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경지교(刎頸之交)
목을 벨 수 있는 벗이라는 뜻으로,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이나 사귐을 말한다.
刎 : 목벨 문(刂/4)
頸 : 목 경(頁/7)
之 : 어조사 지(丿/3)
交 : 사길 교(亠/4)
(유의어)
고산유수(高山流水)
관포지교(管鮑之交)
금란계(金蘭契)
금란지계(金蘭之契)
금란지교(金蘭之交)
금란지의(金蘭之誼)
금석지계(金石之契)
금석지교(金石之交)
단금지계(斷金之契)
단금지교(斷金之交)
담교(淡交)
담수지교(淡水之交)
막역지우(莫逆之友)
문경지우(刎頸之友)
백아절현(伯牙絶絃)
수어(水魚)
심우(心友)
유수고산(流水高山)
절현(絶弦)
절현(絶絃)
지기(知己)
지기지우(知己之友)
지란지교(芝蘭之交)
지우(知友)
지음(知音)
출전 : 사기(史記)의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
이 성어는 목을 베어 줄 수 있을 정도로 절친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매우 절친한 사귐을 이르는 말이다.
문경(刎頸)은 ‘목을 벤다’의 뜻이고, 교(交)는 ‘사귐’의 뜻이다. 그러므로 죽고 살기를 같이하여 목이 떨어져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친한 사귐 또는 그러한 벗으로, 생사를 같이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사기(史記)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에 나오는 말이다.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때의 명신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장군은, 한때 인상여의 출세를 시기하는 염파로 인하여 불화(不和)하였으나 끝까지 나라를 위하여 참는 인상여의 넓은 도량에 감격한 염파가 깨끗이 사과함으로써 다시 친한 사이가 되어, 죽음을 함께 해도 변하지 않는 친교를 맺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비롯되었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조(趙)나라에는 인상여와 염파라는 두 사람이 있었다. 인상여는 화씨벽(和氏壁)을 15개의 성과 바꾸기 위해 진(秦)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진왕(秦王)이 화씨벽만을 갖고 성을 줄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목숨을 걸고 진왕을 속여 화씨벽을 조나라에 돌려보내 완벽(完璧)이라는 말의 어원을 만든 사람이다.
또한 진왕이 회맹을 한다하고 민지(澠池)에 불러 그 위세로 조왕(趙王)을 굴복시키려 한 것을 인상여가 당당하게 맞서 조왕으로 하여금 위신을 세우기도 한 사람이다.
한편 염파는 조나라의 뛰어난 장수로 예전에 제(齊)나라를 공격하여 그 군사를 대파하고 양진 땅을 빼앗은 공로로 상경의 직에 임명된 사람이다. 당시 조나라의 국정은 외교로는 인상여, 군사의 일로는 염파에 의지해서 행해지고 있었다.
조나라 혜문왕(惠文王)은 민지(澠池)의 회맹에서 돌아온 즉시 인상여를 상경으로 임명하고 그의 직위를 염파보다 높게 두었다.
인상여가 자기 보다 높은 직급을 차지하자 염파는 화를 내며 말했다. “나는 군사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 목숨을 걸고 큰공을 세웠다. 그런데 인상여는 헛되이 혀만 놀려 별로 애쓴 것도 없는데 어찌하여 그가 나보다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단 말인가? 또한 인상여라는 사람은 내시 나부랭이의 문객 노릇을 했던 출신이 미천한 자인데 내가 어찌 그의 밑에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인상여가 내 눈에 띄우기만 한다면 내 결코 그를 살려두지 않으리라.”
인상여는 염파가 한 말을 전해듣고 조회를 열 때마다 병이 들었다고 참석하지 않아 염파와 마주치는 것을 피했다. 인상여의 문객들은 그가 매우 겁이 많다고 하면서 서로들 모여 앉아 수군거렸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상여가 밖으로 외출을 나갔는데, 그때 마침 염파도 외출을 나왔다. 인상여는 염파가 탄 수레가 멀리서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발견하자 황급히 마부에게 명하여 수레를 골목길로 몰게 하여 염파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큰길로 나왔다.
인상여 집의 문객들이 더욱 화를 내며 서로 의논한 다음 모두 인상여를 찾아가 항의하였다. “우리들이 고향과 친척들을 버리고 대감 밑으로 들어와 문객이 된 것은 대감은 당대의 대장부라 생각하고 서로 사모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대감을 따르게 된 것입니다. 지금에 있어서 대감과 염파장군은 동열의 작위에 직급은 오히려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염파장군은 매 번마다 대감에게 욕을 하고 다님에도 대감은 복수하려는 마음을 먹기는 고사하고 조회에도 나가지 못하다가 오늘은 외출 나갔다가 골목길에 숨으셨습니다. 어찌하여 대감께서는 그리도 염파를 무서워한다는 말입니까? 우리들은 대감과 같은 겁쟁이 밑에서 문객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오를 대감에게 하직 인사를 올리고 이 집을 떠날까 합니다.”
인상여가 문객들을 간곡하게 만류하며 말했다. “내가 염파장군을 피하는 것은 다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입니다. 여러분들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인상여의 문객들이 물었다. “우리들은 천박하고 알지 못하는 것이 많으니, 청건대 대감께서 그 연유를 깨우쳐 주시기 바랍니다.”
인상여가 “여러분들은 염파장군이 진왕보다 더 무섭다고 생각하십니까?”
문객들이 “그렇지 않습니다.”
