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프로야구 시범경기가 열리는 날이지만, 특별히 15분 거리의 대구시민야구장을 등지고, 1시간 30분 거리에 위치한 축구장, 포항스틸야드로 외도했습니다. 물론 하프타임 중간에 스마트폰으로 시범경기 중계를 봤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축구를 봤네요.
프로야구 직관은 연 20회 정도 꾸준히 하고 있고, 축구 직관은 1~2회 정도 하는 편이었고, 그나마 축구 직관도 K리그만이 아닌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 국가대표팀 경기를 모두 포함해서 그 정도였습니다.
대부분이 야구팬이 그러하듯 축구 자체는 좋아하지만, K리그는 별로 좋아하진 않았습니다.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부정적인 부분이 많이 보였기 때문이죠.
특히나 K리그의 팬들은 스포츠 케이블 방송국이 야구중계만을 하는 것에 불만이 많아서, 야구는 인기없는 스포츠라면서 '빠따' 라는 비속어를 쓰는 분들도 많으시고, 크보보다 공정하지 못한 심판들과 서포터즈들간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과격한 행동이 많았습니다. 상대팀을 심하게 까내리는 플랜카드가 홈 구장차원에서 주도한다는 것은 프로야구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요. 그런 관중문화는 K리그에 색안경을 끼고 보기에 충분했습니다.
경기는 FIFA도 인정한 라이벌매치인 동해안더비(포항-울산)이었는데, 슈퍼매치(수원-서울)와 함께 가장 재밌는 라이벌매치로 불리는 매치업이었습니다. 작년 정규리그 마지막 라운드에서 비기기만 해도 우승하는 울산이었는데, 포항이 불과 몇 초를 남기고 극적인 골을 터뜨리면서 우승컵을 뺏겼던 명승부가 있었지요.
경기내용까지 적으면 불펜에 올릴 내용이 되어버리니 생략... 결과는 울산이 1:0으로 작년에 우승컵을 뺏긴 복수를 제대로 했습니다. 정말로 뜨거운 매치로 언론에서 보도가 되었는데, 관중은 16000여명 정도? 꽤 열정적인 분위기를 기대하고 갔는데, 생각보다는 썰렁한 분위기가 아쉬웠습니다. (적어도 잠실구장 만원관중 규모는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관중들이 적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본론입니다.
경기에 패배한 포항팬들이 포항스틸러스 구단 버스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선수들에게 선물 조공이나 싸인을 받기 위해서였겠지요... K리그에 대한 색안경 때문인지, 그 때까지만해도 팬들이 매너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로야구에서 싸인 받아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경기에서 패배한 선수에게 싸인 요청을 하는 것은 실례였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선수들이 지나갔습니다. 가장 먼저 싸인해달라고 말한 것은 초등학생이었습니다. 괜히 조바심이 들더군요. '저러다가 싸인 못 받고 상처받으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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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6년 전의 제 기억이 오버랩됐습니다. 고3 때였는데... 누구라고 언급하기는 곤란하지만, 야구인 중에 '팬이 없으면 팀은 존재할 수 없다' 는 말을 하셨던 분이었습니다. 다른 팀 소속이었지만 저 말씀에 정말로 감동했고, 존경스러웠습니다. 그래서 이 분만큼은 내가 싸인을 요청해도, 반드시 해 줄거라고 믿었습니다.
그 분은 상대팀 소속이라, 홈경기에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렸고... 경기 당일 버스에 내릴 때까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버스에 내리는 순간, 조금 떨었지만 '싸인을 부탁드립니다' 고 요청했습니다. 사람들은 어느 정도 있었지만 상대팀이라서 그런지 작정하고 싸인을 받으려고 기다렸던 사람은 저 뿐이었습니다.
경기 시작 전에 연습도 해야되고, 여러가지로 바빴기 때문에 거절당할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그 분의 행동은 그 해에 한 번도 야구장을 찾지 않게 만들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바쁘니까 못 해주겠다' 는 얘기라도 했다면 충분히 이해하고 다음 기회를 노렸을텐데... 그렇게 말하기는 커녕 애써 시선을 마주치지 않으면서 쌩~ 하고, 그냥 지나가더군요.
제 목소리는 작은 편이 아니었고, 군대 있을적.. 이등병 시절에 축구도 못하고, 일도 못해서 갈굼을 숱하게 받았었지만, 목소리 작다고 고참들에게 욕을 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오히려 목소리 때문에 몇 안 되는 고참의 칭찬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는 소리를 못 들었나보다 싶어서 한번 더 요청을 했지만, 정말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냥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간에 다른 팬 한 분이 '지금 바쁠테니 포기하고 다음에 하라'고 하면서 그만뒀습니다.
그 일 이후로 프로야구 선수들은 팬 싸인회가 아니면, 절대로 선수들에게 싸인 요청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TV에서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고 생각됐기 때문에, 더 가까워지고 싶어서 싸인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해서 상처를 받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것과는 별개로 선수들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 자주 대기한 적은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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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패배한 선수에게 싸인을 요청하는 아이들이 그 때의 저처럼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이 됐습니다.
그런데, 싸인을 요청받은 그 선수는 가까이 다가와서 웃으면서 싸인을 해 주면서 아이들 등을 토닥 토닥 하면서 웃어주더군요.
