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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엔 넘 힘든 '노가다', 일당 13만원은 넘 매력적"
살아오면서 일상적 밥벌이 외에 할 수만 있다면 힘이 닿는 범위에서 뭐든간 다양한 체험을 해보고 싶던 차
그중 노가다를 함 해보고 싶단 생각을 해 왔다. '노가다' - 사전적 의미는, 공사판 노동자. 토목공사 보조자,
막벌이 일꾼. 공사판 일용직. 일용직 잡부 등등으로 일컫고 불리우는 삽질과 등짐과 콘크리트 작업을 비롯하여
건설현장이나 집수리 공사장 및 육체노동 현장에서 일거리를 따라 그때그때 불려다니며 일당을 받고 단순
노동을 제공하거나 시키는 잡일을 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시골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교내 브라스밴드 악장, 컨닥터를 한 것을 비롯해서 기계체조와 단거리 및 마라톤
등을 즐겨했고 고교시절엔 영어 수학보다 영화보기와 팝송 부르기에 몰두했고 진학후 자원입대해서는 최
전방을 선호, 화학병과로 전투지원중대에 복무하며 CBR(화학, 생물학, 방사능)통제병으로 육군 하사로
제대할 때까지 인제군 신남에 야간중학을 설립하여 진학 못한 강원 산골의 불우아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복학 후, 어렵게 취업은 했으나 교직과목 24학점 별도 취득으로 중등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직장을 다니며
입학후 8년만에 겨우 코스모스 졸업을 했다. 중도에 딴길로 직종을 바꿨고 또 본의 아니게 사무직에서 짝퉁
해기사로 변신하여 선장이나 기관장 출신들, 즉 마도로스들이 수행하는 업무를 맡아 IMF정년을 맞았다.
직장을 다니면서 아시언게임과 올림픽을 비롯 국가행사에 자원봉사를 했던 기억은 일생의 자랑거리기도 하다.
특히 한국이 4강신화를 낳은 제17회 FIFA 월드컵때 미디어분야 자원봉사 총괄책임을 맡아 대통령을 비롯한
국무위원들, 국내외 유명 축구선수들과 스텝들의 경기장내 동선 취재로 전세계를 주름잡는 신문, 통신, 방송,
스포츠지 등 내로라 하는 저널리스트들의 뒷바라지를 한 일은 가문의 영광(?)으로 으쓱대는 자긍심이다.
복지부장관 출신 지인과 함께 일흔이 넘어 분당 소재 고교생들의 인성교육 수업을 맡아 한 일도 마찬가지.
그러나 지금까지 가장 힘들었던 일은 역시 드라마나 영화 촬영 엑스트라 출연이었다. 2000년대 초반, 최수종.
김영철. 서인석이 출연한 200부작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太祖 王建)' 촬영에는 직장일이 끝나는 금요일 밤
12시 KBS별관을 출발, 살을 에는 한겨울 새벽 4시쯤 문경새재 세트장에 도착, 병졸역 수염을 달고 투구쓰고
창들고 분장 후 시작되는 황량한 싸움터 촬영 엑스트라역은 혹한 어둠 속에서 개런티 몇 만원에 비해 너무나
힘든 노동이었다. '연인천하(女人天下)'의 신하역, 사극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가마꾼도 어렵긴 매 한가지.
그러길 여러 해, 상당한 세월이 흐른 며칠전 정년퇴임한 옛 직장 후배, 한국해대 출신 김태진군(32N)이 전화를
했다.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요즘 뭘하며 지내냐는 필자 질문에 한달 전부터 '노가다'를 뛴다고 했다.
힘들긴 하지만 할만 하단다. 육군 하사 1,230원 봉급부터 50여년간 단 한달도 월급을 거른 적이 없었고 지금도
하루 놀고 하루 쉬는 입장이지만 백수가 과로사 한다듯 이곳 저곳, 이일 저일을 좇는 터에 별러 오던 노가다
얘기를 듣고보니 사실 두렵기도 했으나 눈이 번쩍, 이게 마지막 기회려니 내심 도전해 보고픈 욕심이 솟구쳤다.
우선 산업안전보건법 제31조의2에 따라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안전공단이 인정하는 교육기관에서 '건설업
기초안전보건 교육'을 받는 게 급선무라 다음날 부리나케 가까운 학원을 찾아 매시간 마다 출석을 체크하는
강의실 맨 앞줄에 앉아 노트를 해가며 열심히 청강했다. 교육내용은 상식의 범위였지만 듣기만 해도 겁났다.
작업중 보호장비 불착용이나 본인 실수 또는 뜻밖의 사고로 부상을 넘어 사망에 이르는 위험 노출과 예방을
위한 경각심을 고취하고 사고 발생시 산재보험 신청으로 보상받는 길을 안내하는 끔찍한 교과목이었다.