인상여가 “무릇 진왕의 위세는 천하의 그 누구도 대항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인상여는 진왕을 그의 궁정 뜰에서 야단을 쳤으며 그의 신하들을 욕보였습니다. 이 인상여가 비록 재능이 없고 아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찌 유독 염파 한 사람만을 두려워하겠오? 강포한 진나라가 우리 조나라를 군사를 보내어 침략하지 않은 것은 다만 나와 염파장군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 두 사람이 싸운다면 두 사람 모두 살아남기 어려울 것인데, 진나라가 그 소식을 듣게 된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그 틈을 이용하여 조나라를 침공할 것입니다. 내가 부끄러움을 모르고 염파장군을 피하기만 한 것은 나라의 일을 중하게 여기고 사사로운 원한을 더 가볍게 생각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상여의 문객들은 그의 말에 탄복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상여와 염파의 문객들이 뜻밖에 주막에서 마주치게 되었는데 양쪽이 모두 자리를 차지하려고 시비가 붙게 되었다.
인상여의 문객 중 한 사람이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 인상여 대감은 나라의 일을 더 중하다고 여겨 염파장군에게 양보하고 있다. 우리들도 마땅히 주인의 뜻을 본받아 염파장군의 문객들에게 양보하겠다.”
그래서 염파의 문객들은 더욱 교만해졌다.
하동인(河東人) 우경(虞卿)이라는 사람이 조나라에 놀러 왔다가 인상여의 문객들이 전하는 말을 듣고, 조왕을 만나 말했다. “대왕께서는 지금 조나라의 신하들 중 가장 신임하고 있는 사람은 인상여와 염파가 아닙니까?”
조왕이 “그렇소!”
우경이 “신이 듣기에 옛날의 조나라 조정에는 본받을 만 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가득하여 서로 삼가하며 공사에 힘써 마음을 합하여 공경하는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렸다고 했습니다. 오늘 대왕께서 믿고 계시는 두 사람의 중신들은 스스로를 생각하기를 물과 불같다고 생각하니 이것은 조나라의 사직에 좋지 않는 일입니다. 무릇 인상여와 그의 편에 속한 사람들은 더욱 양보만 하고 있고, 이와는 반대로 염파와 그에 속한 사람들은 인상여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염파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더욱 교만해져서 이제는 오히려 인상여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감히 그들의 기세를 꺾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조정에 일이 있어도 서로 같이 의논하지 못하고 장차 위급한 상황을 맞게 되어도 서로 구하려고 하지 않으니, 신은 대왕을 위해 마음속으로 걱정한 끝에 염파와 인상여를 서로 화해시켜 대왕을 도우려고 하오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왕이 우경의 청을 허락하였다. 우경은 즉시 염파의 집을 방문하여 먼저 염파가 세운 공로를 칭송하였다. 염파가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
우경이 “조나라에 끼친 공로를 말한다면 장군만한 사람은 없으며 도량이 크기를 말한다면 인상여를 말할 수 있겠습니다.”
염파가 듣더니 얼굴색을 바꾸어 화를 내며 말했다. “그자는 한갓 겁 많은 필부에 불과할 뿐이라 혓바닥만 나불거려 공명을 취한 자인데 어찌 도량 운운하는 것입니까?”
우경이 “인상여는 겁쟁이가 아니라 오히려 그 도량이 매우 큰 사람입니다.”
우경이 이어서 인상여의 문객들이 하는 말을 염파에게 상세하게 들려주며 덧붙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군이 만약에 조나라에 몸을 두지 않기로 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기왕에 조나라에 몸을 의탁하기로 했다면 두 사람의 대신들 중 한 사람은 마냥 양보만 하고 다른 한 사람의 대신은 마냥 싸움만 하고 있으니 내가 걱정하는 것은 결국은 이름을 떨치게 되는 것은 장군이 아니고 인상여 대감일 것이요.”
염파가 듣고 크게 부끄러워 하며 말했다. “선생의 말씀이 아니었다면 내가 나의 잘못을 깨닫지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참으로 인상여 대감을 따라가려면 한참 멀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염파는 우경을 먼저 인상여에게 보내 자기의 뜻을 전하게 했다. 이어서 자기는 윗통을 벗어 육단(肉袒)의 몸으로 몽둥이를 등에 짊어지고 인상여의 집 문 앞에 이르자 큰 소리를 쳐 사죄의 말을 했다. “비루한 사람의 천박하고 좁은 소견으로 상국의 넓고 큰 도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이렇듯 교만하게 행세했으니 나는 죽어도 그 죄를 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염파는 인상여의 집 앞뜰에서 오랫동안 무릎을 꿇고 인상여에게 죄를 청했다.
인상여가 소식을 듣고 급히 집안에서 뛰쳐나와 염파를 일으키며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여 주군을 모시고 있어 사직을 지키고 있는 신하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장군은 능히 이제 나의 뜻을 헤아리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장군께서 번거롭게 나에게 죄를 청하는 것입니까?”
염파가 “소인은 성격이 천박하고 참을성이 없으며 또한 포악하기 조차 합니다. 대감의 너그러운 은혜를 입었으니 참으로 내가 부끄러워 몸둘 곳을 모르겠습니다.”
염파가 인상여를 붙들고 눈물을 훌렸다. 인상여도 역시 염파를 붙들고 같이 울었다.
염파가 말했다. “오늘부터 대감과 생사를 같이하는 결의형제를 맺어 비록 목에 칼이 들어와도 결코 변치 않겠습니다.”
염파가 먼저 인상여에게 절을 올리자 인상여도 같이 절을 하여 답하였다. 이어서 인상여는 술을 내와 잔치를 벌려 염파를 극진히 대하며 서로 즐겁게 놀다가 헤어졌다. 후세 사람들은 두 사람이 맺은 교우관계를 일컬어 문경지교(刎頸之交)라고 했다.
이를 두고 무명씨(無名氏)가 시를 지었다.
