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의 문장은 들어볼 수 있었으나, 선생님께서 성과 천도를 말씀하시는 것은 들어볼 수가 없었다.”
文章, 德之見乎外者, 威儀文辭皆是也. 性者, 人所受之天理; 天道者, 天理自然之本體, 其實一理也. 言夫子之文章, 日見乎外, 固學者所共聞; 至於性與天道, 則夫子罕言之, 而學者有不得聞者. 蓋聖門敎不躐等, 子貢至是始得聞之, 而歎其美也. 文章이란 덕이 밖으로 보이는 것인데, 威儀와 文辭가 모두 이것이다. 성이라는 것은 부여받은 하늘의 이치이고, 천도라는 것은 천리 자연의 본체인데, 사실은 하나의 이치다. 공자의 문장은 날마다 밖으로 드러나 보이기 때문에, 본래 배우는 자들이 함께 듣는 바이고, 성과 천도에 이르러서는 공자께서 드물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배우는 자 중에 들을 수 없는 자들이 있었다. 대개 성문의 가르침은 단계를 뛰어넘는 엽등을 하지 않기에, 자공도 이에 이르러 비로소 그것을 듣고서 그 아름다움을 찬탄한 것 같다. 慶源輔氏曰 威儀德之見乎容貌者 文辭德之見乎言語者 경원보씨가 말하길, “威儀란 덕이 용모에 드러난 것이고, 文辭란 덕이 언어에 드러난 것이다.”라고 하였다.
問子貢因文章中悟性天道 抑後來聞孔子說耶 朱子曰 是後來聞孔子說 曰文章亦是性天道之流行發見處 曰固亦是發見處 然他當初只是理會文章 後來是聞孔子說性與天道 今不可硬做是因文章得 누군가 묻기를, “자공이 문장으로 인해 性과 天道를 깨달은 것입니까? 아니면 나중에 공자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주자가 말하길, “나중에 공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것이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문장도 역시 性과 天道가 흘러 행해지고 발현하는 곳입니다.”라고 하자, 대답하여 말하길, “본래 그것도 역시 발현하는 곳이다. 그러나 그는 당초에 그저 문장을 이해하였을 뿐이고, 나중에 공자께서 성과 천도를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것이다. 지금 문장으로 인해 터득한 것이라고 무리하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陳氏曰 聖人敎不躐等 平時只是敎人以文章 到後來地位高 方語以性與天道爾 진씨가 말하길, “성인은 가르침에 있어 단계를 뛰어넘지 않았는데, 평시에는 그저 사람을 문장으로써 가르쳤지만, 나중에 경지가 높아지면 비로소 性과 天道로써 말씀하셨을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堯之文章 朱子釋以禮樂法度 與此不同者 堯達而在上 其文章見於治天下 夫子窮而在下 其文章惟見於吾身 在天下 故以禮樂法度言 在吾身 故以威儀文辭言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요임금의 文章은 주자가 예악과 법도로써 풀이하였는데, 여기서와 더불어 같지 아니한 것은, 요임금은 영달하여 위에 천자로 있었기에 그 문장이 천하를 다스리는 데에 드러났던 반면에, 공자께서는 벼슬길에 곤궁하여 아래에 있었기에 그 문장이 오직 자기 몸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천하에 달려있기 때문에 예악과 법도로써 말한 것이고, 내 몸에 달려있기 때문에 威儀와 文辭로써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2 | ○ 程子曰: “此子貢聞夫子之至論而歎美之言也.” 정자가 말했다. “이는 자공이 공자의 지극한 논리(논의)를 듣고서 찬탄한 말이다.”
王氏曰 此理在天 未賦於物 故曰天道 此理具於人心 未應於事 故曰性 卽元亨利貞 仁義禮智 是也 文章至顯而易見 此理至微而難言 왕씨가 말하길, “이 이치는 하늘에 있어서 아직 사물에 품부되지 않았기 때문에 天道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 이치가 사람의 마음에 갖추어져 있어서 아직 일에 대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性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元亨利貞과 仁義禮智가 바로 이런 것이다. 문장은 지극히 드러나 있어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이 이치는 지극히 은미하므로 말하기가 어렵다.”라고 하였다. 西山眞氏曰 文章二字之義 五色錯而成文 黑白合而成章 文者粲然有文 章者蔚然有章 文章可聞 夫子平日以身敎人 凡威儀文辭 自然成文有章者 皆是 所謂吾無隱乎爾 吾無行而不與二三子者 是也 若性與天道 則淵奧精微 未可遽與學者言 恐其臆度料想 馳心玄妙反躐等而無所益 故罕言之 論語僅有性相近一語亦已是兼言氣質之性 非言性之本 至於贊易方云 乾道變化 各正性命 一陰一陽之謂道 繼善成性 方是正說性與天道 亦可謂罕言矣 子貢後來始得聞之而有此歎也 서산진씨가 말하길, “문장이라는 두 글자의 뜻은, 오색이 뒤섞여 文을 이루고, 흑백이 합하여 章을 이루니, 文이라는 것은 찬연히 문채가 있다는 것이고, 章이라는 것은 아름답게 우거져 무늬가 있다는 것이다. 文章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은, 공자께서 평소에 자기 몸으로써 남을 가르쳤으니, 무릇 威儀와 文辭가 자연히 문채를 이루고 무늬를 갖게 되는 것은 모두 이런 것들이다. 이른바 ‘내가 너희에게 숨기는 것이 없고, 내가 행하면서 너희들과 함께하지 않은 것이 없다.’고 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만약 性과 天道라면, 깊고 오묘하며 정미하기 때문에, 아직은 갑자기 배우는 자와 더불어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 함부로 헤아리고 생각하여 마음이 현묘함에 치달아서 도리어 단계를 뛰어넘게 되면, 유익한 바가 없게 될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이를 드물게 말한 것이다. 논어에서는 ‘사람의 本性은 서로 비슷하다’는 한마디 말만 있는데, 이는 역시 이미 기질의 성과 겸해서 말한 것이지, 성의 근본을 말한 것은 아니었다. 贊易(공자가 주역을 贊함)에 이르러서, 비로소 ‘乾道가 변화하여 각자 性命을 바르게 하니, 一陰一陽을 道라 말하고, 善을 계승하여 性을 이룬다.’고 말하였는데, 비로소 이것이 性과 天道를 제대로 옳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드물게 말한 것이라고 일컬을 만한 것이다. 자공은 나중에 비로소 이를 듣고서 이렇게 감탄함이 있었던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