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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8월 3일 금요일 노르웨이
* 상공에서 본 노르웨이
큰 강이 흐르고 숲이 울창하다. 농경국가라서인지 경작지도 많다. 하늘이 투명하고 쾌청한 상공이다. 숲 사이에 거대한 강이 아주 인상적이다. 넓고 긴 물줄기는 노르웨이의 상징으로 그려지고 있다.
참으로 먼 나라에 왔다. 점점 노르웨이 오슬로 공항에 가까워진다. 그만큼 기대도 큰 나라다. 역사보다는 자연을 보는 나라다. 벌써부터 창공에서 전개되는 푸른 물결이 가슴을 벅차게 한다.
* 노르웨이 오슬로 공항
비행기가 공항에 착륙하자 제일 먼저 창문에 드리운 것은 눈부신 하늘과 햇살이다. 보기 드문 북유럽의 화사함이다. 석양이 내릴 시간인데 아직 땅을 붙들고 떠나지 못하는 것은 북극 외로움을 지우려함인가.
공항 내부는 북극의 날씨에 비해 예상보다 포근하다. 조금 어두운 느낌이다. 면세점이 크고, 길게 자리하고 있다. 입국장에서 면세점을 만나는 것은 다른 공항과는 다른 모습이다. 6번 벨트에서 집을 찾았다. 바로 면세점 곁이다. 모든 것이 신비롭다.
* 눈부신 땅 오슬로
비행기 착륙시에도, 비행기 복도 통로 유리창에서도, 공항 밖 첫발을 내딛는 순간에도 내가 느낀 것은 눈부신 땅, 눈부신 하늘이다. 무공해 국가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 옛날 60년, 70년대 내 조국 땅에서 보았던 그 하늘빛이다. 하늘이 쪼개질 듯 탱탱하고 청명한 눈부심이 내가 본 노르웨이의 첫 인상이다. 원시로 귀향하는 첫 인구의 땅인양 순결 그 자체다.
*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
노르웨이 시간으로 오후 8시인데 한낮이다. 극지방의 태양은 여름한철 그렇게 빛을 쏟아내리고 있다. 포근하지만 그래도 그늘에 가면 춥다. 자외선이 강하다. 여과 없이 내려온 햇볕 때문이다. 백야로 해가 져도 신문을 볼 정도로 밝다.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오슬로 시가지로 이동했다. 공항에서 보던 울창한 숲의 고속도로가 장관이다. 캐나다 록키산 향기다. 대낮인데도 자동차들이 불을 켜고 달린다.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한 교통체계다. 노르웨이는 역사를 보는 곳이 아니고 자연 문화 유산을 보는 곳이라는 말이 지금 전개되는 창 밖 풍경에서부터 시작된다.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간간이 보이는 빨간집이 동화 속 장면이다. 오슬로 도심에 이르면서 고운 집들이 더욱 많아진다. 뾰족한 지붕의 선이 곱다. 눈 쌓임 방지용 지붕선이다. 스위스에서 본 형상과 동일하다.
오슬로는 신의 정원, 신의 광장이란 뜻으로 9백여년 전부터 북유럽을 주름잡던 바이킹들이 가장 사랑했던 도시다. 베르겐이 수도였다가 현재는 노르웨이 수도로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거쳐 간다. 오슬로에서 스톡홀름까지 버스로는 9시간 거리고 덴마크까지는 6시간 거리다. 노르웨이 고속도로는 산이 많아 터널을 많이 지난다. 우리는 스톡홀름에서 오슬로까지 비행기로 1시간만에 편하게 왔다.
오슬로 도심은 현대식 건물도 많고,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전차가 길게 공중의 줄을 따라 달리고 빨간시내버스도 다니고, 어느 대륙의 도심과 다르지 않다. 외로운 땅이 아니다. 밝고 씩씩하고 우람한 도시다. 400년이 넘게 덴마크의 속국, 91년간 스웨덴의 속국이었다가 크리스티아나가 도시를 재건하여 300년간은 크리스티아나로 불렀는데 1925년부터 제 이름을 찾아 오슬로가 된 것이다.
* 노르웨이의 한국인 입양아들
노르웨이 인구는 450만명이며 그 중 54만명이 오슬로에 모여 산다. 제일 인구가 많이 집중된 도시가 오슬로다. 교민은 100명인데 사실 입양아를 합하면 일만명 이상의 한국인이 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인 입양아들이 노르웨이인이 되어 자신의 조국을 모른다는 것이다. 지나치면서 한국인과 비슷한 사람은 모두 입양아라는 것이다. 노르웨이에 한국인 입양아가 상당히 많다.
이 먼 나라에서 한반도, 그 동방의 아이들을 데려다가 기른다는 것에 대하여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아이를 수출하듯 해외로 내보내는 내 나라가 야속했다. 그들이 타국에서 중간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 한국인도, 노르웨이만도 아닌 그 삶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래도 그들이 자신의 조국은 기억해 주길 빈다.
* 노르웨이 선박회사의 한국인 직원
선박업이 발달한 나라다. 그래서 노르웨이에는 현대상선 한국인 직원들이 많다. 실제로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직원 아내를 만났다. 나는 헬싱키로 가려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그 여인은 노르웨이로 가기 위해 비행기를 기다렸다.
우린 첫눈에 한국인임을 알고 대화를 나누었다. 남편이 선박회사 직원으로 노르웨이 파견근무 중이라 했다. 그런데 살기 좋아 그냥 노르웨이에서 살고 싶다고 했다. 무엇이 좋으냐고 물었더니 자연 환경과 여유로운 삶이라 했다.
노르웨이는 EU국이 아니다. 화폐도 자국 화폐를 쓴다. 1크론은 한화 160원이다. 관광객에게만 유로화를 받는 정도다. 그들 스스로 EU국 가입을 반대하고 있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들이 EU 가입을 원하는 것으로 아는데 의아한 대목이다. 그만큼 내적으로 당당함을 느꼈다.
노르웨이에서 선박 회사에 한국인을 많이 채용한다는 말에 정감이 든다. 함께 선박기술을 공유하여 함께 발전하길 빈다. 국립의료원도 노르웨이인이 지었다. 이곳에 와서 먼 나라가 아니고 가까운 나라임을 깨닫게 되었다.
* 오슬로 비겔란 공원 가는 길
오슬로에 도착하여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비겔란 공원으로 이동했다. 석식 후의 산책이라며 교포 여인은 편안한 걸음으로 걷자고 했다. 피곤하지만 오슬로의 도심을 거닐어 보는 것에 대하여 짙은 호기심으로 버스에 올랐다.
신기한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도심을 가로지른다. 우람한 건물들이 스쳐 지나간다.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한국의 김대중 대통령이 받은 노벨 평화상 수상 건물이다. 오슬로 시청사다. 건물 사이의 시계가 그날을 증언하듯 큰 눈으로 바라본다. 내 조국을 위한 소중한 기념행사를 떠올리며 나도 큰 눈으로 보라보았다.
* 비겔란 조각 공원
저녁 식사 후 오슬로 도심에서 간 공원이다. 날이 짧아지는 상황이라는데도 10시에 해가 진단다. 6월에는 11시 40분까지 해가 있단다. 지금은 새벽 4시 30분에 해가 뜨지만, 6월에는 새벽 3시에 해가 뜬다. 그래서 새의 눈이 빨갛다고, 그만큼 낮이 길어 잠을 못 이룬다고, 그 이야기에 우리는 웃었다.
금요일인데도 거리가 한산하다. 밤문화가 발달되지 않은 나라다. 또 지금은 휴가철이라서 더욱 그렇다. 한국과는 7시간 시차다. 거리는 깨끗하고 잘 정리되어 있다. 오슬로는 집값이 비싸다. 아파트가 작아 방 하나, 주방 하나다. 스쳐 지나가는 건물들이 고독한 나라, 고독한 도시의 연상을 지우며 우람하게, 즐비하게, 아름답게 전개된다.
가장 인상깊은 건물은 김대중 대통령이 받은 노벨 평화상 수상 건물이다. 시청사로 중앙을 기준으로 하여 대칭으로 선 높은 건물이다. 번화가로 왕궁, 미국 대사관 등 주요 건물이 있어 더욱 수려한 풍경이다. 조각 공원에 가면서 본 오슬로 시내는 상당히 중후했다. 유럽형 건물들로 다 붙어 있다. 이 나라는 재건축은 없고 리모델링만 허가한다. 경제적으로, 효율성을 높이며 사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시가지를 가로지른 끝선에서 비겔란 조각 공원을 만났다. 그저 가벼운 산책로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브 비젤란의 작품 190여개가 전기되어 그야말로 조각품 물결이다. 입국에서 끝까지 3km를 걸으며 힘든 줄 모르고 감상했다. 규모도 대단하고 조각품에 담긴 뜻도 대단하다.
주로 인생사를 조각했는데 사랑, 교육, 늙음, 병, 죽음 등을 주제로 다룬 형상들이다. 탄생과 죽음에 대한 윤회에는 동양 사상이 담겨 있기도 하다. 중앙의 분수에 생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단계별 묘사를 세밀히 조각한 석상이 한 바퀴 둘러 있는데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나는 지금 어느 도막에 왔는지 삶의 능선을 찾으며 충실한 삶을 다짐했다.
입구에는 어린이들의 천진스런 표정이, 맨 끝에는 인생의 욕심, 물욕, 명예욕 등 갈등 고리를 180톤 무게 한 개의 돌에 조각하여 세워놓았다. 점점 높아지는 언덕의 공원임에 나는 어린이에서 생의 마지막 고지까지 다다르는 체험을 한 것이다.
가장 눈시울을 적시는 기둥, 17m의 모노리텐, 화강암 돌기둥에 121명의 남녀가 서로 엉켜 올라가려는 인간의 본성을 적나라하게 쌓아 놓은 오벨리스크 같은 거대한 탑 앞에서 소슬했다. 해는 지고 땅거미 짙은 공원, 들어선 문에서부터 인생을 조명한 구스타브 비겔란의 손길이 참으로 위대하게 마감되고 있다.
역사가 없다는 나라 노르웨이, 그래서 유적지가 없다는 나라, 오직 자연만 본다는 나라, 그런데 이 조각 공원은 역사보다 더 위대한 유적을 담아 놓은 깊은 철학의 소중한 공간이다.
* 비겔란 조각 공원의 심오한 작품들
한 조각의 눈에 비추어진 생은 장엄했다. 결코 헛되이 살아서도 아니 되고, 지나치게 무겁게 살아도 아니 되고, 얄팍하게 살아서는 절대로 아니 된다는 뜨거운 교훈이다. 부끄러운 부분까지 가감 없이 적나라하게 표출하며 인간 내면을 전시하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혹시 부정한 생각과 지나친 욕망으로 병들진 않았는가. 정상적인 생의 길을 가고 있는가. 이 순간 거울을 보듯 비겔란 조각가의 작품 앞에서, 내 가장 기본적인 양심을 저울대에 올려놓고 스스로 심사하고 있다. 의롭게 살아야지. 주어진 생의 순간마다 감사하며 충실하게 살아야지. 심오한 작품들 앞에서 내 인생도 심오한 굴레를 맴돌고 있다.
* 오슬로 홀멘콜렌 호텔 투숙
해발 400m의 산중턱에 지은 호텔이다. 1894년에 지었는데 오슬로가 다 내려다보이는 좋은 전망과 빼어난 경관으로 관광객과 유명인사가 많이 찾고 있다. 값비싼 전통 호텔이다.
조각 공원에서 15분 거리에 있다. 우리가 도착한 시각은 어둔 밤이다. 그래서 화사한 조명이 아름다웠고 실내 로비의 눈꽃 조각상이 시린 빛으로 시선을 흡입한다. 아름다운 나라에서 아름답게 맞이하는 밤이다.
2007년 8월 4일 토요일 노르웨이 오슬로, 레샤 민속마을, 장미도시 몰데
* 오슬로 홀멘콜렌 호텔
전통 노르웨이 분위기의 아침을 느낄 수 있는 호텔이다. 도심에서 350m 떨어진 한적한 산 중턱에 있다. 꼭 아침 산책을 하라는 말에 일찍 일어나 밖으로 갔다.
절경이다. 내가 지금 구름 속 선녀로 땅을 밟고 선 것인지, 산봉우리에 앉은 것인지 착각하게 한다. 오늘은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여 오슬로 시가지가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나무 사이로 보이는 주변의 비경이다. 멀리 산 언덕에 경작지도 보이고, 민가도 서서히 드러나고, 호텔을 감싼 우람한 산이 먼 나라에서 온 외객까지도 포근히 보듬는다.
높은 건물의 객실과 길게 산자락을 딛고 앉은 아름다운 목조 건물은 오슬로 왕조보다 100년 앞선 드레곤 스타일의 독특한 양식으로 지어졌고 격조높은 국제 수준의 전문 미팅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잠시 머물렀지만 노르웨이의 독특한 문화와 향기에 흠뻑 젖었다.
* 홀멘콜렌 스키 점프대
홀멘콜렌 호텔에서 산길을 돌고 돌아 내려왔을 때 스키점프대가 보였다. 산 하나를 용감하게 깔고 앉아 있다. 1952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다. 1892년부터 스키점프 축제와 각종 국제 대회, 야외 공연장으로 이용된다.
높이 56m의 점프장 정상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운행되고, 박물관에는 난센, 아문센 등이 극지방 탐험 때 사용했던 장비도 전시되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2500년의 스키도 있다.
도로변에 스키장을 달리듯 스키 동상이 있다. 커다란 개와 함께 노르웨이의 표상으로 우람하게 서 있다.
* 노르웨이 날씨
괴팍스러워서 떠 죽거나, 얼어 죽는다고 교포 가이드 여인은 표현한다. 위도 11도~57도에 걸쳐 있어 여름이 여름이 아니다. 언제 싸늘할지 모르니 한 여름인 8월이지만 잠바를 꼭 가지고 다니란다.
해가 날 때는 한국의 3배 정도로 따갑다. 선글라스도 필수란다. 일기 예보에는 항상 세 가지가 들어 있다. 구름, 비, 해가 진종일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북극의 독특한 날씨를 체험하며 노르웨이 여정에 나선다.
* 노르웨이 물가
한 마디로 상당히 비싸다고 말한다. 핀란드보다 2~3배 더 비싸다고 들었다. 핀란드에서도 싼 편이 아니었는데 꽤나 비싼 물가인가 보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만난 교민도 다 좋은데 물가가 비싸서 어렵다고 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치가 아닌가 싶다. 관광수입으로 사는 나라, 자손들을 위해 자연보호가 우선인 나라, 그래서 그 자연으로 관광객을 유치코자 하는 나라다. 그런 상황에서 자연히 공장이 적을테고 자연히 물가는 비싸지 않겠느냐고 나 혼자 자문자답했다.
인건비도 비싸다. 사람 손으로 고치지 않는다. 자기의 집수리도 스스로 하며 산다. 인구가 적어서 그렇겠지만 지구의 최서단, 최북단에서 고독하게 살며 길들여진 올바른 정신이라고 느꼈다.
* 노르웨이의 술과 담배
나는 남자들에게 이 대목을 꼭 알려주고 배워가라고, 한국에 가서도 전파하여 이 나라의 관습을 따르도록 하라고 힘차게 외치고 싶다.
술과 담배를 철저히 규제하는 나라다. 식당이나 정원에 술을 가지고 들어가 먹으면 100유로의 벌금을 낸다. 야외에서만 허용된다. 절대로 과음하지 않는다. 맥주만 수퍼에서 팔 수 있고 기타 가게에서는 술 판매 금지다. 술 판매 가게가 따로 있으며 오후 6시 이후에는 절대로 팔지 않는다.
술과 담배값이 상당히 비싸다. 술은 맥주 한 병이 한화 8천원, 담배 한 갑이 한화 1만 2천원이다. 실내는 모두 담배 금지구역이다. TV나 광고물에서 술과 담배의 선전은 절대 하지 못한다. 기독교 국가라서 제재하는 차원이라고 하지만 오늘의 노르웨이가 있기까지는 이러한 철두철미한 자연오염물질로부터의 이탈, 선에 이르는 경지로의 추구, 그런 정책과 국민들의 협조로 깨끗한 나라가 된 것 같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가 그렇다. 술 생산이 많은 독일도 정녕 수출은 많이 하지만 지나친 음주가 없고, 그리스는 대리운전이라는 것이 없고, 등등 아주 좋은 술 문화다. 노르웨이는 판매, 마시는 장소까지도 좋은 문화다. 꼭 배워가야 할 덕목이다.
* 노르웨이 국민성
무디고 현대적이지 못한 사람들이다. 소박한 시골 향기를 지니고 산다. 자연환경이 그렇게 만든 것도 한 가지 사유겠지만, 선조로부터 내려오는 이 나라만의 독특한 국민성이다.
이 나라는 사람의 말을 다 믿는다. 국가의 말이든, 개인의 말이든 무조건 믿는다. 정부에서 ‘물이 좋다’ 하면 검증도 없이 그대로 먹을 정도다. ‘관광객이 21명이다’ 하면 세지도 않고 입장시킨다.
그러나 한번 거짓말을 하면 그 사람 말은 절대로 안 믿는다. 8년차 교민 가이드 여인은 남편이 노르웨이 회사 근무 관계로 이곳에 사는데, 가고 싶은 나라 고국이지만 남편은 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맨 처음 노르웨이에 왔을 때 한국에서 10년 무사고 운전을 했다고 하니 그 말을 그대로 믿고 혜택을 주더라는 것이다. 무얼 믿고 그러는지 정말 의아했지만 살면서 고마움을 느낀단다.