引車趨避量誠洪(인차추피량성홍)
肉袒將軍志亦雄(육단장군지역웅)
今日紛紛競門戶(금일분분경문호)
誰將國計量胸中(수장국계량흉중)
수레를 골목으로 몰아 피한 인상여의 도량은 참으로 넓다 하겠거니와, 자기의 잘못을 뉘우쳐 육단을 행한 염파도 역시 영웅이라!
지금의 사람들은 분분하게 서로 앞다투어 자기 세력을 다투기에 바쁘니, 그 누가 나라를 위해 가슴에 웅대한 계책을 지니고 있겠는가?
인상여도 위대하지만, 자기의 잘 못을 뉘우치고 순식간에 새로운 기분으로 돌아가, 깨끗이 사과를 하는 염파의 과감하고 솔직한 태도야 말로 길이길이 우리의 모범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문경지교 속에 또 하나의 고사성어가 숨어 있다. 염파가 가시나무 회초리를 짊어지고 인상여를 찾아가서 때려 달라고 부탁한 부형청죄(負荊請罪)라는 고사성어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처벌을 자청한다는 뜻이다. 문경지교보다 덜 알려진 고사성어다.
염파는 부형청죄를 했기 때문에 후세에 아름다운 문경지교를 남길 수 있었다. 오늘날에는 부형청죄를 해도 용서받을까 말까 한 사람이 되레 삿대질이다. 그래서 용서받을 기회마저 놓치고 있다. 역사의 평가 역시 좋을 수가 없을 것이다.
우정(友情)이란 단어는 어감이 주는 따뜻함이 있다. 사람이 처세의 이치를 가장 빨리 배워서 마음에 간직하게 되는 것이 친구간의 사귐일 것이다.
그런데 순수한 친구간의 사귐일지라도 사람의 마음이란 계속 여일(如一)하기가 어렵기에 순수한 우정을 지켜내는 것 또한 쉽지만은 않다.
그렇기에 예로부터 백아(伯牙)와 종자기(鍾子期)의 지음(知音), 백아절현(伯牙絶絃),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관포지교(管鮑之交),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의 문경지교(刎頸之交), 유비(劉備)와 제갈량(諸葛亮)의 수어지교(水魚之交) 외에 단금지교(斷金之交), 망년지교(忘年之交) 등등 아름다운 우정이 천고(千古)에 향기를 뿜고, 우리는 이에 대해 찬탄하고 동경하는 것이다.
이백(二白)의 경우를 보면, 그의 호방하고 낭만적인 성격으로 인해 진실한 친구를 사귀기가 참으로 어려운 사람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앞선다.
그러나 한평생 천하를 떠돌며 생활한 그가 친구를 사귀는 특출난 점이 없었다면 그러한 생활이 가능키나 하겠는가? 물론 그에게는 현종(玄宗)의 총애를 받은 시를 짓는 천재적인 재능을 보유했다는 점이 큰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린(李璘)의 난으로 인해 옥에 갇혔을 때, 곽자의(郭子儀) 등이 성심껏 그를 구원하여 살려낸 것이나, 오균(吳筠), 하지장(賀知章)이 그를 조정에 천거한 것이나, 공소부(孔巢父), 한준(韓準), 배정(裴政), 장숙명(張叔明), 도면(陶沔) 등과 함께 조래산(徂徠山)의 죽계육일(竹溪六逸)이라 불렸던 점을 감안하면, 그에게 무언가 특별한 점이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백(二白)과 함께 어울렸던 조래산의 죽계육일(竹溪六逸)이 우정을 거론 할만한 모임인가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지만 음주하며 시를 짓고 읊조리는 일종의 문인 모임인 죽계육일이 그를 중심으로 하여 오랫동안 즐겼다는 것 자체가 ‘문인은 서로를 경시한다(文人相輕)’는 문인 특유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점에 비추어 본다면 이백의 재능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거니와 그의 친교 또한 과히 상식 이하는 되지 않았을 것이라 추측한다.
친구간의 사귐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공자(孔子)는 논어(論語)의 첫 장에서 군자의 덕목 중 두 번째로 ‘벗이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有朋 自遠方來 不亦樂乎?)’라고 했다.
그러나 세상사의 친교가 즐거움만으로 되던가? 오랜 세월을 지나다보면 어디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정이 조금씩 삐걱거리며 소원하게 되는 것을 발견하곤 자책하거나 혹은 친구를 원망하게 된다.
그래서 친구를 사귐에 있어 ‘사귀기 전에는 마땅히 잘 살펴봐야 하고, 사귄뒤에는 마땅히 믿어야 한다(交友之先宜察 交友之後宜信)’고 했지만, 어디 이것 또한 쉬운 일이던가?
이백도 화려했던 장안생활을 청산하고 천하를 떠돌 때 인간의 염량세태를 경험했을 것이다. 동문을 나선 뒤 아쉬운 정을 가지고 한림원(翰林院)의 여러 공들에게 부침(一作出東門後書懷留别翰林諸公)이란 부제가 붙은 동무음(東武吟)에서, 황제에게 인정받아, 궁정에서의 화려한 생활을 언급하고 난 뒤, “하루 아침에 금마문(金馬門)을 떠나니, 정처없이 날리는 쑥대의 신세가 되었어라, 찾아오는 빈객들은 날로 적어지고, 옥술독도 이미 다 비었구나(一朝去金馬, 飄落成飛蓬. 賓客日疏散, 玉樽亦已空)”라고 하고서, 마지막에 자신은 한(漢)나라 때의 신선 황기옹(黃綺翁)을 찾아 떠난다고 밝혔다.
