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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서야 귀가를 한 장성한 딸 아이 표정이 말이 아니다.
언제나 처럼 못 본 척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이기 때문에 구냥 읽던 신문이나 뒤적거리고 있는데 저어 아빠! 하면서 슬며시
내 곁으로 다가 오더니 긴 한숨과 함께 난생 처음으로 애비에게 넋두리를 한다.
우리 집꾸석에서 기생하고 있는 두 식충이에게 나라는 존재는 투명인간 과도 같아서 학과나 학교 선택 그리고 진로 문제 같은
주요한 방향 결정에서 내 의사를 물어 본 적이 여태는 단 한번도 없다.
이런 사태도 오래 지속되다 보니 아마 만성이 되었는지 아니면 이렇게 사는 것이 오히려 신관이 푠하다는 자기 최면에 도취
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는 일인지만 내게 넋두리를 하는 딸아이가 참으로 낯 설어 보인다.
물론 경상도 투박한 말씨를 쓰는 나라는 사람도 애증의 표현에 있어서 다소 문제가 있다는 것 쯤은 익히 알고는 있다.
지난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벌어 진 헤프닝이 일례라고 할 수가 있다.
거룩하신 분이 오신 날인지라 가족들이 곱게 차려 입고 평소 존경하는 스님이 주석하고 계시는 절집을 찾아서 등도 달고 경건하게
예불도 올리고 나서 점심 공양을 하는데 아주 잘 생긴 젊은 총각이 밥과 국을 배식해 준다.
절밥을 워낙이 좋아 하는지라 식판 그득하게 밥을 받아 들고 옆에 있는 딸아이를 흘깃 보니 아마도 다요트 때문이겠지만 글쎄
밥은 아니 받겠다는 것이다. 순간 나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이
왜 안 쳐먹는데?
신성한 절집에서 그것도 부처님 오신 거룩한 날에 하루 쥔종일 딸년에게 무쟌 타박을 받았다.
큰 기생충과도 물론 그러한 문제로 트러블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연애 한답시고 돌아 댕기던 시절 연지 찍고 곤지 찍고 나름대로 개폼을 잡고 나오면 아마도 서울 사람들 같으면 자기!
이 옷 어디서 샀어? 너무 잘 어울린다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난리를 피울 터인데 내 주둥아리에서 튀어 나온 말은
거지 발싸개를 디리 감아도 이 보단 헐 낫것다. (물론 이쁘다는 표현의 반어법 이지만 좌우간 데이튼지 지랄인지 몬지는 이미
날이 샜 버린다.)
각설하고 딸 아이가 친구들과 요즘 젊은이들이 자주 찾는 사주 카페란 곳엘 가서 우연히 사주풀이를 해 봤더니 결혼을 늦게
한다는 점쾌가 나왔다는 것이다.
결혼 늦게 하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이 늘어 진다.
퇴근 시간 이후에 신촌이나 종로 거리 같은 곳엘 가 보면 떡뽂기나 오뎅을 파는 포장 보다 타로점이나 사주풀이를 하는 챠일이
헐 더 많다.
좀 더 기업형으로 사업을 확장하신 분들은 인터넷으로 진출을 하여 사업 영역을 다각화 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세태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간과하는 점은 다름 아니라 과연 명리학이란 학문이 사람의 운명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신뢰성이 있느냐는 것과
명리학에 근거하여 사람의 사주 팔자를 풀이 하는 점술사가 정말로 명리학을 정통하게 공부를 하였냐는 것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서 오경에 나오는 주역은 기원전 오백년 경에 쓰여 졌고 이를 근거로 한 사주 명리학은 A.C. 천년 경에 쓰여 졌다고 하니 약
1,500년의 시차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근대 명리학의 대가라고 하면 서울에서 주로 활동했던 자강 이 석영, 부산에서 박 도사라고 불리우던 제산 박 재현
그리고 대전의 도계 박 재완 선생이 계신다.
어느 화요일 느림보 산악회를 따라 다니던 시절 버스 내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동석하신 염 고문님께서 내가 들고 있던 풍수지리에
관한 책자를 보면서 던지셨던 대화가 기억 난다.
풍수학과 운명학에 대한 맹점을 예리하게 파 헤친 염 고문님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해 보면 자신이 이미 나이 사십을 넘겨 아들을
보는 일은 이미 포기를 한 상태에서 어느 친지의 소개로 대전에 있는 박 사주란 분을 찾아 뵙게 되었는데 이 박 사주란 분이
염 고문님의 생년월시에 따른 사주 팔자를 풀이 하시더니만 대뜸, 아니 일거에 올 해는 득남운이 있다는 것이다.