말만 듣고도, 외국인의 말까지도 완벽하게 신뢰하여 흡수하는 국민성, 거짓이 없고, 순박하고, 문화에는 뒤질지 몰라도 백지처럼 눈처럼 순결한 나라, 시골스런 노르웨이가 나를 강하게 끌어 당긴다. 고독을 사랑하고, 자연과 하나되어 사는 나라, 먼 후일 어느 나라에 가서 살고 싶냐고 누가 물으면 노르웨이라고 말하리라. 스위스와 뉴질랜드도 좋지만 더 좋은 나라가 노르웨이더라고, 자연뿐만 아니라 국민성까지 아름답더라고 말하리라.
* 재미없는 천국, 재미있는 지옥
노르웨이는 재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라고 한인 교포는 말한다. 두 나라에서 살면서 비교하여 내린 결론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던가. 그래서 쓸쓸하고 고독한 물처럼 노르웨이가 그런 곳인가.
퇴근 후 집으로 직행하고, 술은 절대 사절이고, 커피 한 잔 나누어 마시지 못하고, 밤 문화를 모르고, 원시의 삶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니 한국과는 분명 다르다. 천국이면서도 재미는 없고, 지옥이면서도 재미는 있는 두 나라의 비교 표현이 절창이다. 현대물은 다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보고 가란다.
* 노르웨이 지도
남북 1,752km, 표주박 모양이다. 왼쪽에는 대서양, 아래는 덴마크, 오른쪽은 스웨덴, 위로는 러시아와 국경이다. 지도 모양이 도깨비 방망이처럼 위는 가늘며 길고. 아래는 볼록하며 짧다. 해안선의 길이는 2,000km다.
한반도의 1.7배 면적에 450만명이 산다. 시차는 8시간인데 지금은 섬머타임기간(3월~10월)이어서 7시간 늦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서쪽 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곳 말로 노르웨이는 ‘노르게’라 부르며 그 뜻은 ‘북방으로 가는 길’ 이라는 뜻이다. 그 긴 나라에서 인구의 1/3만이 북쪽에 거주하고 2/3는 표주박의 둥근 모양인 땅에 모여 산다. 아무튼 넓은 땅에 사람보다 자연이 한가득 모여 사람처럼 행복하게 사는 나라다.
* 노르웨이의 생활상
산이 60%, 경작지가 30%인 나라다. 어업과 사냥을 주업으로 하며 선조들은 살아왔다. 그러다가 배 만드는 산업으로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갔다. 그래서 바이킹 생활이 시작되었으며 일부 다처제로 살았다. 793년부터 외국 진출이 시작되었다.
맨 처음 간 곳이 영국 수도원이다. 그곳에서 들여온 것이 카톨릭 종교다. 무섭게 전파시키며 믿으면 살고, 안 믿으면 죽였다. 그때 무서워서 도망간 사람들은 아이슬란드에서 거주한다.
나쁜 짓 하던 바이킹족이 종교를 믿으며 깨닫고 서서히 바이킹을 마감했다. 그러므로 1050년도에 새로운 국가가 탄생했고 첫 수도는 베르겐이다가 1299년에 오슬로로 도읍을 정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평온하게 산다.
철없는 아이가 집 떠나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돌아갔다 하면 지나친 비유일까. 종교의 힘, 새로운 문화의 힘이 바다에서 거칠게 살던 노르웨이의 생활상을 올바르게 바꾸어 놓았다니 그 어떤 가르침보다 몸소 체험하고 깨달음이 훌륭한 교육이다. 그것은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비싼 돈을 투자하여, 비싼 시간을, 비싼 에너지를 소모하며 세계 다른 나라에 오는 것도 하나의 큰 교육이다. 국가의, 사회의, 개인의 모난 부분을 다듬고 올바른 생활상을 배워가야 할 것이다. 나는 꼭 그러하리라 다짐한다. 적어도 넓은 가슴으로 넓은 문화를 담아가리라.
* 노르웨이의 작은 목욕탕
1349년 영국의 한 상선이 베르겐에 들어왔는데 흑사병을 전염시켰다. 2년간 인구의 2/3가 사망했다. 겨우 인구 50만명만 살아남았다.
그 당시 노르웨이 사람들은 함께 섞여서 목욕까지 하며 엉켜 살았는데 그래서, 함께 목욕탕에서 목욕해서 병이 걸린 것이라고 믿었다. 그때부터 목욕탕을 작게 지어 혼자씩 목욕해 왔다. 샤워만 하도록 짓는다. 욕실 바닥까지도 난방 장치를 하여 건조시킨다.
실제로 그랬다. 아무리 일류 호화 호텔도, 아무리 공간이 넓어도 목욕탕 면적은 좁고 짧다. 혼자서도 마음껏 몸을 펴지 못한다. 욕실바닥의 불을 켜는 스위치가 따로 있다. 따뜻하게 불이 들어오고 바닥이 물기없이 마른다. 흑사병이 노르웨이의 목욕탕을 개조시켰지만 그것은 바람직한 변화이며 현대를 넘어선 우위의 욕실문화다.
* 노르웨이의 역사
오랜 기간 동안 덴마크의 속국이었다. 1380년에 노르웨이를 덴마크에게 상속 형태로 맡겼다. 1814년까지 덴마크왕이 다스렸다. 그러다가 프랑스가 덴마크를 침공하면서 노르웨이는 해방되었다.
그러나 이웃나라 스웨덴이 노르웨이를 침공해왔다. 오슬로 대학을 건립해주며, 왕궁을 만들어주며 1905년까지 91년간 지배했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오랜 속국에서 벗어난 것은 1905년이다. 해방되면서 수상이 탄생하였고, 베르겐의 선주였던 수상은 수도를 베르겐으로 정했다.
그 당시 주변국은 모두 왕이 있었다. 노르웨이는 왕이 없으므로 덴마크에 가서 왕을 빌려왔다. 일대왕은 영국 공주와 결혼하여 이대왕 울라브를 낳았고, 삼대왕은 하라리인데 공주와 왕자 두 명의 자녀를 두었다. 공주는 평민 남자와 결혼하여 왕족이 아니고, 왕자가 왕위계승할 차례다.
왕자는 아이 딸린 여자와 결혼했다. 나라와 부모가 반대했으나 왕자의 뜻을 꺾지 못하고 그냥 결혼시켰다. 둘 사이에 아이를 못 낳다가 늦게 딸을 생산했다. 그 딸이 왕위를 계승하도록 되어 있다. 무조건 첫 자식이 왕으로 계승한다.
유럽의 역사를 듣노라면 먼 먼 이야기같다. 노르웨이에서도 나는 크게 놀랐다. 왕자의 결혼 문제며, 아들이 아닌 딸이어도 첫 자식이면 왕이 된다는 것은 극히 인간적인 배려다. 지극히도 공정한 진리 앞에서 동방의 한 여인인 나는 왜 숙연해지는 걸까. 지구상에서 정말 여성에 대한 편견은 사라져야 할 것이며 함께 평등한 위치에서 우주를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 몰데 가는 길
오슬로에서 500km 북서방향으로 올라앉은 해변 도시 몰데를 향해 가고 있다. 국도를 타고, 배를 타고 8시간 30분 소요예정, 오늘은 진종일 버스를 탄다. 밤에나 몰데에 도착하게 된다. 고속도로에서는 반드시 안전벨트를 매라 한다. 걸리면 기사가 처벌을 받는단다. 몰데까지 가서 전망대에 올라 조망하고 호텔 투숙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물론 가면서 피요르드 해변과 레샤 마을 민속촌 등을 본다. 나는 그보다 더 버스 안에서 보는 노르웨이의 자연 풍경이 기대된다. 관광 명소만이 여행은 아니다. 여정에서 타국에서의 시간과 공간이 점점이 이어짐을 관찰하고, 기록하고, 사진에 담아오는 것도 내가 중요시하는 목록이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오슬로에서 몰데까지의 긴 시간은 내게 있어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 노르웨이 언어
노르웨이 오슬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 화장실을 찾고 있는데 두 개 언어로 표기한 안내판이 눈길을 끌었다. Toillet-영어 표기와 Tallett-자국어 표기로 간판 하나에 두 개의 글자가 씌여 있었다. 나는 그 간판을 보는 순간 영어를 인정하는 국가임을 알았다. 공공장소라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유럽에서 영어표기와 병행한 곳은 보기 드물다. 또한 영어를 변용해서 쓰는 자국어도 영어와 상당히 가깝다.
알고 보니 노르웨이인들은 누구나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이다. 순탄한 여행이 되겠다는 반가움이다. 외국여행에서 우리가 배운 미국식 영어로 대화만 통하면 큰 문제는 없는데 영어를 외면하고 사는 국가에 가면 불편함이 크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에는 두 민족이 산다. 북쪽에 사는 원주민 사미족과 게르만족이다. 언어도 두 가지를 쓴다. 원주민은 우랄 알타이어를 쓰기 때문에 게르만족의 언어와는 다르다. 그래서 TV 방송에서도 자막처리할 정도다. 노르웨이 언어는 80%가 덴마크 지배시 언어고 20%가 노르웨이 지방언어다. 말은 스웨덴, 글은 덴마크와 통한다. 덴마크와 노르웨어는 국어사전이 없다.
노르웨어 언어로 ‘나는 너를 사랑한다’를 배웠다. 어법이 영어와 동일하다. ‘나는’은 ‘야이’, ‘너를’은 ‘다이’, ‘사랑한다’는 ‘엘스게르’, 그래서 ‘나는 너를 사랑한다’는 ‘야이 엘스게르 다이’다. 운전기사 이름이 비욘인데, 비욘을 사랑한다는 표현은 ‘야이 엘스게르 비욘’ 이다. 어법은 알겠는데 영어와 비슷한 알파벳 단어를 전혀 다르게 발음하여 이해하기도, 배우기도 힘들다.
그 이외, ‘탁’은 ‘고맙다’. ‘튜센탁’은 ‘매우 고맙다’. ‘구닥’은 낮인사, ‘굿 모르겐’은 아침인사, ‘이야’는 예(yes), ‘나이’는 아니다(No) 몇 가지 더 배웠다.
발음은 다르게 하지만 호텔에서 Milk를 Melk로, 한 글자만 e자로 바꾸어서 쉽게 그 뜻을 알 수 있어 좋았다. 그 외 Bus는 Buss 등 여러 가지 표기가 그런 식이다. 유럽의 언어는 대부분 그렇다. 자존심 때문에 그러기도 한다는데 알파벳을 변용하여 쓰면서 자음과 모음도 다르고, 발음도 다르고 자기네 나라만의 독특한 언어로 구사하여 사용한다.
나는 내 조국의 언어에 대하여 자랑스러웠다. 한반도 그 작은 나라에서 세계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고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한국어가 어렵다고 하지만 알파벳을 변용한 것도 아니고, 일본이나 중국 문자를 변용한 것도 아니고 세종대왕이 만드신 훈민정음으로 지금껏 한민족 고유언어가 이어져 사용되고 있음에 대하여 타국에서 느끼는 큰 자부심이다.
* 거대한 메사 호수
처음엔 산모퉁이 하나 돌아가면 호수는 끝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수없이 하며 가도 가도 끝없는 호수를 만난다. 산세는 한국과 비슷하다. 반도국가라서 그런 걸까. 굴곡이 있고 높은 편이다. 유럽에서는 보기 드문 산이 줄지어 호수를 따라 이어지고 있다.
누가 호수라 하겠는가. 저 광활한 물의 영토를. 산길을 돌아도 들길을 달려도 끊일 듯 하면서도 또 다시 이어지고 있으니 어느 순간에 나는 바다라고 판정했다.
그런데 거대한 메사 호수였다. 릴리함메르 지역에서 남쪽까지 112km, 깊은 수심 480m, 쉽게 풀이하면 서울에서 천안보다 더 아래쪽까지 호수인 것이다. 호수가 많은 나라에 대한 예령이다.
식수원으로 사용하며 1년 정수비만도 12조원이 든다. 아주 깨끗하다. 아름다운 자연이 생성한 위대한 호수다.
* 호숫가 실내 올림픽 경기장
드넓은 호숫가에 하얗고 배를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모양의 건물이 있다. 타원형의 하얀 지붕이 푸른 호수의 물과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다.
실내 올림픽 경기장이다. 천명을 수용할 수 있고, 수영장, 쇼트랙 경기장 등이 있다. 우리나라 선수도 참가했던 곳이다. 산이 많아 스키 점프장도 있고, 물이 많아 실내 수영장도 호숫가에 있고 자연이 이루어낸 노르웨이의 축복이다.
* 건초 더미
대부분 들녘이 초지다. 더러 키 작은 밀과 보리가 자라는 땅도 있다. 말목장도 간간이 보이고, 개를 몰고 가는 사람도 보인다. 양떼도 보인다.
그러나 노르웨이는 목장보다는 곳곳에서 하얀 건초 더미가 더 많이 보인다. 초지 넓이에 비하여 가축은 적은 편이다. 가축을 기르기 위해서가 아니고 수출용 초지이기 때문이다.
풀을 길러 깎아서 하얗게 감싸 늘어 놓았다. 건초 더미도 있고 또는 소금에 절여서 둘둘 말기도 한다. 하얗게 포장해 놓으면 국가에서 비싸게 사들여 외국에 수출한다.
저런 하얀 건초더미는 우리 나라에서도 볏논에서 본 적이 있다. 벼를 털고 난 지푸라기를 건초 더미로 묶어 가축의 사료로 쓰기도 하고 외국에 수출하기도 한다고 들었다. 내 조국의 건초더미는 그것 한 가지다.
그런데 노르웨이 들녘과 산녘에는 건초더미가 하얗게 줄지어 즐비하다. 드넓은 영토 활용책일 것이다. 기후조건도 있겠지만 인구에 비하여 땅이 넓은 나라에서 수월하게 땅을 이용하는, 하나의 풀 경작이다. 나의 눈에는 부러운 들녘이다.
* 노르웨이 사람들의 이름
우리를 태우고 운전해 준 기사 이름이 ‘비욘’ 이다. 그 뜻은 ‘곰’ 이다. 이름을 곰으로 지은 것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이름을 짓는다. ‘스타인’으로 ‘돌’의 뜻을 지닌 이름도 있다. 자연이 아름다우니 자연을 이름 속에 수놓는 것이다.
우리나라 이름이 철학적이라면, 노르웨이 이름은 자연적이다. 뜻풀이로 끝나는 한국의 이름에 비하여 자연을 은유하여 은근한 향기를 풍기는 이름들이 참으로 시적이다. 처음에는 촌스럽다고 보였는데 자연과 접목하여 지은 이름들이 정겹다.
* 호수변 릴리함메르 마을
이곳 말로는 ‘릴리하마’ 라고 부르는 지명이다. 동계 올림픽이 개최되었던 곳이다. 호숫가 휴게소에 잠시 머물러 주변 풍경을 보았다. 아직 메사 호수가 끝나지 않은 지점에서 만난 마을이다.
바다 같은 호수가 끝없이 깔려 있고 한참 먼 건너 산 언덕에 아름다운 집들이 보인다. 1994년도 인구 2만 6천명의 작은 마을이다. 호수변에 아담한 마을은 산을 등지고 있다. 그 산 높은 곳에 스키 점프대가 있다.
천연의 자연이 뭉싯거리고 바라보는 시선, 바로 그곳이 명화 한 장면이다. 젊은 아가씨가 길가 테이블에 앉아 딸기를 판다. 사서 나누어 먹은 딸기는 향이 진하고 맛있다. 화장실도 목조 건물이다. 모두가 자연에 가까운 그대로의 삶이다.
* 물과 눈의 나라 노르웨이
물이 많은 나라다. 곳곳에 호수도 많고 바다도 많다. 눈이 많은 나라다. 긴 겨울동안 내린 눈이 여름까지 녹아내린다. 아직도 해발 1천m 고지에는 잔설지역이 많다. 나무도 그런 산봉우리에서는 못 자란다.
산도 우람하고 울창하다. 그런 지역 어디쯤 가면 반드시 호수나 계곡의 물을 만난다. 지금은 한여름 8월, 식물도 파랗고 호수의 물빛도 푸르고 버스 차창 너머의 풍경이 참으로 싱그럽다.
이 나라의 지형 자체가 그릇에 물이 담긴 모양이다. 북극 빙하의 물을 담고 있는 형상이다. 물은 그대로 받아 먹는다. 나는 화장실에서도, 호텔에서도 두 손으로 한 움쿰씩 쥐고 받아 먹었다. 이것도 노르웨이 여행의 큰 추억이 되리라. 뉴질랜드 남섬여행과 동일하다.
이곳 사람들은 물에 있는 균을 유익하다고 믿는다. 한국은 균을 다 죽여서 무익한 물을 먹고 산다고, 이 나라의 기준에서 보면 그렇다. 내가 유년시절에 먹고 산 마을 우물의 균은 유익했으리라. 오늘의 한국은 산업발전으로 그런 낭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원래 사람의 말을 잘 믿는 이 나라 국민들은 정부에서 물을 그냥 먹어도 좋다하면 그대로 먹는다. 사먹는 물이 더 묵어서 안 좋다고, 차라리 그냥 수돗물을 받아 먹으란다. 호텔 식당에서, 음식점에서 물을 달라 해도 수도꼭지에서 받아다 준단다.