자신의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한 상처는 컸을 것이지만 문인은 풍부한 감수성으로 인해 업무에 충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들의 하루 일과나 창작생활이 일반인의 일상과 상반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하여간에 이백은 염량세태나 우정에 대해 다시금 통감하게 된 듯 하다.
이백의 공후요(箜篌謠)이다.
攀天莫登龍(반천막등룡)
走山莫騎虎(주산막기호)
하늘에 올라도 용에 오르지 말고, 산을 달려도 호랑이는 타지 마라.
貴賤結交心不移(귀천결교심불이)
唯有嚴陵及光武(유유엄릉급광무)
귀하고 천한 이가 서로 친구되어 마음변치 않는 예는, 오직 엄릉과 광무제 뿐이라네.
周公稱大聖(주공칭대성)
管蔡寧相容(관채녕상용)
주공이 비록 큰 성인으로 칭송될지라도, 관숙선과 채숙도를 어찌 용납할 수 있었던가?
漢謠一斗粟(한요일두속)
不與淮南舂(불여회남용)
한나라 노래에, 漢 문제는 한말의 곡식이라도, 회남왕(厲王)과는 찧지 않는다 하였네.
兄弟尚路人(형제상로인)
吾心安所從(오심안소종)
형제도 오히려 남이 되는 세상, 내 마음 어찌 따를 곳이 있겠는가?
他人方寸間(타인방촌간)
山海幾千重(산해기천중)
남의 작은 속마음은, 산과 바다처럼 몇 천 겹이던가?
輕言托朋友(경언탁붕우)
對面九疑峰(대면구의봉)
친구에게 속마음 경솔히 말했다가, 구의봉 같은 것과 마주했노라.
開花必早落(개화필조락)
桃李不如松(도리불여송)
일찍 핀 꽃은 반드시 일찍 지나니, 복사꽃과 오얏꽃은 소나무만 못하다.
管鲍久已死(관포구이사)
何人繼其踪(하인계기종)
관중과 포숙아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으니, 어느 누가 그들의 발자취를 이어 가리오.
어떠한 사유로 마음에 이토록 심한 상처를 입었는지 모르지만 첫 구절을 보면 황제의 총애를 받고서 무례하게 행동한 사실로 인하여 내침을 당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여간에 진정한 우정에 대해 회의를 지녔음에도 이백은 천성적으로 친구를 좋아하고 또한 한번 사귄 친구는 진정으로 믿었던 것 같다. 친구간의 우정은 진정성이 담보되어야 오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말에 ‘한 마음으로는 만명의 친구를 사귈 수 있지만 두 마음으로는 한 명의 친구조차 사귈 수 없는 것(一心可以交萬友 二心不可以交一友)’이라고 했는데, 바로 이백의 친구 사귀는 모습이 이러한 듯 하다.
증맹호연(贈孟浩然)을 보면 ‘높은 산을 어찌 우러러 볼까, 다만 맑은 향기나는 절개에 절할 뿐이리(高山安可仰 徒此揖淸芬)’라고 하여, 맹호연이란 인물에 대해 과찬이라고 할 정도로 칭송하였다.
그런데 맹호연을 전송하며 지은 송맹호연지광릉(送孟浩然之廣陵)을 보자.
故人西辭黃鶴樓(고인서사황학루)
煙花三月下揚州(연화삼월하양주)
孤帆遠影碧空盡(고범원영벽공진)
唯見長江天際流(유견장강천제류)
친구는 서쪽으로 황학루와 작별하고, 꽃이 흐드러지게 핀 3월에 양주로 내려가네. 외로운 돛단배의 아득한 그림자 푸른 하늘로 사라지고, 오직 장강만이 하늘 끝으로 흐르네.
시의 이면에는 헤어짐의 아쉬움으로 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는 이백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로써 이백이 말로만 친구를 과찬하지 않았으며, 얼마나 친구를 진정으로 대하는 지를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은 자신뿐만 아니라 사귀는 친구도 가졌으리라는 확신을 가진 듯 하는데, 증왕륜(贈汪倫)이란 시에 잘 나타나 있다.
李白乘舟將欲行(이백승주장욕행)
忽聞岸上踏歌聲(홀문안상답가성)
桃花潭水深千尺(도화담수심천척)
不及汪倫送我情(불급왕륜송아정)
이백이 배에 올라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언덕위에서 송별의 노랫소리 들리네. 도화담의 물이 천척이나 깊다해도, 나를 전송하는 왕륜의 마음에 미치랴!
바로 이백은 자신이 친구를 진정으로 대했듯이 친구의 진정을 충분히 감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옛말의 ‘사귄 뒤에는 마땅히 믿어야 한다’는 사귐의 철칙을 몸소 실천하였던 것이다.
이백은 평생 천하를 떠돌면서 수많은 친구를 사귀었고, 그렇기에 증별시(贈別詩)가 상당히 많다.
