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큼은 녀석들 답다. <Don't Believe the Truth>... 진실을 믿지 말라고? 진실조차 믿을 수 없을 때, 세상에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데뷔 이래 10년이 넘도록 한결 같은 믿음을 심었던 이 밴드도, 이제 믿지 말아야 하는 때가 온 것일까?
Oasis가 돌아왔다. 여섯번 째 정규 앨범을 들고, 보란듯이 나타나 줬다. 여섯 장의 정규 앨범? 하지만 내 기억에서 Oasis는 세번째 까지의 정규앨범과 그 때까지의 B-side 싱글을 모은 앨범만 남아 있다. 그 이후의 Oasis는 좀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고백건대 거창한 제목부터 부담스러웠던 <Standing on the Shoulder of Giants>와 잔뜩 보수적인 사운드를 보여줬던 <Heathen Chemistry>는, 워낙 초기 앨범들이 충격적이었던 까닭이었는지는 몰라도, 별로 인상적이지 못했다.
그랬다. 초기의 Oasis는 충격적이었다. 다이내믹한 로큰롤과 애잔한 록발라드, 끈끈하게 들러붙는 Liam의 보컬과 듣는 이의 맥을 놓게 만드는 Noel의 멜로디... 하나같이 보석같은 트랙들은, British Invasion을 재현할 수 있을 듯이 보였다.
나만의 가혹한 평가인지는 몰라도 네번 째 정규앨범 <SOTSOG>부터 Oasis는 추억을 먹고 사는 밴드가 되어 버렸다. 의욕적으로 들고 나온 넘버 원 싱글 컷인 Go Let it Out은 Beatles 냄새가 많이 배이긴 했지만 애초 Oasis가 가졌던 힘찬 사운드에서는 한참 빗겨난 곳에 있었다. 이 앨범에서 유일하게 건진 노래는 오히려 Noel의 멜로디 감을 새삼 확인한 Sunday Morning Call 뿐이었고, 나머지 노래들은 그저 생경하기만 했다.
<Heathen Chemistry>에서 Oasis는 복고풍 사운드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Noel의 1인 밴드라는 세간의 평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인 듯, 모든 구성원들이 작곡에 참여해 다양한 노래들을 선보였지만, 그 덕에 기존의 팬들이 목마르게 갈구하던 그 Oasis만의 색깔은 희석되고 말았다. Noel의 멜로디는 여전히 감미로웠지만, 어딘지 모르게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Liam이 지닌 숨은 재주의 발견은 반가웠지만, Noel의 원숙한 경지에 비해 너무 아마추어 티가 물씬댔다.
새 앨범 <Don't Believe the Truth>에서 반갑게 눈에 띄는 것은 원래대로 돌아온 Oasis의 로고다. <SOTSOG>때부터 바꿔 붙였던 Oasis 로고가 예전에 사용했던 반듯한 네모 상자 안에 소문자 oasis가 새겨진 심플한 모양으로 돌아온 것이다. 사실 아닌 게 아니라 난 이 정규 앨범 때부터 바꿔 새겼던 그 로고 역시 너무 번지르르하게 생겨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담백하고 단순한 원래의 로고로 돌아온 Oasis, 다시 그 옛날로 회귀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인 것일까?
내친김에 아주 먼 옛날로 회귀해 버린 모양이다. <Heathen Chemistry>때 살짝 복고 지향의 뜻을 밝혔던 Oasis는 이번 앨범에서 복고로의 회귀를 아예 선언해 버린 듯 하다. 역시 멤버들이 골고루 참여한 티가 역력한 가운데, '쿵쿵 짝 쿵쿵 짝 좌우지 장지지지'하는 복고풍 로큰롤 사운드는 앨범 전반에 걸쳐 흐른다. 그 사운드는 사실, 다시 또 Beatles다.
애초에 Beatle sound를 빼고 Oasis를 얘기할 순 없었다. Oasis는 Beatles의 카피 밴드의 하나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밴드다. 나 역시 '제 2의 Beatles'라는 타이틀에 혹해서 이들의 앨범을 쥐어 들었던 쪽이니까. 하지만 그동안 내가 푹 빠져 들었던 Oasis의 노래들은 Beatles의 것을 닮았으면서도 독특한 색깔이 있는 노래들이었다. 감정의 이완을 손쉽게 해 치우는 변주가 매력적이었던 노래들이 나를 Oasis로 끌어들인 주력이었다.
그런데 <Don't Believe the Truth>에서는 복고적인 사운드와 함께 보다 더 노골적인 Beatles다운 멜로디를 보여준다. Mucky Fingers나 Love Like a Bomb, Guess God Thinks I'm Able 그리고 A Bell Will Ring과 같은 트랙들은 듣자 마자 그 사운드에서 다름아닌 Beatles를 연상하게 만들 정도다.
하지만 그 뿐이다. Beatles를 연상케 하는 것 이상으로 초창기 Oasis가 보여줬던 센세이션을 이 앨범에서는 느끼기 힘들다. 감히 저항할 수 없을만큼 귀에 착착 감기는 트랙, Let There Be Love가 있긴 하지만, 2000년에 이미 작곡했던 It's a Crime을 편곡해 앨범에 실은 이 노래로 이 앨범과 Oasis의 색깔이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
더이상 폭발하지 않은 채, 어느새 현상을 유지하는 보수적인 재벌 밴드가 되어버린 Oasis를, 난 이제 '전설 속의 밴드' 한 귀퉁이에 포함시킨 채 지난 추억에 미소지어야 하는 것일까? Oasis를 만나고도 갈증은 계속된다.
첫댓글 간만에 보는 calvin 형님 글입니다~ㅎㅎ
importance~ 도 괜찮던데요.. 이번앨범에서 노엘목소리가 살짝 우울하고도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게...마음에 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