행복한 나라다. 땅도 곱고, 하늘도 곱고, 물까지 고운 나라, 물과 눈의 나라 노르웨이는 그로 인해 고통도 있겠지만, 그것이 큰 재산이다.
* 노르웨이의 산업
자원이 풍부한 나라다. GNP가 5만불이 넘는다. 선박업, 목재업, 어업, 석유 생산까지 풍요로운 나라다. 지구의 그늘진 끝쪽에서 외롭고 고달프게 살 것 같은데 내부적으로 파고 들어와 보면 알찬 알맹이가 꽉 찬 나라다.
선박업은 직접 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배 만드는 기술을 세계에 판다. 목재업은 주로 펄프제지다. 햇볕이 따갑고, 추운 기후 조건으로 덩치 큰 나무는 없고 키가 위로만 삐죽하게 곧고 단단한 재질이다. 어업은 대구, 연어, 고등어를 잡아 수출한다.
북쪽 섬 무인도에는 광산이 있는데 추워서 주로 핀란드인과 러시아인이 와서 일 한다. 나라 곳곳을 특성에 맞게 잘 활용하여 살고 있다. 신은 참으로 공평하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세상 어느 곳을 가도 나름대로의 큰 축복이 이어진다.
1800년대까지는 가난한 나라였다. 미국으로 이민도 많이 갔다. 1905년에 해방되었어도 1950년까지는 가난했다. 그러다가 1960년 초에 미국 필립 회사에서 편지가 왔다. 기름이 나는 것 같으니까 노르웨이를 조사해 보자는 것이다.
정작 노르웨이에서는 무슨 말이냐고 놀랐다. 그 말을 받아 들였고 결국 영국과 노르웨이 사의의 스타방가 지역을 탐색했는데 구멍을 10개, 20개 뚫어도 기름이 나지 않아 영국 등 모든 나라가 다 떠나버렸다. 그때 미국만 마지막까지 남아 최후의 구멍 1개 뚫은 것에서 기름이 펑펑 솟아 올랐다.
북해유는 질도 좋다. 현재는 세계 3~4위 산유국이다. 그런데 두고 두고 천천히 일정량 정해두고 판다. 다른 나라 지분도 있다. 기름을 판 돈은 안 쓰고 현금으로 고스란히 보유한다. 세계적으로 돈이 가장 많은 나라다. 지금 태어난 아이가 67세에 받을 연금이다. 복지가 잘 된 나라다.
EU국에서 가입시키려 해도 거부한다. 싼 임금이 넘어오는 것을 싫어한다. 사회주의 분배식으로 부자는 세금을 많이 내고 가난한 자는 세금을 조금 낸다. 이런 체제가 깨지는 것을 원치 않는 나라다. 이 얼마나 당찬 삶의 자세인가.
큰 수입 또 하나는 관광 산업이다. 산세가 좋다. 전에는 쓸모 없었는데 요즈음은 유럽인들, 세계인들이 와서 구경하는 큰 자원이 되었다. 자본을 들이지 않고도 돈을 버는 축복의 땅이다.
기름이 많이 나도 기름값이 비싸다. 1리터(ℓ)에 한화 1800원 정도다. 그것도 사람이 와서 넣어주면 2000원이 넘는다. 본인이 직접 넣는다. 70%가 세금이 붙어서 그렇게 비싸다. 화장지를 서비스품으로 준다면 값은 더 비싸진다.
이 나라의 목표는 분명하다. 자연 자원을 잘 보존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주자는 원칙이다. 기가 막힌 정책이며 협조하는 백성 또한 위대하다. 이러한 노르웨이의 풍성 산업이, 지혜로운 유지 정책이 탄탄한 영토로 굳건히 다져놓은 것이다.
* 입센의 고향
〈인형의 집〉으로 알려진, 나도 그 소설을 읽으며 큰 감동을 받은, 그 작가 입센의 고향을 지나고 있다. 노르웨이 남부 항구 도시〈시엔〉이다. 이곳에서 상인의 차남으로 태어나 노모를 모시고 살았다. 선주인 아버지가 사업이 망하여 헨리 입센은 집을 나와 약국에 근무하기도 하고, 교회에 가서 결혼하는 남의 여인을 데리고 도망가 살기도 했다. 삼십여년을 떠돌며 생활고로, 알콜중독으로 고생했다. 한 때는 의사가 되려는 꿈도 있었다.
자신의 취미가 문학 쪽에 있음을 알았을 때 베르겐, 오슬로에 가서 글을 썼다. 하지만 노르웨이 사람들을 비방하는 글을 써서 이 나라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또한 성격이 괴팍하고, 게으르고 그리고 바람둥이이기도 하다.
외국에 다녀온 후, 〈인형의 집〉을 발간한 후에야 유명해졌다. 여성 해방을 주제로 다룬 인형의 집에서 여자가 남자의 일도 하는 장면을 등장시켰다. 주인공 노라는 독립적이고 자아에 눈 뜬 여성이다. 아이 셋인 여자가 주부로서 독립선언 후 가출하여 사는, 낭만주의에서 현실주의로 바뀌는 것이다.
1828년~1906년까지 78세까지 산 장수작가다. 그가 태어난 고향 마을을 지나며 비록 고향에서 좋은 평판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자취와 문인으로서 훌륭한 작가의 체취를 나는 깊이 느꼈다.
입센의 고향 마을을 지나가는데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했다. 길을 건너다 자동차와 부딪힌 할머니가 쓰러져 있고 사람들이 모여 있다. 크락션을 울리지 않는 나라인데 우리의 버스 기사는 크락션을 울려 자기 차선만 고집하는 자동차들에게 응급차를 양보하라는 싸인을 주었다. 관광차가 많이 드나듦으로 종종 발생하는 사고란다.
입센의 사망 대목에서 소슬하게 본 장면이다. 어울리지 않는 교통사고다. 한적하고, 차도 사람도 거의 없는 나라인데 나는 의아했다. 입센뿐만 아니라 〈솔베이지의 노래〉음악가 그리그(피아니스트이면서 작곡가)도 탄생한 나라여서, 그 음악을 들으며 갔다.
이 곡은 입센의 〈페르귄트〉라는 희곡을 노래한 것으로 한국의 〈아리랑〉과 같다. 솔베이지라는 순진한 노녀가 페르귄트라는 남자와 사랑했는데, 소녀를 버리고 부를 좇아 떠난 연인을 처녀로 늙으며 기다린다는 내용이다. 인간 욕망의 덧없음, 순수한 사랑으로 인간영혼구제, 두 남녀의 삶 대비가 담긴 애절한 곡이 차 안 가득, 입센과 그리그의 고향 가득 퍼지고 있다.
* 오따 마을의 전원 풍경
점심식사를 한 마을이다. 2시간 간격으로 휴게소에 들러 쉬면서 부지런히 달려왔다. 빨리 식사를 마치고 마을의 전원 풍경을 보았다. 식사도 한국과는 다른 음식이어서 신비롭지만 정말 신비로운 것은 이 나라의 자연이다.
모두 나무로 집을 지었다. 학교까지도 나무 건물이다. 그래서 색상이 곱다. 스위스같은 인상이다. 언덕에 나란히 자리한 집들이 아름다운 자태다. 들녘에는 초지가 파랗고, 산에는 나무가 파랗고, 하늘도, 호수도 푸른 물결, 그 위에 붉은 톤의 꽃 물결 지붕은 장관이다. 이것이 노르웨이 곳곳에서 보는 전원 풍경이다.
* 노르웨이의 철저한 법칙
정확하고 정직한 나라다. 믿음에 대하여 신뢰가 철저하고 거짓에 대하여 매장이 철저하다. 우직스럽고 미련한 측면도 엿보이지만 그게 이 나라가 살아남는 철저한 삶의 법칙이라며, 우리는 존중해야 하고, 여행 중 머무르는 동안 따라야 한다.
작은 예로 식당에서 손님이 왕이 아니라 주인이 왕이다. 주인이 앉으라는 곳에 앉아야 한다. 개인 혼자 가도 그렇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 와도 그렇다. 처음에는 이상했다. 왜 식당에 들어서면 어디에 앉아야 하는지 꼭 배정을 받는 풍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잘못 앉으면 기어이 원 위치로 환원시킨다. 차츰 머무르면서 익숙해질 때 오히려 그것은 편안한 규제였다.
왕이 속도위반하여 단속에 걸린 적이 있는데 다음날 신문에 ‘왕이 딱지 뗐다’ 고 기사에 났다. 이런 정도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나는 멋있는 나라라고 여겼다. 융통성이 없지만 정확한 나라가 아닌가. 빵가게에서 3시까지 판다하면 3시 1분에 가도 퇴장시킨다. 더 팔아서 얻는 수익보다 철저한 약속, 철저한 그들만의 법칙에 더 충실하고 있다.
* 노르웨이의 연료 절약
자작나무, 하얀 몸통의 나무가 화력이 좋아서 벽난로 땔감으로 쓰인다. 집에 굴뚝이 있다. 겨울이 5~6개월. 그 긴 추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춥게 산다. 기름이 많이 나는데도, 땔감이 많은데도 실내온도 20도를 유지하며 산다. 담요를 덮고 지낸다. 집안 난방 벽난로에 가스는 안 쓴다.
대체로 전기세가 비싼 나라다. 평균 가구당 20만원 나온다. 전기 히터도 잘 안 쓴다. 땔감 나무도 자기 소유가 아니면 절대 함부로 나무를 베지 못한다. 나무 한 도막을 벽난로에 던지면서 ‘돈이 타는구나’ 한다.
겨울에는 중국, 스페인으로 간다. 방은 작다. 잠자는 개념이다. 거실은 넓고 잘 꾸민다. 사람이 모이는 곳으로 그곳만 난방하고, 그곳만 치장한다. 검소함이 몸에 배인 사람들이다.
윗풍이 센 한국의 집과 유사하다. 침실에 누우면 차가운 바람이 분다. 오늘은 동풍이구나, 오늘은 서풍이구나, 구별할 정도다. 그래도 겨울에 창문을 열고 잔다. 추위에 길들여진 사람들이다.
아이도 춥게 기른다. 산모도 춥게 한다. 출생율이 2.1%다. 여름에 생일인 아이가 많다. 긴 겨울 동안 실내에서 머무르면서 이루어낸 작품이라 하여 웃었다. 여행을 즐기는 나라이니 짙은 겨울, 짙은 여름에는 일 안하고 여행을 다닌다. 그런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낭만이겠는가.
차가 낮에도 불을 켜고 달린다. 1985년부터 24시간 헤드라이트 켜고 달려야 하는 도로교통법으로 바뀌었다. 교통사고를 줄이려는 대책이다. 시동만 켜면 바로 불이 켜진다. 노르웨이 차는 그렇다. 외제 차는 그렇게 안 되는데 걸리면 경찰이 바로 고치라고 조치한다. 불빛강조국가다. 불빛에 드는 비용보다 교통사고에 드는 비용이 크다면 더 효율적인 방안이다.
자원이 넉넉한데도 낭비하지 않는 나라, 마음대로 실내온도를 높이면 걸리는 나라, 그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아름답다.
* 노르웨이의 산길도로
평생 볼 산과 나무를 다 본다고, 차를 타고 몰데에 가면서 그렇게 나는 생각했다. 12일 여행 일정 중 4박 5일이 노르웨이 여행이다. 이제 시작점인데 얼마나 많은 산과 나무와 호수를 볼는지 그에 대한 예령은 장엄했다. 길가에 제재소도 있다.
주로 산속 도로를 달린다. 통행량에 따라 좁게, 넓게 만든 길이다. 우리나라보다 4배 크기의 나라인데, 그래도 땅에 도로를 크게 내지 않는다. 지금 가는 길은 좋은 편이라 한다. 좁은데도 말이다. 꼬불꼬불 산길도로는 끝없이 이어진다.
국립공원 지역을 지날 때는 동물 보호구역으로 줄을 쳐 놓았다. 동물이 많이 사는 곳임을 알리는 표지판, 사슴 그림이 서 있다. 이런 산속 길도 눈이 내리면 제설차가 와서 치운단다.
오전에 강한 햇살이 나오더니 오후가 되자 쌀쌀한 구름 낀 날씨다. 비도 조금 뿌린다. 정말 하루 중에도 다양한 일기를 본다. 외국인을 태운 버스는 최고급차다. 운전기사 역시 베테랑이다. 어떤 길이든, 어떤 날씨든 우리의 기사 비욘은 침착하게, 안전하게 잘 가고 있다.
해변 선로도 간간이 보인다. 피요르드 바다가 땅을 쪼개도 들어온 곳을 지날때면 그건 바다다. 호수가 아니다. 선로는 산속에서도 만난다. 기차는 보지 못했지만 기차 레일은 여러번 만났다. 산 속에는 얼기설기 도로가 많이 나 있고 이곳 사람들은 다람쥐처럼 그 길을 운행하며 간다.
* 레샤 민속 마을
레샤 마을 주민들이 나와 1700년~1800년대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곳이다. 부녀회에서 나와 빵을 만들거나, 춤을 추거나, 실을 짜는 등 매일 색다른 시골 풍습을 연출하고 있다.
오후 무렵 화사한 하늘과 태양빛 아래 아담한 마을에 차려진 민속 잔치를 구경했다. 벽난로에서 자작나무가 타는 모습, 민속집, 양과 토끼, 말, 공연장 등 정겹다.
공연장에 모여 연주하고 바라보고, 마을 주민과 외인이 하나가 되었다. 들녘의 농토와 시골집 풍경이 훤히 보인다. 영어가 소통되어 가고 싶은 곳을 물으면 해답을 얻곤 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외인을 의식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흥에 겨워 모이고 자신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보여 줄뿐 판매를 강요하지도, 시선을 주지도 않고 묵묵히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한다. 그래서 살아있는 민속 마을이다.
* 트롤의 벽
산 저 멀리 녹지 않는 눈이 앉아 있다. 짧게 지나가는 여름이라서 아직 잔설이 산봉우리에 빙하처럼 놓여있다. 하얀 구름과 검은 구름이 동시에 뜬 하늘도, 갑자기 오롯해진 산도, 하얀 잔설도 무시무시하다.
노르웨이는 요정의 나라다. 이 바위산에 요정이 산다. 높고 큰 바위산이 특징인 나라다. 빙하기를 지나 녹자 '트롤'이 먼저 생겼다. 깊은 동굴에 살다가 나오면 굳어서 바위가 생긴다는 전설이다. 요정 중에는 힘이 센 요정, 착한 요정이 있다.
'밤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속담이 노르웨이에서는 '밤이나 낮이나 트롤이 다 듣고 있다'로 전해온다. '호랑이가 온다'가 '트롤이 온다'와 동일하다.험상굳고 뾰족한 인형을 보면 모두 노르웨이에서는 트롤이다.
트롤의 벽은 거대한 바위산이다. 가도 가도 끝없이 이어진다. 그리고는 바위 형상들이 괴이는 요정이다. 금새 튀어나올 것 같은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래서 한국의 호랑이가 노르웨이 트롤, 떄로는 귀여운 요정으로 사랑받는 우스꽝스런 트롤, 그 트롤이 사는 산속을 지나고 있다.
* 롬스달 계곡 휴게소
잠시 내려 화장실도 들르고 트롤의 벽을 감상했다. 노르웨이 화장실도 더러는 코인을 넣어야 되는 곳이 있는데 버스기사는 그런 곳을 피해 가능하면 무료인 곳에 내려준다. 화장실 모두 나무로 지어 얼핏보면 우아한 사무실 같다. 이곳에는 입구에 목각 인형이 커다랗게 서서 정겨움을 더해준다.
산의 깎아지른 절벽이 하늘을 찌른다. 높고 날카롭고 긴 능선이 하늘과 맞닿아 끝없이 솟구친다. 지금껏 지나온 트롤의 벽이다. 산정 곳곳에 바위산 하나가 모두 바위인 산도, 봉우리가 뭉툭한 바위인 산도. 온갖 형태의 바위산이 비경이다. 캐나다 로키산 어느 마디에 선 착으로 나는 기이한 트롤의 벽과, 요정 트롤을 깊이 관찰했다.
* 노르웨이 캠핑차
여행 다니는 차다. 산속에서, 호수변에서 수없이 보아온 차다. 휴게소에 세워져 있기에 자세히 보았다. 집 한채의 사각통이 자덩차에 달려 있어 생활용품을 싣고 다닌다. 머문 그곳에서 생활도구와 함꼐 즐거운 여행을 하고,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산다.
하얀 색의 캠핑차가 파란 초지에 수를 놓듯 들어선 곳도 보았다. 캠핑차를 생산하는 공장도 보았다. 유럽의 여행 문화는 대단하다. 노르웨이도 예외가 아니다. 고독하고 외론운 땅, 긴 겨울과 짧은 여름. 그 힘든 환경을 아름다운 캠핑차로 함께 여행으로 낭만을 꽃피우는 멋진 문화다.
* 피요르드 바다
노르웨이 산길을 달리다 보면 호수인지, 바다인지 분간 되지 않는 물을 수없이 만난다. 대륙 깊숙히 파고드는 피요르드 협만이 꼭 호수처럼 산그림자를 물고 있다.