예를 들면, 여사랑보유경천능암사(與謝良輔游涇川陵巖寺), 연도가정자(宴陶家亭子), 재수군연위사마루선관기(在水軍宴韋司馬樓船觀妓), 억구유기초군원참군(憶舊遊寄譙郡元參軍), 회해대설증부애(淮海對雪贈傅靄), 증서안의(贈徐安宜), 증임성로주부(贈任城盧主簿), 조추증배십칠중감(早秋贈裴十七仲堪), 증범금경(贈范金卿), 증하구왕소부(贈瑕丘王少府), 증단양횡산주처사유장(贈丹陽橫山周處士惟長), 옥진공주별관고우증위위장경이수(玉眞公主別館苦雨贈衛尉張卿二首), 증위비서자춘(贈韋秘書子春), 증위시어황상(贈韋侍御黃裳), 증설교서(贈薛校書), 증하칠판관창호(贈何七判官昌浩), 독제갈무후전서회증장안최소부숙봉곤계(讀諸葛武侯傳書懷贈長安崔少府叔封昆季), 증곽장군(贈郭將軍), 하거온천후증양산인(賀去溫泉後贈楊山人), 금릉백하정유별(金陵白下亭留別), 별동림사승(別東林寺僧), 찬야랑어오강유별종십육(竄夜郞於烏江留別宗十六), 유별공처사(留別龔處士), 증별정판관(贈別鄭判官), 장유형악우한양상송정유별족제부도담호(將游衡岳迂漢陽雙松亭留別族弟浮屠談皓), 유별가사인지이수(留別賈舍人至二首), 별위소부(別韋少府),별산승(別山僧), 증별왕산인귀포산(贈別王山人歸布山), 강하별송지제(江夏別宋之悌), 남양송객(南陽送客), 공장사인지강동(送張舍人之江東), 송당도조소부부장로(送當塗趙少府赴長蘆), 송우인심월중산수(送友人尋越中山水), 송우인유매호(送友人游梅湖), 송최십이유천축사(送崔十二游天竺寺) 등등이 있다.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모두 진정으로 사귀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이렇게 각종 다양한 계층의 사람을 사귈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이백이 생각 외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장점을 지녔을 것으로 사료된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에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화장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사람만이라도 있다면 참으로 괜찮은 인생인데, 자신의 주변에 늘 사람이 끓게 되는 것은 얼마나 괜찮은 삶인가!
그의 증별시를 보면 많은 연회에 참석하는 모습, 이별의 아쉬움, 친구가 보낸 선물로 통해 친구를 더욱 간절하게 생각하는 모습, 명승지에 도착하여 그 지역과 관련된 친구에 대한 그리움․그 지역과 얽힌 옛날의 고사 등의 내용이 나타난다.
이백이 술마시는 커다란 이유중의 하나가 자신이 갑자기 느끼는 외로움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인간의 유한한 생명에 대한 유감이다.
어느날 문득 귀밑머리가 하얀 것을 발견하거나 추운날 양치질할 때 이(齒)가 시린 것을 느끼게 될 때, 세월의 빠름과 인생의 허무함으로 인해 근심하게 된다.
그의 추포가(秋浦歌) 17수를 보면, 시름으로 추포(秋浦)의 나그네가 되어(愁作秋浦客) 추포가(6), 청계(淸溪)의 물소리가 창자를 끊는데, 떠나려고 하나 떠나지 못하고, 잠시 논다는 것이 이토록 오래 되었다(青溪非隴水,翻作斷腸流.欲去不得去,薄游成久游.) 추포가(2)는 상황이 되었으니, 나이 먹어가는 것이 얼마나 그의 가슴을 짓눌렀겠는가? 그 중 15수를 보자.
白髮三千丈(백발삼천장)
緣愁似個長(연수사개장)
不知明鏡裏(부지명경리)
何處得秋霜(하처득추상)
백발은 길이가 삼천 발, 근심 때문에 이렇게 자랐다. 알 수 없구나 맑은 거울 속 나의 백발은, 어느 곳에서 서리를 얻어왔나.
어찌 술없이 이러한 세월을 견딜 수 있겠는가? 그래서 그는 대주(對酒)에서 말한다.
勸君莫拒杯(권군막거배)
春風笑人来(춘풍소인래)
그대에게 권하노니 술잔을 거절하지 마소, 봄바람이 비웃는다오.
桃李如舊識(도리여구식)
傾花向我開(경화향아개)
복숭아와 살구나무는 친구처럼, 꽃을 기울어 나를 향해 피네.
流鶯啼碧樹(유앵제벽수)
明月窺金罍(명월규금뢰)
떠돌던 앵무새는 푸른 나무 위에서 울고, 밝은 달은 황금술잔을 비춘다.
昨日朱顔子(작일주안자)
今日白髮催(금일백발최)
어제는 붉은 빛의 젊은 얼굴이, 오늘은 백발을 재촉한다.
棘生石虎殿(극생석호전)
鹿走姑蘇臺(녹주고소대)
대추나무 황폐해진 석호전에 자라고, 사슴은 황폐해진 고소대를 뛰논다.
自古帝王宅(자고제왕택)
城闕閉黃埃(성궐폐황애)
예로부터 제왕의 집, 궁궐이 누런 티끌로 뒤덮혔다.
君若不飮酒(군약불음주)
昔人安在哉(석인안재재)
그대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옛 사람이 어찌 살아있겠는가!
술을 권하는 핑계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생무상함 보다 더한 것이 있겠는가? 더 바랄 것이 없던 황제의 궁궐조차 지금은 대추나무같은 잡초가 자라고, 사슴이 뛰어노는 황폐한 곳으로 변한 것을 보고서, 더 이상 가릴 것이 뭐가 있더란 말인가? 이백이야 술을 한번 마시면 연거푸 술 백병을 마셔야 하고, 하루에 삼백잔씩 마셔야 했는데,...
중국의 속담에 ‘술이 친구를 만나게 되면 천잔도 부족하다(酒逢知己千杯少)’는 말이 있다. 그 넓은 중국의 땅덩어리에서 한번 헤어지면 그것으로 영영 이별할 지도 모를 일이니, 그동안에 쌓였던 가슴속의 말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러니 몇날 며칠을 밤새워 부족할 것이다.
그의 대주행(對酒行)과 금릉봉황대치주(金陵鳳凰臺置酒)를 보자.
🔘 대주행(對酒行)
松子栖金華(송자서금화)
安期入蓬海(안기입봉해)
적송자(赤松子)는 금화산으로 들어갔고, 안기는 동해 바다 속 봉래산으로 들어갔네.
