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노인
김 선 구
가을이 깊어졌다. 날씨가 싸늘하니 혼자서 걷는 길이 을씨년스럽다. 길가 가로수에서 자태를 뽐내던 단풍들도 이제 낙엽이 되어 바람에 흩날린다. 거친 바람결에 낙엽들이 갈 길이 바쁜 듯 줄달음을 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동요 한 가닥이 스치고 지나간다. “가랑 잎 데굴데굴 어디로 굴러가오. 발가벗은 이 몸이 춥고 추워서, 따뜻한 부엌 속을 찾아 갑니다.”
어린 시절에 흥얼대었던 노래가 이제 다시 닥아 와 마음 한구석을 휘 집고 다닌다. 노년이 되면 어렸던 날의 심정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게 사실인 모양이다. 연어가 본래 태어난 곳으로 회귀 하듯이 낳고 자란 곳에 대한 추억을 잊지 못하는 것이 노인들이 짊어진 숙명인가 본다.
시골의 옛집 부엌은 헛간처럼 허술했지만 따뜻한 보금자리였다. 천정에는 먼지와 그을음이 뒤엉킨 장식물들이 매달렸고, 흙바닥 위에는 타고 난 재와 거푸 짚으로 지저분했다. 그래도 그 곳에서 몸과 마음이 즐거웠다. 겨울철이면 아궁이 주위에 형제들이 모여 앉아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낙엽이 타면서 내뿜는 따스한 불길이 있었고, 그 속에서 고구마 굽는 냄새도 풍겨 났다. 낙엽이 타면서 주는 정감이 무엇보다도 좋았다.
요새는 낙엽이 도시의 쓰레기로 취급 받고 있지만 당시 농가에서는 귀한 땔감이었다. 농산 부산물인 보릿짚이나 콩대 같은 것들이 주된 땔감이었지만, 들과 산으로 다니며 낙엽을 긁어모아 부족분 연료를 해결했다. 낙엽들 최후의 안식처가 부엌이었고, 행복의 전도사였다.
요즘은 아파트생활을 하다 보니 지난 일들은 까맣게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안락한 침실과 편리한 욕실, 다양한 주방기구들이 갖추어진 부엌. 거실에서는 리모컨 하나로 세계 구석구석의 정보도 접할 수 있고, 간접적이지만 세계여행도 할 수 있다. 거실에 앉아 창 넘어 멀리 펼쳐진 전경을 내다보면 세상이 내 품에 안긴 것 같다. 헐벗고 배고픔에 허덕이던 시절이 불과 몇 십 년 전인 것을 생각하면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세상인 것 같다.
식탁에서 차 한 잔을 기울이다 보면 옛 시절 삶의 모습이 꿈결처럼 떠오를 때가 있다. 마주 앉은 애한테 옛 추억을 들려주고 싶은 충동에 저도 모르게 말문을 연다. “우리 자랄 때는 말이야!” 그러면 대뜸 반응이 온다. “아버지, 옛날얘기 그만 하세요.” 멈칫 입을 닫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진다.
애들은 우리가 걸어왔던 지난날의 모습을 상상이나 할까? 왜 요즘 젊은이들은 옛날 얘기에 거부감만을 느낄까? 시대에 영합하지 못한 교훈적인 얘기는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그래도 애기를 듣다보면 지나간 삶의 흔적 속에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지혜와 담론이 담겨 있을 수도 있을 텐데. 초대받지 않은 연설이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낙엽처럼 다정하게 다가 갈 수 있을까?
언제였던가. 신문지상에서 “Latte is horse!”란 문구를 보았었다. 이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나 때에는 말이야!”를 의역한 표현이란다.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정거림이 지나치다고 질시해야 할지, 표현기법이 기발하다고 칭찬해야 할지 모르나 신조어를 창작 해내는 그 역량에는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활달하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미래를 향한 도전과 희망으로 성숙 시켜 나가는 것은 좋은데, 과거의 행적은 외면하고 지워버리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것에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새 젊은이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소리가 기성세대들의 외침이란다.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 냈다는 말이 그저 공 추사로 들릴 뿐이란다.
우리세대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란 용어를 하나의 신주처럼 숭상해 왔다. 옛 것을 익히고 새것을 배운다는 것을 절대 절명의 명제로 삼아왔다. 조상들의 빛난 얼을 중히 여기고, 그 뜻을 이어받아 못 다한 일들을 이루어보겠다는 투지와 노력이 있었다. 그 결과 오늘 대한민국이라는 공간 속에 너와 나가 이만큼 존재하고 있지 않는가! 노인이 되고나니 지난시절의 추억을 후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이룩한 성과가 후세대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다.
서정주의 시 한 구절을 읊어본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먼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치열한 생존 경쟁 속에서 생활하다가 문득 자신을 되돌아보는 모습이 떠오른다. 이것이 가을노인의 자태가 아닐까! 자화상 앞에서 지난날을 회고해 보는 심정. 그것이 삶에 자양분일지도 모른다. 비록 불행했던 과거라 할지라도 추억의 언저리에 맴돌고 있는 조그만 편린들이 얼어붙은 감정을 어루만져 준다. 과거를 반추 해 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잠시 쉬어 갈 공간이기도 하다. 자연의 질서를 인식하고 그 앞에서 경건해지려는 자세를 의미한다. 특히 노인들에게는 더욱 그럴 것 같다.
흩날리는 낙엽을 보고 있노라니 앞으로 닥아 올 나의 모습을 그려보게 한다. 베를레느의 시 한 구절 “뜬세상 이내신세 바람에 날려/ 이곳저곳 흩어지는 낙엽인간 싶으이.” 결국 나의 모습도 낙엽이 되어 떨어 질 신세가 아닌가. 언젠가 나 또한 한 잎 낙엽이 되어 흩날릴 텐데. 그 때 내가 찾아 갈 따스한 부엌은 어디일까?
첫댓글 요새 낙엽이 한창입니다. 주변에 흩 날리는 낙엽을 보노라니 지난 날들 사연이 추억으로 떠오릅니다. 노인의 신세가 되고보니 가을 색이 더 짙어 보입니다. 일전에 썼던 작품을 다소 수정하여 올립니다.
낙엽을 보며 생각에 잠겨있는 듯한 뒷모습이 멋있게 보입니다^^
노인이 되면 젊은이들이 무시하기도 하지만 존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노인을 세 종류로 분류한 것을 보았습니다. 노인 어르신 원로입니다. 원로가 되면 좋지만 어르신 소리만 들어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