4시간 수업이 끝나자 증명사진이 박힌 이수증을, 그것도 55세 이상이라 무료로 발급받고 보니 '노가다'란
큰 벼슬의 자격증을 딴 것 처럼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특히 평소 관심이 많던 심폐소생술을 익히고 실습할
기회를 가진 게 무엇보다 유익하고 흐뭇했다. 일반적으로 모든 공사는 발주자로 부터 대기업이 수주를 하면
협력업체가 하청을 받아 팀단위 업체들이 계약직을 채용해서 팀원들 및 일용직 노가다들과 일을 하게 된다.
노가다의 종류는 자재정리 잡부로부터 곰방, 형틀목수, 철근배근공, 미장공, 신호수, 조공(데모도), 타일공,
내장목수(인테리어공), 철거등 여러 분야가 있단다. 우리 귀에 익은 '데모도'는 기술이나 자격증 없이 미장,
방수, 조적, 타일 등등 손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공들이 그 일에 집중, 작업 능률을 높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잔심부름과 막일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또 일을 할 때는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에 필요한
장비로는 현장에서 지급하는 머리 보호를 위한 안전모와 밑바닥과 발등 부분이 철판으로 된 안전화, 2중으로
코팅된 장갑, 바짓자락 걸림 방지 각반, 먼지 섭취 방지 마스크, 기타 신체 부위 보호를 위한 장비가 필요하다.
이렇게 교육 후에 몸과 마음의 준비가 끝나면 노가다는 '인력사무소'란 일자리 중개소를 찾는게 일반적이다.
필자도 제반 준비를 완료하고 진짜로 노가다를 할것인가 말것인가 확고한 자신이 없어 이틀밤을 꼬박 샜다.
옆방 권사는 혹시 뭐라도 떨아지는 걸 바라는지 살도 빼고 근육도 기를 겸 은근이 함 해보란 권유였다.
친구들은 "네 나이가 몇인데"로 모두가 만류했고 30~50대가 주류를 이룰텐데 얼씬도 하지말란 경고 일색.
D-1일 밤. 낼 새벽 5시반 인력사무소 헌신을 위해 평소 새벽 3시 취침시간을 4시 알럼후 11시에 불을 껐다.
"수고하세요 이왕 맘먹은 거. 마지막 남은 한가지 안 가 본 길을 걸어보고 싶다는 당신 멋모르고 노익장 과시
하는 건 아닌지요? 아마 제 생각으론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옵니다. 젊은이도 힘겨울 노동시장에 76세는
무리가 아닐는지요. 눈치받을 용기만 있다면 괜찮습니다. 그래요 경험은 좋은 것 입니다. 나이때문에 생각을
막아서는 아니되겠지요? 용기가 대단하십니다 놀랍고요. 이왕 맘먹은 거 열심히 하세요. 오늘밤 설렘 반 걱정
반 잠 못 이루시겠네, 좋은 꿈 꾸시고 편한 밤 되세요." 새벽 4시 기상, 출발전 절친 문자를 읽고 용기가 났다.
완전무장 하고 새벽 전투에 임하는 병사의 심경으로 전철역과 버스정거장을 오가다 큰 맘 먹고 택시를 탔다.
인력사무소란 곳에 이르니 제법 널직한 2층 사무실에 2~30명이 먼저 와 대기하고 있었다. 20대에서 50대가
주류를 이룬듯 했고 그 중 우즈베키스탄, 파키스탄인듯 외국인도 10여명 보였고 여성 총무는 사람 보내란
전화를 받으면 몇명씩 개별적으로 짝지워 불러 현장 소재지와 전번 쪽지를 줘서 찾아가도록 안내했다.
교육이수증과 주민증을 본 총무는 첨 간 필자에게 "42년생이면 연세가 얼만지 계산이 도대체 안되네요" 한다.
진짜 몰라선지 나이가 넘 많단 비아냥인지, 아님 평소 주로 60~90년생들만 상대하다가 연식에 낯선 4자가
들어가니 계산이 안 될 법도 하단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네, 금년 76세입니다. 죄송합니다"로 화답했다.
첫날부터 나이든 필자가 일찍 팔려가리란 생각은 안했으나 한두 사람씩 일터로 가는 모습이 부럽기만 했다.
4시 기상, 10시까지 6시간을 죽치고 나서야 오늘은 걸렀단 생각이 들고 모두가 일터와 밖으로 빠져 나가고
혼자니 처연했고 알고 왔기에 한편으론 이런 시추에이션을 난생 첨 은근히 즐감하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중 김군의 귀띔, 담엔 머리 염색 꼭 하고 나오란다. 모처럼 염색차 단지내 이발소에 들러 자초지종을 이르니
"어르신 나이에 막일 하다 삐걱하거나 다치면 회복 불가, 죽을 때 까지 안고 갈테니 절대 반대"로 강경하다.
