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25)
모이기를 힘쓸것을 명하시는 이 성경말씀은 주일성수에 대한 설명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말하여 주일성수와 결부시키는 성경인용은 부적절합니다.
성경을 인용할때는 원문의 본래 의미를 먼저 상고하면서 인용을 하는것이 가장 합당합니다.
히브리서 10 장은
"율법은 장차오는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 제사로는 .... 온전케 할수 없느니라" 로 시작하여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몸을 예비하셨도다" 로 도입부 삼아
" 이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던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입었노라" 하시며
" 이것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것이 없느니라" 하심으로 제사가 폐함을 말씀하며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그리하자" 로 이어집니다.
여기 어디에 주일성수와 관련된 가르침이 있는지요. 도리어 우리는 이제 드릴 제사가 없음을 말씀하시며
일주일중 하루를 떼어 주일성수의 기준점인 주일 낮 예배를 제사삼아
하나님께 별다른 제사를 드리는 개념으로 우리가 인식한다고 나오는지요.
도리어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이라 하심으로 우리가 주님이 오심을 준비하자는 의미가 아니겠는지요.
일주일에 한번 모여서 거룩하여 질수 있음도 아니요 도리어 일주일중 하루를 더욱 중히 여기며 그날 이외의
다른 육일을 도리어 소홀히 여기게 되는 부정적인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주일성수는 성도들로 주일신자 로서 일주일중 하루만 거룩히 살도록 하는 미혹을 발생시킵니다.
일주일에 하루만 하나님앞에 기도하고 예배하며 봉사하면 매우 건전한것으로 여기도록 함이 주일성수 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믿음의 제사는 돈을 드림이 아닌 우리 몸을 드리는것이며 이것이 우리의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롬12:1)
영적인 예배라 하심으로 우리의 삶이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림이라 말씀하심이며 이것을 예배당의 주일예배로
교묘하게 대치시키면 일상의 삶의 예배의 참된 예배자의 삶을 교묘히 무력화 시키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하루를 중히 여기면 다른 날들은 덜 중요한것이 됩니다.
우리가 목사님의 눈에 보여지기위해서 정치인들 눈도장 받듯이 주일날 예배당 가는것은 아니지요
우리는 늘 모이기를 힘쓰되 그날이 옴을 볼수록 이라는 전제는 주님은 이제 곧 오신다는 개념입니다.
우리는 매일 모이는것이 도리어 더 이상적입니다.
초대교회의 주일 모임은 도리어 저녁시간에 더욱 많았다는것이 중론입니다.
당시에는 노예 들도 크리스챤 이었고 현대 보다는 대개 몸으로 먹고 살았습니다.
그만큼 일하는 시간과 힘은 더 들고 저녁이 아니면 쉬이 모이기도 힘들었습니다.
오죽하면 바울의 강론을 듣다가 창문밖으로 떨어질정도로 피곤한 가운데 모였겠는지요(행20:9)
그만큼 모이기를 힘썻지만 원래는 매일이라는 기준이 더욱 성경적입니다.(행 2:46 ,19:9)
주일성수를 말하고 강조하는 이유가 목회자의 눈에 보여지는 일단의 집합 개념임을 우리는 압니다.
군대식 상명하복의 개념이며 한 날에 모이기를 종용하는 민방위와 예비군 소집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일은 모이기에 편한 날이기에 모이고 모이기에 불편한 평일은 평일대로 짬짬이 모이는것이지요.
모이는것도 누가 불러서 습관화된 모임이 아니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모이기를 힘씀" 을 성경이 말합니다.
마음을 같이 했기에 모인것이며 이것은 우리가 사모함과 갈증 가운데 모이는것을 말함입니다.
현대의 교회들의 집합 개념의 모임은 상명하복의 모임이 대부분입니다.
집합해서 위에서 내려온 지침을 받으라는 개념이지 성도들 간의 아름다운 교제는 상실되었습니다.
말이 좋아 예배지 사실상 지침하달의 시간이며 명령수령의 시간으로 많이 변질되었습니다.