此人古之仙(차인고지선)
羽化竟何在(우화경하재)
이 사람들은 옛날의 신선이지만, 신선되어 결국 어디에 있는가?
浮生速流電(부생속유전)
倏忽變光彩(숙홀변광채)
뜬구름같은 인생 번개처럼 빨라, 갑자기 광채로 변하네.
天地无凋換(천지무조환)
容顔有遷改(용안유천개)
천지는 시들어서 바뀌지 않지만, 얼굴은 바뀌는구나.
對酒不肯飮(대주불긍음)
含情欲誰待(함정욕수대)
술을 대하고 마시지 않고자 하면서, 정을 품고서 누구를 기다리시나.
🔘 금릉봉황대치주(金陵鳳凰臺置酒)
置酒延落景(치주연락경)
金陵鳳凰臺(금릉봉황대)
해거름 경치에 술자리를 펼치니, 금릉의 봉황대라.
長波寫萬古(장파사만고)
心與雲俱開(심여운구개)
긴긴 파도는 옛 일을 써내고, 마음과 구름이 모두 활짝 펴진다.
借問往昔時(차문왕석시)
鳳凰爲誰來(봉황위수래)
옛날을 물어 보노니, 봉황은 누굴 위해 왔는고?
鳳凰去已久(봉황거이구)
正當今日回(정당금일회)
봉황은 떠난 지 이미 오래인데, 바로 오늘 돌아왔구나.
明君越羲軒(명군월희헌)
天老坐三臺(천로좌삼대)
밝은 임군은 복희씨와 軒轅氏보다 뛰어나고, 천제가 三臺에 앉았어도,
豪士無所用(호사무소용)
彈弦醉金罍(탄현취금뢰)
호걸은 쓰이지 않더라. 거문고를 연주하고 금술잔에 취하네.
東風吹山花(동풍취산화)
安可不盡杯(안가부진배)
동풍이 산위의 꽃에 부니, 어찌 술을 마시지 않을 소냐.
六帝没幽草(육제몰유초)
深宫冥綠苔(심궁명록태)
여섯 황제는 그윽한 풀에 묻혔고, 깊은 궁궐은 푸른 이끼로 어둡네.
置酒勿復道(치주물부도)
歌鍾但相催(가종단상최)
술을 두고 다시 말하지 마소, 노랫소리 종소리만이 술 마시라고 재촉하니.
이 두 편을 읽고 나면,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술을 권하는 핑계가 지극히 마땅하고 애절한 가운데서도, 술자리의 상황이 머리속에서 그려지기 때문이다.
상대가 술 친구든지 기녀든지, 혹은 이미 술에 취했든지, 술을 아예 마시지 못하든지, 술을 권하는 모습이 이백답다. “술을 두고 다시 말하지 마소, 노랫소리 종소리만이 술 마시라고 재촉하니.”
하긴 백거이(白居易)도 “서로 만났으니 다시 술을 사양하지 말고 취합시다, 양관의 이별가 중 네번째 구절을 읊을테니 귀 기울여 듣기나 하소(相逢且莫推辭醉, 聽唱陽關第四聲)”라고 했다.
이백은 장안(長安)을 떠날 때 현종(玄宗)으로부터 받은 만냥의 전별금(餞別金)을 10년만에 모두 다 써버렸다. 천금을 다 써버리면 또 다시 생기는 것(千金散盡還復來)이라는 성격의 소유자이기에 친구와의 진정한 우정을 유지할 수 있었고, 친구와의 이별을 아쉬워하며 차마 떠나지 못하는 것은 당연지사일 터이다. 그의 전별시에는 이러한 모습이 많이 나온다.
예를 들면, 증추포유소부(贈秋浦柳少府)의 “내가 사랑하는 그대, 오래도록 만류하니 차마 돌아가지 못하네(而我愛夫子, 淹留未忍歸)”, 별산승(別山僧)의 “이번에 이별하면 어느 날에 만날까? 그리운 마음 하루 저녁 원숭이 울음에 깊어만 가고(此度别離何日見, 相思一夜暝猿啼)”, 별동림사승(別東林寺僧)의 “동림사 손님을 전송하는 곳에, 달이 뜨니 하얀 잔나비가 운다. 웃으면서 이별하자니 여산은 먼데, 왜 반드시 호계를 건너야 하나(東林送客處, 月出白猿啼. 笑別廬山遠, 何須過虎溪)”, 증임성로주부(贈任城盧主簿)의 “종고(종과 북)으로는 즐겁지 않고, 안개와 서리 내리면 누구와 함께 할꼬. 날아 돌아와선 차만 떠나지 못하네, 눈물흘리며 원앙과 홍곡(큰 기러기와 고니)과 이별하네(鍾鼓不爲樂, 烟霜誰與同. 歸飛未忍去, 流淚謝鴛鴻)” 등등이 있다.
여기서 그의 송우인(送友人)를 보자.
靑山橫北郭(청산횡북곽)
白水遼東城(백수요동성)
푸른 산은 북쪽 성곽으로 가로 지르고, 하얀 강물은 성 동쪽을 싸고 흐른다.
此地一爲別(차지일위별)
孤蓬萬里征(고봉만리정)
여기서 한번 이별하면, 외로운 쑥대처럼 만리까지 날려 가리.
浮雲遊子意(부운유자의)
落日故人情(낙일고인정)
뜬구름은 나그네의 마음이고, 석양은 친구의 마음이로다.
揮手自玆去(휘수자자거)
蕭蕭班馬鳴(소소반마명)
손 흔들며 이제 떠나가니, 쓸쓸하게 떠나는 말도 우는구나.
다시 금릉주사유별(金陵酒肆留別)를 보자.