소문도 냈으니 죽어도 장열히 노가다 현장서 결판내리란 각오로 뒷날 다시 새벽녘에 인력사무소로 갔다.
지난번 모습 그대로, 하나씩 팔려나가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빙고! 웬 걸 필자도 불러 일터 쪽지를 내밀었다.
도롯가 아반테를 접선, 파트너와 어디론가 한참을 달려 생소한 교외 어느 택시회사 경내 작업장에 도착했다.
기술없는 노가다는 대개 일당이 12만원이고 10%를 인력사무소에서 떼며 8시간 노동에 오전, 오후 새참에
점심 등 세끼가 제공되고 휴식은 30분씩 하루 2번 정도에 아주 힘들 때엔 5분씩 휴식이 가능하다며 지금은
퇴직했지만 TV에도 자주 나왔고 글도 쓰며 향후 여의도 진출 야망을 가졌단 54세의 선임 파트너는 말쑥한
차림에 사리가 분명한 젠틀맨 노동자로 보였고 요즘은 옛날과 달리 노가다도 최선을 다해 노동을 제공하고
정해진 임금을 받는 스마트 직업이라고 했다. 여러 해를 해왔고 작업에 임하는 프로정신이 놀랍기만 했다.
일은 말이 풀베기지 낫질로 건물 울타리 정원수 사이에 마구 자란 잡초와 수목을 갖은 힘을 다해 도끼질로
벌목하는 작업으로 시골서 자랄 때 벼베기나 한여름 무논에서 벼논매기 호미질 노동은 저리 가라였다.
한 시간쯤 하고나니 얼굴에 스치는 억새풀이 맨낯을 갈귀고 비오듯 흐르는 땀줄기가 장난이 아니었다.
연거푸 물을 마셔 몸을 식히며 죽을 각오로 임해도 워낙 덥고 힘이드니 자주 그로키 상태를 면치 못했다.
정직하게 일하는 노동, 노가다 하다 사고로 죽을 수도 있고 힘들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시작이 반이려니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덤벼도 오전 한나절을 넘기기 힘들 것 같아 기권의사를 표했다.
일반 공사판이 12만원인데 오죽하면 이 빡센 작업은 13만원이나 된다며 선임 파트너는 일당 비교로 유종의
미를 거두라고 독려했지만 오후 들어서는 발자욱을 뗄 수가 없었고 정신이 혼미한 게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엄습하니 덜컥 겁이 났지만 노가다 한나절에 항복은 비겁하단 자존심으로 끝까지 버텼으니 절반의
성공은 한 셈. 지정 계좌로 130,000원 송금 노동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나니 노동의 댓가가 뿌듯했다.
하지만 담 날 일어나니 전신이 매맞은 듯 거동 불편 후유증이 며칠을 계속, 이게 바로 골병이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다음 일에 재도전 의지를 불태우며 여자가 애기를 낳으면 삭신이 으스러진다는 산후통이
이럴 것이란 생각도 해봤다. 첫 애기 낳을 때의 고통을 잊고 7남매나 9남매를 낳듯 노가다도 힘든 기억 잊고
일당 12만원 돈 때문에 다시 찾지만 육체노동이라 너무나 힘들어 매일 계속할 수 없고 일 또한 항상 있지 않아
노가다로 돈 모으긴 어려운 점을 고려해도 젊은 청년들은 알바삼아 해볼만 하단 게 필자의 강력 권유다.
그리고 노가다도 기술을 익혀 숙련공이 되거나 기술을 익혀 자격장을 따서 전문 기술자로 발전하면 일당도
2~30만원에 이르고 예로 제주 돌담을 쌓는 준장인 및 명인급의 전문 숙련공은 50만원을 훌쩍 넘는 경우도
있다니 대학을 나와 대기업이나 유명 직장만 선호하며 무직 실업자로 부모 신세지는 학사님들도 취업 준비
짜투리 시간을 활용, 노가다에 투신 한달 100여만원 정도를 번다면 그 얼마나 멋진 청춘이며 그리 번 돈으로
노가다 생일, 비오는 날이면 공치는 날이고 공치는 날에 임 만나러 가서 데이트를 즐기면 얼마나 황홀할까다.
그리고 한번 경험을 밑천으로 한더위 갔으니 앞으로도 100만원 한장을 손에 쥘 때까지는 계속할 작정이다.
< 2017. 8. 31일(木) 샌드페블 >
첫댓글 선배님. 존경합니다. 그 나이에 노가다를 다 뛰시다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