습니다. 특신을 통해 신심이 나면 내가 배운 원불교 교리나 지식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구도 강해지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특신이 되면 함께 사는 가족이 고생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혼자 열심히 하면 되는데, 가족들에게 강요할 수도 있거든요. 그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일단 내가 먼저 변화가 되어야죠. 내가 먼저 행복하게 살고 나서 그렇게 해야 하는데 그것이 순서가 잘못 잡히다보면 나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강요를 하게 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강요하게 되고, 자꾸 무엇인가를 가르치려고 하게 되죠. 말만하려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피곤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잘 들어주는 사람입니다. 진심으로 묵묵히 들어주는 그 행동이 백 마디 교리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오늘 함께 공부한 특신급 5조 정당하지 못한 벗을 좇아 놀지 말며 조항을 통해 모든 사업이나 생각이나 신앙이나 정성이 다른 세상에 흐르지 않도록 하고 특신급 6조 ‘두 사람이 아울러 말하지 말며’를 통해 내가 아는 작은 교리지식과 성숙하지 못한 신앙으로 독선적 의사소통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나는 말을 많이 듣는 사람인지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인지 스스로 한번 돌아봐서 말을 많이 들어주는 사람이 되시고, 말로 보여주는 것보다는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이 되기를 부탁드리면서 오늘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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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수공 타이핑 책임지시는 우리 예쁜남자 박준성 교우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