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물 | |||||||||
여래나 보살, 신중 등이 손에 들고 있는 물건 존상의 특징.중생구제 서원 상징 ‘처염상정’의 의미가 담긴 연꽃이 대표적 법륜.석장부터 해.달.별 등 자연물까지 중생구제, 의식용 법구 등 의미.용도 다양 지물(持物)이란 몸에 지닌 물건이라는 말이지만 불교에서는 특별히 여래나 보살, 신중 등이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지칭한다. 불교의 상에 나타난 지물은 실재의 물건을 모방한 형태로 묘사되어 있으나 그것은 실재하는 물건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각 지물이 가진 배후의 의미를 읽어내는 일은 그것을 지닌 존상의 성격과 권능과 서원(誓願)을 이해하는 첩경이 된다. 불교의 모든 조형물들은 기본적으로 의미 상징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래나 보살, 신중 등 신앙의 기본 대상이 되고 있는 존상(尊像)부터가 그러하다. 이들 존상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으나 그것은 결코 기념상이거나 초상이 아니다. 법신불, 응신불의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실존 인물인 고타마 싯다르타를 형상화한 석가모니 불상조차도 이미 그것은 초상이 아니라 종교적으로 이상화된 존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불교의 제 존상들이 보여주는 인간 형태는 인간 자체가 아니라 어떤 궁극적 실재를 드러내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적 입장에서 볼 때 제 존상의 외형에 집착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고, 그 배후에 자리 잡은 궁극적 실재를 간파해 내는 일이 중요한 것이다. 〈금강경〉 ‘여리실견품(如理實見品)’의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卽見如來)”라는 말은 우리들에게 불교의 제 존상들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가를 잘 가르쳐 주고 있다. 지물의 경우도 이와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존상이 인간 형태로 되어 있음에 대해 지물은 물건 형태로 되어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보살이나 신중이 가진 지물은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의 기물 또는 소지품이 아니라 이미 불교적 해석을 거친 의미 상징물로 변신한 존재들이다. 이 상징물들은 말로써 일일이 설명할 수 없는 보살 또는 신중의 성격과 그들이 품은 중생 구제의 서원을 드러내 준다. 특히 삼매야형의 틀을 형성하고 있을 경우의 지물은 그것을 가진 존상과 관계된 보다 구체적이고도 깊은 내용을 말해준다. # 연꽃
여래, 보살 신중을 막론하고 존상들이 가지는 지물 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연꽃이다. 연꽃은 세속에 있어도 그에 물들지 않는 처염청정(處染淸淨)한 보살의 경계를 상징하기도 하며, 〈묘법연화경〉의 이름처럼 불법의 오묘함을 은유하기도 한다. 또한 〈화엄경탐현기(華嚴經探玄記)〉에서처럼 연꽃이 가진 향(香).결(潔).청(淸).정(淨)의 네 가지 덕은 가장 이상적인 인격에 비유되기도 하고, “정토에 나서 그 연태(蓮胎)에 들어가 모든 쾌락을 얻는다”고 한 〈연종보감(蓮宗寶鑑)〉8의 내용처럼 연꽃은 화생(化生)을 통한 무한 생명의 순환을 의미한다. 지물로서 나타나는 연꽃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활짝 핀 연꽃이고 또 하나는 봉오리 상태의 연꽃이다.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 상태의 연꽃을 특별히 미부연화(未敷蓮花)라 부른다. 두 종류의 연꽃을 본존의 좌우 협시가 각 하나씩 들고 있을 경우에, 미부연화는 원래 가진 맑고 깨끗한 자성(自性)을, 활짝 핀 연꽃은 수행으로 꽃을 피운 깨달음의 경지를 나타내면서 서로 연관성을 가진다. 연꽃을 지물로 삼고 있는 보살 중에서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관음보살상이다. 보통의 관음보살상은 6관음 중의 하나인 성(聖)관음보살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성관음은 다른 여러 화(化)관음보살의 본신이다. 관음보살은 석가모니불의 협시보살로 봉안되기도 하고, 대세지보살이나 지장보살과 함께 아미타불을 협시하기도 한다. 관음보살이 들고 있는 연꽃은 꽃송이만 있는 것과 긴 줄기가 달린 것의 두 종류가 있는데, 꽃송이만 들 경우에는 한 손을 어깨 높이로 올려 잡는다. 줄기가 달린 것은 두 손으로 잡되, 한 손은 어깨 높이로 올려 꽃송이 부분을 잡고, 다른 한 손은 허리 부근에서 줄기 아래쪽을 잡는다. 그러나 석조상인 경우는 돌이 가진 표현의 제약성 때문에 배나 가슴 부근에서 연꽃을 잡고 있는 방식을 택하기도 하는데, 작례로는 거창상동석조관음입상(보물 제378호)이 있다. 이밖에 연꽃을 지물로 삼고 있는 관음보살상으로는 경주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을 비롯한 수많은 관음보살상이 있다. # 법륜