모인 성도들중에는 여러가지 문제를 갖고 의문도 많고 받은 은혜를 나누고싶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이러한것을 모두 위에서 가르쳐주는 말씀으로 해결하라는 개념은 상호간의 코이노니아 의 개념이 아닙니다.
koinwniva 코이노니아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교제<행2:42>, 동정(同情)<롬15:26>, 참예(參與)함<고전10:16>, 참여함<고후8:4>, 섬김<고후9:13>, (성령의) 교통하심<고후13:13>, 서로 나눠주기<히13:16>, 사귐<요일1:3>
일방적인 가르침만 존재하고 실제적인 코이노니아는 사실상 별반 작용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버리는 이런일은
사실상 교회성장원리의 펼쳐냄 이며 , 목회자주의에 기반한 "너희들은 입다물고 내 말만 들어라" 식입니다.
우리가 모일때 어떤 방식으로 모여야 하는지를 설명해주는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고전 14:26)
가르치는 말씀 이외에는 사실상의 상호간의 나눔이고 코이노니아 이며 서로 섞여 들어가는것 입니다.
그런데 주일예배와 주일성수를 강조하는 교회는 이러한 모습보다는 일방적 원맨쇼에 가깝고 성도들은 청중으로 전락합니다.
쇼를 보았으니 돈을 내되 우리가 가르친대로 내도록 하거라 하는식의 틀을 제시하는것이 주일성수의 강조입니다.
가르치는 목사들을 말쟁이로 만들고 듣는 성도들을 벙어리로 만드는 효과는 주일성수의 강조에 있습니다.
주일성수를 주일예배의 참여권고 정도로 하는것은 어느정도는 이해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안식일 개념으로 도입하는 거짓말을 하는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겸손하게 진리앞에 무릎을 꿇은 사람들은 누구나 주일을 강조함의 폐해를 경험합니다.
우리는 매일신자 이지 주일신자가 되면 안됩니다. 그런데 주일을 강조하면 이런 폐해가 생깁니다.
일종의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는 자기위안에 빠져 신령한 예배인 내 삶의 예배를 등한시 하게 되는것입니다.
우리는 오늘이라는 시간에 주님 오심을 예비하며 매일을 거룩히 사는 삶을 사는것이 진정한 예배임을
성경을 통해서 알수 있으며 성령께서 이것을 우리 마음에 확증시켜 주실것입니다.
주일성수의 성수(聖守) 는 거룩히 지키자는 의미인데 어떤 날을 거룩히 지키는것은 사실상 안식일 개념입니다.
우리가 유대교인 이겠는지요. 우리가 안식일 지키듯 해야 겠는지요. 주일성수는 단어 자체가 율법입니다.
복음안의 사람들을 율법으로 내려앉히는 경로가 되는 주일성수라는 단어 자체가 마귀적입니다.
폴리캅은 순교직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악한것을 선하게 하는것은 언제나 좋은일이지만
선한것을 악하게 만드는것은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복음안의 참 자유는 성령안의 코이노니아에 있는것입니다.
이것을 초등학문으로 끌어내리려는 시도에 대하여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제아무리 비슷하게 끌어다 대도 주일성수 혹은 주일강조는 율법 입니다.
복음의 사람을 율법수준으로 끌어내려 보리는 시도는 폴리캅도 불가능한일을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이것이 마귀적인것이 바로 사람의 영적인 수준을 끌어다 내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은 우리를 서로 교제케하며 몇을 세워 인도자로 세웁니다.
하지만 절대 목회자의 단독적인 인도로서 목회자 보기좋게 이끌림을 받는 법은 우리 법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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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성수라는 말자체가 믿음성수 나 진리성수 면 이해가지만 주일성수라면 율법이지요.^^ 감사하고요. 늘 겸손하신 모습과 진리에 깨어 있는 모습이 참 좋아 보입니다.
참으로 옳은 말씀이십니다. 인본주의적인 것들은 도려내어 버려져야 하겠지요.. 우리는 만인 제사장으로 당당히 서야 합니다.
진달래님,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많은 도움이 됩니다.