염 고문님 말씀이 아이를 임신하면 최소 열 달은 뱃속에 있어야 되는데 올 해 남은 달 수를 아무리 계산해 보아도 오늘 당장
수태를 한다고 하여도 달 수가 모자란데 어떻게 올 해 안으로 아들을 본다고 장담을 하느냐고 하니 좌우당간 자신이 본 점괘에
의하면 필득남이라면서 사주풀이를 한 간명지에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한다.
자신이 예언한 일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를 확인해 본다는 것이다. 당연히 확고한 자신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처사 이다.
음력은 양력 보다 두달 정도 달 수가 늘어 지므로 염 고문님은 그 해 음력설을 쇠기 전에 참으로 묘하게도 고대하시던 득남을
하시곤 인사 차 대전을 또 들러 박 사주께 찾아 가니 몰려 드는 사람들 때문에 박 사주는 이미 몸져 드러 누워 있고 그 부인 되시는
분께서 제발 우리 영감 쬼 살려 달라시면서 오시는 분들 쫒아 내기에 정신이 없더란 것이다.
논리적인 사고를 가지신 염 고문님께서 당시 운명 상담을 할 적에 딱 한가지를 물어 보았다고 한다.
생년월시가 같은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을 터인데 그들의 운명은 물론 당연 제각각 이라면 생년월시가 같은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하여 저마다 달르게 점괘가 나오느냐고 하니 사람은 수태하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태교 그 다음으로 성장환경이 달라 지면서
또 다른 운명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이다.
참고로 사주팔자에 근거한 점괘의 유형은 약 오십만 가지이고 지구상의 인구는 오십억 정도라고 하니 같은 생년월시를 가진
사람은 약 일만명 정도가 된다고 한다.
물론 딸아이에게 이 말만은 차마 하지 못했지만 요즘은 신혼 첫날밤 부터 술 쳐먹고 애를 만드는 것이 예사로운 일 이다.
참으로 조신하고 경계해야 할 일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염 고문님이 말씀하신 대전의 박 사주란 분이 바로 도계 박 재완 선생 이시다.
도계 선생이 어느 언론인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어떤 분이 시험 삼아 전혀 다른 인생 행로를 걷고 있는, 한날 한시에 태어난
쌍둥이의 사주를 보아 달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듣는 이들이 뒤로 벌렁 넘어질 정도로 정확하게 각기 다른 그 인생 행로를 쪽집게 처럼 집어 냈다고 하는데 참고로
우리 느림보의 주역 멤버 중 한 분이신 어떤 분도 이란성 쌍둥이 이신데 그 언니를 만나 보면 생김새,성격,인생 행로가 전혀 딴판
이다.
으 으 음 누구냐구요? 느림보에서 제일 시끄럽고 소녀 시절 부터 태권도를 연마하여 마음에 안 드는 넘이 있으면 무릎으로
사타구니를 걷어 차서 올리는 니킥에 명수이신 어떤 여사님이란 것만 밝히겠습니다.
이 도계 선생의 일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박 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전 중앙정보부장 김 재규의 사주풀이 라고 한다.
우연히 운명 상담을 한 김 재규 부장에게 도계 박 재완 선생이 풍표낙엽 차복전파란 한자어를 써 주셨다고 한다.
단풍이 낙엽되는 계절에 차가 전복되어 전파될 수도 있다는 점괘로만 해석한 김 부장은 운전기사를 교체 하면서 항시 교통 사고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하는데 운명의 1979년 10월 26일 즉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철 궁정동 안가에서 박 대통령을 시해한 김 부장이
사방탁자를 들고 저항하는 차 지철 경호실장을 권총으로 쏘아 화장실에서 엎어져 죽이곤(차복) 이후에 합수부장이 된 전 두환
전 대통령 에게 체포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 지게(전파) 되는 참으로 신묘한 글귀인 줄은 과연 누가 알았겠는가?
