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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 조선의 난세를 넘다
하늘늑대|2008.09.2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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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명 : 선조, 조선의 난세를 넘다.
▒ 저 자 : 이한우
▒ 출 판 : 해냄
조선의 14대왕 선조. 그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긍정적이기 어렵다. 그의 재위기간 동안 조선시대 500년 중 최대위기였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발생하였고, 그의 치세시간 중 동서붕당이라는 최초의 붕당이 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는 재위기간 말기에 잦은 선위문제를 일으켰다. 그리고, 이순신과 아들 광해군과의 갈등이 이순신을 추앙하는 정서와 광해군의 정치에 대한 긍정적인 분석이 이루어지는 현재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그렇다면 선조는 어떤 임금이었을까. 우리가 생각하는대로 그는 유약하고, 줏대가 없으며, 의심이 많고, 인재를 보는 눈이 없고, 편협한 인물이었던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이러한 평가를 받는 선조에게 변명을 기회를 주고자 하는 것 같다. 저자는 [이한우의 군주열전]이라는 시리즈로 이미 태종, 세종, 성종에 대한 책을 쓴 상태에서 네번째 대상으로 선조를 재평가하고 있다. 저자도 선조에 대한 일반적인 평이나 지인들의 비판적인 견해에 부담을 느낀 듯.. 선조를 군주열전의 네번째로 다루게 된 이야기를 서론에서 간략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조에 대한 해명(혹은 변명)은 어떤 것일까?
먼저, 그는 당쟁의 분위기에 휘말려 조선의 위기상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인물인 것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선조는 임진왜란이 있기 전부터 전쟁의 가능성과 분위기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악수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탐욕스럽고 포악하다거나 유약하고 겁이 많다는 평가들로 한직에 있던 원균과 이순신을 경상우수사와 전라좌수사로 임명하여 남해안 방어에 관심을 기울이기도 하였다. 어떻게 보면.. 선조 개인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조선 중기 이후 약해진 군사력과 일선 지휘관들의 초기 대응실패가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킨 것일 수도 있다.
둘째, 선조는 인재를 보는 눈이 없었던 것일까. 선조의 인재론에 대한 문제점으로 대두되는 주 화제는.. 이순신과 원균. 그리고, 신립이다. 먼저, 이순신을 믿지 못하고 수차례 괴롭히는 것에 대해서는 선조도 면죄부를 받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순신을 발탁하여 중용한 것은 바로 선조다. 선조에 의해서 이순신이 힘겨운 길을 걸은 것은 사실이지만.. 선조가 아니었다면 성웅 이순신도 없었을 것이다. 또, 원균에 대한 편애인데.. 이를 작가는 "자신의 페이스나 견해를 지키기 위해 군주의 지시에도 꿈쩍하지 않는 이순신"과 "군주의 지시에는 목숨을 걸고하도 부응하려는-결국에는 칠천량에서 죽지만..-원균"의 관점에서 보고 있다. 지금에는 이순신이 좀 더 부각될지 몰라도.. 과거 전제군주제의 현실에서.. 이순신의 태도가.. 무조건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신립에 대한 믿음도 신립이 쌓아온 과거의 공적을 보면 어느정도 당연한 것이었다. 군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어찌하면 무모하다할 수 있는 전술을 펴 임진왜란 초기 주요 관군병력을 모두 소진해버린 신립의 개인적인 판단 실수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큰 것 같다. 그리고, 사족을 더하자면.. 선조시대 조정에는 쟁쟁한 인물들로 가득했다. 이런 인물들이 선조시대에 한꺼번에 나타난 것일 수도 있지만.. 이들을 발탁하여 조정에 둔 선조의 인재감별 능력도 분명 인정해야 할 것이다.
