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갔다 올테니 집에서 놀고 있으라고 하시는 어머니에게 떼를 써서 따라 나섰다. 어머니가 물건을 흥정하고 계시는 사이에 이곳저곳 두리번거리다가 어머니를 잃어 버렸다. 어머니 같이 생긴 사람을 보고 달려 가보면 아니고 해서 울면서 헤매고 다녔다. 그때도 무척 추운 날씨였는데 얼마나 울어 댔는지 눈물에 얼굴이 얼어 버렸다. 골목을 돌아설 무렵 아이고 이놈의 자식아 하면서 어머니가 나타나셨다. 어머니 얼굴이 하얗게 질린 모습이었다. 어머니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어머니는 치마를 걷어 입까지 흘러내린 콧물과 범벅이 된 눈물을 닦아 주셨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부터 가끔 어머니 손을 놓치고 길을 잃고 헤매는 꿈을 꾸었다. 천둥 벼락이 칠 때 귀를 막는 것 보다 훨씬 무서웠다. 제발 꿈이기 만을 바라며 용을 쓰다가 가까스로 눈을 번쩍 뜨고 정말 꿈인 것을 확인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딸아이가 다섯 살 때 일이다. 아내로부터 전화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시장에서 아이를 잃어 버렸다는 것이다. 아내는 미친 여자처럼 시장 골목을 헤매고 다니는 것 같았다. 하늘이 노랗게 보였으나 쫒아 갈수도 없고 그 주변 파출소에 연락하여 간곡하게 부탁을 하였다. 부모도 부모지만 아이가 공포에 질려 헤맬 생각을 하니 미칠 것 같은 심정이었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천행으로 경찰 아저씨가 도와서 아내와 딸이 해후할 수가 있었다.
그 다음부터 아내는 마실 나갈 때면 처제네 집에 맡겨 놓고 다녔다. 딸아이는 엄마가 데리고 나가면 신이 나서 따라 나선다. 그런데 처제네 집골목 입구에 들어서면 자기를 떼어 놓고 가려는 것을 알고 징징댄다고 했다. 아무리 이모 집이라고 해도 엄마를 떨어지는 것이 무서울 수밖에 없는 어린나이기 때문이다. 안 떨어지려고 바둥대는 딸아이는 골목입구부터 처제네 집까지 엄마 손에 끌려가서 맡겨지면 한동안 울음을 멈추지 않는다고 했다.
둘째아들 내외를 품고 사는 요즈음 하는 일이 하나 더 늘었다. 며느리가 출산으로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다보니 결혼 한지 5년이 되는데도 아직도 대학 4학년이다. 아침 수업이 일찍 시작하는 날에는 십 육 개월 된 손자를 어린이집까지 데려다 주어야 한다. 어떤 날에는 아침 10시경에 데려다 주면 며느리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오면서 찾아오는데 수업이 늦게 끝나는 날에는 찾아오는 일까지 떠맡는다. 아내는 큰 아들네 자식하고 둘째네 손녀까지는 키워 주었으나 더 이상은 못하겠다고 선언한바가 있어서 할 수 없이 떠맡게 된 것이다.
이 아이 역시 아침에 유모차에 태우고 나가면 신이 난다. 답답한 방안 공기만 마시다가 신선한 바깥세상의 공기를 마시니 좋은 모양이다. 같은 아파트 단지이기는 하지만 4000여 세대가 넘는 대규모 단지라 10분정도는 가야하는 거리에 있다. 테니스장을 거쳐 어린이 놀이터에 이르면 아이는 미끄럼틀이나 그네를 보고 내리고 싶어 몸을 비튼다. 며느리가 어린이집에서 데려 오면서 잠시 아이하고 노는 장소인 것 같다. 모른체하고 경비실을 지나 어린이집을 하는 곳에 이르면 아이가 벌써 눈치를 챈다. 아이는 떨어지지 않으려고 울먹거린다. 조그만 손을 뼏어 내손을 움켜잡는데 꼬옥 쥐는 힘이 제법이다.
보모 선생님이 나와서 아이를 들어 안으면 울면서 가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저를 떼어 놓고 가려는 것을 원망스러워 하는 표정이다. 엉거주춤한 태도로 조금 있으면 엄마가 올거야 하고 달래며 돌아서는 마음이 측은하다. 이런 생활도 여름방학이 끝나고 부터였으니까 벌써 두 달째가 되어 간다. 그래도 이제는 떨어뜨리고 올 때 처음처럼 소리를 내며 울지는 않는다. 아쉬워하면서도 체념하는 눈빛으로 보모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손을 흔들기도 한다. 태어난지 1년이 갓 넘어서부터 그렇게 끌려 다니면서 떨어지는 적응을 위해 연습해야 하니 회자정리라는 말이 공연한 말은 아닌 것 같다.
(정진철의 2분간의 사색)
첫댓글 인간은 시작부터 그렇게 어려운 고비를 넘겨야 했던 모양이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