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THIS IS TOTAL WAR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역사자료실 선조 난세를 넘다
영원한순례자 추천 0 조회 430 15.02.17 17:18 댓글 6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5.02.17 17:52

    첫댓글 거시적인것과 소시적인것을 혼동하지 말라면서 해석만 반대로 할 뿐 결국 똑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듯 하다는 느낌이 드는군요.

  • 작성자 15.02.17 17:53

    그런가요?

  • 15.02.17 21:58

    책의 본래 내용이 어떠한진 잘 모르겠다만, 우선 저기서 지적한 문제들은 공감은 하나, 반박하는 방법이 잘못된것 같습니다.
    우선 첫째와 셋째 지적을 보면, '조선이 원래 그랬다'라는 식의 논리인데요, 이게 좋은 지적은 해주지만 이걸로 끝나면 막상 선조의 리더쉽을 비난하는 주장을 반박하는게 아닌 물타기가 되버릴 수가 있습니다. '조선이 이러이러 했고, 선조의 통치방식이 이러이러해서 결과가 이렇게 나온것인듯'이라고 주장하는것이 좋다고 봅니다.
    전 단순 역덕이라서 자세힌 모르지만, 선조는 정여립의 난에서도 볼 수가 있듯이 출생때문에 다른 이씨에 의한 반정을 상당히 염려했던 점이 있습니다.

  • 15.02.17 21:58

    이 때문에 붕당을 촉발시킨다기보단 이용하는 측면이 강하였고, 이것이 사신단보고를 받고 나선 판단에도 영향을 충분히 끼칠수가 있었다고 보고, 이는 당연히 전시 인재등용에서도 영향을 줄 수가 있다고 봅니다.
    둘째 지적은 제가 방금 언급한 부분을 덧붙여 지적하여 검토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원균이 불쌍하다는 투로 말투만 바꿨지 결국 선조는 자기말 잘듣는 간신을 더 중용했다는 의미가 되버릴테니까요.(원균이 죽음을 무릎쓰고라는 표현은 좀 비웃음을 살 표현입니다.ㅎㅎ;;) 더군다나 신립과 이순신을 연관시키는건 억지에 가깝다고 봅니다. 신립은 고증됬던 인재이나 실패했고, 이순신은 정반대 케이스니..

  • 15.02.17 22:01

    반면 원균은 고증된 탐관오리였습니다. 이 세명을 서로 연관시킨다면 쉽게 '토사구팽''지록위마'를 연상시키게 되죠. 정말 위급할때 인재를 등용하고 위험이 벗어나면 간신을 쓰는구나 하고요. 전쟁발발전에 인재를 배치한것도 제가 위에서 언급한 시각을 도입하자면 과연 인재를 보고 배치한것인지 또다시 질문을 던질수 있게됩니다. 반박을 하려면 이 관점을 풀어 재해석을 해야 하는데, 이런 작업은 전혀 없어보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관점을 빌린다면 결론적으로,
    선조는 반정이 일어나 자신이 찬탈될까 하는 위기의식에 빠져살던 사람이였고, 이것이 전쟁전뿐만 아니라 전쟁동안에도 적용이 되어, 평화시기엔 강자를 흔들고 약자를 돕지만

  • 15.02.17 22:08

    전쟁의 시기엔 이게 활약하는 인재를 흔들고 무능한 인재를 돕는 꼴이 되버리게 되었다...라는 평이 가능합니다.
    조선이 예상치못한 전쟁을 치루게된것은 사실이나, 조선은 왕정국가인 만큼 왕의 성격에 따라 그 행동반경이 따라갑니다(이걸로 선조의 몽진이 정당화되긴 하다만..^^). 그렇기에 개개인의 성격과 국가적인 문제를 따로 분리하여 보는건 좋으나, 따로 분리해 분석을 한뒤 다시 연결시켜 그 합리성과 설득력을 부여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민주주의사회에서 사는 오늘날의 현대인일수록 커다란 역사적 이벤트들과 자지부리한 배경문화사회의 역사들을 서로 연결시키는 노력을 해볼 필요는 있을것 같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