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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최고의 시장으로 꼽히는 죽도시장. 펄떡이는 활어들의 생명력 덕분인지 이곳은 언제나 에너지가 넘친다. '없는 것 빼고는 다 있다'는 시장 구경이 언제나 신나는 이유다. 각종 활어는 물론 대게며 문어, 과메기까지 맛볼 수 있는 '맛의 천국'이자 '삶의 현장' 죽도시장으로 출발!
살다보면 마음대로 되는 것 하나 없는 현실에 기운이 빠질 때가 있다. 그럴 때에는 시장이 특효약이다. 장담하건대 딱 하루만, 이르면 새벽 3시부터 시작하는 시장상인들의 일과를 엿보는 것만으로도 맥 빠진 오징어마냥 흐느적거리던 사지가 '무쇠팔 무쇠다리'로 자동 변신할 것이다. 심장도 뜨끈해진다. 모두가 잠든 시간, 누구보다 빨리 하루를 시작하는 그들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수산시장이라면 살아 숨쉬는 '날것'들의 생명력도 힘을 보탠다. 우리에게는 그저 '맛있는 것들'이지만 앞날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빨간 고무 대야에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며 아직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활어들의 몸짓은 힘차서 사랑스럽고 조금은 안쓰럽다.
시장이 품은 생명력을 설명하는 사설이 길었다. 사람이 모여드는 곳에는 어디든 시장이 생겨난다. 사람들이 모이면 그들을 따라 다양한 물품들이 모여들고 사람들이 떠나면 시장도 조용히 사라진다. 사람과 시장,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으니 시장구경이 곧 사람구경인 셈. 같은 이유로 전국 각지에는 다양한 '장'이 선다. 대부분의 대형시장은 기본적으로 매일장(상설시장)이면서 5일장과 7일장을 겸하기도 한다. 각 시도의 내로라는 전통시장 중, 겨울 끝자락 포항의 죽도시장을 찾았다. 겨울의 끝과 봄의 시작을 원한다면 지금이 제격이고, 과메기를 진하게 맛볼 요량이라면 1월안에 죽도시장을 찾도록 하자.
죽도시장이 자리한 죽도(竹島)동은 이름 그대로 섬이었다. 칠성천과 양학천 등 주변의 하천을 복개하면서 육지로 흡수되었다. 지금의 지도를 보면 대체 어디가 섬이었을까 싶지만 형산강 하구에는 죽도 뿐 아니라 대도·해도·송도 등의 섬이 있었다. 늪지대였던 죽도는 갈대가 우거졌다고 '갈대섬'이라고 부르다 줄여서 '대섬'이 되었다. 이를 한자로 바꾸면서 '죽도'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들 섬들을 '섬안'이라 했다. 포스코대교 옆을 지키는 섬안큰다리가 지금은 사라진 섬들이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포항시청 홍보실 관계자는 "2013년 10월 즈음 동빈내항 공사를 마치고 동빈내항과 형산강을 잇는 물길이 살아나면 그때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죽도시장의 하루는 새벽 5시면 시작된다. 흔히들 죽도시장에는 활어와 수산물, 건어물 정도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 천만의 말씀이다. 죽도시장을 두고 포항 과메기를 맛볼 수 있는 아담한 포구에 딸린 시장을 상상했다면 역시 마찬가지다. 이곳은 단순한 수산시장이 아니다. 농산물 식품 청과는 물론 떡집과 방앗간 식품 의류 신발, 한복과 이불 등 혼수용품까지도 포함한 대형 전통시장이다. 이 다양한 품목들이 14만8000m2(약 4만5000평)의 부지, 2500여 개의 점포 구석구석에 들어서있다. 동해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전통시장에 걸맞는 공간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거대했던 것은 아니다. 해방 후 지금의 칠성천 복개주차장을 따라 먹고살기 위해 하나둘 모여들었던 좌판이 시작이었다. 배고프던 시절이었다. 입에 풀칠하기 위해 나선 어머니들은 '자식에게만큼은 이 고생 물리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고, 1970년대 초 포스코가 들어서면서 죽도시장은 전국구 시장으로 도약한다. 포항 경제를 이끄는 쌍두마차로 불리던 죽도시장과 포스코는 형산강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마주한다.
자, 죽도시장의 정체는 대충 알아봤으니 본격적인 시장 탐험에 나설 시간이다. 앞서 설명했듯 죽도시장은 거대하다. 그냥 가면 같은 자리만 맴돌거나 주차장을 찾지 못해 헤매기 일쑤다. 죽도동 오거리 근처에 자리한 죽도시장고객지원센터에서 죽도시장 안내책자를 챙기자. "어디 가서 무얼 먹나요?"라는 질문에도 친절한 답이 돌아온다.
