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년과 90년 두번연속으로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아본 한국은 '아시아의 최강'이라는 자만심이 싹트고 있었다. 94년 미국 월드컵에 참가한 아시아국가는 무려 29개국. 모두 6개조로 나눠서 1차예선을 갖고 각조 1위 팀들이 다시 2차예선을 치르는 방식이었다. 한국은 그저 '본선무대에서 어떻게 싸울까?'만을 생각하는 어정쩡한 상황에서 1차예선을 맞이하였다. 그러나 세계 각지에서는 약팀들이 강팀들을 제압하는 이변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었으며, 이는 아시아의 지각변동을 예고하는 조짐이기도 했다. 1차예선은 7승 1무로 그럭저럭 통과했지만 최종예선에 진출한 5개국 팀은 모두가 강팀이었다. 기동력의 북한, 프로리그 출범으로 급성장한 일본, 그리고 막강한 중동의 3총사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이라크. 만만한 상대는 한팀도 없었다. 93년 10월 16일 이란과의 첫경기를 시작한 한국은 박정배, 하석주, 고정운이 골을 성공시켜 이란을 3:0으로 제압했다. 김호감독은 앞으로 2연승(이라크, 사우디)을 거두어 본선진출을 확정짓겠다고 하였다. 이날은 특히 북한이 최강이라고 지목되던 이라크를 상대로 3:2로 통쾌한 역전승을 거두어 '남북한 월드컵 동반 진출'이라는 희망까지 돌기 시작했다. 이라크는 북한에게 역전패를 당해 감독까지 교체하는등 월드컵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대 이라크전에서 우리는 먼저 선취골을 내주고 공격의 활로를 찾지못해 허둥대고 있었다. 그때 김호감독은 서정원을 빼고 노정윤을 투입했다. 노정윤은 그라운드를 누비며 동점골 어시스트와 PK를 얻어냈다. 그래서 2:1. 그러나 종료 3분전 수비의 실수로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또 사우디와의 경기에서도 1:0으로 리드한 후반종료 5분전 동점골을 허용하고 주저앉았다. 10월 26일 일본과의 4차전. 누구도 일본에게 패배한다는 상상을 하지않았던 우리국민들은 다시한번 좌절감을 맛봐야만 했다. 1:0으로 일본에게 지고만것이다. 6개팀이 4경기씩을 끝낸 상황에서 북한은 승점 2점으로 탈락이 확정되었고 나머지 5개팀은 모두 승점 4점 5점을 기록하여 아무도 본선진출을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우디와 일본이 승점 5점으로 선두, 한국과 이란 이라크가 승점 4점으로 뒤를 쫓고 있었다. 남은경기는 사우디와 이란, 일본과 이라크, 한국과 북한의 경기였다. 이 세경기는 사전 담합의 소지를 없에기 위해서 같은 시간에 똑같이 시작되었다. 전후반 90분의 경기가 모두끝나는 순간, 각 경기장의 스코어는 우리에게 허탈감을 가져다 주었다. 후반 45분 현재 한국과 북한 3:0 한국 승리, 사우디와 이란 4:2 , 일본과 이라크 2:1 승리. 사우디는 승점 7점으로 월드컵 진출을 확정지었고 일본도 7점 한국은 6점으로 탈락이었다. 그런데 아직 일본과 이라크의 경기는 루즈타임이 적용되고 있었고 45분 18초에 이라크는 일본을상대로 동점골을 터트렸다. 이렇게되서 한국(+5)과 일본(+3)의 골득실차로 우리는 월드컵 3회 연속 진출을 어렵게 확정짓게 되었다.
