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나만의 음표를 연주하라(롬12:1-8)
갈등
1. 오케스트라 공연이 시작되기 전, 무대에는 연주자들이 앉아 있습니다. 바이올린 연주자가 활을 들어 튜닝을 시작합니다. 반대편에서는 첼로가 낮은 소리를 냅니다. 플룻이 높은음을 냅니다. 트럼펫도 짧게 소리를 내요. 팀파니 연주자는 북의 표면을 손끝으로 두드려 봅니다. 수십 개의 악기가 제각기 소리를 냅니다. 아름다운 악기들인데 소음처럼 시끄럽습니다. 잠시 후 지휘자가 무대 위로 나옵니다. 그가 지휘대에 올라서면, 연주자들이 자세를 고쳐 앉습니다. 오케스트라 전체가 조용해집니다. 연주자들의 눈이 모두 한 사람을 바라봅니다.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어 올립니다.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해집니다. 튜닝을 할 때 제각기 소리를 내던 악기들이 지휘자의 지휘를 따라 하나의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어느 악기도 자기 소리를 버리지 않았어요. 놀랍게도 서로 다른 소리가 하나의 음악이 됩니다.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악기가 바뀐 것이 아닙니다. 모두가 한 지휘자를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악기가 있습니다. 그 악기가 성격이 다릅니다. 재능이 다르고-살아온 세월-경험-잘하는 것도 다릅니다.
2. 어떤 사람은 말을 잘합니다. 어떤 이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앞에 서는 것을 잘하는 이-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잘 섬기는 이도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자기 악기를 바라보지 않고 옆 사람의 악기를 바라봅니다.“나는 왜 저 사람처럼 하지 못할까? 나는 저런 재능이 없을까? 나는 저 사람처럼 인정받지 못할까?”그러다가 하나님께서 내 손에 쥐여 주신 악기는 케이스 속에 넣어 둔 채 다른 사람의 악기만 부러워해요.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의 악기를 부러워하지 말고 당신 손에 들려 있는 악기를 보라고 합니다.“당신은 누구의 지휘를 받으며, 누구의 악보를 연주하고 있는가?”묻습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은“그러므로”입니다.
이 말은 로마서 전체를 두 부분으로 나누는 거대한 문과 같습니다. 바울은 1장부터 11장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죄인이었던 우리를 찾아오시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우리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셨다-그리고 성령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다. 이후“그러므로”입니다.“그렇게 큰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 너희가 어떻게 살아야 하겠느냐?”는 말씀입니다. 1절,“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교회 성도들은‘제물’이라는 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우상숭배도 제물을...)
3. 유대인 성도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을 떠올렸습니다. 바울이 이상한 말을 합니다.“산 제물.”이라뇨? 제물인데 살아 있습니다. 또 양이나 소가 아니라“너희 몸을 드리라.”고 합니다. 죽어서 순교의 제물로 드리는 것도 아니고, 살아서 하나님께 드리라고 합니다. 일주일 내내-가정-일터 등 삶의 현장에서요. 바울은 이것을“영적 예배”라 부릅니다.‘영적’이라는 말은 λογικός(spiritual이 아니고) 이렇게 하는 것이 합리적인 일이다는 의미입니다. 2절,“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본받다’는 말은 συσχηματίζω, 주어진 틀에 나를 맞추는 것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 앞에 악보를 펼쳐 놓습니다. 그 악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성공해야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남보다 많이 가져야 행복하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성공한 인생이다.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야 한다. 네가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이 자유다.”그리스도인들이 입으로는“주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삶에서는“돈이 나의 지휘자입니다. 사람의 인정-성공이 나의 지휘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악기를 들고 세상의 악보를 연주하는 격입니다. 바울은 이들을 향해서“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권합니다.
갈등 심화
4. 오케스트라에서 자기 악기를 발견했다고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이올린이 “내가 멜로디를 연주하니까 내가 제일 중요해.”트럼펫도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내 소리가 없으면 음악에 힘이 없지.”팀파니도 더 크게 두드립니다. 모두 훌륭한 악기입니다. 모두 정확한 음을 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소리만 크게 내면 음악은 사라지고 소음만 남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바울이 편지를 보내는 로마교회에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었어요. 유대인 성도들과 이방인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살아온 문화와 음식조차도 다르고 절기를 바라보는 생각도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서로를 바라보며“저 사람은 나처럼 믿지 않을까?”바울은 4절,“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바울은“똑같아져라”고 하지 않아요.“다른 것이 정상이다”라고 합니다. 손과 발이 다르고-눈과 귀가 다르지만 모두 한 몸입니다. 교회도 그래요. 하나님은 우리를 똑같은 악기로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6절,“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은사는 χάρισμα의 근원은 χάρις, 은혜입니다. 은사는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선물입니다.
5. 사도 바울이 말하는 각 은사-예언,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위로하는 일, 구제하는 일 모두가 그렇습니다. 은사는 서로 비교할 수 없고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의 악보에는 필요 없는 음표가 없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음표도 필요하고,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를 섬기는 사람의 음표도 필요합니다. 어떤 악기를 받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 악기로 누구를 위해 연주하고 있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돋보이기 위해 연주하면 은사는 경쟁이 됩니다.