風吹柳花滿店香(풍취류화만점향)
吳姬壓酒勸客嘗(오희압주권객상)
바람이 솜 버들에 부니 주막에 향기 가득하고, 오땅의 미희 술을 걸러 손님에게 맛보라 권하네.
金陵子弟來相送(금릉자제래상송)
欲行不行各盡觴(욕행불행각진상)
금릉의 자제들이 배웅하려 찾아왔네, 떠나려 해도 떠나지 못하고 각각 술잔만 비운다.
請君試問東流水(청군시문동류수)
別意與之誰短長(별의여지수단장)
그대에게 묻노니 동쪽으로 흐르는 장강의 강물, 석별의 정과 어느 것이 길고 짧은가?
떠나는 사람이나 보내는 사람 모두 아쉬운 것이 진정한 우정이리라. 그런데 친구간의 사귐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서로 의기투합하든지, 절대적으로 친구를 이해하는 마음이 기반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하다.
그래서 옛사람은 “먼저 처음엔 담담하다가 나중에 열렬하게, 처음엔 낯설다가 나중에 친하게, 처음엔 멀었다가 나중에 가까워지는 것, 이것이 친구를 사귀는 도리다.”라고 하였다.
先淡後濃, 先疎後親,
先遠後近, 交友道也.
이백은 어떠한 우정을 염원했을까? 물론 목숨을 담보로 하는 우정이겠지만, 그가 참으로 아름답게 여긴 것은 왕휘지(王徽之)와 대규(戴逵)의 ‘흥에 겨워 친구를 찾아감(乘興訪友)’ 혹은 ‘눈이 내린 저녁 대규를 찾아가다(雪夜訪戴)’라는 고사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의 동로문범주(東魯門泛舟) 중 其一에서 “가벼운 배를 달밤에 띄워서 계곡을 찾아 돌고도니, 왕휘지가 산음에 눈 내린 뒤 대규를 찾은 것 같구나(輕舟泛月尋溪轉, 疑是山隱雪後来)”고 하였고, 其二에서 “만약 달빛 아래 배를 타고 떠나게 한다면, 어찌 바람에 흘러 섬계(剡溪)에만 이르게 될까?(若教月下乘舟去, 何啻風流到剡溪)”라고 하였다.
또한 답왕십이한야독작유회(答王十二寒夜獨酌有懷)에서 “어제 저녁 오중 땅에 눈이 왔는데, 왕휘지는 흥에 겨워 섬계로 떠났었지”(昨夜吳中雪,子猷佳興發)라고 하였다.
잠시 그 고사를 소개하면, 왕희지의 아들 왕휘지가 산음(山陰)에 있을 때, 저녁에 눈이 왔다가 개이니, 달빛이 더욱 밝아서 사방이 온통 하얗다. 그래서 홀로 술을 마시면서 좌사(左思)의 초은시(招隱詩)를 읊조리다가 갑자기 친구 대규(戴逵)가 생각났다. 당시 대규는 섬(剡)땅에 있었다.
그래서 그 밤에 작은 배를 빌려 타고 친구를 찾아갔다. 밤을 새워 친구가 기거하던 집을 찾아갔는데, 그 집 문앞에서 그냥 돌아왔다. 그 까닭을 물으니, 왕휘지가 대답하기를 “본래 흥에 겨워 친구를 찾아갔는데, 흥이 다 되어 돌아오는데 구태여 친구 대규를 만날 필요가 있는가?”라고 하였다.
참 멋지다. 옛 사람의 흥취가 바로 이런 것이다. 친구간의 우정에는 말이 혹 거추장스러울 때가 있다. 말하지 않아서 친구가 알지 못하면 어떻고 안다면 또 어쩔텐가? 그게 자신이 친구에게 베푼 우정으로 만족하면 될 것을...
나아가 이백은 친구가 보내 준 선물에도 몹시 감격하였다. 그의 은십일증율강연(殷十一贈栗岡硯)이다.
殷侯三玄士(은후삼현사)
贈我栗岡硯(증아율강연)
은십일이, 나에게 율강연을 보냈네.
洒染中山毫(주염중산호)
光映吳門練(광영오문련)
중산의 붓을 찍으니, 오문의 비단처럼 빛난다.
天寒水不凍(천한수불동)
日用心不倦(일용심불권)
날이 추워도 먹물이 얼지 않고, 날마다 사용해도 싫증나지 않네.
携此臨墨池(휴차임묵지)
還如對君面(환여대군면)
이 벼루를 가지고 묵지에 이르니, 역시 그대의 얼굴을 대하고 있는 듯하네.
일찍이 유명한 벼루인 율강현(栗岡硯)이 마음에 들었기도 했겠지만, 특히 왕희지의 묵지(墨池)를 보고 그를 떠올리는 면에서, 이백이 맺은 우정의 진정성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백이 네번의 결혼을 하였고, 자식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치기는 했지만 부인과 자식들을 내팽개치고 천하를 떠돌며 친구를 사귄 점을 이해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유가(儒家)의 근본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점을 놓고 본다면, 이백이란 인물을 받아 들이기는 더욱 힘들다. 그런데, 다양성을 존중하고, 특히나 이백이 문인이란 특별한 계층이란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이력을 도저히 용납못할 일도 아니다.
다만 황제의 총애를 받았고, 달과 술을 벗삼아서 자신의 개성대로 살았지만 그가 한번 친구의 정을 맺게되면 진정으로 대한 이백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왜 그럴까?