뒷씸을 보여준 대 스페인전
스페인 팀은 지역예선에서 유럽 챔피언팀인 덴마크를 제치고 올라온 팀이었다 경기전 기자회견에서 스페인 팀 감독인 하비에르 클레멘(Xavier Clemente)는 '5-0으로 이기겠다'란 말을 서슴치 않았고 한국의 김호 감독은 '그럼 우리는 딱 1-0으로 이기겠다'란 말로 응수를 했다. 6월 18일 달라스 코튼 볼 스타디움. 붉은색과 노란색의 물결의 스페인 응원석과 얼굴에 태극무늬와 손에 태극기를 들고 응원하는 한국 응원석 사이로 선수들의 입장을 하면서 경기는 시작된다. 당초 비쇼베츠 기술고문이나 축구전문가는 스페인의 전후반 시작 15분을 조심해라고 했는데 역시 스페인의 초반 공세는 매서웠다. 스페인은 훌렌 게레로(Julen Guerrero)와 페르난도 이에로(Fernando Hierro), 안도니 고이코에체아(Andoni Coicochea)의 미드필더들이 한국의 미들필더보다 개인기가 앞서기 때문에 미드필더 싸움에서 이길것이라고 자신하고 나왔지만 이영진(Lee Young-Jin)과 노정윤(Noh Jung-Yoon), 김주성(Kim Joo-Sung)등의 한국 미드필더들이 조금도 밀리지 않자 스페인 선수들이 당황했다. 더구나 수비엔 박정배(Park Jung-Bae)가 스페인 스트라이커 훌리오 살리나스(Julio Salinas)를 철저히 묶고 있어 당초 스페인 팀의 작전은 미스로 빗나갔다. 한국의 홍명보는 수비를 조율있게 풀어나갔다. 홍명보는 월드컵을 한번 거쳐온 스타답게 루이스 엔리케(Luis Enrique) 에게 볼을 빼앗아 낸뒤 파울에 넘어지자 '연기' 하나로 엔리케에게 경고를 주는데 성공했고 그는 그의 정확한 패스로 고정운(Ko Jung-Woon)의 1:1 찬스를 만들어줄뻔했으나 스페인 스위퍼 미구엘 안겔 나달(Miguel Angel Nadal)이 고정운에게 파울, 프로페셔날 파울로 인해 퇴장을 당하게 한다. 그리고 이영진이 밀어준 볼을 강하게 슛팅한 것이 골키퍼 호세 카니자레스(JoseCanizarez)의 멋있는 선방으로 막혀버렸다. 그 슛팅 하나로 한국팀은 주도권을 잡는데 성공했고 이영진의 패스를 받은 황선홍(Hwang Sun-Hong)이 카니자레스와 1:1 찬스를 맞았으나 카니자레스 키를 넘기지 못해 득점이 실패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 또한 전반 종료 직전엔 이영진의 강슛이 골포스트를 넘어 아쉬운 상황만 계속되었다. 후반전. 한국은 여세를 몰아 초반공세를 강화했다. 노정윤이 측면을 뚫고 패스한것이 고정운이 살짝 방향만 틀어 슛팅했지만 카니자레스의 선방으로 또 무산되었고 스페인의 역습에 말려버렸다. 신홍기(Sin Hong-Ki)가 무리하게 끌고 나가다 루이스 호세 페레즈 카미네로(Luis Jose Perez Caminero)가 패스한 것을 살리나스가 슬쩍 밀어넣어 스페인이 선취골을 빼낸다. 그 골 하나로 선전하던 한국팀의 수비의 조직력이 무너지면서 코이코에체아에게 헤딩슛을 허용 2-0으로 벌어진다. 패배에 익숙해진 탓일까? 그리 당황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한국팀은 김주성을 빼고 서정원(Seo Jung-Won)을 투입하고 홍명보가 게임메이커로 나서면서 다시 재정비를 하고 경기를 진행했고 스페인은 2-0으로 앞서자 살리나스를 빼고 펠리페 미남브레즈(Felipe Minambres)를 투입한다. 그때부터 한국팀의 공격력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하석주가 노정윤와 교체 되어 투입된 뒤 한국팀은 다시 공격력이 살아났다. 서정원이 왼쪽/오른쪽 크게 움직이면서 상대 수비를 교란시켰고 서정원이 수비를 제치고 측면을 돌파한 것을 너무 성급히 생각한 나머지 옆그물을 때리는 슛팅을 해 좋은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던 중 홍명보는 그의 매끄러운 패싱력으로 상대 수비를 교란시켰고 패스한 볼이 하석주에게 갔다. 