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무엇을 희생했느냐?
---(팟캐스트 방송)---
http://cdn.podbbang.com/data1/chunsd/200202.mp3
---(감우(甘雨) 라디오/TV)---
http://gamwoo.tv/raincol-20
새벽녘에 자꾸만 깨우는 뭔가가 있었습니다. 조금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잠시 기도를 드리고 “서라헬의 쉴만한 물가”를 들었습니다. 좋은 자리, 보장된 교수직을 떠나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했던 한 의과대학 교수의 이야기를 읽어 주어주고 있었습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너는 지금껏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희생해 본 적이 있느냐?” 가만히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내가 살아 온 세월은 하나님을 이용해 이득을 보고 살았지 내가 그분을 위해 희생을 해 본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목사로 평생을 살면서 교회에서 주는 급여를 받았고 그것으로 자녀들을 양육했습니다. 딸들은 이미 모두 성인들이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득을 보고 살았겠습니까?
어쩌면 저는 지금까지 가장 그럴듯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람을 살린다는 그럴싸한 구실로 대접받고 좀 더 나은 자리, 더 좋은 교회를 구걸하며 천박한 목사의 길은 걸어오지 않았는지 두렵고 떨립니다.
매년 이맘때면 우리 교회는 목회자들의 인사이동이 있습니다. 적지 않은 목회자들이 정들었던 교회를 떠나 다음 목회지로 이동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지난번에 있던 교회보다 더 큰 교회로 어떤 이들은 지난 번 교회보다 더 작은 교회로 이동합니다. 사람들은 큰 교회로 가는 목사님들에게 축하한다고 말하고 작은 교회로 가는 목사님들에게는 고생하겠다는 눈빛으로 인사조차 건네지 못합니다. 다 세상의 길, 세상의 방식으로 평가하고 비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교회의 사이즈로 비교하지만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희생의 사이즈로 비교합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목회자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요? 그것은 교회가 크든지 작든지, 교인수가 많든지 적든지 상관없이 그분을 위해 얼마나 자신을 드려 희생하느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삼십 년차 목회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꽃길만 걸었다는 생각에 스스로 죄송하고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작은 것을 하고도 많은 희생을 한 것처럼 떠벌리고 살아오진 않았는지 부끄럽고 탄식이 흘러나옵니다. “주님, 삯꾼 같은 자신을 회개합니다. 제게 꽃길이 아니라 주님이 걸으셨던 가시밭길을 주십시오. 그렇게 주님을 조금이라도 따라갈 수 있도록 기꺼이 희생의 삶, 고통의 삶, 아픔과 시련의 삶을 주십시오. 그래야 이 사망의 길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의 길로 갈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가는 길이 그 어떤 길이든지 희생을 각오하고 가는 즐거운 길이면 좋겠습니다. 그곳은 어떤 사람들이 있을까? 자녀 교육하기 적합한 곳일까? 자기 건물을 가진 교회일까? 자립교회일까 아니면 미 자립교회일까? 이런 것이 아니라 이 길이 정말 주님이 부르시는 희생의 참 길일까, 이 길 끝에는 그분이 환한 미소로 나를 기다리시는 생명의 길일까? 이런 물음이 우리의 물음이 되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이 세상 변경을 벗어나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 갈 때에 사랑과 희생의 나라가 우리에게 너무 낯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마달피 수련원에서 진행하려던 재림성도 기도회는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로 잠정 연기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온갖 재난의 바람들이 불어오고 온역들이 들끓고 있는 지구성의 바람을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