서로를 위해 연주하면 은사는 화음이 됩니다. 5절,“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오케스트라가 하나가 되는 것은 모든 악기가 같은 소리를 내기 때문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악기들이 한 지휘자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를 바라보며 연주하고 있습니까? 지휘자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음악을 연주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실마리
6. 연주자가 아무리 좋은 악기를 가지고 있어도 악보가 잘못되어 있으면 음악을 연주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악기를 버리라고 하지 않습니다. 직장을 버리거나 재능을 버리거나 세상을 떠나 살라고도 하지 않아요. 악보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악보를 바꾸는 일이“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것.”(2절)입니다.“변화를 받다”는 μεταμορφόω, 겉모양을 조금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하셔서 삶이 완전히 달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그렇게 바꿀 수 있습니까? 바울은 그것을“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이라고 합니다.(1절)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엇 하나만 주시지 않았습니다. 시간이나 능력을 주신 것도 아닙니다. 자신의 몸을 주셨습니다. 못이 손과 발을 뚫고, 피가 흐르고, 마지막 숨까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우리가 몸을“산 제물”로 드리는 것은 구원받기 위해 값을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은혜에 대한 화답일 뿐입니다. 1절,“그러므로”를 잘 풀어야 합니다. 주님이 먼저 나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나를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산 제물이 된다는 것은 내 인생이라는 악기를 부수어 제단 위에 올려놓는 것이 아닙니다. 그 악기의 연주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7.“주님 이제 이 악기로 제가 원하는 곡을 연주하지 않겠습니다. 사람들이 박수치는 곡만 연주하지 않겠습니다. 세상이 성공이라고 부르는 곡만 따라가지 않고 주님이 펼쳐 주시는 악보를 연주하겠습니다.”그때 우리의 삶이 예배가 됩니다. 주일에는 예배당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월요일에는 삶이라는 무대에서 하나님의 악보를 연주합니다. 바울은“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권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다른 무대에서 살지 않습니다. 같은 무대에서 다른 악보를 연주합니다. 세상의 박수보다 지휘자의 손끝을 바라보십시오. 그 순간부터 내 평범한 일상이—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됩니다.
오케스트라에서 각 악기는 자기 소리를 자랑하려고 연주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음표를 연주하여 전체 음악을 완성합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바울은“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고 합니다.(5절)‘서로’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은사를 주신 이유는 나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살리고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하도록 섬기는 사람-가르치는 사람-위로하는 사람-나누어 주는 사람-다스리는 사람-긍휼을 베푸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각기 세워주셨다고 합니다.(7-8절, 은사 소개) 여기에는 스타가 없습니다.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든-찬양을 하든-병든 이를 기도하든-소그룹으로 가르치든-
8. 낙심한 한 사람에게 다가가 위로하든. 각 사람에게는 작은 음표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악보에는 필요 없는 음표가 하나도 없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한 연주자가 다른 사람보다 더 크게 연주하면 음악을 망칩니다. 크게 연주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내 차례에-내 자리에서-지휘자가 맡긴 음표를 정확하게 연주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악기를 부러워할 것이 없습니다. 내 악기가 작다고 숨길 것도 없어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음표가 있습니다. 그 음표를 기다리고 있는 또 다른 지체가 있습니다. 내가 건네는 작은 위로 한마디가 누군가를 일으킵니다. 내가 드리는 작은 섬김이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줍니다.
내가 베푸는 긍휼이 낙심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들려줍니다. 은사는 나를 위한 선물이면서 동시에 누군가를 위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지휘자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내 앞에 놓아 주신 악보를 보십시오. 다른 사람의 음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바로 그 음표를 연주하십시오. 그때 서로 다른 우리의 소리가 만나—그리스도라는 하나의 아름다운 음악이 될 것입니다.
복음 제시
9.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1절의“그러므로”에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우리 몸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십자가에서 손과 발이 못 박히시고, 피 흘리시며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어요. 우리의 헌신은 구원받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구원에 대한 화답(감사)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말합니다.“네가 먼저 뭘 잘해서 사랑한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너를 사랑했다.”
우리는 세상의 박수를 얻기 위해 연주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아 내 가치를 증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미 우리의 가치가 확인되었습니다. 지휘자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다른 사람의 악기를 부러워하지 마라. 사람들의 박수를 바라보지 마라. 내가 너에게 맡긴 악기를 들고 내가 너에게 맡긴 음표를 연주하여라.”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그것이 산 제물이요, 우리의 영적 예배입니다.
기대
10. 오케스트라의 무대에 수많은 악기가 있습니다. 소리도 다르고 역할도 다릅니다. 지휘자가 지휘봉을 들면 모든 연주자의 눈이 한 곳을 향합니다. 우리의 지휘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악기를 부러워하지 말고-내 악기가 작다고 숨기지도 말고-세상의 박수를 얻기 위해 더 크게 연주하려 하지도 말고-하나님께서 나의 손에 맡기신 악기를 드십시오. 가정에서 사랑이라는 음표를 연주하십시오. 일터에서 정직이라는 음표를 연주하십시오.
교회에서 섬김과 위로와 나눔의 음표를 연주하십시오. 아무도 듣지 못하는 작은 음표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악보에는 필요 없는 음표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우리의 눈이 옆 사람에게서 지휘자이신 예수님께로 향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내게 맡기신 바로 그 자리에서—나만의 음표를 연주하십시오. 그때 우리의 서로 다른 삶이 하나의 화음이 되고, 우리 교회가 세상 한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휘봉을 드셨습니다. 이제—우리의 연주가 시작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