셋째, 선조의 리더십 부재는 신하들의 붕당을 촉발시켰고 선조는 이를 통제하지 못했다? 조선시대 붕당의 출현은 어떻게 보면 시대의 흐름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사림들이 대거 조정에 진출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의 훈구대신계열과 신진사림간의 갈등이 있을 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수차례의 사화가 나타난다. 선조는 사림들을 대거 발탁하면서도 이전에 비해서 사화의 빈도나 강도가 확연하게 줄어든다. 정여립의 옥사에 있어서도 선조는 불필요한 사람들에게까지 피해가 확대되는 것을 막는다. 그리고, 선조시대에 붕당들의 세력도 선조에 의해서 조정되는 경향을 보인다. 선조는 붕당정치의 경향 속에서도 군주의 위엄을 지키고 붕당을 통제하려고 노력한 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선조에 대한 저자의 이러한 평가가 과연 얼마나 타당한 것일지는 확실할 수 없다. 하지만, 선조에 대한 평가는 선조 자신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당시의 국제정세와.. 조선의 내부문제가 현실로 나타난 영향이 크다고 할 것이다. 선조가 만일.. 국제정세가 안정되고 군사력이 강했던 시대의 왕이었다면.. 수성의 군주로 추앙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경과 고난 속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 선조이지만.. 그의 자질 자체가 평균 이하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호’라는 낡고 오래된 배의 키를 잡고 있던 사람은 선조다. 애당초 자신이 키를 잡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배에 관한, 항해에 관한 지식이라고는 한줌도 되지 않았고 바다에 나가본 적도 없었다. 갑자기 노련한 항해사들이 와서 열여섯 살 어린아이를 보고 선장을 맡아줄 것을 강권했다. 사양했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선장직을 수락한 후에도 모든 것은 항해사들이 알아서 했고 자신은 뒤늦게 항해술에 관한 수업을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난파 조짐을 보이던 배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조금씩이나마 항해를 계속해 나갔다. 마흔 살을 넘어 조금씩 항해에 흥미를 가지려 할 무렵에 태산 같은 파도가 밀려오더니 7년간의 폭풍우가 몰아쳤다. 이런 상황은 난생 처음이었다. 그동안 익힌 항해술로 대처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제발 다른 사람이 키를 맡아달라고 수도 없이 호소했지만 아무나 선장이 되는 것은 아니라며 자리를 지켜줄 것을 강요했다. 폭풍우가 잦아들었을 때 배는 만신창이가 됐지만 난파는 면했다. 이것은 선조를 위한 변명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비유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 <9장 명군 참전과 ‘전쟁신’ 이순신> 중에서
이 책을 읽고나서 든 생각은.. 일단 선조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이미지들 중에서 일부가 희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선조가 평화로운 시대의 국왕이었다거나.. 국왕이 되지 않고 한 사람의 평범한 선비로 살아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선조는 과연.. 스스로 국왕이 되길 원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단, 선조에 대해서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을 읽은 결과로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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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거시적인것과 소시적인것을 혼동하지 말라면서 해석만 반대로 할 뿐 결국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듯 하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그런가요?
책의 본래 내용이 어떠한진 잘 모르겠다만, 우선 저기서 지적한 문제들은 공감은 하나, 반박하는 방법이 잘못된것 같습니다.
우선 첫째와 셋째 지적을 보면, '조선이 원래 그랬다'라는 식의 논리인데요, 이게 좋은 지적은 해주지만 이걸로 끝나면 막상 선조의 리더쉽을 비난하는 주장을 반박하는게 아닌 물타기가 되버릴 수가 있습니다. '조선이 이러이러 했고, 선조의 통치방식이 이러이러해서 결과가 이렇게 나온것인듯'이라고 주장하는것이 좋다고 봅니다.
전 단순 역덕이라서 자세힌 모르지만, 선조는 정여립의 난에서도 볼 수가 있듯이 출생때문에 다른 이씨에 의한 반정을 상당히 염려했던 점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붕당을 촉발시킨다기보단 이용하는 측면이 강하였고, 이것이 사신단보고를 받고 나선 판단에도 영향을 충분히 끼칠수가 있었다고 보고, 이는 당연히 전시 인재등용에서도 영향을 줄 수가 있다고 봅니다.
둘째 지적은 제가 방금 언급한 부분을 덧붙여 지적하여 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원균이 불쌍하다는 투로 말투만 바꿨지 결국 선조는 자기말 잘듣는 간신을 더 중용했다는 의미가 되버릴테니까요.(원균이 죽음을 무릎쓰고라는 표현은 좀 비웃음을 살 표현입니다.ㅎㅎ;;) 더군다나 신립과 이순신을 연관시키는건 억지에 가깝다고 봅니다. 신립은 고증됬던 인재이나 실패했고, 이순신은 정반대 케이스니..
반면 원균은 고증된 탐관오리였습니다. 이 세명을 서로 연관시킨다면 쉽게 '토사구팽''지록위마'를 연상시키게 되죠. 정말 위급할때 인재를 등용하고 위험이 벗어나면 간신을 쓰는구나 하고요. 전쟁발발전에 인재를 배치한것도 제가 위에서 언급한 시각을 도입하자면 과연 인재를 보고 배치한것인지 또다시 질문을 던질수 있게됩니다. 반박을 하려면 이 관점을 풀어 재해석을 해야 하는데, 이런 작업은 전혀 없어보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관점을 빌린다면 결론적으로,
선조는 반정이 일어나 자신이 찬탈될까 하는 위기의식에 빠져살던 사람이였고, 이것이 전쟁전뿐만 아니라 전쟁동안에도 적용이 되어, 평화시기엔 강자를 흔들고 약자를 돕지만
전쟁의 시기엔 이게 활약하는 인재를 흔들고 무능한 인재를 돕는 꼴이 되버리게 되었다...라는 평이 가능합니다.
조선이 예상치못한 전쟁을 치루게된것은 사실이나, 조선은 왕정국가인 만큼 왕의 성격에 따라 그 행동반경이 따라갑니다(이걸로 선조의 몽진이 정당화되긴 하다만..^^). 그렇기에 개개인의 성격과 국가적인 문제를 따로 분리하여 보는건 좋으나, 따로 분리해 분석을 한뒤 다시 연결시켜 그 합리성과 설득력을 부여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민주주의사회에서 사는 오늘날의 현대인일수록 커다란 역사적 이벤트들과 자지부리한 배경문화사회의 역사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노력을 해볼 필요는 있을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