얼음이 녹아 땅이 갈라지면서 이룬 바다 계곡이다.땅을 파헤친 계곳이라서 상당히 깊다. 어느 순간 갑자기 깊어진다. 그것이 피요르드의 특징이다. 대서양과 인접해 잇는 피요르드는 결코 호수가 아니다. 육지를 깎으며 유입된 바닷물은 수심 400m나 된다. 송내 피요르드는 수심이 130m다. 물이 빠지면 1천m 산 높이와 바다 깊이까지 2300m의 협곡이 된다.
나는 그래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호수도 끝선이 보이지 않을만큼 넓은 면적이 있고, 이건 호수라고 알려주기 전에는 잘 모른다. 호수도 푸르고, 바다도 푸르고 초자연의 환상적인 물빛은 보는 이에게 평화를 선사한다. 피요르드 바다까지 완벽한 아름다움이다. 바다와 접하여 살며 할큄을 당한 상처겠지만 바다는 그곳에 고요히 갯물을 채워 길을 열고 있다.
* 버스가 통째로 들어가는 페리호 승선
피요르드가 이룬 바다를 건너는 것은 바다가 만들어준 길을 건너는 것으로, 바다는 곧 길의 개념이다. 몰데 도시 가까이 왔을 때 그런 피요르드 바다를 건너기 위해 페리호 배를 탔다.
오파르네스에서 솔스네스 구간까지 운항하는 배는 오후 6시 15분에 있다. 버스가 해안에 도착했을 때 페리호는 하얀 신부처럼 유유히 바닷가로 오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이 걸어서 승선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실은 버스가 통째로 승선한다. 배는 껍질만 있고, 구멍 뚫린 몸통 속에 버스와 자동차 트럭 등 차량이 한가득 채운다. 줄줄이 들어온다.
15분 동안 가므로 그 사이에 버스에서 내려 바다 풍경을 보았다. 또 빨리 버스에 타야 된다. 못 타면 배에 남게 된다. 부지런히 배의 2층까지 오르내리며 피요르드 바다의 낭만을 만끽했다.
이런 식의 배를 여러번 탔다. 페리호에 승선한다하여 버스에서 내리는 것이 아니고 지금처럼 버스가 통째로 들어간다. 이런 배는 처음 타서 놀랍고, 신기하고, 많이 감탄했다. 이곳 사람들은 페리호가 유람선이 아니고 생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바다의 길은 배를 빌어서 얹혀 있지만 길의 개념으로 자동차까지 끌고 타는 것이다. 저 건너 마을에서 볼 일을 보고 다시 그렇게 돌아간다. 노르웨이에는 피요르드 바다가 많아서 탄생된 신비로운 배다.
* 노르웨이 자동차
이 나라는 차를 생산하지 않는다. 수입해서 쓴다. 한국차도 있다. 현대, 기아, 대우 등, 현대를 현다이라고 부른다. 소나타가 3500만원, 비싸다. 일본 도요타를 가장 선호한다. 한국 중고차도 싸게 수입해서 탄다. 한국차를 오래 타고 싶어도 부품 단절로 불가는하여 아쉽다고 한다. 한국 자동차를 선호한다는 말에 자랑스러웠다.
자동차세는 몇 대 보유가 문제가 아니고 얼마만큼 달렸느냐에 따라 세금 액수가 결정된다. 그것은 공기 오염도에 따라 부과하는 이 나라의 교통법이다. 낮에 꼭 헤드라이트를 켜고 달려야 하는 것도 , 달린 거리의 양에 따라 세금을 부여하는 것도 우리에게는 낯선 이야기지만 모든 것이 생명존중과 자연존중이라는 대목에서 훈훈한 감동이다.
* 호수 낚시와 바다 낚시
그 거대한 메카 호수를 몇 시간 달려올 때는 낚싯꾼을 보지 못했는데 바다에 이르자 낚싯꾼이 보인다. 이 나라는 호수에서의 낚시는 금지다. 호수에서 낚시를 하려면 돈을 내야 된다. 주요소나 우체국에 가서 낚싯권을 사야 한다. 티켓을 발급 받은 후에나 가능하다. 호수의 물을 보호하기 위한 오염방지책이다.
바다에는 여름 고등어가 있어 요즈음 낚시하는 사람이 있다. 바다 낚시는 규제하지 않기 때문에 해변 사람들은 낚시로 잡아 먹는다. 염도가 낮아 한국의 맛과는 좀 다르다고 한다.
저절로 얻어지는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자연을 얻은 것은 신의 축복이지만 그 자연을 가꾸는 것은 사람인데 노르웨이의 정부와 백성들은 철저한 규제 속에서 합심하여 아름답고 깨끗한 천연자원을 지켜나가고 있다.
* 피요르드 해저 터널
길고 긴 버스 여정이다. 몰데까지는 이제 21Km 남았다. 뉴질랜드 남섬 여행처럼 하루 종일 달려왔다. 페리호 승선으로 바다를 건너자 버스는 잠시 후에 해저터널로 드어간다. 긴 터널이다. 굴안에서는 산속이라 느껴지는데 지금 바닷속 길로 몰데를 향해 가고 있다.
피요르드는 노르웨이의 옆구리 살점에 파고들어 애증으로 맞물려 있다. 육지와 바다가 분리되지 않는 기막힌 하나다. 그 피요르드 바다와 더불어 사는 과정에서 바다는 순순히 가슴팍을 뚫어 해저터널을 허용한 것이다. 아름다운 조화다.
* 장미의 도시 몰데
인구 2만명이 모여 사는 해변 도시다. 비행장도 있고 요트장도 있다. 바다 위에 정박해 놓은 요트가 장관이다. 요트 주차장으로 주차료가 비싸다. 요트값도 상당히 비싼데 줄지어 떠있는 요트가 이곳 생활의 풍요를 암시한다.
장미가 많아 장미의 도시다. 길가에, 집 화단에, 도로 중앙에 장미 군락이 많다. 거리와 주택의 풍경이 곱고 화사하다. 산언덕을 타고 줄지어 자리한 고운 색상의 집들이 꽃처럼 예쁘다. 전원의 도시이며, 관광의 도시라서 계획적으로 깨끗하고 곱게 가꾸는 것 같다. 동화 속 마음씨 착한 아이가 사는 듯하다.
* 바르덴 전망대
몰데 도심에서 버스는 산으로 방향을 틀어 오른다. 해발 407m 산정에 있는 바르덴 전망대에 간다. 울창한 산길을 수없이 꺾어 오르며 몰데의 바다와 산 풍경을 선사한다.
정상에 올랐을 때 눈부신 햇살이 잘 다듬어 놓은 산봉우리 마당에 쏟아내린다. 파란 하늘이 탱탱하고 원시의 빛이다. 오늘은 맑아서 멀리까지 다 볼 수 있다고, 좋은 날씨를 예찬한다.
몰데 피요르드 바다의 몰데 시가지, 트롤의 벽처럼 바다 수평선 끝에 줄지어 선 바위산 등 대단한 조망이다. 안개가 끼면 아무 것도 못 보는데 오늘은 축복의 날이다. 222개 피요르드 봉우리가 하늘과 바다를 이으며 공중에 능선을 그리고 있다. 더러는 뾰족하고, 더러는 날카로운 바위산의 물결이 바다에 떠서 한눈에 담긴다.
석양빛이 진하게 타고 있다. 빛과 마주하면 눈을 뜰 수가 없다. 바람이 머리카락에 스미고, 잠시지만 나는 유년의 해맑은 향수에 젖었다. 자전거로, 도보로 이곳 사람들은 오르기도 한다. 버스는 다시 아름다운 굴곡의 산길을 따라 하산했다.
* 몰데 돛단배 모양 호텔 투숙
바르덴 전망대에서 보았던 호텔이다.바닷가에 정박한 돛단배 모양으로 지어진 빼어난 경관이다.실내에는 연주용 피아노가 있고 꽃방울 조형물과 창가에 비친 바닷가 외경이 기막힌 비경이다.
룸을 정하고 여장을 풀고는 개인시간이 많아 산책했다. 해변도로를 따라 걸었다. 호텔에서 멀어질수록 호텔은 더욱 바다에 뜬 돛단배다. 사각형 구조가 아닌 사다리 모양의 건물이 우람하게 바다를 향해 있다. 장미 정원도 아름답다.
나와 우리 세 식구는 몰데 시가지와 바다를 보며 많이 걸었다. 선착장도 보고, 바닷가 공원도 보고, 바다에 떨어지는 낙조도 보고, 노르웨이와 접한 대서양 바다의 낭만을 온몸으로 받았다. 낯선 땅인데도 두렵지 않은 걸음이다. 몰데는 그만큼 평화롭고 고요한 도시다. 이 밤 우리는 돛단배 호텔에서 바다의 품에 안겨 행복하리라.
2007년 8월 5일 노르웨이 요정의 길,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브릭스달 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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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데 리카 세일레트 호텔
오슬로에서 머문 홀멘콜른 호텔과 함께 노르웨이의 유명한 호텔이다. 돛단배 모양의 외형과 장미 정원, 몰데 피요르드에 둘러싸여 자아내는 경관도 대단하지만 객실에서 보이는 풍경 또한 대단하다.
아침에 커튼을 제치고 창문 앞에 섰을 때 나는 소슬하게 놀랐다. 내가 바다에 섰는지, 바위산이 바다 건너 내게로 왔는지, 정녕 나와 바다와 바위산이 하나 되어 나의 자아가 동그랗게 움츠러든다.
맞은 편 복도 끝에 있는 유리창에는 몰데의 산과 나무와 고운 주택들이 서려오고, 호텔 뷔페식당 창가에는 바다와 항구와 커다란 배가 명화를 그리고 있다. 이곳이 지구상의 땅이며, 지구상의 호텔인가. 나를 뜨겁게 감싸안고 있는 이 몰데 돛단배 호텔, 리카 세일레트, 후일 네가 그리워지면 나는 어떻게 하지. 가슴에, 뇌리에 담아도 담아도 넘치는 이 그리움을.
밖으로 나와 어제와는 반대편으로 거닐어 보았다. 뒤 편으로 몰데 시가지가 있고 해변가에 닻과 함께 그윽한 정경이다. 어느 곳에서 보아도 바다 위에 뜬 거대한 돛단배 형상이다. 몰데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호텔 이상의 값진 몫을 하고 있다.
* 몰데 출발
갈매기의 배웅을 받으며, 222개 바위산 봉우리의 비경에 이별을 고하며, 아름다운 장미꽃과의 뜨거운 안녕으로 몰데를 떠난다.
어제 저녁에 왔던 산책로 곁의 항구에서 배를 탄다. 공중 화장실은 노르웨이화 10크로나, 한화 1600원 정도의 유료이므로 반드시 배 안에서 볼일을 다 마치라는 당부를 한다. 무료도 많지만 더러는 이런 비싼 유료도 있다.
산과 바다를 품고 사는 몰데, 와서 살아도 좋을 도시다. 아쉽게 작별했다.
* 몰데 피요르드 유람선
버스가 직접 배 안으로 들어간다. 어제 탔던 배와 똑같다. 오늘은 30분간 몰데 피요르드를 유람하며 간다. 교통수단에 더하여 비경까지 본다. 나는 '껍질 배' 라고 칭했다. 몸이 없는, 껍질만 들어와 차가 가득 채우는 배, 오늘은 애잔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노르웨이의 정녕 큰 명물이다.
몰데 피요르드를 건너는 동안 배의 정상 갑판에 올라가 222개의 산봉우리와 바다가 어우러진 비경, 그리고 몰데 시가지 비경 등등 바다와 노르웨이 영토의 향기에 흠뻑 젖었다. 타이타닉호의 사랑처럼 우리 부부는 그런 포즈로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다.
1층은 기계실, 2층은 주차장, 3층은 카페와 상가, 4층은 갑판이다. 정해진 시간 안에 다시 버스에 올라야 한다. 내가 내리는 것이 아니고 버스가 내린다. 아쉬운 낭만을 접고 배 안의 온 길을 더듬어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버스에게로 갔다.
* 베스트네스 마을
이 마을에서부터 버스로 2시간을 달려 요정의 길에 가고, 산 넘고, 또 배 타고, 길 가다가,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유람선 타고, 다시 버스 타고 1시간 40분 달려 만년설까지 간다. 마지막 호텔까지 이것이 오늘 일정이다.
배에서 내린 마을 베스트네스는 깨질 것 같은 물이 산을 물고 있다. 몰데피요르드 끝자락 마을은 그렇게 고독한 행복에 잠겨 있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언제나 그랬듯이 예쁜 집과 초지와 산과 물만 한 가득이다.
멀리 산정에 아직 떠나지 못한 눈이 하얗게 눈부시고, 양과 말과 소가 평화를 노래한다. 버스 안 천정에서 내려오는 아름다운 선율이 나의 감성을 더욱 뜨겁게 한다. 이보다 더 한 황홀, 낭만이 또 있을까.
* 요정의 길
아름다운 산길을 올라간다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트롤스티겐, 트롤은 요정, 스티겐은 사다리다. 요정처럼 사다리 길을 인간이 오른다.
80년간의 공사기간 끝에 1936년에 완공된 이 길은 산 정상까지 11개의 굽이로 이루어져 있으며 노르웨이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황금의 길의 일부분으로 노르웨이에서 가장 좁고, 높고, 가장 험한 길이다. 놀랍다. 길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대형버스가 무섭게 꺾어지는 길을 요정이 되어 가볍게 오르는 그 실력이 놀랍다. 운전기사는 얼마나 큰 고뇌로 오를까 존경심이 든다. 이방인을 위해 안전하게 올라주는 비욘 기사에게 정말 감사했다.
눈을 내려뜨면 천길 낭떠러지 절벽이고, 눈을 올려 뜨면 바위산 가파른 절벽이다. 잔설과 폭포가 축하의 메세지를 울리듯 두려움을 잠재우고, 눈도 살고, 물도 사는 산 하나를 넘어가는데 이 얼마나 행복한 행로냐고 나는 가슴을 달랬다. 험악한 산의 등줄기를 깎아서 길을 만든 손길 또한 대단하다.
1936년에 오픈한 길이다. 눈 때문에 6월 초에서 9월까지만 개통된다. 이곳 동물과 새는 사람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 주택에서도 새먹이를 놓으면 와서 먹고 산다. 그래서 새들이 통통하다. 고독한 산에서 사람과 동물과 새가 기대어 함께 산다.
이 험한 길을 자전거 타고 오르는 사람도 있다. 노르웨이인들은 모험심이 강하다. 젊은이뿐만 아니라 늙은이도 즐겨 산을 탄다. 내 생애 가장 가파른 길을 넘는 이 순간, 저 멀리 초지의 산입구 평원에 깔린 평화를 보며 하얗게 비운 뇌리에 오늘의 이 길을, 오늘의 이 눈물겨운 고요를 차곡이 담았다. 자연 앞애서 인간이 얼마나 겸허해야 되는지, 얼마나 오만을 꺾어야 되는지 생생한 체험이다.
* 트롤스티겐 폭포
요정의 길을 오르며 산정 가까이 이르러 만난 폭포다. 머리 위 산봉우리 갈라진 절벽 사이로 거대한 물줄기가 쏟아내린다. 이 높은 곳에서 무엇을 먹고 저리도 컸으며, 저리도 힘이 센가. 포효하듯 내뿜는 소리와 분무하는 물줄기, 회오리치는 물바람, 몇 구비 꺾으며 꽂히는 폭포가 온 산을 흔든다.
버스가 잠시 멈추어 내려서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그런데 도저히 물보라에 견디기 힘들어 돌아섰다. 온몸에 휘감기는 폭포의 숨결이 소슬하다. 340m의 폭포, 높이뿐만 아니라 폭까지, 물의 방대한 양까지 수직의 바위산 요정의 길 못지 않은 위용이다.
* 산정의 호수
작고 험한 길이라 하여 요정의 길, 트롤스티겐이라 명명한 산길, 무사히 넘어 올랐다. 산정에 오르니 곧바로 평지다. 작은 호수 뿐 사나움이 전혀 없다. 자작한 풀과 고지의 키 작은 식물들 그뿐이다.
산정의 호수가 그리 큰 것은 아닌데 아까 본 폭포는 어디서 물을 모아 그리 세차게 흐르는가. 이 호수는 어디서 흘러든 물인가. 세찬 폭풍 뒤에 햇살이 내린 정경이며, 나의 감정도 가파른 비경에서 평온한 비경으로 갑자기 바꾸려니 그것도 행복하여서 눈물겹다. 이것이 노르웨이다. 모두가 아름다운 노르웨이다.
* 산길에서 만난 소
산정의호수를 지나 빙그르 내려가니 산길에서 갑자기 버스가 멈춘다. 방목하는 소 때문이다. 누런 소 한 마리가 바로 버스 앞에서 풀을 뜯고 있다. 차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 운전기사도 크락숀을 울리지 않는다. 서로의 감정이 교류하듯, 기다려주고 그 순간 평화로이 길섶의 먹이를 맛앗게 먹고 있다.
하산 길, 그리 위험한 비탈길은 아니지만 위대한 운전이며 사람을 신뢰한 동물들의 살찐 평화다. 양떼도 있다. 길가 가까이 다가온 세 마라의 양도 차를 의식하지 않고 있다. 바위 틈의 풀을 뜯는 양들, 잠시 들른 산중 화장실 흙지붕의 풀도 신비롭다. 사람과 동물, 자연, 흙, 풀까지도 완전한 하나다.