또 다른 아줌마팬은 자신의 아이들 두 명과 사진을 같이 찍어달라고 했는데, 요청받은 선수는 작은 아이 한 명을 어깨에 끌어 올리면서 사진을 찍는 서비스까지 보여줬습니다. K리그에는 관심이 크게 없어서 어느 선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에서 팬서비스를 보여준 선수 중에 스타플레이어로 꼽히는 이명주 선수가 있었습니다. 어쨌든 그 선수들은 이 사소한 부탁 하나만으로 평생팬들을 얻은 셈입니다. 또 아무리봐도 선수들이 그 팬들을 사적으로 아는 것 같은 기분은 안 들었습니다.
그리고 황선홍 감독이 버스에 올라타려는데, 팬들 몇 명이 싸인을 요청하는데 중간에 끊는 일 없이 전부 다 해주고 들어갔습니다. 더 가관이었던 것은 중간에 경호 인력(여경)이 있었는데, 특별히 물러나라고 제지하지도 않은 겁니다. 물론 오늘 중계를 맡았던 이영표 해설위원앞에 달라붙은 팬들에게는 심하게 제지를 했지만, 어디까지나 다른 관중들의 진로(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들이대는 팬들에게 이영표 해설위원은 웃는 얼굴로 싸인해주더군요.
솔직히 시즌을 시작하는 첫 경기에서, 그것도 우승을 다투는 라이벌팀에게 경기 막판에 통한의 실점을 하면서 패배했음에도 팬들의 원하는 것을 해 주려고 노력하는 포항 선수들의 모습은 좀 충격이었습니다. K리그 팬들이 자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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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판에서 이와 유사한 장면을 많이 봤습니다. 오늘처럼 경기에 패배한 날에 붙은 팬들이 프로야구에서 어느 팀이 이겼을 때, 달라붙은 원정 팬들과 숫자가 거의 비슷하더군요.
그런데 제가 아는 프로야구 선수들의 모습은 네 가지 중에 하나였습니다.
1. 몇 명씩 해주다가 너무 많아서 중간에 아무 말 없이 무시하고 가는 경우 2. 하나 하나 해주다가 경호인력이 쫓아내는 경우 3. 자신의 사정(바쁘다, 기분이 별로다, 훈련해야한다)을 설명하면서 다음에 해 주겠다고 라고 하는 경우 4. 그냥 무시하고 가는 경우(이럴 땐 수건을 두르고 가는 경우가 많았음)
물론 K리그와 프로야구는 다릅니다. 선수들의 인지도나 유명세는 비교할 것도 없고, K리그는 일주일에 두 번 경기를 해야하지만 프로야구는 바로 다음 날에 경기를 해야합니다.
그렇지만, 오늘과 그 이전의 모습들을 보면서 프로야구에서 팬이란 어떤 존재였는지를 자꾸 생각하게 됩니다. 적어도 K리그 선수들은 자신이 누구 때문에 그라운드에 설 수 있는지를 잘 아는 것 같았거든요.
프로야구 선수들도 이렇게 팬 서비스 좋은 선수들이 참 많은데, 그냥 제가 색안경을 끼고 있는걸까요? 사실 그런 선수가 있다고 하더라도 경호인력의 철통방어에 기회를 못 얻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적어도 싸인을 해 주기가 곤란할 때는 '죄송합니다' 라던가, 영혼이 없는 소리라고 할 지라도 '다음에 해 드릴게요' 라는 소리는 듣고싶습니다. 마치 야구장 앞에 통닭 파는 아줌마들 호객 행위를 무시하고 지나가는 사람마냥 지나가는 모습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아이들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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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글은 크보와 크리그의 차이점을 썼다기 보다는
선수가 팬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 그런 문제점을 지적한거 같으네요
얼마전에 친구가 롯데리아에서 크보선수를 만나 OOO선수 맞으시죠? 라고 아는척했다가 OOO선수가 네 맞는데요 하면서 벌레보듯 쳐다봐서 기분이 나빠 그뒤로 크보는 쳐다보지도 않는데 그만큼 팬을 대하는태도는 크보가 아래...
근데 이것도 케바케고
선수 개개인 성품의 차이죠
친절한 야구 선수 많습니다 ㅎ
근데 그 선수가 기아선수 같은데
누군지 굉장히 궁금하네요 ㅋ
@다꽁 기아선수입니다 다들 한번쯤들어보셨을만큼 유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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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화도 이런 일반화가 없네요. 이천수가 일반인 떄렸다고 케클선수들이 일반인 때리나요?
@힙본좌 팬을 대하는 선수의 모습이 별로 좋지않은 경우가 크보가 더 많은것같다는 생각이라 썼습니다 물론 선수마다 케바케이긴 하지만요..
언젠가 내려올날이 있을듯 그런선수들은
팬 서비스는 야구가 더 인색하던데
캡쳐한 글도 야구선수가 더 인색하다고 쓴 글임요
@다꽁 아하 모바일이라 글이 잘려서요
걍 이건 케바케인듯 ㅋㅋ 리그의 차이라기보다는 사람차이;
제 기억에는 K리그도 안좋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작년 FA컵 안전요원으로 일했을때 승리한 원정팀이 나가기 위해 라인맨이 되어 기다리는데 원정팬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선수들이 나왔는데 1선수만 사인해주고 나머지 선수들과 스태프는 바로 차에 타서 나간 기억이 있습니다. 평일 저녁이어서 그럴수도 있지만 팬들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남아서 사인과 사진촬영을 해줬으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구는 모르겠는데 축구선수들 대부분 친절한거 같습니다. 저도 사인 받는것을 좋아해서 기회되면 자주받는데, 지금까지 기분상할정도로 무시하는 선수는 못받습니다ㅎ 가장 친절했던 선수는 염키 ㅎㅎ 그리고 정성룡ㅎ
야구팬 친구들도 그러더라구요 확실히 야구선수들이 팬서비스에 인색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