주말에 시장을 찾았다면 포항수협 근처까지 차를 가져가기 보다는 조금 떨어진 오거리공영주차장이나 평화주차장 등을 찾으면 주차하기 편하다. 아무래도 길을 헤맨다면 칠성로와 수평하게 뻗은 복개주차장을 걸어 이동하는 편이 좋다. 포항수협까지 이어진 길은 활어시장과 선어시장을 포함해 죽도시장의 다양한 골목 초입과 닿아 방향을 정하기 수월하다. 힘이 넘친다면 탐험가 본능을 살려 마음에 드는 골목 어디든 들어가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것도 재미있다.
의류·식품·한복·농산물·떡집·닭집·먹자골목 따위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 해식주의(海食主義)자라면 기꺼이 과메기거리로 돌진하자. 끝물이긴 하지만 여전히 포항 과메기들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청어가 주재료였는데 어획량이 줄면서 지금은 꽁치로 대체되었다. 꽁치를 섭씨 영하 10도로 보관하다가 날이 추워지면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해 바닷가 덕장에 사흘 정도 말리면 꼬득꼬득한 겨울 별미 과메기가 된다. 포항 사람들은 내장을 제거한 '배지기' 말고 통째로 말린 '통마리'를 더 즐긴단다. 고단백 영양식품, 포항 겨울 별미 과메기. 값도 저렴(?)해 서민들에게는 더욱 고맙다. 겨울 끝자락이긴 하지만 포항까지 와서 과메기를 빼 놓으면 섭섭한 이유다.
아직 제철은 조금 남았지만 도다리도 보인다. 절로 침이 고인다. 겨울의 끝은 결국 봄으로 이어지는 법. 겨울 별미와 봄 별미를 함께 맛볼 수 있으니 이 순간 부러울 것이 없다. 갯고동과 민고동부터 어른 팔뚝만한 귀한 대구에 문어, 대게까지 이어지니 맛의 천국이다. 흔히들 영덕과 울진을 대게의 고장으로 알아주는 데 같은 동해안을 끼고 있는 포항 역시 대게하면 빼놓을 수 없다.
시장 한 켠에는 고래고깃집이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다. 개고기 빼고 무엇이든 먹어 치우는 식신 기자도 고래고기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졌다. 이유를 확인하고 싶다면 한입~! 고래잡이는 불법이다. 이렇게 맛볼 수 있는 고래들은 모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물에 걸려 익사한 녀석들이다. 가끔 신문에 '밍크고래가 걸렸다'며 그들의 몸값이 소개되곤 하는데 그들의 종착점 중 하나가 이곳이다.
이건 또 뭘까? 생선이긴 한데 생김새가 범상치 않다. 몸통만 있고 꼬리가 없는 것이 영락없이 생기다 만 모습의 물고기다. 개복치란다. 포항 별미로 꼽힌다. 손질해서 삶으면 하얀 속살이 청포묵과 똑같다. 색도 맛도 냄새도 없는 게 이 녀석의 특징이다. 포항에서는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대소사마다 상에 올라간다. 포항 아지매들은 열심히 개복치를 손질중이다. 삶아서 네모반듯하게 잘라놓은 모습만 보면 그의 정체가 생선이라는 게 아무래도 믿기 어렵다. 이것저것 묻는 게 귀찮은지 먹어보란다. 정말 아무 맛도 없다. 식감도 묵과 비슷하다. 초장에 찍어먹으니 곤약같기도 한 것이 제법 먹을 만하다. 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다!
포항수협위판장과 동빈내항 사이의 포항시장위판장에서는 매일 새벽 경매가 이뤄진다. 근처의 신포항수산어시장도 하루를 빨리 시작한다. 양질의 선어를 적당한 가격에 구할 수 있어 멀리서도 찾는 이들이 많다. 경매시간을 놓친 아쉬움은 느지막이 청어잡이를 마치고 돌아온 부부의 그물작업을 바라보는 것으로 대신한다. 한 바퀴 돌아봤으니 이제 본격적인 시식 시간. 과메기를 먹을까, 회를 먹을까, 물회를 먹을까 고민하다 일단 활어골목으로 향한다. 혼자라고 하니 "쪼꼼만 해주까?" 묻는다. 1인도 회를 먹을 수 있다. 자연산 도다리는 1kg에 2만원, 양식 광어와 우럭은 1만5000원에 맞춰 실컷 먹게 해주겠단다. 이는 회값만이다. 여기에 초장값 3000원을 추가하면 밥과 매운탕까지 맛볼 수 있다. 1만2000원짜리 물회를 시켜도 매운탕은 나온다. 회도 먹고 싶고 물회도 먹고 싶으면 일단 회를 뜬 다음 물회 양념을 추가하면 된다. 4000원을 추가하면 물회 양념과 매운탕이 나온다. 푸짐하다. 애주가가 아니더라도 한잔 생각이 절로 난다. 부드러운 도다리 살에 입안 가득 봄이 퍼져간다. 봄날이여, 어서 오라!
유의사항
※ 위 정보는 2013년 2월에 작성된 정보로, 이후 변경될 수 있으니 여행 하시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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