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주연, 벚꽃
김 용 길 (시인)
봄이 도래함을 시기하는 것인지, 꽃샘추위로 서늘한 날씨가 이어져 왔었다. 하지만 찬바람 불어도 4월이다. 바야흐로 완연한 봄이다.
3월에는 노란 개나리가 피었고, 제주의 봄 하면 떠오르는 유채꽃도 질세라 꽃망울을 터뜨려 화사함을 자아냈다.
허나 화사한 4월의 주연은 단연 벚꽃이다.
흰색 또는 연분홍색의 벚꽃이 4-5월경 잎겨드랑이에 2-3송이씩 모여서 핀다. 잎이 돋기도 전에 화사한 꽃이 나무 전체를 구름처럼 뒤덮는 모양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기도 한다. 이때가 봄소식이 대지를 감싸는 시기이다.
벚꽃은 무엇보다 우리네 일상의 삶에서 멀지 않아 더욱 마음이 끌린다.
발걸음 그리 길게 하지 않더라도 어느 한적한 길가나 산사 초입에 4월이면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벚꽃의 매력은 이런 데 있다. 매화처럼 깊은 마을을 찾아가거나, 철쭉처럼 산등성이를 오르지 않아도 수월하게 가로수변에서 만날 수 있다. 가족이나 연인들이 유독 벚꽃 피는 시기에 귀를 쫑긋 세우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4월 중순이면 벚꽃은 전국을 꽃구름으로 뒤덮는다. 벚꽃은 4월초 남녘에서부터 피기 시작해 4월 중순쯤 윗녘으로 퍼진다.
벚꽃의 개화일은 한 개체 중 몇송이가 완전히 피었을 때를 말해 꽃이 만개한 시기와는 다르다. 벚꽃은 한번 흐드러지게 피었다 한꺼번에 지는 특성 때문에 만개일을 잘 알고 꽃구경을 떠나는 것이 좋다.
올해는 다른 해보다 대체로 2,3일 이르게 폈다. 제일 빠르게 개화한 곳이 서귀포다. 3월 23일이 개화시기였다. 부산이 3월 26이었고 전국에서 제일 늦는 곳이 춘천이다(4월 8일).
제주에서는 왕벚꽃축제가 4월1일부터 8일까지 열린다. 왕벚꽃 명소로 꼽히는 제주시 전농로는 벚꽃이 만개할 때면 '꽃 터널'을 이룬다.
제주왕벚꽃축제는 1991년 제주벚꽃잔치라는 명칭으로 제주 지역의 대표적 벚꽃거리인 제주시 전농로에서 개최되었다. 지금도 전농로에서는 벚꽃이 만발할 무렵 사생대회 등 각종 문화 행사가 열린다.
벚나무는 단지 꽃의 화사함으로 우리네 눈을 호강시켜주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예로부터 여러 효용적인 소재로 도움을 주기도 했다.
고려시대에 몽골군의 침입을 부처님의 힘으로 막기 위해 만들었던 팔만대장경의 판은 60%이상이 산벚나무로 만들어졌음이 최근 전자현미경을 이용한 조사에서 밝혀졌다. 또한 벚나무의 껍질은 화피(樺皮)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활을 만드는데 꼭 필요한 군수물자였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중 갑오년(1594) 2월 5일자에도 “화피 89장을 받았다”는 내용이 있다. 옛날 병자호란을 겪고 왕위에 오른 효종은 그 때의 치욕을 설욕하려고 북벌을 계획했었다. 효종은 서울 우이동에 수양벚나무를 대대적으로 심게 하여 그 나무를 궁재(弓材)로 하였는데 애석하게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구국의 염원은 비록 성취되지 못했지만 그 뜻은 살아서 지금 천연기념물 제38호인 지리산 밑 구례의 화엄사 경내에 있는 수령 3백여 년 된 올벚나무로 이어지고 있다.
피어 있는 모습 못지않게 떨어지는 모습이 인상적인 꽃. 꽃잎이 유독 얇고 하나하나 흩날리듯 떨어져, 봄날의 눈이 나리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꽃.
금새 활짝 피어 화려하게 물드나 싶다가 봄비가 내리면 잎만 푸르게 남는다. 잠깐 숨 돌리는 사이 사라져버리고 마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 느끼는 덧없음이랄까. 4월, 그 나무 아래 서 있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