아 ~~ 주일 교회 안가도 되겟구나 ..감사함니다 난 초짜라서 ㅡ 부담 시러웠는 데....감사함니다 선생님들 ....걍 미드면 돼지ㅡ 오라가라 돈내라 그래 ㅡ 안가고 안내야지 ..거듭 감샇ㅁ니당 ...ㅠㅠ
일요일날,,성도들 경배시간 약속해서, 두세사람이라도,<성도입니다 성도!! 교인이 아니구요...>, 성도들의 경배모임에 가시면 됩니다...시멘트건물에 문패붙인 곳에 가지마시구요...
맞아요 주일날 교회가지 맙시다. 그럼 뭐하지... 그래도 좋다. 진달래씨 때문에 교회 안가도 맘 편하게 되서 좋다. 꾸벅~
왜들 이러시나요. 제가 주일날 교회가지 말라고 위에 썻나요?^^;;; 매일 이라는 범주에 주일도 포함됩니다.
진달래님은, 온갖 인간의 잡소리가 들려지는 시멘트건물교회에는 안가시지만, 성도들의 모임---진짜교회의 일원인줄 알고있습니다. 성도들이 모이는 경배장소에는 가시겠지요~~~^^
주일날 교회 가지 말라는 말씀이 아니구요. 주일예배가 율법적으로 강요되는 주일성수가 아닌, 교회공동체의 코이노니아며 그리스도인의 삶(날마다)자체가 예배임을 일깨워 주는 말씀이라고 해석되는데요.
본인이 암만 생각해봐도,,,성도가 아니고, 구도자도 아닌 것 같으면, 교회<?>를 찾을 필요도 없겠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아멘.
'주일성수'라는 말이 용어자체가 율법적인 의미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마르바 던의 '안식'을 한번씩 읽어보시면 좋을거 같구요, 주일을 기념한다. 주일을 축하한다가 보다 정확한 의미라고 봅니다. 모여서 예배보고 찬양하고 교제하고 흩어져서 마음에 맞는 친구와 좋은 음식을 같이 먹으며 교제하고... 이것이 한 의미이고 또 한 의미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간다라는 것을 세상적인 직업을 하루 내려놓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근데요. 그 하루를 내려놓음이 꼭 주일이어야 한다는 의미 이신지요? 주일날 일하고 평일에 쉬는 분들은 어찌 해야 할까요? 여름산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축하한다 라는 주일의 의미는 특정한 한 날을 축하한다는 의미인지요? 지금 제가 난독증인지 읽으면서도 잘 안읽히는지 의미가 확 ~ 다가오지가 않아서리..
안식일은 주의 날로 개혁되었습니다. 십일조는 연보로 개혁되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개혁이 믿는 자들에게 자유를 더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안식일 제도가 폐지되었다고 해서, 주일 예배를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법 아래 있지 않지만 법이 있을 때보다 더 성실할 것을 요구합니다. 십일조가 페지되었다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십일조 이상의 자발적이며 정성스런 헌신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의 폐지는 헌금이 십일조 정신에 따라 잘 쓰여지고 있다는 전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아멘. 의미 파악하느라 세번이나 읽었습니다. ㅎㅎㅎ 이제야 읽히네요.^^
블루칩님에게 한 표, 자유에는 책임이 따릅니다. 역으로 책임있는 자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히10:25을 원어에서 직역해보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들의 함께모이기를 져버리지 말고, 오히려 부르며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더 많이" 의역하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들의 함께하는모임을 우리는 져버리지(외면하지)맙시다. 오히려 모임에 오지 않는 사람을 참여하도록 부르(요청)고 그 날이 가까움을 볼 수록 더욱 그리합시다". - 모이기를 폐한 어떤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함께하는모임을 우리는(가) 져버리지(폐하지)말자는 이야기 입니다. 모임에 안나오는 사람들은 나오도록 불르고(간청하고)...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리스도인임에도 불구하고 모임에 오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음
불참하는 사람들에 대해 권면(요청)을 하라고 하는군요. 요즘 같으면 주일성수도 안하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자로 치부되고 외면 당하기 쉬운데... 어디에도 주일성수에 대한 의미가 없고 모이기를 힘쓰자는 은혜로운 권면 뿐이네요.
화답에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