* 노르웨이의 교육제도
외국인의 교육 유학생을 대학부터 받는다는 말에 놀았다. 대학원까지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며 무료라는 말에 더욱 놀랐다. 그러나 학업을 마친 후에는 이 나라를 떠나야 된다는 대목에서 나는 크게 놀랐다. 노르웨이만의 독특한 교육제도라는 생각과 함께 당당한 기운을 느꼈다.
교육비는 6세부터 국가에서 대준다. 그 이전의 어린이집도 있다. 한 달에 2800 크로나-3500 크로나, 한화로 40만원-50만원이다.
유치원 6세부터 초등 6년을 합하여 7년, 중등 3년, 고등 3-4년, 대학 석사 과정까지 3-5년(단과는 3년)의 교육체제다. 석사까지는 무료교육이고, 박사 과정은 오히려 연봉을 받고 공부한다.
특기교육은 원서를 넣고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자리가 나지 않아 오래 기다린다. 학원이 없다. 모든 것을 학교에서 해결한다. 선생님을 존중하며 부진아는 교사가 데리고 가서 더 가르친다.
여름방학만 있다. 겨울방학은 크리스마스 방학으로 2주 뿐이다. 방학 때는 책을 모두 수거한다. 열심히 놀아야 하는 방학이다. 무조건 여행이나, 자연 속에서 노는 것이 방학 숙제다. 요즈음은 여름방학이라서 아이들이 밖에 많이 돌아다닌다.
3학년 때부터 영어를 가르친다. 가장 중요시하는 교육은 체육, 운동, 음식요리다. 소학교는 학교버스가 집집마다 가서 아이를 데려온다. 급식이 없고 빵을 가지고 와서 먹는다. 실내 풀장에서 수영을 가르친다. 수업이 끝나면 아무리 추워도 모두 바깥에 나가 놀게 한다. 쉬는 시간마다 다 내보낸다. 추운 나라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성을 가장 중요시 가르친다. 조금만 잘 해도 잘 한다고 칭찬한다. 교사의 칭찬에 정말 잘하는 것으로 알고 더욱 잘한다. 순진한 아이들이다. 순진한 교육이다.
중1때부터 영어, 국어, 수학 시험을 친다. 6시간짜리 시험이다. 모두 작문으로 시험을 본다. 협동, 작문 위주의 교육이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브리핑을, 작문을 잘 한다.
목수, 기술 하나만 있으면 먹고 산다. 직업 학교 희망자가 많다. 의사는 모자란다. 대학생은 3천 크로나 나오는데 부모와 살면 안 나온다.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번다. 모자라면 대출을 받는다. 공부를 많이 한 자는 빚이 더 많다. 고졸까지만 부모가 용돈을 대 준다. 시험 치러서 성적이 좋으면 3천 크로나가 자기 돈이지만, 성적이 나쁘면 부모에게 3천 크로나 뺏긴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한다.
평생 교육을 지향한다. 그래서 주부도 공부한다. 여러가지 과목을 전공한다. 그런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많은 것들이 한국과 다르다. 가장 다른 것은 방학 때 책을 거두고 자연과 놀게 하는 것, 교사를 존중하며 학원이 없다는 것 등등이다. 인구에 비하여 영토가 넓은 나라에서, 추운 극지방에서, 뛰어넘어야 할 벽을 먼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 노르웨이 이민
투자 이민이 절대 없다. 이 나라에서 필요한 자는 허락한다. 어느 기간만 지나면 그들에게 영주권이 나온다. 아이 국적은 아빠 국적에 따라서 결정된다. 영주권이 나온 후부터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차별이 전혀 없다.
어떤 나라든 영주권, 시민권만 허가 나면 본토 국민과 평등한 것은 동일한데 그 과정이 힘들다는 것이 다르다. 와서 살고 싶어도 이 나라의 필요한 자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왜 노르웨이의 인구가 450만명밖에 안 되는지 이해되는 대목이다. 돈 앞에서 무릎 꿇지 않으며, 인구의 증가에 연연하지 않으며, 우직하게, 북극의 묵묵함으로 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생존의 법칙이라고 믿으며 조금은 답답해 보이지만, 그것이 노르웨이의 자존이라 느꼈다.
* 노르웨이 음식
염장 혹은 말려서 먹는다. 그래서 짜다. 주식이 감자다. 감자 술도 있다. 어느해 감자 생산량이 많아 안 팔려서 썩힌 것이 술이 되었는데 '아키비탈'이란 이 술은 냉동실에 두었다가 맥주와 섞어서 시원하게 마시면 좋다고, 희한한 술이다. 어느 누가 차 한 잔 안 사주는 심심한 나라, 그래서 음식이라도 짠 것이 아니겠냐고 교포 가이드는 말한다.
김치와 쌀밥으로 이웃을 대접했더니 자꾸 김치와 쌀밥을 달라고 하더란다. 한국에서 김치를 보내면 10일이 걸려서 오는데 직접 우체국에 가서 찾아야 한다. 발효냄새가 우체국에 진동하여 직원이 다 도망간 적도 있단다. 한국 배추는 여기 배추와는 다르게 아주 맛있단다.
야채가 귀한 나라다. 그래서 한식이 귀하다. 모두 수입한 야채다. 감자가 주식이라는데 많은 시간을 달렸어도 감자를 심은 밭은 몇 군데였다. 다른 야채는 정말 보이지 않았다. 민가도 드물고 한국과 같은 들녘이 전혀 아니다. 거의 초지다. 기후 조건이 만드는 음식 문화다.
* 노르웨이 복지
아이와 노인 천국이다. 젊은이는 허리 휘도록 일만 한다. 살인보다 무서운 건 탈세다. 탈세하다 잡히면 사업 문 닫아야 한다. 외국인은 퇴출이다.
임신하면 날 때까지 의사, 간호사가 체크해준다. 출산하면 호텔에서 부부가 아기와 머물며 산후 조리한다. 18세까지 육아비가 나온다. 자녀 2명까지는 1인당 980 크로나, 한화 16만원, 3명부터는 더 많이 나온다. 모친의 직업이 없으면 3천 크로나를 추가로 더 준다. 산후 휴직은 10개월까지 가능하다. 엄마나 아빠 모두 가능하다. 10개월 휴직까지는 100% 월급을 주고 12개월 휴직하면 80% 월급을 준다.
장애자가 나올까봐 6세까지는 철저히 검사하고 체크 해준다. 아이가 아플 때는 무료다. 만 18세까지는 극도로 보호하는 나라다. 복받은 아이들이다. 18세 후부터는 천덕꾸러기다. 자력으로 살아야 한다.
67세부터 연금이 나온다. 일 안 한 자가 8500크로나, 한화로 월 140만원이다. 이 연금 액수를 기준으로 결정 되는데 40년 일한 자가 사람은 일할 때 낸 세금의 80%가 연금이다. 대졸 후 27세부터 66세까지 40년 간 일한 사람은 상당히 많이 받는다. 운전기사는 63세부터 받는다.
퇴직자 중 40%는 스페인에 집을 가지고 있다. 6개월은 스페인에서 살고, 6개월은 노르웨이에서 산다. 노르웨이인들이 스페인 집값을 올렸다고 한다.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늙어서는 풍족한 연금으로 행복하게 산다. 결국 자신이 낸 세금을 되돌려 받는 것이다. 아름다운 저축이며 아름다운 복지다.
* 무인 딸기 농장
수박은 스페인에서 설은 것을 사다가 익혀 먹는다. 호텔 뷔페식에서 수박이 다 그런 것이다. 사과도 맛이 없다. 언덕에 사과나무 과수원도 있었다.그래도 이 나라 사람들은 맛ㅇㅄ는 자국의 사과를 사 먹는다. 수입 사과를 안 산다.
딸기, 블루베리, 체리가 맛있다. 호텔에서 먹을 때도 맛 잇고 사서 먹을 때도 맛 있었다. 딸기를 휴게소에서 파는 것도 보았다. 그런데 어느 농촌 마을을 가로질러 올 때 무인 딸기 농장을 보았다. 딸기 밭만 잇고 사람이 없다.
우리는 잠깐 버스를 세워 달라고 요청햇다. 사 먹자고 했다. 그러나 이 나라의 돈을 놓고 딸기를 가져가야 한다는 무인 딸기 농장이라서 불가능 하여 그냥 지나쳤다.
딸기 밭은 한동안 길게 이어졌다. 한국의 8월인데, 반팔이 아니고 자켓 하나쯤 걸쳐야 하는 날씨이 한국의 5월쯤 날씨다. 딸기가 잘 자라는 온도인가 보다. 사람이 사람을 믿고, 자연이 자연을 미든는 나라, 오몀이 없는 자연, 그대로 보상해주는 자연, 그래서 맛있는 딸기가 생산되고 그 법칙대로 사람도 서로를 믿고 산다.
* 페리호 승선
배를 타고 다시 건너 간다. 요번에는 10분 거리다. 한동안 마을을 달리고, 한동안 산을 달리고, 한동안 호수를 달리고, 그러면서 노르웨이를 통째로 보며 흡수하고 있다.
그러다가 바닷길을 달린다.그것은 대단한 묘미다. 물론 항상 버스가 통째로 들어간다. 이제 익숙해졋다. 여러 차례타면서 피요르드 바다와 같이 호흡햇다.
찔레 나무가 한국과 동일하다. 노란 씀바귀의 키가 작다.오붓한 선착장 해안에서 보트의 소년이 정취를 곱게 물들인다. 바닷가 해송이 올곧고 다리가 붉다. 잠시 배를 기다리며 차창 밖으로 본 정경들이다.
배 속으로 버스가 들어가고, 곧마로 건너 마을로 이동했다. 지금 가는길은 몰데에서 남쪽 베르겐 도시를 향해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어제도 물길을 건넜지만 오늘도 물길을 건너며 노르웨이 남부로 가고 있다.
* 노르웨이인들의 운동
아이에서 아른까지 모두 스키를 탄다. 연어 낚시도 즐긴다. 몇 십 만원에서 몇 백 만원 주고 사는 낚시 회원권을 산다. 부유한 자가 하는 운동 레저다. 테니스는 귀족의 스포츠다. 자격증을 따야 친다. 골프는 비지니스 운동이다. 지형상 많이는 없다. 골프장 잔디가 풀과 함께 자란다.
핸드볼이 인기가 좋다. 여자 축구가 세계 1, 2위다. 실력이 좋다. 태권도는 관광 온 사람에 의해 보급 되고 있다. 남녀 노소 모두 축구를 좋아 하는 나라다. 축구를 좋아하는 것은 세계 공통인 것 같다. 나 역시 좋아하고 한국인 모두 축구를 사랑하지 않는가.
저전거와 오토바이도 큰 운동이다. 산을 오른다. 험준한 산을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오르기도 하고 산길을 질주하기도 한다. 그런데 오토바이는 노인만 타낟. 젊은이는 돈이 없어 오토바이를 못 산다. 헬멧을 써서, 오토바이 운동복을 입어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지만 저 안의 사람은 모두 노인이라 하니 더러는 노인 부부가 산길을 오른다 하니 이채롭다. 자세히 보니 그런 오토바이를 곳곳에서 만나고 있었다.
눈의 나라, 스키는 기본인 나라, 산 곳곳에 스키점프대다. 스키 길이 있다. 평범한 나라와는 다른 차원으로 운동을 한다. 높은 산으로 그들에게 운동장일 뿐이다.
* 우리는 외교 사절단
노르웨이는 한국여행을 하지 않는다. 한국에 가려 하지 않는다.좋지 않은 뉴스만 나온다. 태풍 사건 등 분단의 불안도 하나의 요인이다. 그래서이 나라 사람들은 한국에서 온 여행객을 보고 한국을 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모두 외교사절단이라는 것이다. 좋은 한국을 보여야겠다는 결심이 든다. 개개인의 행동이 한국를 대변한다고 생각하니 숙연해졌다
그들이 한국에 와서 배워가는 것도 종요하지만 이곳에 온 우리들이 한국을 가르치는 것도 중용하다. 좋은 나라, 부지런한 나라, 선량하고 강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알려야 할 것이다.
*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빙하기의 얼음이 땅을 파헤쳐서 대서양 물이 게이랑에르 마을까지 파고 든 것이다. 게이랑에르 마을은 노르웨이의 보석으로 알려질 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주변을 둘러싸고 잇는 수많은 산들이 장관이다. 그 산들 사이로 가장 끝 머리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도시 게이랑에르까지 흐르는 피요르드를 말한다.
노르웨이의 한 지명을 붙여 피요르드를 지칭한다. 몰데 피요르드와 같다. 몰데 마을에서는 하루를 유숙하고 30분 동안 몰데 피요르드를 유람하며 건너 왔다. 오늘도 그렇게 건너갈 예정이다. 마을이, 산이, 물이, 함께 노르웨이의 기막힌 비경을 선사한다.
*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전망대
게이랑에르 피요르드가 가장 아름답게 잘 보이는 곳이다. 버스가높은 산기레 주차하여 내려주었다. 곁으로는 차량이 통행하고 깎어지른 절벽 위에 난간을 만들어 전망대를 설치했다.
이곳 피요르드는 협곡으로 농축된 물빛이 물감을 풀어 놓은 듯 진한 청남빛이다. 굽어진 산곡 사이로 구부러진 물줄기가 비경이다. 머리를 숙여 가까이 보려하면 워낙 전망대가 높은 곳에 우;ㅊ;하여 온 몸이 빠져내리는 느낌으로 소슬하다. 자국민의 오토바이도 지나간다. 그들은 생소하지 않은 듯 도로에서 잠시 보고 떠나지만 이방인인 우리는 버스가 떠난다고 소리쳐도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있다.
* 독수리 길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전망대까지 오른 버스가 내려가는 하산길이다. 피요르드 바닷가 거대한 바윗덩이의 산 하나를 타고 내려가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유람선을 탄다. 그곳으로 가는 길ㄹ이 얼마나 험악하면 독수리 길일까.
내려가는 동안은 자세한 길의 형태를 보지 못한다고, 유람선을 타고 보란다. 요정의 길은 오르막이 절경이었는데, 이번에는 내리막이 절경이다. 그리 길은 코스는 아닌데 꼬불꼬불 산길을 버스는 딱 붙어서, 산과 하나되어 능숙하게 내려간다. 자연에 순응하며 길들여진 자태 그대로다. 사람도, 차도, 거친 자연 앞에서 두려워 하지 않는다. 부드러운 하나다.
*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유람선
유람선이리 하여 바다 주변을 돌고 제자리에 다시 오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노르웨이의 유람은 어느 곳에서도 그랬다. 단거리리든, 장거리든 하나의 큰 이동 수단이다. 유람은 그에 따른 하나의 큰 선물인 셈이다.
이번에는 1시간 동안 타는 긴 코스다. 협곡의 비경을 보며 바다와 함게 선상 중식을 현지식으로 한다. 버스에서 내려 줄서서 탔다. 그 맞은 편 해안에는 대형 크루즈 선박도 들어와 있다. 게이랑에르 마을과 함게 비경을 이룬다.
나는 독수리 길을 보기 위해 오른쪽 갑판으로 나갔다. 배가 출발하여 조금 지나가니 가파른 길이 보인다. 삼각진 산 하나를 독수리의 비상인양 기다란 삼각구도로 길이 나 있다. 'ㄹ'자의 길이 아니고 'ㅅ'에 가까운 길이다. 저 길을 우리가 타고 내려왔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오늘도 왔다 갔다 하는 날씨다. 전형적인 노르웨이 날씨를 만난다. 해, 구름, 비를 번갈아 가며 보인다. 협곡의 피요르드를 배가 지날 때 산정 잔설과 쏟아져 녹이 내리는 폭포 물줄기의 비경에 비는 덩달아 아름다운 낭만이다. 카메라에 스미는 물기가 염려스러울뿐 내 몸 젖는 것은 노르웨이의 자연과 하나되는 축복이다.
새우 샐러드, 빵, 닭고기, 밥, 과일, 커피의 향기로운 식사와 노르웨이 자연의 쌀쌀한 바람, 배의 옆구리에서 피어나는 하얀 물살, 값비싼 이 모두의 선물을 고이 간직하고 가리라.
* 칠자매 폭포
게이랑에르 피요르드 유람 중 가장 큰 비경이다. 7선녀 폭포라고도 부르는데 그야말로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는 하얀 선녀 일곱자매다. 나무도 자라지 못하는 암벽 산길을 하얗게 타고 내려온다.
어디서 탄생한 물인가. 산정 정수리의 겨울 눈이 저리도 많이 남았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난간에 나와 사진기에 담는다. 갈매기까지 덩달아 날며 축제의 장이다. 배는 서서히 지나며 피요르드의 진수를 여유있게 보여준다. 어디 칠자매 폭포만 비경이랴. 깊은 수심이 발하는 저 물빛은 어이 하랴. 대륙이 절벽으로 갈라진 저 고요한 산벽은 어이 하랴. 나의 오감이 게이랑에르 피요르드의 절경에 녹아들고 있다.
* 노르웨이 농촌 마을
게이랑에르 마을에서 배를 타고 헬레쉴트 마을로 건너 왔다. 낮 12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 1시간을 피요르드 바다에서 낭만을 태우며 왔다. 뉴질랜드 남섬 밀포드 사운드 피요르드는 태평양 바다와 이어짐에 바다 끝에서 회항하여 다시 탔던 항구 마을로 되돌아 갔지만 노르웨이 피요르드는 다르다.
