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공부하지 않을 거면 장학금 토해내라.”무능력한 교수를 승진에서 무더기로 탈락시키고, 27세 MIT 박사를 교수로 파격 임용했던 서남표 카이스트(KAIST) 총장이 교수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채찍을 빼들었다. 올해 입학한 1학년생들부터 C 이하의 학점을 받는 학생들에게는 내년 1학기 등록 때 최고 1000만원에 달하는 등록금을 전액 물어내도록 한 것.
‘세계적인 기업은 있지만, 세계적인 대학은 없다’는 서 총장의 뼈아픈 자성이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강력한 개혁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카이스트는 8일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나 판판이 노는 학생이나 가리지 않고 모든 재학생들에게 100% 국비로 등록금이 지원되다 보니 면학 분위기가 경쟁력을 상실했다”면서 “서 총장 취임 후 계획해온 학점 미달 학생에 대한 수업료 징수를 내년부터 전격 시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카이스트 재학생들은 6개월 단위로 100만원 정도의 기성회비를 납부하는 것 외에는 수업료 전액을 국가로부터 지원받아왔다.
학교 측은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올해 들어온 1학년생 중 평점 B°이하(4.3 만점에 평점 3.0 이하)를 받은 학생들은 성적순으로 수업료의 일부를 지불하고, 평점 C°(2.0) 이하는 수업료 전액을 납부토록 할 방침이다. 상대평가를 기준으로 중위권 학생의 평균 학점이 B°정도임을 감안한다면 재학생 중 2명 가운데 1명이 수업료의 일부 혹은 전부를 내야 하는 셈이다.
카이스트는 올해 초 학점이 미달하는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징수하기 위해 학칙을 개정했으며, 700명의 신입생과 학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여러 차례 양해 통신문을 발송했다.
양지원 카이스트 부총장은 “재능 있는 학생들이 전액 장학생이라는 좋은 조건으로 입학한 후 공부를 게을리한다면 학생 개인은 물론 우리 사회 경쟁력의 문제를 야기한다고 판단했다”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차원에서 과감히 도입했다”고 밝혔다. 학칙을 개정했지만 설마설마했던 소수의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대도 있었으나 결국은 면학 분위기 조성 취지에 수긍했다는 게 학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학교 측은 성적 미달 학생이 토해낸 수업료는 전액 학생들을 위해 쓰기로 했다. 편의시설을 늘리고 경제적 사정으로 수업료를 내지 못하는 학생들을 도와줄 방법을 모색 중이다. 서 총장은 “등록금 전액을 내는 학생은 3~5%가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예산 확보를 위해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고육책으로, 학생들에게도 훗날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노벨상 수상자 대학총장이었던 로버트 러플린 총장 후임으로 지난해 7월 부임한 서 총장은 경력이 아닌 실력 위주로 교수사회를 개혁하고 있다. 또 인성과 교양을 갖춘 과학기술인 양성을 위해 이번 학기부터는 ‘독서 마일리지’제도를 실시하는 등 파격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한편 고려대 경영대도 등록금을 배로 올리고 성적별 차등 지급을 논의 중이라고 밝혀 서 총장의 개혁이 ‘입학은 어렵고 졸업은 쉬운’ 다른 대학으로 확산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