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서 하루종일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멈추는 것 같다 9층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정원의 희미한 불빛속에서 목련 나무가 나 여기 있어요 하는 것처럼 서있다
그 옆에 매화나무가 저도 여기 있어요 하는 것처럼 어둠 속에서 말없이 서있다
비가 온뒤라 그런지 아파트 주변을 서성이는 사람도 왕래도 별로 없지만 이따금 도로를 지나는
금속성의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볼륨을 3에다 놓고 틀어논 엘콘도 파샤의 음악소리가 9층 베란
다 창을 소리없이 열고 날아오른다 높은 절벽을 오르는 독수리의 날개가 하늘높이 차오르는 영상
이 손에 잡힐듯 눈에 선하다
그옛날 스페인의 침략에 대항하다 무참히 죽어간 마추픽추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듯 들려오는
음악소리는 조용한 밤의 적막을 흔들기에 충분하다 가슴을 스치는 선율은 알 수 없는 연민을 안고
어디로 가고있는 것일까 오르고 올라도 오를 수 없는 곳을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밤을 오늘 나와 함께 머물러 달라고 말하고 싶지만 아마도 어둠 속에서 쉴 새 없이 걷고 있는 시간
은 허락하기가 힘들것이다 아침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아침을 향해 지금 이 시간도 쉴 새 없이
걷고 있을 시간은 무엇을 생각하며 걷고 있을까.
오늘따라 달빛도 길을 인도하는 별빛조차 없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는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침의 환호도 잠시 어쩌면 우리는 내일밤 또다시 이길 위에서 만나게 될 자도 모른다
추억의 중남미 명곡, 엘 콘도르파사(철새는 날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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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재생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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