수없이 대륙을 쪼개고 들어온 피요르드, 그 바다는 교통수단의 한 길이 되고 마을과 마을을 잇는다. 다시 간 곳으로 돌아감 없이 또 다른 마을로 안내한다.
노르웨이 농촌 마을은 그 어느 곳이든 자연의 꽃이다. 초지 위에 뽀얀 길만 내놓고, 그 길 끝에 고운 색상으로 앉은 건물은 주택이든 공공 건물이든 아름답다. 할레쉴트 마을도 마찬가지다. 넓은 폭포도 있고 학교도 잇다. 학교도 붉은 건물로 자연과 큰 조화를 이룬다.
이 나라는 털카페트를 순록의 털로 만들어 쓰는데 자연 처리만 해서 쓴다. 털이 빠지는 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그래도 값은 비싸단다. 사 가지고 가지 말라고 당부한다. 한국의 500원 짜리 문구가 이곳에서는 3배 비싸게 팔리더란다.
자연을 중시하는 나라, 공장이 보이지 않는 나라, 우람한 산과 푸른 초지, 청결한 호수, 고운 주택, 그것이 큰 재산인 나라 노르웨이다.
* 브릭스달 빙하 가는 산길
구름이 지욱한 작은 농촌 마을 올데를 지나서 갔다. 산자락에 길게 내려온 하얀 덩이의 운무가 비경을 예고한다. 브릭스달 빙하까지는 걸어서도 오르지만 우리는 6인승 오픈카로 간다. 관광객을 위해 동네 사람들이 만든 산길인데 협소하여 천천히 오르므로 30분 정도 소요된다. 전에는 마차로 올랐는데 한국인을 태우고 가다가 사고 나서 중지하고 차로 바꿨다.
산 아래에서 이 마을 주민인 할아버지가 운전하는 오픈카에 타고 산 중턱까지 오른 후 10분 정도 걸어 가서 브릭스달 푸른 빙하를 만났다. 오픈카로 오르면서도 'ㄹ'자의 길로 아슬하고, 폭포와 나무와 계곡물이 이루어내는 풍경이 장관이다. 로키산의 향기다. 걸어서 오르면서도 노르웨이 야생화가 방울꽃으로 고와서 시선을 멈추게 한다.
* 브릭스달 푸른 빙하
1950년부터 시작된 관광 명소다. 8천 살된 얼음이다. 지구 중력과 압력이 딱 맞아서 안 녹아 8천년 동안 쌓여 있다. 지구 온난화로 요즈음은 많이 녹는다. 걱정이 많은 지역이다. 즈릭스달에서 '달'은 '고개 산'을 의미한다. 노르웨이 지역 이름에 많이 붙는다.
빙하가 보일 때 분무하여 용솟음치는 물보라가 하늘과 산을 뒤덭는다. 빙하에서 녹아 떨어지는 물줄기가 거대한 하얀 기둥이다. 그 물은 산정에 고여 빙하 호수를 이뤄 또 새로운 비경을 선사한다.
자꾸 걸어서 빙하 앞에 다다랐을 때 푸른 빛이 소슬하다. 시린 고독을 물고 잇다. 빙하물도 만져보고, 위대한 자연 앞에서 시선을 낮추고, 광채를 보듬는다. 아들은 빙벽까지 올라가 빙하를 만져보고 왔다. 저 산 너머 얼마나 더 큰 빙하가 있을까. 산 계곳 넓은 자락을 푸른빛 빙하로 가득 채우고도 머리에 한가득 얼음을 이고 선 저 산, 장엄한 비경이다.
* 산정 빙하 호수
브릭스달 푸른 빙하가 녹아서는 안되는데 지구 온난화로 자꾸 녹아 내린다. 쉼없이 거대한 빙하 폭포의 물줄기가 이루어낸 호수다. 빙하 특유의 에메랄드빛 호수, 옥색 물감에 분말을 풀어놓은 듯 아련한 색사은 물이라기보다 보석이다. 보석이 한가득 산정에 고여 있다.
오픈카로 오른 산의 높이도 아득하고, 걸어서 오른 높이도 아득하고 모두 올덴 마을에 속하여 있다. 이곳 주민들에게는 낯익은 길이라서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며 보지만 이방인인 나는 그런 값비싼 과정에 대한 보상으로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다.
물을 한 웅큼 쥐어 만져보고, 던져보고, 떨어지는 낙차에 감탄하고, 이 찰라의 행복을 어찌하면 담아갈까. 글로 쓰고, 사진에 담고, 보고, 듣고, 가슴에 담고, 그래도 나는 담아 가기에 모자란다. 이제 떠나면 언제 너를 만나겠는가. 연인과의 이별처럼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뜨거운 이별을 하고 떠나 왔다.
* 올덴 마을 빙하 호수
브릭스달 빙하에 갈 때 이미 보았던 호수다.캐나다 로키산 자락의 어느 빙하 호수처럼 옥빛이다. 올덴 마을을 휘돌아 흐르는 풍경이 비경이다. 브릭스달 빙하에서 내려온 빙하 분말이 백묵을 갈아 섞어 놓은 듯 뽀얗다. 햇살을 만나면 또 다른 색상으로 발하리라.
올덴 마을은 축복이다. 빙하도, 호수도 절경이고 산은 호수와 함께 마을을 빛내고 있다. 이곳에 살면 저 고운 호수를 매일 볼텐데, 그 황홀한 행복을 이곳 마을 사람들은 알까. 지나감으로도 나는 행복하여서 눈시울이 저며온다. 먼먼 동화 속을 꿈꾸듯이 지나간다.
* 노르웨이 트롤
노르웨이 올덴 마을 할아버자는 분주하다. 비가 와서 춥다고 담요와 비닐을 덮어준다. 브릭스달 푸른빛 빙하 계곡을 오를 때도 내려올 때도 비가 왔다. 우산을 쓰고, 비옷을 입고 오르는 진풍경이 이어졌다.
산 중턱 내린 곳에서 반드시 올라올 땐 탔던 그 번호의 차량에 타야 한다. 할아버지들은 절대 바꾸서 태우지 않는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우리의 차가 왔고, 할아버지는 여전히 자시늬 임무을 다 한다. 아무리 비옷을 입었어도, 우산을 썼어도 늙은 손으로 세 사람씩 마주 앉은 여섯 명 모두에게 번갈아 가며 보살펴 담요와 비닐을 가슴팍까지 씌워준 주고 간다.
그런 뒤에야 안전한 자세로 움저난다. 하산길은 나름대로 새로운 비경이다. 야생으로 기르는 어린 가축 염소 새끼들이 줄지어 다닌다. 솟구쳐 내리는 계곡의 물이 순결하고, 동물도 순결하고, 나무도, 풀도 모두 순결한 싱그러움이다.
산 아래 정류장에서 하차 하여 기념품 가게도 구경하고 수많은 트롤을 보았다. 노르웨이 인형 트롤은 모두 익살스럽고 괴물에 가깝다. 그런데 맞은 편 산 입구에 두 개의 커다람 목각 트롤이 서 잇다. 아까 우리에게 정성껏 돌봐준 그 할아버지 운전기사가 떠올랐다. 인상도, 순진함도, 드러나는 고운 마음씨도 그 분과 자꾸 접목이 된다.
그래서 노르웨이 트롤이 사랑받는구나. 산 곳곳에서 마을 곳곳에서 자국인을 지켜주고, 이방인을 지켜주고, 내 조국 장승처럼 꿋꿋한 지킴이이구. 때로는 무서운 존재로, 때로는 아름다운 요정으로 노르웨이의 상징물이다.
* 노르웨이 흙지붕
한국식 초가지붕으로 부자만 한다. 자작나무를 기름에 담갔다가 지붕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얹고 풀을 기른다. 지붕 위의 풀이 자라면 양이나 염소를 올려 뜯어 먹게 한다. 비탈에서 떨어지는 일이 절대로 없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4년마다 바꿔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 아름다움이 장관이다.
노르웨이 여행 중 곳곳에서 만나는 지붕이다. 요정의 길을 넘어 하산할 때 추녀 끝에 바짝 다가가 산중 휴식처 사무실의 흙지붕을 보았고, 산길을 넘어 포데 도시로 갈 때 들른 휴게소에서 상가 건물의흙지붕을 보았다.
무겁게 올라 앉은 흙지붕에 풀이 자라고 있다. 비가 내리면 지붕 위 풀과 풀꽃은 더욱 아름답다. 해발 600m 고지 둥근 능선의 산언덕 구름과 함께 몇 께 몇 채 들어선 한적한 휴게소의 카페와 레스토랑이 흙지붕으로 시선을 이끌었다. 춤추듯 주인님의 지붕 위에서도 흙과 풀은 신나는 표정이다.
* 노르웨이 주택
1930년~1950년 대 집들이 대부분이다. 검은 색, 빨간 색 지붕을 20년마다 바꾼다. 기와 같지만 나무조각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목조 집의 천연 색상이 아름답다. 색칠을 해도 천연에 가까운 빛을 발한다.
건물마다 정원을 더 넓게 한다. 1980년부터 집값이 상승한다. 큰 저택 없이 아담한 주택들로 사는 수준이 비슷하다. 맨 밑에 반 지하 창고로 세멘트 처리하고 나무로 집을 짓는다. 1층은 세탁장, 창고로 쓰고 2층~3층에서 사람이 거주하낟.
도색을 잘 해줘야 오래 보존된다. 인건비가 비싸서 사람을 사지 않고 자기 집은 자신들이 스스로 1년에 1회씩 도색하낟. 한번 지으면 100년 산다. 대단한 인내로 집을 전통에 가깝게 보존하다.
한국 속담에는 '과부 삼년이면 돈이 서 말'이라지만 노르웨이 속담에는 '과부 삼년이면 집이 엉망'이라고 한다. 이 나라는 여자보다 남자가 일을 더 잘 한다. 주택 저원 가꾸기에서부터 지붕 교체까지 잘 하는 노련한 가정 남자도 있다.
자연의 힘을 빌어 사는 나라, 보수도, 관리도 자연의 법칙에 따라 한다. 집을 사고 팔 때는 수수료가 크다. 1천 만원이다. 대출이자도 비싸다. 얼마 전까지는 2.8%였는데 지금은 5.4%로 올랐다. 정신 없이 집값이 오르다가 주춤하고 있다.
돈 비려서 집 사고, 배 사고, 차 사야 세금 적게 낸다. 그래야 대출 받을 때 세금을 감면 받는다. 월급 타면 대출금과 생활비 제하고 남는 돈은 모두 여행비에 쓴다. 은행에 3년 동안 돈을 맡기면 세금을 미리 뗀다. 그리고는 개인 재산이 지금 얼마 있다고 통보한다.
시골집과 도시집의 차이는 없다. 시골집은 조금 넓다. 아이 수에 따라 정원이 크거나 좁다. 땅이 넓은 나라에서 개인에게 할당되는 영토가 많으니 그리 짓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무로 짓는 집도 보았다. 문명이 가져다준 편리함 속에서 우리 나라의 주택은 외형상으로는 튼튼해 보이지만, 100년을 산다는 노르웨이 전통주 택은 내적으로 속찬 주택이다.
* 가정집 국기 게양 의미
집집마다 국기봉이 높이 세워져 있다. 산녘 외딴 집에도, 들녘 시골 농촌 집에도. 얼핏보면 어느 관공서인양 보인다. 가정집에서 이렇게 하는 것은 국경일 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일날 국기를 달기 위해서다.
그 이유가 참으로 당당하여 나는 찬사의 박수를 보냈다. 그리고 크게 웃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보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높은 자존으로 공감했다. 내가 태어난 것만도 애국이라고, 그리 한단다. 이 얼마나 당찬 삶이며 큰 군리이며, 고유한 특권인가. 나의 생일날 홀로 국기 휘날리며 액국을 선포하며 살고 있는 노르웨이의 사람들에게서 권리와 의무의 존중을 배웠다.
별장에서도 국기를 단다. 그것은 외진 곳에서 도우미 필요하거는 나를 찾아 오시오라는 뜻이다. 국기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인간적인 미와 국기를 접목하고 있다.
구기 모양도 다양하다. 꼭 정하진 규격의 네모진 국기만을 걸지 않는다. 세모 모양, 혹은 가다란 모양, 등 나름대로 기호에 맞는 형태로 작성하여 걸어 둔다.
유심히 살펴보니 정말 그랬다. 마을의 집집마다 긴 막대의 국기봉이 있고 더러는 국기를 달아놓고, 어떤 집은 창문에 비스듬히 달았고, 모양도 각기 다르다. 나라를 사랑하며, 나라의 사랑을 받으며 당당하게 사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다.
* 노르웨이 결혼
결혼 비용을 본인 스스로 해결하낟. 부모가 절대로 대주지 않는다. 결혼식고 초청한 사람만 갈 수 있다. 온 손님의 음식값을 모두 신랑과 신부가 내야 한다. 그 도니 너무 많이 들어 결혼식을 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아주 냉철하고 현실적인 사람들이다. 1년 중 파티라고는 망년회 때 주로 연다. 놋 사소, 장신구 사고, 밤새 재미잇게 논다. 파티 문화가 발달되지 않은 나라다. 고독한 땅에서 고독한 그들만의 법칙으로 행복을 엮고 있다.
* 노르웨이인의 직업
두 가지 직업을 가진 자가 많다. 시골에 오히려 많다. 1년을 나누어 50%는 농사 혹은 목축에, 50%는 다른 직업에 종사하낟. 우리 버스 기사도 목초 재배와 함께 운전기사 직업을 가지고 있다.
시골에서 동물을 기를 때는 귀에 자기 집 표시를 붙여서 5개월에서 9개월까지 방목한다. 11월에는 크리스마스 음식으로 잡기도 한다. 가축의 새끼는 5개월 걸린다. 나중에 새끼는 표가 없어 찾기 어렵다. 그래서 우두머리에게 방울을 달아준다. 방울 소리를 듣고 찾는다. 떼지어 다니는 것이 특징이라 새끼는 반드시 어미를 따라 다닌다. 그렇게 해서 흩어진 동물을 주인이 찾지만 모자란 새끼는 더러 남의 집으로 가기도 하낟. 그거은 할 수 없다. 줘야 한다.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노르웨이 뿐만 아니라 뉴질랜드, 캐나다에서도 방목하는 가축에 대하여 이해가 쉬웠다.
뺑소니 차는 절대 금지다. 한 마리 치면 3천 크로나, 한화로 50만원 배상이다. 만약 모르고 치었을 때는 직접 농가에 들어가 자진 신고하고 해결한다. 전염병이 돌면 전액 그 손해본 액수 만큼 국가에서 보상 지원해 준다. 목축업에 대한 사스템이 아주 잘 되어 있다.
이렇게 농촌 사람들은 목장, 농사, 모고재배와 같은 시골의 일을 하면서 도시에 나가 이중 직업을 가지고 돈을 벌며 산다. 이런 풍슴은 한국과 비슷하지만 인구에 비하여 드넓은 영토를 소유한 노르웨이인들에게는 또 다른 큰 축복이다.
* 노르웨이에서 쓰는 편지
노르웨이 여행은 대부분 버스로 이루어진다. 한동안 이동하면서 기가 막힌 전원 풍경을 보고, 잠시 내려 관광 명소를 보고, 또는 버스가 통째로 들어가는 배로 바다를 건너고, 유람선을 타고 유람하며 가기도 하고 모두가 환상적인 여행이다.
바라보는 그곳이 모두 절경이다. 어느 것 하나 모난 곳이 없다. 흙이 보이지도 않고, 크레파스로 파랗게 칠한 바탕에 짐이 있고, 산이 있고, 호수가 있고, 바다가 있다. 내 조국의 한뼘 땅에도 넝작물을 심듯 노르웨이는 한뼘 땅에도 목초 재배로 온통 푸른 물결이다. 나는 기막힌 이 정경을 보며 부모님과 작은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어머니, 아버지께>
어머니, 아버지 이런 나라도 있네요. 온 천지가 풀입니다. 산천 초목이 푸르다는 말은 그저 무색한 단어입니다. 이곳에서는 ㅡ. 경래가 말하길, 엄마 아빠도 이곳에 와서 살라고 합니다.
천국입니다. 높은 산과, 짙푸른 초원에 드문드문 아주 간간이 보이는 예쁜 집들이 꿈속 같은 정경입니다.
세월이 야속합니다. 어머니, 아버지가 60대만 되었어도 이런 천국을 보여 드릴 수 있을텐데, 그러하지 못하시는 부모님이 안타깝습니다.
구름이 내려와 사람과 함께 삽니다. 어머니, 아버지 오래 오래 사셔야 합니다. 뜨거운 눈시울로 글월 올립니다.
<작은 아들 승래에게>
너만 두고 떠나온 것이 안쓰럽구나. 이런 세상도 있음을 너는 후일에나 알겠지. 네가 세계 약대생 학회 세미나 참석으로 다녀온 미국 뉴욕은 또 이와는 다른 세계였겠지. 그곳은 현대 문물이 너를 황홀하게 했겠지.
이곳 노르웨이는 태초의 자연이 엄마와 아빠와 형을 황홀하게 한단다. 잘 있겠지. 10박 12일의 북유럽 긴 여행, 이제 5일 째다. 핀란드, 스웨덴, 그리고 노르웨이 여행 중이다. 덴마크, 러시아로 곧 떠난다.
