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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문학관 |
소쇄원 |
광주과학기술원 |
두 번째 관람은 소쇄원이었다. 박미숙 해설사가 우리를 맞았다. 담양군 남면 지곡리 123번지에 위치한 명승 제 40호로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은사인 정암 조광조(趙光祖, 1482∼1519)가 기묘사화로 능주로 유배되어 세상을 떠나게 되자 출세에의 뜻을 버리고 자연속에서 숨어 살기 위하여 꾸민 별서정원(別墅庭園)이란다. 소쇄원은 1530년(중종 25년)에 양산보가 꾸민 조선시대 대표적 정원의 하나로 제월당(霽月堂), 광풍각(光風閣), 애양단(愛陽壇), 대봉대(待鳳臺) 등 10여개의 건물로 이루어졌으나 지금은 몇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제월당(霽月堂)은 ’비개인 하늘의 상쾌한 달’이라는 뜻의 주인을 위한 집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광풍각(光風閣)은 ’비갠 뒤 해가 뜨며 부는 청량한 바람’이라는 뜻의 손님을 위한 사랑방으로 1614년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3칸의 역시 팔작지붕 한식이다. 정원의 구조는 크게 애양단(愛陽壇)을 중심으로 입구에 전개된 전원(前園)과 광풍각(光風閣)과 계류를 중심으로 하는 계원(溪園) 그리고 내당인 제월당(霽月堂)을 중심으로 하는 내원(內園)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월당에는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가 쓴 「소쇄원사십팔영시(瀟灑園四十八詠詩)」(1548)가 있으며, 1755년(영조31년)에 목판에 새긴 「소쇄원도(瀟灑園圖)」가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이 보존되어 있었다. 세 번째 죽녹원의 시원한 공기를 한껏 품으며 울창한 대나무 숲속을 거닐었다. 외부 온도 보다 4oC~7oC가 낮다고 또한 음이온이 다량 발생하여 건강에 매우 좋다고 안내되어 있다. 대나무 숲 언덕바지에는 운수대통 길, 사랑이 변치 않는 길, 죽마고우 길, 선비의 길, 철학자의 길 등이 있는데 우리 일행은 삼삼오오 나뉘어 각자의 구미에 맞는 길을 따라 30여분 산책한 뒤 광주과학기술원으로 달렸다.
광주과학기술원에 도착하여 곧 바로 전상훈 팀장의 광주과학기술원의 홍보영상을 관람한 후 김광일 기획팀장의 간단한 과기원의 설립배경과 교육목포, 일반 현황을 소개 받았다. 1995년도 개원하여 불과 16년 만에 석사 2,210명과 박사 545명을 배출하였고 교수 1인당 논문 인용건수는 세계 14위, 아시아 1위의 우수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또한 고등광기술연구소의 전자 빔 가속기, 양성자 가속기, 광양자가속기의 시설을 이인원 소장이 안내하였고 특히 광양자가속기의 출력을 1015 Watt까지 올린 성과는 세계 최초라고 소개한다. 연구소 탐방을 끝으로 학생생활관에서 숙소를 배정 받았다. 약 한 시간 휴식을 취한 다음 해보일식 만찬장으로 이동하였다. 회장님의 건배사를 시작으로 죽향막걸리의 향은 취기를 더해갔고 계속되는 산해진미는 만찬장의 분위를 한껏 높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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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녹원 |
지리산 |
남원광한루 |
다음 날 6월 28일 오전 8시 나주곰탕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지리산 산행을 위해 광주를 뒤로하고 올림픽고속도로를 질주하여 구례를 거쳐 지리산 성삼제에 도착하였다. 날씨는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등반하기 매우 좋았으며 성삼제에서 노고단 등반 팀과 뱀사골의 사진촬영 팀으로 나누어 지리산의 경관을 감상하였다. 뱀사골의 사진 팀에 비해 노고단 등반 팀의 인원이 훨씬 많았고 노고단 등산 팀은 시간이 지연되는 바람에 남원까지는 약 1시간 늦게 도착하였다.
새집추어탕 식당에서 추어탕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광한루원을 둘러보았다. 잘 정돈된 경내는 옛 춘향의 정취를 느끼게 하였으며 춘향사당의 춘향영정은 아름다음이 살아 숨 쉬고 있는듯하였다. 연못에 한가롭게 노니는 비단잉어는 크기도 크기지만 엄청난 수가 놀랍다. 광한루, 영주각, 방장정, 완월정, 춘향관, 청허부, 오작교, 월매집으로 구성되어있는데 광한루는 보물 제 281호로 원래 1419년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되어 왔을 때 "광통루"란 작은 누각을 지어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이후 세종 26년(1444)에 하동 부원군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를 본따 '광한루'라 바꿔 부르게 되었고 광한은 달나라 궁전을 뜻한다. 춘향과 이몽룡도 바로 이곳에서 처음 만나 사랑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영주각은 전라관찰사 정철이 요천에서 끌어온 물이 은하수를 상징케 했으며 이때는 한주섬(漢州)이라고 불렀던 것을 정조 19년(1795)에 부사 이만길이 재건하고 영주각이란 편액을 손수 써서 걸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작교는 칠월칠석에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천상의 사랑을 춘향과 이몽룡을 통해 완성시킨 사랑의 다리인데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남녀는 이 다리를 꼭 건너가 보곤 한다 했다. 우리 일행은 광한루원을 마지막으로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귀경길에 올랐고 오후 6시경 양재동 전철역에서 대부분 하차하였고 소수만 과총회관까지 운행하여 탐방여행을 마감하였다.
첫댓글 다 함께 즐기고 온 탐방지역을 글로 이토록 수준높게 그려내시다니 필치에 가히 놀랍습니다. 전문 기행작가로 모셔야 하겠으니 지금이라도 전공을 바꾸심이 어떨지요?
이박사님의 탐방기를 읽다보니,
과학, 역사, 문화, 자연을 융합시킨
200%의 성과를 거둔 탐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 솜씨가 탐방을 한층 더 아름답게 한것 같습니다.
광주과기원 탐방기를 요약하여 하나도 빠짐없이 잘 기록 하셨습니다. 꼼꼼하신 필체에 우수한 문장이 돋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자상한 탐방기 감사합니다.
안가봐도 가본듯, 안보아도 본듯, 안들어도 들은듯 행적이 그려집니다. 그런디유, 오타가 예닐곱군데 있네유. 고등광기술연구소장님 성도 이름도 틀린 것 같습니다.
흩으러져 있던 여행 여정이 확연하게, 그리고 내용도 상세하여 앉아서 다시 다녀온 기분입니다. 감사합니다.
미번 탐방 전 일정을 요악하셨는 데 글씨 폰트를 12 정도 올리고, 칸 띄우기도 해 주시면 더욱 밝게 읽을 수 있겠네요.
자상하신 글 음미하며 잘 읽었습니다
훌륭하신 탐방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