하석주가 알베르트 페렐(Albert Perrer)을 돌파하려다 실패하고 프리킥을 얻었다. 후반 40분. 이영진이 밀어준 볼을 홍명보가 강하게 슛팅 한볼이 이에로 발을 맞고 골문으로 빨려들었고 한국팀은 기사회생의 절호의 기회를 잡는데 성공한다. 골이 들어간지 불과 1분채 못되어 홍명보의 스루패스를 받은 서정원이 다소 볼컨트롤이 부정확해 1:1 찬스를 놓치고 만다. 신홍기의 센터링이 너무 길어 시간을 빼앗겼지만 다시 홍명보의 능수능란한 패싱력으로 한국팀은 계속적인 공격을 퍼붓는다. 홍명보의 스루패스를 받은 황선홍이 다시 홍명보에게 패스, 홍명보가 골문 앞 빈공간으로 치고 들어가는 서정원에게 패스한 것을 서정원이 오른쪽 골 포스트를 보고 침착하게 골로 연결시킴으로써 극적인 2-2 무승부를 연출함과 동시에 한국 축구의 저력을 월드컵에 시선이 모아진 세계인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볼리비아를 꺽어라
대 볼리비아전에서 우리는 무승부를 함으로서 사실상 16강 진출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우리 선수들이 어떤 각오로 출전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전력상으로 수읽기가 가능한 팀이 볼리비아라는 것은 확실했다. 물론 볼리비아도 우리쪽을 보고 그렇게 생각했을 터이다. 황선홍은 득점 찬스에서 여러번 실축함으로서 무승부에 한몫을 했다. 지금은 왼발의 달인이라 불리우는 하석주도 그당시 일대일 찬스를 놓치는 실수를 범한다. 결국 0대0 무승부를 이루고 만다.
전차군단 독일
전대회 우승국 독일. 통일 독일로 인해 더욱더 탄탄해진 전력을 갖추었다고 자인했으나, 개막전 대 볼리비아와의 경기는 그 전력을 의심케 했다. 또 스페인과의 두번째 경기에서도 선취골을 내줬으나 클린스만의 억지슛(?)으로 겨우 비기는데 성공해 전과는 다른 전혀 독일 답지 않은 면모를 보였다. 한편 아시아 최종에선의 우여곡절 끝에 기적적으로 미국땅을 밟은 한국.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4회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룩하고 스페인과의 첫 경기에서 또 한번의 기적으로 2:2 동점을 기록하며 86년 대회이후 처음으로 승점 추가에 성공했으나 두 번째 볼리비아와의 경기에서 수차례의 공격시도가 무산되며 아쉽게도 독일과의 힘겨운 승부를 기다려야 했다. 드디어 6월 28일 댈러스 코튼볼 구장. 심판의 호각소리가 울리자마자 한국은 투지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력차는 투지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웠는지 한국팀의 패스가 원래의 위치인 스토퍼에서 게임메이커로 올라온 부흐발트(Guido Buchwald)의 태클에 걸리며 클린스만(Jurgen Klinsmann)에게 연결되자 한국팀이 요주의 인물로 주목한 헤슬러 (Thomas Hassler)에게 어김없이 패스가 이루어진다. 한국팀의 오른쪽 정진영을 파고든 헤슬러는 몇번의 페인팅 모션끝에 클린스만에게 땅볼패스를 질러주고 클린스만은 독일 최고의 스트라이커 답게 오른발로 찍어 올린 후 터닝슛으로 가볍게 골을 성공시킨다. 스코어 1:0. 너무 순식간에 이루어진 골로 한국팀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또 한국진영 오른쪽에서 드로잉. 이번에도 역시 출발은 헤슬러에게서 나왔다. 