▶️ 刎(목벨 문)은 형성문자로 歾(문)은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선칼도방(刂=刀; 칼, 베다, 자르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勿(물, 문)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刎(문)은 ①목을 베다 ②스스로 목을 자르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스스로 목을 베어 죽음을 문사(刎死), 목을 벰 또는 해고함이나 해직 시킴을 문경(刎頸), 스스로 자신의 목을 베거나 찌름 또는 그렇게 하여 죽음을 자문(自刎), 목을 벨 수 있는 벗이라는 뜻으로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이라는 말을 문경지교(刎頸之交), 생사를 같이 하여 목이 떨어져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한 사귐 또는 그런 벗을 이르는 말을 문경지우(刎頸之友), 송편으로 목을 딸 일이라는 뜻으로 어처구니 없이 당한 억울한 일을 이르는 말을 송병문경(松餠刎頸) 등에 쓰인다.
▶️ 頸(목 경)은 형성문자로 頚(경)의 본자(本字), 颈(경)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머리 혈(頁; 머리)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巠(경)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頸(경)은 ①목 ②목덜미의 앞부분 ③물건의 목 모양으로 된 부분 ④칠성,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목등뼈를 이르는 말을 경추(頸椎), 목뼈를 이르는 말을 경골(頸骨), 목에 있는 힘줄을 경령(頸領), 목이 있는 부분을 경부(頸部), 목에서 흐르는 피를 경혈(頸血), 목의 장식을 경식(頸飾), 목털을 이르는 말을 경우(頸羽), 목의 둘레를 경위(頸圍), 목의 옆쪽을 경측(頸側), 목에 있는 여러 근육의 통틀어 일컬음을 경근(頸筋), 목에 있는 임파선을 경선(頸腺), 검지로 집게 손가락을 경지(頸指), 목의 앞쪽을 전경(前頸), 목의 뒤쪽을 후경(後頸), 짧은 목을 단경(短頸), 칼로 목을 찌르는 시늉을 함을 의경(擬頸), 죄인의 목에 칼을 씌움을 쇄경(鎻頸), 이의 잇몸 속의 부분과 잇몸 밖의 부분으로 나뉘는 부분을 치경(齒頸), 목을 벰 또는 해고함이나 해직 시킴을 문경(刎頸), 목을 벨 수 있는 벗이라는 뜻으로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이라는 말을 문경지교(刎頸之交), 생사를 같이 하여 목이 떨어져도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한 사귐 또는 그런 벗을 이르는 말을 문경지우(刎頸之友), 송편으로 목을 딸 일이라는 뜻으로 어처구니 없이 당한 억울한 일을 이르는 말을 송병문경(松餠刎頸), 길다란 목에 까마귀 부리 같이 뾰족한 입이라는 뜻으로 관상에서 목이 길고 입이 뾰족한 상을 이르는 말을 장경오훼(長頸烏喙), 학처럼 목을 길게 빼고 간절히 기다린다는 말을 연경학망(延頸鶴望), 갓이나 머리에 매는 끈을 목에 맨다는 뜻으로 목을 매어 죽여 달라는 의미로 항복한다는 말을 계경이조(繫頸以組), 용의 눈동자와 봉황의 목이라는 뜻으로 매우 잘 생긴 귀인의 얼굴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용동봉경(龍瞳鳳頸)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交(사귈 교)는 ❶상형문자로 䢒(교)는 동자(同字)이다. 사람의 종아리가 교차해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이 글자에서 咬(교; 씹다), 絞(교; 묶다), 校(교; 학교) 등의 글자가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交자는 ‘사귀다’나 ‘교제하다’, ‘엇갈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交자는 亠(돼지해머리 두)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돼지머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交자는 다리를 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交자의 갑골문을 보면 양다리를 꼬고 앉은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交자는 이렇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사람을 그려 ‘엇갈리다’나 ‘교차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交(교)는 ①사귀다, 교제하다 ②오고 가다 ③주고 받다, 바꾸다 ④인접(隣接)하다, 서로 맞대다 ⑤엇걸리다 ⑥맡기다 7넘기다, 건네다 ⑧내다, 제출하다 ⑨섞이다, 교차하다 ⑩성교하다, 교배하다 ⑪되다, 도래하다 ⑫임무를 마치고 보고하다 ⑬교제(交際), 우정(友情) ⑭벗, 친구(親舊), 동무 ⑮무역(貿易), 거래(去來), 흥정 ⑯서로, 상호(相互) ⑰곤두박질, 공중제비 ⑱옷깃 ⑲일제히, 동시에, 함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서로 번갈아 드는 사람 또는 그 일을 교대(交代), 통신을 주고 받음을 교신(交信), 2개 이상의 선상의 것이 한 곳에서 마주치는 것을 교차(交叉), 암수 양성의 교접을 교미(交尾), 다른 종류의 암수의 배합을 교배(交配), 벗을 사귐 또는 친구와 교제함을 교우(交友), 섞어 합함을 교합(交合), 서로 맞붙어 싸움을 교전(交戰), 서로 바꿈을 교환(交換), 서로 물건을 사고 팔아 바꿈을 교역(交易), 자리나 역할 따위를 다른 사람 또는 다른 것과 바꿈을 교체(交替), 서로 주고 받음을 교류(交流), 일을 이루기 위하여 서로 의논함을 교섭(交涉), 막힘이 없이 서로 오가는 일을 교통(交通), 서로 사귀어 왕래함을 교유(交遊), 서로서로 어우러져서 뒤섞임을 교잡(交雜), 사귀어 담박하기가 물과 같다는 교담여수(交淡如水), 벗을 사귐에 신의로써 사귐을 교우이신(交友以信), 벗을 사귀는 도리를 교우지도(交友之道), 벗을 사귈 때에는 서로가 분에 맞는 사람끼리 사귀어야 함을 교우투분(交友投分), 사귄 지는 오래지 않으나 서로 심중을 털어놓고 이야기 한다는 교천언심(交淺言深)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