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의 심기가 말이 아니다. 불편함을 넘어 분노 수준이다.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미국의 말발이 먹히지 않는 상황이다. 동맹국과의 사이도 좋아보이지 않는다. 나토와 일본 호주 한국 등지도 큰 형인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 듣는 자세가 아닌 것으로 미국은 판단할 수도 있다. 예전에는 불만이 있어도 뒤에서 한 것을 이제는 아예 대놓고 불평을 하는 그런 상황이 되었다. 한때 미국의 진두지휘아래 있었던 중동지역도 요즘은 미국보다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편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의 힘인 달러화에 도전하는 세력도 점차 더욱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이제 내년 대선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국제 문제에 국제외교에 목을 매고 있을 만은 없는 양상이다. 미국의 내년 대선은 현 대통령인 바이든과 전 대통령이었던 트럼프의 리턴매치가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말인즉 내년 대선은 더욱 피튀기는 대 접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한다. 현 미국 정부가 정말 힘든 파고를 넘고 또 넘어야 할 처지에 놓인 것이다.
요즘 중동국가들이 중국에 급격하게 투자를 늘리고 있다. 이런 상황속에는 지난 3월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의 오랜 적대관계를 중재하며 종식시킨 중국의 존재감이 자리하고 있다. 사실 중동국가들은 민주시스템이 아니다. 대부분 왕국이며 그렇지 않은 나라도 대부분 종교적 독재화를 유지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라고 자부하는 미국입장에서는 그런 중동의 정치 형태가 고와보일 리가 없다. 독재와 인권탄압에 대해 미국은 훈수를 두고 잔소리를 하고 있다. 중동국가 입장에서는 그런 미국이 싫다. 왜 내정에 콩나라 팥나라 하며 간섭하는가라고 불만이다. 그래서 중동국가들은 자신들과 비슷하게 독재정치를 유지하는 중국이 더욱 편했을 것이다. 동병상련이라고 할까. 가재는 게편이라고 할까. 서로 흡사하고 유유상종 관계인 중국이 훨씬 편하고 기대고 싶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 현상이 투자에 그대로 나타난다. 블룸버그 집계를 보면 현재 사우디 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 중동 국가 기업의 중국안에 사업 인수와 투자 평가액이 전년인 2022년에 비해 1000% 즉 10배 이상 급증한 53억 달러 한화 6조 7천억원 정도로 집계되고 있다. 중동의 맹주라는 사우디와의 경제협력은 더욱 눈에 띈다. 지난해 12월 중국 주석 시진핑과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이 회담을 한 뒤 이른바 포괄적 전략 동반자협정을 체결했다. 이 이후 양국의 경제 협력이 급속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동의 또 다른 부국인 아랍에미리트도 중국과의 경제 협력에 사활을 건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동국가들이 미국을 외면하게 된 데는 한때 강력한 우방국이었던 미국을 더 이상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중동국가와 미국과는 정치시스템이 다르다. 그렇게 다른 상황을 인정해 주지 않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듯한 미국의 태도가 중동 국가의 입장에서는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사우디와는 2018년 빈 살만의 왕세자 옹립과 관련해 불편한 기사를 보도하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미국은 인권침해라고 문제를 삼자 사우디의 태도는 급변했다. 그 이후 사우디는 미국의 말을 고분고분 듣지 않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도 마찬가지다. 2022년 1월 수도 아부다비에 예멘의 후티 반군이 미사일 공격을 감행했지만 미국이 군사원조를 지연하면서 미국과 아랍에미리트의 사이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을 놓칠 중국이 아니다. 중국은 특기인 틈새시장 노리기를 본격화했다. 미국이 중동 국가들과 이런 저런 마찰을 빚자 그 틈을 교묘하게 파고 들었다. 중국은 아랍에미리트에 중국산 훈련기를 판 것을 비롯해 각종 무기들이 중동으로 가는 선박에 실려지고 있다. 오랜 앙숙인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 정상화를 중국이 이끌어 내면서 중동의 맹주들로 부터 중국은 신뢰를 얻게 된다. 자국의 이익을 앞세우면서 그동안 중동정책을 펴온 미국과 더 이상 파트너십을 유지하기 어렵다고 중동국가들은 판단한 듯 하다.
미국의 힘이자 자랑인 기축 통화 달러에 대한 도전도 계속되고 있다. 상하이 협력기구를 주축으로 한 중국과 러시아 카자흐스탄 인도 파키스탄 뿐만 아니라 브라질과 사우디와 이란 등 중동국가들도 그 대열에 합류하려는 움직임을 구체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인도와 아랍에미리트가 무역 결제를 자국 통화로 하는 내용의 조약을 체결했다. 아랍에미리트는 그렇다고 해도 인도도 탈 달러화 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려는 움직임이 아닌가 보인다. 그동안 달러로 결제했던 관행을 깨버리겠다는 뜻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인도는 아랍에미리트로 부터 원유 등을 대규모로 수입하는 나라이다. 인도가 원래 미국의 말을 호락호락 듣는 나라는 아니지만 달러화에 대한 이런 자세는 미국 입장에서는 여간 우려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으로서는 정말 억장이 무너지는 모습들이다.
요즘 미국의 심기가 말이 아닐 것이다. 그동안 철옹성같았던 미국의 아성에 도전하는 집단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달러화를 내세워 금융압박에 들어가기도 쉽지 않다. 물론 요즘 중국의 경제 상황도 힘들지만 그렇다고 만만하게 볼 상대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중국을 추종하는 세력들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세계의 경찰 국가이자 큰 형의 영향력이 점차 축소되는 상황에 놓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의 심기는 무척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도 그동안 미국이 행한 여러 외교적 사안을 곰곰히 되돌아 봐야 한다. 자국 이기주의가 부른 패착 아니겠는가. 새까맣게 어린 동생들이라고 판단했던 국가들이 이제 대등한 입장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상황속에서 자국 이기주의만을 내세우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잘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형은 힘으로 동생들을 이끄는 것이 아니다. 형에 걸맞는 인품과 덕망이 있어야 한다. 인품이 없는 힘은 폭력일 뿐이다. 또한 솔직히 말하면 미국은 유럽과 아시아 등지의 나라에 비해 역사나 전통면에서 막내도 그런 막내가 없다. 그냥 막내형일 뿐이다.
2023년 7월 17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