승래야, 이런 땅도 있구나. 푸른 숲, 초지, 산, 호수, 나무가 온 영토를 덮고 있다. 흙이 보이지 않는 이 푸르름 속에서 극치의 평화다. 후일에 너도 꼭 노르웨이에 오거라. 여행에 아낌없는 투자로 너의 가슴과 두뇌를 키우거라.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 하고 호텔로 가는 중이다. 만나는 날까지 건강하자. 안녕.
* 포데 마을 호텔 투숙
인구 1만명의 작은 마을 포데에 왔다. 작은 개울이 흐르고 다리를 건너 버스가 지나는데 큰 낭만이다. 마을에 비하여 너무 큰 대형 버스라고 여겨지는데 이곳은 유전 지역이어서 기름 회사 직원들이 많이 들어와 있어서 비행장까지 있단다. 도시와는 먼 소도시인데 교통이 편한 곳이다.
리카 썬 피요르드 호텔에 투숙했다. 시공이라서 잠자리와 음식이 불편할 지 모르겠다던 교민의 말은 정반대였다. 시골이라서 객실도 넓고, 바깥 풍경도 그야말로 걸르지 않은 노르웨이 자연 풍경 그대로이고, 음식도 시골이어서 푸짐하고 다양한 메뉴로 식탁을 빛낸다.
송아지 고기 요리와 다양한 노르웨이 전통 음식이 입맛을 돋구어 모두들 축제의 분위기로 많이 먹었다. 벽난로와 어린이 놀이방이 인상적이다. 7세 소년이 게임을 한다. 영어로 말을 걸었더니 알아는 듣는데 답변을 영어로 구사하진 못한다. 손짓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귀엽고 순수한 노르웨이 아이다. 큰 아들에게 게임기를 넘겨주며 알려준다. 그외 놀이방에는 장남감과 미술 도구가 잘 갖추어 있다. 아이와 함께 머물기에 더 없이 좋은 호텔이다.
난방은 창가 히타 배브로 하고, 화장실 바닥에 불이 들어오는 버튼이 있어 켰더니 바닥이 따스하다. 모두가 이색적인 노르웨이 호텔 체험이다.
내일로 노르웨이 마지막 관광이다. 오전 7시 40분에 출발한다. 베르겐으로 떠난다. 배일의 하이라이트는 산악 열차다. 왕복 4시간 타며 산을 올라 갔다가 내려온다. 기대되어 가슴이 부푼다.
포데 마을의 밤 역시 환하다. 백야의 빛이 드리워 11시인데도 짙은 어둠이 아니다. 내일을 위해 두꺼운 커튼으로 빛을 가리고 잠을 청했다.
2007년 8월 6일 월요일 노르웨이 포데, 송네피요르드, 플롬산악기차, 베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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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데 리카 썬피요르드 호텔
아침 일찍 일어났다. 산골 향기가 물씬 나는 정경이다. 노르웨이 마을 모두가 전원 풍경이지만, 이곳 포데 마을은 더욱 그렇다. 산과 나무들이 울창하고 초텔 건물이 넓게 자리하여 아름답다.
방도 넓고, 수영장도 있고, 뷔페식당도 크고 음식이 다양하고 포도가 특히 달다. 인심좋은 시공 향기가 목조 건물 사이로 흐른다.
정원에는 연어 동상이 물결을 타고 있다. 나는 자연인이라는 언어와 함께 두 아이 동상이 그 곁에서 행복흘 노래한다. 노노르웨이의 표상이다.
먼 데 산의 구름, 높은 산, 한적한 거리, 소박함 등이 나를 행복으로 이끈다. 조용한 포데의 아침이 평화롭다. 리카 썬피요르드 호텔은 애잔한 감성으로 나의 가슴에 깊게 담긴다.
* 기차 타러 가는 길
여전히 노르웨이 들판은 평화롭다. 누가 이 아름다운 작품을 탄생시키겟는가. 촉촉한 영토, 촉촉한 전원이다. 거대한 구름 속에 태양이 숨기도 하고, 검은 구름마저 예쁜 나라다. 호수가 보듬는 나라, 자작이는 물빛은 보석이다.
산악 기차를 타러 간다. 노르웨이의 많은 배와 버스로 본 비경도 대단한데 기차를 타고 오르며 가파른 산의 호흡까지 느낀다니 사뭇 가슴이 부푼다. 어느 곳을 보아도 나는 행복하고 평화롭다.
* 노르웨이 터널
바위산이 많아서 터널도 많다. 암석의 단단한 내부를 못만 박아 그대로 보존한 자연 터널도로다. 오늘 우리는 베르겐까지 가며 많은 터널을 지난다. 노르웨이 서쪽 지방의 특징이다.
가장 긴 24.5Km의 터널도 지날 것이란다. 해저 터널 빼고는 세계에서 가장 긴 터널이다. 300개의 터널이 있다니 노르웨이에 사니 많음이 증명되는 대목이다. 그것도 암산이기에 그렇다.
국가 터널은 무료 통행이고, 일반 기업에서 설립한 터널은 버스의 경우 한화 8만원에 해당히는 통행세를 낸다. 터널 뚫는 공법이 세계 최고다. 여러 나라에서 와서 배워 간다. 천정 위 중앙에만 불이 줄지어 있고 천연 그대로 보존코자 어둡다. 환풍기도 통행 차량 댓수에 따라 설치한다.
끝없이 터널 속으로 달리고 있다. 우리 버스 홀로 달린다. 조용하고 고적한 터널들ㄹ이 짧게, 길게 바위산을 가르며 이방인에게 비경을 선사한다.
* 노르웨이와 한국의 수교
1920년 한국과 수교가 이루어졌다. 북한이 먼저 수교했는데 지금은 북한 대사관이 없다. 밀수 하다가 발각되어서 추방 당했다. 공산국, 자유국 구분이 없이 대사관이 있다.
오슬로에 한국 대사관ㄴ이 있다. 노르웨이에 잇는 한국 교민 300명 중 오슬로에 200명, 기타 지역에 100명 산다. 지구의 북반구, 이토록 멀고 아득한 곳에 내 동포가 와서 뿌리 내리고 사는 모습이 대견하다. 우리 나라와는 분명 다른 문화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고, 우직하게 사는 삶의 방향이 유사하여 두 나라의 수교와 함께 국민들 간에도 깊은 교류가 활성화 되길 소망한다.
* 노르웨이의 의료 시스템
노르웨이인은 건강하다. 90세 노인도 스스로 집수리 한다. 병원은 1회에 1만 8천원, 1년에 20만원 들며 그외는 나라에서 지원한다. 약을 잘 안 먹는다. 가정의학 의사를 만나명, 감기 걸려서 가면 약을 안 주고 10일 휴가 하도록 처방한다.
전문의는 만나기 힘든다. 기다리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때로는 다 나은 뒤에 만나기도 한다. 주치의 만나는 것은 지금은 돈이 많이 든다. 의사가 모자란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도, 주치의가 다리 아프다고, 연락하면 오라고 돌려 보낸다. 그리고는 1개월 뒤에야 편지가 온다.
의사는 어렵게 만났는데 오른쪽 다리를 진단하면, 나는 왼쪽 다리가 아픈데요.ㅡ 하면 다시 주치의 진단서를 끊어 오라 한다. 그러면 2개월 후에야 왼쪽 다리를 치료받게 된다. 생명 위급시는 무료로 빨리 진료에서 치료까지 모든 것 다 해준다.
뇌졸증 환자에 대한 치료가 한국과는 큰 차이라며, 이곳 교민의 일화를 전해준다. 한국 노모는 개인이 치료받다 죽었는데 노르웨이 시부는 병원에서 다 치료해주고, 퇴원 후 집에 다가도 환자에 맞게 구조를 설치해주며, 간호사까지 와서 수시로 점검해 주더라는 것이다.
치과는 보험이 안 된다. 18세까지만 무료다. 그 후는 1회에 10만원 정도만 낸다. 이빨은 생명에 위험이 없어서 보험을 안 해준다. 이빨 1개 빼는데 3백 크로나, 한화 4만 8천원이다.
이 나라 사람들은 건강을 철저히 지킨다. 한국 이민자도 무조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다. 암이 거려도 직장 그 자리는 나을 때까지 비워둔다. 병이 걸려도 문제 없다.
전반적으로 의료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 복잡한 절차도 있지만 근본적인 치료에 접근하며, 신뢰 가는 의료지원에 부러운 생각이 든다.
* 노르웨이의 한국 입양아와 양육문제
한국 입양아들은 노르웨이 국적으로 노르웨이어를 쓰는데도 그들을 한국인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교민이 아니고 입양아다. 1980년까지 입양아가 많았으나 지금은 입양하지 않는다.
엄가 나이에 따라 입양아가 결정된다. 조건이 까다롭다. 부유한 정도를 따지면 3500만원을 줘야 입야이 가능하다. 지금은 태국, 중국,베트남 아이를 입양한다. 엄가 나이가 35세면 1세, 40세면 어린이 나이는 5세다.
입양아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한국에 관심을 가지며 어릴 때 왔으도 한국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면, 박사도 있고, 한국에 무관심하며 한국을 싫어 하는 사람도 있다. 부잣집 입양아들은 교육을 많이 받아 잘 되어 한국에 대하여 무관심이다.
어느 교수가 유교사상 논문을 잉뱡아에게 도와달리고 했는데 입양아는 한국에 대하여 혈육을 소중히 여기고 부모의 자식 사랑이 대단하다고 하니 그러면 왜 자식을 입양 보내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노르웨이는 절대로 부모가 자식을 버리지 않는다. 한국은 이혼 후 아이를 조부모에게 맡긴다. 이것이 한국과 노르웨이의 큰 차이다. 입양아들은 적응을 잘 한다. 입양 시스템이 잘 되어서다.
어찌보면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국 입양아가 타국 노르웨이에서 사랑 받으며 이 나라의 어린이 양육제도에 따라 잘 길러준다니 기뻐해야 할 일이다. 부디 한국을 잊지 말고, 비록 조국을 떠나 있어도 조국을 향한 마음 하나는 열어두길 비란다.
* 오토바이 타는 노인
오토바이를 탄 노인이 버스를 계속 따라온다. 값비싼 오토바이를 젊은이는 소유하지 못한다. 산에서, 길에서 만나는 오토바이맨은 모두 노인이다.
노인이 퇴직 연금으로 부유하여서 오토바이를 타며 즐겁게 산다. 헬멧을 벗으면 대부분 노인이다. 산에서 부부도 보고, 여러 곳에서 오토바이 타는 노인을 보았다. 한국과는 반대라는 점에서 의아했다.
* 송네 피요르드 해협 마을
아름다운 송달 마을을 지난다. 송네 피요르드 해협에 속한 마을이다. 송네 피요르드는 아주 크다. 그 주변의 해협은 장엄하고 웅장한 경관이 전개된다. 이 마을 역시 대단하다.
피요르드 바다를 바라보며 산 언덕, 바닷가 해안 가득 고운 집들이 앉아 있어 비경이다. 이 마을에는 사과 나무가 있다. 정원수로 사과 나무를 심는다. 각 가정마다 많이 심었다. 아름다운 마을이다.
또한 이곳은 연어가 많이 나고, 연어 박물관도 있다.
* 송네 피요르드 유람선
송네 피요르드는 게이랑에르 피요르드와 함께 노르웨이 3대 피요르드 중 하나다. 100만년 전 빙하시대에 빙하의 압력으로 깎여진 U자형 계곡으로 노르웨이에서 가장 긴 204Km, 가장 깊은 1309m 피요르드다.
아름다운이 빼어나 세계인의 사랑을 받으며 협곡과 협만의 경관이 대단하다. 산 꼭대기에는 하얀 준이 덮여 있고 절벽에서는 폭포수가 흘러내려 절경이다.
터널을 지나자 마자 바닷가에서 버스에 승차한 채로 페리호에 승선하였다. 배에는 자전거 2대를 자동차 위에 실은 차, 스키용구를 실은 차, 버스, 트럭 등 많은 차량이 실려 있다. 15분 동안 피요르드 바다를 건너 간다.
해무와 구름까지 내려온 해협은 비경이다. 대서양 끝선 수평선까지 카메라가 없다면 이 눈부신 아름다움을 어찌 담아갈까. 수차례 타고 건너는 피요르드 바다지만, 항상 가슴을 흔든다. 먼 후일 네가 그리우면 나는 어이할까. 너의 파란 눈, 넓은 가슴이 자꾸 내게로 와서 환상으로 앉으면 오늘의 너를 기억하며 꼬옥 보듬으리라.
* 노르웨이 최장 레르달 터널
1995년에 시공하여 2003년에 완공되었다. 24.5Km 세계에서도 해저 터널을 빼면 최장 터널이다. 국가 터널로 무료 통행이다. 기름 판 돈으로 뚫었다.
베르겐과 오슬로를 잇는 터널로 산을 하나 돌아가던 길을 단축시켰다. 앞과 뒤, 중간 세군데에서 뚫었는다. 중간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5mm의 오차로 만났다. 아주 정확하게 시공된 의미를 상징한다.
화재 예방, 대치 시설, 환기통, 산 위로 속도 위반 감지 카메라 설치, 6Km마다 조명 설치, 등 완벽한 내부 구조다. 지루함을 없애주려고 6Km마다 빙하 모습을 조명해준다. 3군데에 설치 해두었다. 보라빛 조명이 빙하 색상을 연출한다.
우리 버스도 그곳 휴식 공간에 잠시 쉬어 가념 사진도 찍고 터널을 살펴 보았다. 시속 80Km까지 허용하는 터널은 길도, 달리는 차도, 조명도 장엄하다. 노르웨이는 긴 나라여서 이 터널이 있어도 베르겐에서 오슬로까지 자동차로 8시간 걸린다. 오리는 지금 오슬로에서 올라오며 노르웨이를 둘러보고 마지막 코스인 베르겐으로 가는 중이다. 터널 체험도, 터널 안의 정차 체험도 잊지 못할 소중한 여행이다.
* 플롬 산악 기차역
이곳 역시 송네 피요르드에 접한 플롬 마을이다. 인구 4500명, 여름에는 관광객이 많아 일손이 부족하여 외지에서 와서 일하는 곳이다. 이곳 기차역에서 로맨틱 열차 플롬라인을 탄다. 해발 886m의 산정을 산악 열차로 왕복 2시간 탑승하여 노르웨이 산의 비경을 보기 위해서다.
사실은 베르겐과 오슬로를 왕복하는 기차와 연결하는 것으로 20년 동안의 공사로 이룬 교통수단인데 지금은 관광지로 바뀌어 이 지역의 효자 노슬한다. 산정에서 베르겐과 오슬로행을 바꿔 타기 위해 이 지방 사람들은 승차하지만 우리는 타고 올라간 그 기차를 그대로 타고 내려 오는 것이다.
단거리용이라서 기차 시설은 그리 좋지 않다. 20Km 철로를 달린다. 크루즈 배를 타고 세게인이 모이는 곳이다.
한국의 어느 시골 기차역 향기다. 다르다면 세계 각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플랫트홈이 사람의 꽃을 한가득 피우고 있다는 것이다. 아름다운 꽃도 방긋 웃고, 사람꽃도 방긋 웃고, 손님을 태우러 오는 기차도 신명나게 웃고, 플롬 산악 기차역은 행복한 비명이다. 햇살마저 곱게 내려앉는다.
* 로맨틱 열차 플롬라인 탑승
피요르드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플롬 지역에서 미르달 사늬 기차역까지 20Km의 철로를 따라 약 1시간 정도 달린다. 특히 이 로맨틱 열차는 휘감아 흐르는 계곡의 흐름에 맞춰 절멱을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며, 게곡 아래 절경을 이루는 물줄기를 지나 달리므로 시종일관 펼쳐지는 우앙한 규모의 산과 천둥소리의 푹포까지 본다.
세명씩 마주보며 의자에 앉았다. 실내가 목조다. 하나투어 승객의 좌석은 따로이 지정되어 승무원이 미리 유리창에 붙여 주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오슬로 또는 베르겐으로 가지 위해 이 기차를 이용하지만 그외는 관광객이다.
기차 안은 앉고, 서고 한가득이다. 노르웨이 산을 서서히 타고 오른다. 점점 낮아지는 산속 마을이다. 식물들이 가까이 보이고, 굴러내린 풀무더기, 산곡의 물 등 모두가 신비롭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쵸스 폭포다. 나비처럼 하얗게 물이 부서져 내린다. 기차는 잠시 정차하여 가까이 다가가 보도록 했다.
* 쵸스 폭포
로맨틱 열차 플롬라인에서 잠시 내려 다가갔을 때 물보라가 시야를 덮는다. 산 꼭대기에서 무섭게 쏟아져 내리는 폭포의 구비구비가 장엄하여 천둥소리처럼 산을 울린다.
물의 양이 많고 길이는 그리 길지 않아 한바탕 짧은 시간에 요동치는 폭포가 장관이다. 하얀 햇빛이 내려와 물과 하나된다. 고운 분무다. 키요스 폭포라 부르기도 한다.
폭포 앞에서 잠시 쉬고, 기차 행을 위해 산 중턱에서 쉬고, 기차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준다. 생명이 흐르는 산, 우렁우렁 산을 적시는 물은 심장의 거대한 호흡이다.