염 고문님의 증조부께서 우연히 만난 풍수가 잡아 준, 후대에 크게 발복한 명당이란 곳에 묻히게 되고 그 덕분인지 몬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부께서 6.25 동란 전에 서울에서 크게 사업을 하여 많은 재물을 갖게 되었는데 사업차 못 받은 미수금이 있어
채무자를 독촉하니 이미 알거지가 된 이 채무자가 빚에 시달리다 어느 날은 불쑥 찾아 와서 문서 꾸러미를 던지길래 펴 보니
자신이 운영하던 광산의 광권(광산 채굴권)이라 이미 빚을 돌려 받을 다른 방도도 없고 하여 밑져 봐야 본전이라는 심정으로
조부님이 데리고 있는 집사 한 분을 강원도 고성에 있는 광산으로 사태 파악이나 한다고 보냈는데 여러 날이 지나도 감 감
무소식이라 또 다른 인편을 보내어 보니 광산에 있던 광부들이 체불된 노임을 돌려 받기 위해서 그 집사를 볼모로 잡고 있더란
것이다.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억지춘향으로, 이미 타산이 맞지 않아 거의 폐광이 되다 싶이 한 그 광산을 인수한지 얼마 되지 않아
놀랍게도 그 폐광에서 금 노다지(bonanza)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일거에 떼부자가 된 조부님께선 그 광산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결국엔 6.25 전쟁이 터지고도 월남을 하지 않아 현재로선 생사
유무도 알 수가 없게 되었다면서 명당 자리에 몸을 누인 증조부님의 좋은 기운으로 과연 금 노다지 광산을 얻은 일이 좋은
일이냐 아니면 그 광산 때문에 빨갱이 치하에서 갖은 핍박을 받으면서 생사 조차 모르는 오늘의 이 현실이 어찌 진정한
발복이냐는 것이다.
아무래도 개콘에 가서 애정남 한티 물어 보는 수 밖에 ...
도계 박 재완 선생의 말씀에 의하면 대략 2만명 정도의 사주를 보아야 겨우 물리가 트인다고 하는데 2만명의 사주를 볼려면
하루에 10 명 정도를 일년 내내 보아야 약 10 년 정도가 걸린다고 하고 도계 본인도 죽기 전에 60 평생을 사주를 보아 왔지만
껍데기만 겨우 알았을 뿐이라고 했다고 한다.
딸 아이에게 만세력 보고 글자 풀이나 겨우 하는 어떤 설 익은 점술사의 말을 믿고 자신의 인생 행로의 방향타를 그 쪽으로 만약
트는 사람이 있다면 이 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는 말로 그 날의 부녀지간의 대화를 끝냈다.
2010년 3월 30일이면 만으로 이년이란 세월이 지난, 느림보 산악회에 첫 입문을 하던 운명의 그 날이 문득 문득 생각 납니다.
삼천포항에서 배를 타고 건너 간 사량도에서 배가 접안시설에 닿기 바쁘게 몹시도 기분이 좋아 지신 장 사장님께서 도미니카님이
건네 주시는 자그만 펫트병에 든 술을 아예 나발로 벌컥 벌컥 드신던 일, 느림보 리무진에서 옆자리에 동석하신 태백산님,
느림보 리무진 내에서 사량도 지리망산 옥녀봉에 얽힌 근친상간의 설화를 들려 주시던 거구의 우보님, 하사길에 다리를 약간
접질르신 두발로님, 산행길에 본의 아니게 가방 못찌가 되어 호위 무사처럼 쬴쬴 따라 다녔던 곰순이님, 산행 마치고
삼천포항에서 벌렸던 뒷풀이에서 우보님과 내 탁자 앞에 놓인 살이 오동통하게 올린 봄도다리회를 산행 초짜배기라고
무지막지하게 강탈하여 게걸스게 입에 걸쳐 넣어, 볼따구니에 묻은 초고추장이 마악 쌩똥을 파 먹은 개주둥이 처럼 해 가지곤
포만감에 헤 헤 거리던 쌍둥이 동생 에쉴리 여사님과 밀림의 타쟌 언니...
이룬 좋은 산벗들이 오늘 따라 몹시도 그리워 집니다.
빛 바랜 한장의 흑백사진 처럼 영원한 추억으로 남을 그 날 보다 더 더욱 좋은 날들이 우리 느림보 벗님들에게 항시 함께 하시길...
탄천변에서 북아메리카의 회색곰 돌삐 올만에 인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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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여전히 재미난 입담으로 느림보를 찾아주셨군요.
돌삐님 안계신 불꺼진 산행기 방이 무척이나 쓸쓸하였답니다.
못오시는 마음이야 오죽하시겠느냐마는..
돌삐님 기다리시는 울님들 마음도 헤아리시길...
하루 빨리 복귀하시어
진달래 고운 남도의 산야를 함께 누비실 그날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