헤슬러가 길게 드로잉한 볼. 자칫 잘못 패스된 볼이 될수 있었으나 한국팀 수비수 박정배와의 몸싸움끝에 부흐발트가 페널티박스 모서리에서 넘어지면서 오른발 센터링을 시도한다. 어이없게도 골포스트를 맞고나온 볼은 리들레(Karl-Heintz Riddle)에게 정확히 걸려들었고 리들레는 당연하다는 듯 골로 연결시킨다. 스코어 2:0. 경기사작 내내 당하고만 있던 한국. 전반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조진호의 강한 땅볼 슛팅이 무산되자 다시 독일의 역습. 패널티 지역의 오른쪽에서 프리킥을 얻은 독일은 한국팀에게 원한이라도 있는듯 이날 경기에서 최고의 기량을 발휘한 헤슬러가 프리킥 센터링. 클린스만의 컨트롤이 정확지 못해 공중에 뜬 볼이되자 박정배는 온 몸을 날려 클린스만의 슛팅을 저지햇다. 그것이 도움이 되었는지 클린스만도 빗맞은 어설픈 슈팅을 했고 당연히 볼은 GK 최인영의 손에 있어야 했으나 어처구니 없게도 골문 안으로 들어갔다.스코어 3:0. 이렇게 전반전이 끝났다.너무나도 무기력한 플레이를 보인 한국. 경기 초반에 꽹과리와 징으로 응원하던 한국 응원단도 사기가 떨어져서 응원 소리는 온데간데 없었다.많은 골을 내주긴 했으나 어차피 도 아니면 모라고 생각한 한국은 스위퍼인 홍명보를 첫경기인 스페인전 처럼 플레이 메이커로 옮겨놓고 경기를 풀어나갔다. 드디어 한국팀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수비수 박정배가 이번엔 공격가담 중앙선에서 드리블하며 반대편 황선홍에게 롱패스를 했다. 지금까지 원톱 스트라이커 답지않게 한골도 성공시키지 못해 비난을 받던 황선홍은 왼발로 컨트롤, 오른발로 뛰어나온 GK 일그너 (Bodo Illgner)를 넘기며 골을 작렬시켰다. 이후 한국팀의 공격은 매서워 지기 시작했다. 고정운이 반대편으로 센터링 하려던 볼을 중앙에 있던 수비수 콜러가 (Jurgen Kohler)가 헤딩으로 걷어낸다. 볼은 홍명보의
발 앞에갔고 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최고의 스타로 부상했던 독일팀의 주장 마테우스(Lothar Matthaus)와 마주친 홍명보. 페인팅 모션후 오른쪽으로 재낀뒤 슛. 마테우스가 왼발로 저지하려했으나 볼에 닿지않고 볼은 일그너의 손을 스치며 한국팀에게 두번째 골을 선사한다. 이후 한국팀은 전선수가 나와 공격에 가담하지만. 고정운의 강력한 프리킥이 일그너에게 막히고 최종수비수였던 최영일의 슈팅마저 일그너의 선방에 무산돼자 한국팀은 투지반 초조함 반이 교차돼는 듯 했다. 독일팀은 노장선수로 구성된 약점을 여실히 드러내며 전반전 한국이 그랬듯이 제대로 된 공격한번 시도하지 못했다. GK 최인영까지 이운재로 바꾸며 눈부신 투지로 폭풍처럼 몰아치는 한국의 공격이 일그너의 게속된 선방끝에 경기는 끝나고 한국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쓰러진다. 깊은 허탈감과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 뿐이었다. 관중들의 환호와 박수는 처절한 사투를 벌인 한국팀에게 돌아가고 독일은 2승 1무 승점 7, 득점 5, 실점 3점으로 C조 선두로 16강에 진출하고 한국은 2무 1패 승점 2, 득점 4, 실점 5점으로 예선탈락의 고배를 다시한번 마셨으나 역대 최고성적이라는 격려에 만족하며 다음대회를 기약했다.
마지막 독일전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네요. 요번 월드컵에서도 구 때 독일전 후반만큼만 전 경기를 뛴다면 16강 충분히 가능합니다. 한국 축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