지물 중에서 연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법륜(法輪)이다. 법륜은 ‘만’(卍)자와 함께 불법을 나타내거나 부처의 형상을 대신하기도 하는 것으로, 무불상 시대부터 널리 활용되어 온 불교의 대표적 상징이다. 법륜은 전륜성왕의 윤보(輪寶)가 산과 바위를 깨뜨려 부수듯 불법은 중생의 모든 번뇌와 죄업과 사견(邪見)을 물리친다는 의미와, 항상 구르는 바퀴처럼 불법은 끊임없이 일체 중생들에게 평등하게 돌아간다는 의미, 그리고 윤보가 둥근 것처럼 불법은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원만 무결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법륜을 범륜(梵輪)이라고도 하는데, 부처가 항상 범음으로 설법하기 때문이라 하기도 하고,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을 때 범천왕이 중생을 위해 전법륜을 청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이렇듯 법륜이 부처님의 설법, 또는 불법을 상징하는 것이지만 정작 부처님은 법륜을 지물로 가지고 있지 않다. 대신에 지장보살이나 천수천안관세음보살, 명왕의 지물 중 하나로 나타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대표적 작례로 고창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의 지장보살상(보물 제280호)이 있으며, 청도 운문사 비로전과 관음전에 봉안된 신중탱화에서도 금강저ㆍ칼 등과 함께 법륜을 들고 있는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 정병
연꽃, 법륜과 함께 보살의 지물로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정병(淨甁)이다. 정병은 원래 불단에 맑은 물을 올릴 때 쓰는 공양구였으나, 감로병 또는 보병(寶甁)이라는 이름으로 신비화 되면서 보살의 중요한 지물로 떠올랐다. 특히 정병은 관음보살의 지물로 많이 나타나는데, 그것은 정병이 중생의 현실적 고통과 목마름을 덜어주는 관음보살의 성격을 표현하는데 가장 이상적인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병을 지물로 삼고 있는 유례를 살펴보면,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 경주 배동삼존석불입상의 좌협시 등 석조보살상과 삼양동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 제127호), 호암미술관 소장 금동관음보살입상(보물 제927호),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금동관음보살입상(국보 제24호) 등의 금동보살상이 있다. # 석장 한편, 지장보살의 지물로 흔히 나타나는 석장은 유성장(有聲杖).성장(聲杖)으로 번역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소리와 관련이 깊다. 석장의 유래에 대해서는 뱀이나 전갈 같은 독충들을 소리를 내어 물러가게 하여 살생을 피하기 위해 사용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나, 걸식 때 신도들에게 걸식하러 왔음을 알리는 수단으로 이용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지장보살이 들고 있는 석장은 그런 실용적인 생활 용구가 아니라 이미 종교적 해석을 거친 상징물이다. 지장보살이 지옥의 고통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기 위해 지옥문을 열 때 이 석장을 사용한다는 것과 관련되어 석장은 지옥으로부터의 구출을 의미하는 상징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석장은 지장보살 전용의 지물이지만 천수천안관음보살의 지물에 포함되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 금강저ㆍ금강령 금강저와 금강령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이 지물은 보살이 들고 있는 경우가 드문 반면에 신중들이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금강저는 여래의 지혜가 금강과 같이 견고함을 나타내는 상징물로, 누적된 악업과 중생심에서 비롯된 온갖 번뇌 망상을 물리쳐 주는 의기(儀器)이다. 모양은 기본적으로 삼지창 혹은 피뢰침과 비슷하지만 끝이 중심축을 향해 오므라져 있는 것이 다르다. 금강저는 제석천과 금강밀적 등 신중의 삼매야형으로 나타난다. 금강령은 밀교 의식에 필수적인 법구로서 항상 금강저와 함께 사용되는데, 집단의식을 행할 때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수행할 때도 사용한다. 금강령은 중생들로 하여금 모든 불보살에 대한 경각심을 환기케 하고, 최상승의 가르침이 금강령의 소리처럼 일체 중생의 마음 속에 편입(遍入)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금강저의 경우는 석굴암 제석천상이 대표적이고, 금강령을 지물로 들고 있는 경우는 프랑스 기메동양박물관 소장 조선시대의 천수천안관음보살 등에서 볼 수 있다. 보살과 신중이 가지고 있는 지물은 이상에서 살펴 본 것 외에도 매우 다양한 종류가 있다. 법륜.경권(經卷) 등 불교의 교의를 드러내는 것, 금강저.금강령 등과 같은 의식구, 활.화살.방패.창.도끼.칼.검.곤봉 등의 공격무기, 갈고리.견삭.포승 등 포획장비, 비파.공후.쟁(箏).피리.생황.법라(法螺) 등 악기류, 탑.궁전 등 건축물, 기타 숟가락.경책(警策).불자.산개.거울.보주.염주.발우, 그리고 해.달.별.구름 등의 자연물까지 각양각색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