* 산정 기차역
타고 간 그 기차에 그대로 오르라는 말을 염두에 두고 내렸다. 이곳에서 5분간 정차한다. 맞은 편의 기차를 타면 엉뚱한 곳으로 간다. 베르겐 또는 오슬로로 가게 된다. 빨간 기차는 오슬ㄹ로 혹은 베르겐 가는 기차, 초록 기차는 아랫마을과 산정만 오르내린다. 두 열차가 산정역에 있다. 우리의 기차는 초록색이다.
산정 기차역은 컸다. 산머리를 다듬에 만든 기차역은 평지의 모양과 동일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사방이 산이다. 산 아래로 고지대의 작은 마을도 있다. 곳곳에는 아름다운 별장도 있다.
노르웨이인의 노력과 땀으로 일군 산정 기차역, 산정 철로, 우리는 외인, 낯선 문화를 보며, 낯선 풍경을 보며 고마움을 느낀다. 타고 온 초록 기차에 다시 올라온 길로 하산했다. 수작업으로 뚤은 산악 터널도 지나고, 산악 다리도 지나고 소슬한 비경이다.
* 구드방겐으로 이동
산정 기차역에서 플롬 마을에 다시 내려와 구드방겐 마을로 간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구드방겐 마을까지 2시간 걸렸는데 터널로 20분에 간다. 5Km 터널을 지나고 11Km터널을 지난다. 이제 터널은 일상적인 노르웨이의 한 도로로 다가온다.신기하던 눈이 잦은 터널에 적응되고 있다.
가는 동안의 송네 피요르드 바다가 비경이다. 푸르다가, 푸르다가 지쳐 누운 검푸른 바다의 가슴팍, 높은 산은 내려와 따스히 보듬고 있다. 산과 바다가 하낟. 눈부신 절경이다.
* 노르웨이산 랍스터 바닷가재 중식
송네 피요르드 바다가 보이는 해안 식당에서 노르웨이산 랍스터 바닷가재를 먹었다. 야외 식탁에 앉아 풍상한 점심이다. 어디 가재만 먹었던가. 산도, 바다도, 푸르름도, 햇살도 모두 배부른 비경이다.
피요르드 바다의 한줄기가 구드방겐 마을까지 들어와 있어 크고 작은 배가 들고 난다. 식당은 세계인이 한가득이다.
커다란 바닷가재를 반으로 갈라 소스 바른 것, 볶음 밥, 야채, 감자, 케익, 커피까지 완벽한 식단이다. 가재가 살도 많고 맛도 향기롭다.
흙지붕에 풀과 꽃이 자란다. 식당 건물 모두 그렇다. 크고 넓은 흙지붕이 노르웨이의 상징으로 자태를 뽐낸다. 구드방겐에는 연어가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연어 박물관도 있으며 자연과 산물이 풍성하고 아름답다.
* 백색 매직 동굴
인공 방음벽이다. 외관상으로는 통째의 산인데, 옆구리 두 군데를 뚫어 출구와 입구의 문을 만들었다. 산 하나가 통으로된 동굴이다. 두터운 잠바를 나누어 준다. 영어로 여인이 안내한다.
한 사람씩 촛불을 켜둔 카페트를 따라 걸러가낟. 마음을 가다듬는 의식으로 춧불을 하나 주면 물 위에 띄운다. 캄캄한 굴 안의 작은 호수가 예쁘고, 촛불도 예쁘다.
동굴 깊숙한 끝부분에서 케익과 커피를 준다. 노르웨이 음악가 그리그의 음악을 들으며 평온을 찾는 동굴이다. 20분 정도 굴속에서 버내며 시린 빛과 시림 기온으로 숙연해진다.
자연 동굴이 아니라 하얀 백색 돌을 캐낸 동굴이다. 굴 밖에 파낸 하얀 돌을 수북히 쌓아 두었다. 우리가 버스에 올랐는데도 안내하던 노르웨이 여인은 갈색 노르웨이 복장으로 나와 문 앞에서 배운하다. 손을 연이어 흔든다. 정자세로 석녀처럼 서서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을 흔들어 이별을 고한다. 동굴도, 여인도, 아름다워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 스탈하임 산언덕
가파른 산길을 오른다. 해발 600m 산정, 산언덕 조망소를 향해 버스는 구비구비 꺾어진 길을 개미처럼 오른다. 예정에 없던 선물이다. 몸이 저리도록 험악한 산길이다. 마차가 다니던 길이다.
산정에 오르니 큰 호텔이 있고 정원과 로비를 지나 조망소에 갔다. 뚝 끊어진 절벽 난간 아래 바위산과 시내 계곡이 비경을 이룬다. 눈부신 햇살을 받으며 한동안 산풍경를 보았다.
* 계단식 폭포
게단을 이루며 떨어지는 푹포가 무섭도록 장엄하다. 최근경까지 가서 떨어지는 물결을 만져 보았다. 높고 넓은 폭포가 산의 할머니처럼 인자하다. 가까이 다가간 외인에게 물은 곱게 분무한다.
도로에서 산길을 따라 걸어간 그곳에서 거대한 폭포를 만나고, 다시 낭만아 흐르는 계곡물을 보며 걸어 나왔다. 노르웨이 한 가정의 식구가 냇가에 텐트를 치고 자연을 즐기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전형적인 노르웨이의 풍경이다. 폭포는 여전히 게단을 이루며 절벽을 타고 내린다.
* 노르웨이의 이혼과 재혼
연애는 밖에 나가서 눈을 찡긋하면 짝을 이루고, Sex까지 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돈을 주고 받으면 안된다.
결혼은 하되 이혼율이 50%다. 이혼 3번 하면 남자는 쪽박 찬다. 공식적인 결혼을 하며, 전에는 교회에서 동성 결혼을 금지햇는데 목사 부부가 교회에서 동성 결혼 하다가 경찰에게 신부를 낚아 채였고, 그후 그 후 거센 항의로 지금은 동성 결혼을 허용한다. 그러나 허가일뿐 잘 하진 않는다.
아혼하면 아이들이 공개적으로 말하며 다닌다. 엄마가 이혼 후 다른 남자데리고 오면 '우리 엄마 남자 친구야' 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내 나이(본인), 네 아이(배우자), 우리 아이(합동)ㅡ합쳐서 5명 기르는 자도 있다.이혼 재혼 반복으로 이런 일이 빚어진다.
전에 엄마 애인이 잘 해줬는데 바 버렸어ㅡ. 우리 엄마 애인은 좋다ㅡ. 그 아저씨 이름이 뭔데?ㅡ. 비욘ㅡ. 아, 그게 우리 엄마 애인이었는데ㅡ. 이런 경우도 잇다니 아이에게도 이혼과 재혼은 열려 있다.
2년 살면 부부로 인정한다. 그전에는 동거일 뿐이다. 아이는 모친에게 양육권이 80%다. 아빠는 만 18세까지 양육비 지원해야 된다. 월급에서 곧바로 상대에게 털려간다. 그래서 남자는 3번 이혼하면 그런 돈을 대느라 빈털털이가 된다.
1년에 반반씩 엄마집, 아빠집에 다니며 살기도 한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 아빠집 간다.' '나, 엄마집 간다.' 쉽게 말하는 아이들이다. 여자가 안 참는 나라다. 이혼 사유도 별 것 아니다. 출장 갔을 때, 술 지나칠 때, 이혼이 가능하다. 한쪽에서 불만을 시도하면 이혼을 받아들인다.
노르웨이는 기독교 국가다. 모두 평등하게 한다. 이혼녀의 아이 양육비는 980 크로나의 배를 지불한다. 18세까지다. 이혼녀 불쌍하다고 도와준다.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얄미우면서도 복지가 장 된 노르웨이의 이혼, 재혼 풍경을ㅡ.
한국 가요를 들으며 계속 호수를 따라 달린다. 주현미, 심수봉, 나훈아 등 반가운 고국의 노래가 노르웨이의 산길을 적신다. 그래도 나 조국의 결혼, 이혼, 재혼, 아직은 좁고 험한 그 길목이 좋다. 사랑스럽다.
*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
터널 4개를 지나서 베르겐에 왔다. 계단식 폭포에서 1시간 30분 달려왔다. 해가 맑은 날이다. 25도 기온 쾌적하다. 노으웨이 서부의 긴 터널들, 수많은 터널들,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기차 터널도 있었다.
베르겐은 역시 항구 도시다. 인구 23만명 꽤나 큰 도시다. 크루즈 배 한척에 1천명씩 들어온다. 지금 3척이 들어온다. 그러면 거이 외인으로 이곳은 가득하다. 베르겐은 풍성한 도시 냄새가 난다. 항구엔 배도 많고, 어시장엔 사람도 많고, 사람 냄새가 난다.
이제 호텔로 가서 여장을 푸고 한국의 남산과 같은 곳에 가서 베르겐의 전망을 본다. 단단한 노르웨이 제2의 도시 베르겐이다.
* 베르겐 호텔주변 풍경
아름답다. 호텔은 베르겐 도심 한복판에 있다. 도로가 사방으로 뚫려 있고, 정면으로는 체코의 바츨라프 광장과 유사한 도로와 뜨락이 이어져 있다.
주변에는 상가도 즐비하고, 사람도 많이 오간다. 물이 흐르는 연못에는 석상과ㅣ 징검다리가 이색적이다. 휴식공간으ㅗ 호텔 손님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가족과 함께 와서 놀고 잇다. 모두가 아름답고 눈부신 정경이다.
* 베르겐 번화가
호텔에 짐을 풀고 산억덕 전망대로 가기 위해 많이 걸었다. 번화가 대로를 따라 베르겐 시민들의 걸음 속에 섞여서 갔다. 동상도 보고, 수많은 오토바이도 보고, 도심 곳곳을 거쳐서 갔다.
바닷가 항구는 또 만나진다. 여전히 분주한 곳이다. 어시장과 배, 사람들, 거리 악사들로 향기로운 거리다. 나는 그렇게 베르겐 번화가를 활보했다. 석양 해거름에 나의 발자국이 베르겐 도심에 무수히 찍히고 있었다.
* 플뢰엔산 전망대
해발 320m 산정이다. 자그마한 역에서 등산 열차를 타고 오른다.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다. 10분쯤 걸려서 전망대에 하차했다. 호주 블루마운틴을 오르던 열차와 유사하다.
산정은 베르겐 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베르겐은 깎아지른 피요르드의 장엄함에 넋을 잃는 곳이다. 아름다운 항구 도시 베르겐은 오슬로에 이어 두번째로 큰 도시다. 5월부터 10월까지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다.
지금은 8월, 베르겐은 한창 무르익은 비경이다. 전망대에서 베르겐 시내는 물론 항만 등이 한중에 보인다. 우리가 복이 많다고 한다. 비가 많이 오는 곳에 오늘은 비가 안 온다. 연중 200일 이상 비가 오는 도시라는데 오늘은 해가 나와서 우리의 여정을 빛낸다. 이런 날은 이곳 사람드은 다 벗고 나와서 거리에서 썬텐을 한단다.
멀리 영국으로 가는 부두가 보이고, 크루즈 배가 피요르드 바다를 수놓고, 베르겐 부유촌도, 베르겐 아름다운 시가지도, 섬도, 섬을 연결한 다리도, 한눈에 담긴다.
전망대는 넓다. 길을 따라 계속 오르니 산길 산책로와 이어진다. 기념품 가게도 있어 책과 기념 T셔츠, 모자를 샀다. 다시 열차를 타고 내려왔다. 베르겐의 전신을 본 정수리, 가슴 깊이 담긴 베르겐을 품고 간다.
* 한자 동맹 건물
바다 안전 무역 동맹을 일컫는다. 외국인만 살도록 허가한 건물들이다. 1250년부터 1702년까지 살며 화재가 크게 났다. 1704년 독일인드이 다시 지었다. 모두 목조 건물, 상가 건물이다. 그날의 흔적이 오롯이 남아 ㅣㅆ다.
1955년도에 불이 나서 6채는 다시 지었다. 불이 너무 나서 돌로 지었다. 1480년에도 불, 1912년에도 불, 목조 건물은 그렇게 잦은 화재를 겪어 왔다. 독일인들이 상권을 누리던 곳이다. 독일인 상가였는데 지금은 모두 빈터다. 독일 아이들이 유학오면 산수와 종교를 가르친 곳이다. 독일인끼리만 결혼했다.
1700년도 산업 혁명으로 1754년도에는 상권은 독일, 땅권은 노르웨이가 지켜 오다가 지금은 모두 노르웨이가 찾았다. 총 58채 3층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불나면 모두 연이어 다 타버리도록 지어져 있다. 이곳은 그래서 불과 여자를 격리시켜 저멀리 떨어진 곳에서 밥 짓고, 생할하도록 했다. 목조 건물에서는 장사만 가능했고, 돌집에서는 생활이 가능했다.
이때부터 베르겐 소방서가 생겼다. 16세기 중반이다. 역사 깊은 건물 앞에서 독일인의 자취도 읽고, 노르웨이으이 아픔도 읽는다. 도로변에는 아름다운 색상과 조형으로 건물을 다시 지어 화사한데 골목을 따라 걸어 들어가면 본 목조 건물들은 귀신 나올만큼 어둡고 싸늘하다. 그대로, 그날의 역사를 전시하고 있다.
* 브리겐 거리
상권을 독점하며 돈을 많이 벌던 거리다. 한자 동맹 거리다. 현재는 일반 상가가 즐비하다. 노변에까지 상인과 객으로 한가득이다.
검정 높은 탑에 유네스코 지정 거리이며 유네스코 지정 건물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앞에는 바다가 출렁이고 곁에는 한자 돔맹 무역 건물이 그날의 포즈로 뽑내고 줄지어 서 있다. 비경이다.
* 베르겐 항구와 어시장
비릿한 향수다. 내 고향 대천 바다 향기다. 걷고 또 걸어도 바다는 이어진다. 브리겐 거리에서, 한자 동맹 건물 앞에서 헤어져 각자 호텔로 가라 함에 우리 가족은 항구와 어시장을 돌며 구경했다.
수많은 크고 작은 배들, 정박한 고깃배들이 정겹고, 아담한 항구와 지금은 늦은 시각으로 문닫은 어시장이 정겹다. 항구라 하여, 어시장이라 하여 변두리가 아니다. 베르겐의 큰 도심이다. 사방으로 차가 줄지어 다니고 베르겐 시민들이 분주히 오가는 곳이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는 시민과 사진도 찍고 거리 악단도 구경하고, 온길을 더듬으며 호텔로 갔다. 오래도록 나의 가슴에 저장될 아름다운 도시 베르겐이다.
* 베르겐 호텔 투숙
베르겐 호ㅔㄹ 주변을 많이 걸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내일은 새벽 일 찍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간다. 노르웨이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호텔은 크고 아름답다. 도심에 있어 드나들기가 쉬워 좋다.
장엄한 노르웨이의 여정을 접으며 곱게 눕는다. 마지막까지 따스히 품어주는 보금자리다.
2007년 8월 7일 호요일 베르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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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겐 출발
아침밥을 싸 가지고 공항으로 향했다. 오전 5시 라디싼 호텔을 출발했다.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으로 가는 아침 6시 55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다. 공항까지는 20분 소요된다.
호텔 앞에서 배회하는 두 아이를 보았다. 우리 일행에게 담배가 있느냐, 담뱃불이 있느냐, 어디서 왔느냐 자꾸 묻는다. 버스에 앉아 바라보니 그들의 행봉이 수상하다. 호텔 주변에 머무르며 외국인을 노리는 시선인듯 싶다. 그래도 대화를 나누며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 어느 곳에다 흐트러진 사람이 있구나, 나는 잠시 씁쓸했다.
어스름 새벽이다. 시린 빛이 새벽을 적시고 있다. 호텔은 정해진 시간에 근무하는 직원들 사정으로 아침 이른 시간의 비핵기를 탈 때는 김밥, 혹은 빵 같은 대체 식사를 포장하여 싸 준다. 이것도 이색 체험이다.
* 베르겐의 새벽 정경
베르겐은 산이 많은 도시다. 산을 일곱 개 넘어서 공항에 간다. 여명이 움틀 때 드러나는 높은 산봉우들이 비경이다. 병풍처럼 도시를 감싸 안고 있다. 그 시가지 사이로 뻗은 길을 따라 버스는 달리고 있다.
고요한 새벽 정경이다. 사람도, 차도 한산하고 보이는 것도 높은 하늘과 높이 솟은 웅장한 산, 그리고 아기자기한 베르겐 도심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베르겐을 이별을 고하며 달린다. 도로에 BUSS, TAXI라고 표기된 것이 낯설지 않다. 새벽 공기는 차갑지만 모두 고운 정경이다.
* 베르겐 공항 이륙
국내선 개념의 아담한 비행기다. SK 2865 스칸디나비아 항공이다. 덴마크 코펜하겐행이다. 공항도 큰 편이 아니고 아담하다. 들어서면서부터 검색이 시작되고, 오른쪽으로 가서 다시 좁은 문으로 들어서면 면세범, 그리고 게이트와 이어지낟.
설명을 듣고 각자 출국 수속을 밟고 나갔다. 이제부터 북유럽의 공항도 친숙해져서 이런 절차가 재미 있다. 노르웨이와의 아쉬운 이별이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여행으로 기억될 나라, 붉은 작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