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과 프로그레시브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게리 라이트(Gary Wright)의
1976년 히트곡 'Dream weaver'는 1990년대 다시 한번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1992년 퀸(Queen)의 'Bohemian Rhapsody'를 부활시킨 코미디 영화 <웨인스 월드>와
1995년에 개봉된 <래리 프린트>에 삽입되면서 1990년대 신세대들에게도
'Dream weaver'가 알려져 과연 게리 라이트라는 가수가 누구인지 궁금해했다.
1943년 4월 26일, 미국의 뉴저지에서 태어난 게리 라이트는
클래식 음악의 강국 독일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그 당시 독일 각지를 여행하며 곡 만들기를 시작했는데 이때부터
클래식 감수성을 채득했고 1972년에는 비틀즈 멤버였던 조지 해리슨과 함께 한
인도 여행으로 이 미국인은 인도 문화와 철학의 마력에 심취했다.
이러한 경험적인 배경을 통해 게리는
프로그레시브 음악의 불모지인 미국에서 하나의 획을 긋는다.
게리 라이트는 독일에서 만난 아일랜드 레코드의 설립자
크리스 블랙웰(Chris Blackwell)과 함께 자신의 음악 인생이 꽃 필 런던으로 향했다.
훗날 슈퍼 그룹 훠리너(Foreigner)의 기타리스트로 유명해진
믹 존스(Mick Jones)도 활동했던 하드록 밴드 스푸키 투스(Spooky Tooth)의
건반 주자로 있으면서 롤링 스톤스, 지미 헨드릭스 같은 전설들과 미국 공연을 한다.
1971년부터 독립 활동을 시작한 게리 라이트는
1975년 'Dream weaver(2위)'와 'Love is alive(2위)'가 수록된 음반
<Dream Weaver>로 팝음악계를 뒤흔들어 놓는다.
스푸키 투스나 그의 이전 솔로 작품들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 이 음반은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처럼 거의 모든 음악이
키보드와 신디사이저의 입체적인 연주로 채색되었다.
이것은 미국 대중 음악계에선 혁명적인 앨범이었다.
하드록이 포효하고, 디스코가 워밍업을 하던 1970년대 중반
건반과 기계로 모든 연주를 소화한 이 LP가 성공을 거두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미국에서만 200만장의 판매고를 기록하며 10여 년 후
신디사이저 키보드가 기승을 부리게 될 1980년대 음악계를 10여년 전에 예견했다.
1980년대 이후부터는 인도, 나이지리아, 브라질 뮤지션들을 초빙해 협연한
월드 뮤직 성향의 앨범들을 발표하면서 끝없는 음악적 탐구 영역을 넓혀갔다.
1990년대 들어서는 게리 라이트가
활발한 음악적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도 화제의 집중을 받았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Dream weaver'가
영화 <웨인스 월드>와 <래리 플린트>에서 흘러 나왔으며,
조 카커(Joe Cocker), 조안 오스본(Joan Osbourne) 등이
'Love is alive'를 리메이크 했고 합 뮤지션 톤 록(Tone Loc)과
써드 베이스(Third Base) 등은 게리 라이트의 곡을 모체로 샘플링 했다.
이러한 동료 및 후배들의 간접적인 도움은 게리에게 오랜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기회와 새로운 음반을 발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명곡은 시간이 지날수록 빛을 발한다.
비록 가수 이름은 망각될 수 있지만 곡의 멜로디는 잊혀지지 않는다.
1990년대 게리 라이트의 'Dream weaver'가 다시 재조명을 받은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첫댓글 히야!~~~~ 궁금해했던 것 속 시원히 알려주시느느군요.... 감사!~
속에 음악도 깔아놓으시징!~~ 위로 또 가야하잖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