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군 생활은 정말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상황에서 행복과 보람을 느낄 수 있습니까?”
부정적인 것에 집중하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그 부정적인 것에만 집중을 하는가? 동일한 상황에서도 행복과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군에 오기 전에는 부모님이 나에게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존재인지 모른다. 법회 끝나고 나눠주는 초코파이 하나가 꿀맛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 힘든 훈련 끝에 얻는 잠깐의 쉬는 시간이나, 행군으로 지칠 대로 지치고 배가 너무 고플 때 먹는 밥 한 끼는 천상의 만찬에 비할 바가 아니다. 힘들고 지칠 때 선임병의 응원의 한 마디가 그렇게 큰 위안이 될지 몰랐을 것이다. 사회에 있을 때는 전혀 느껴보지 못했던 감사함이다. 크고 엄청난 것들 속에서만 느끼던 것들을 지금에 와서는 작은 것들 속에서도 느낄 수 있다. 사실 이것이야말로 정말 큰 것을 배워가는 과정이다.
작은 것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고, 작은 행복을 크게 느낄 수 있는 감각이야말로 우리 인생에 가장 큰 축복이다. 작고 여린 것들 속에서도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더 크고 많은 행복을 창조하는 놀라운 방법을 체득한 것이다.
보통 많은 현대인들은 스스로 불행한 삶을 창조한다. 스트레스에 찌들고 자극적인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면서 느낌이 둔감해지기 때문이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점점 더 현대인들은 자극에 둔감해진다. 육근(六根)이라는 감각기관인 눈, 귀, 코, 혀, 몸, 뜻은 자극적인 것을 찾아 헤맨다. 더욱 자극적인 것을 봐야 흥미를 느끼고, 더 크게 음악을 들어야 흥을 느끼게 된다. TV에 나오는 가수들만 보아도 자극적인 의상과 현란한 음악은 기본이다. 이런 것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클래식과 같은 잔잔한 음악이나 자연이 빚어내는 바람 소리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을 상실했다.
바로 그 감각을 되찾는 일이야말로 행복한 삶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면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해도 그 속에서 희망과 행복을 찾게 될 것이다. 군 생활을 하면서도 실로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언젠가 신영복 님의 인터뷰를 보았다. 감옥에 있을 때, 문득 신문지 크기의 햇살이 하루에 겨우 2시간 들어오는데, 그 햇살을 쬐는 것이 10년간의 감옥생활을 보상해 줄 만큼 행복한 것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오랜 감옥생활을 원망하거나 끔찍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2시간 동안의 작은 햇살이 주는 행복의 감각을 깨달은 것 만으로도 충분히 보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것일지라도 그것을 느끼는 감각을 깨닫는다면 그것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무한한 행복이 된다. 햇살 한 줌을 느끼는 행복이 10년 감옥을 보상해 줄 수도 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지금 순간에도 감동과 신비의 오후 햇발이 경이롭게 내 위로 부서지는 중이다.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