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가 꽃을피운 88년. 대한 축구협회는 88년 프로리그의 우승팀 감독을 월드컵 대표팀의 감독으로 선임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결국 포철의 이회택 감독과 현대의 김호 감독이 마지막 대결을 펼쳐, 스타감독 이회택이 월드컵 지휘봉을 잡게되었다. 아시아는 총 6개의 조별리그를 거쳐 각조 수위팀이 다시 최종예선을 벌이는 경기방식으로 월드컵 진출팀을 가리기로 했다. 이회택 감독의 휘하에는 멕시코 월드컵 스트라이커 최순호가 있었으며 김주성 대학 최고의 스타 황선홍이 있었다. 89년 10월, 싱가폴에서 1차예선을 6연전승 25득 무실점으로 통과한 한국은 나머지 5개의 강팀들과 대면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중국, 북한,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10월 13일 큰 점수차로 승리할 것이라던 카타르는 밀집수비로 무장하고 한국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며 무승부로 이끌었다. 0:0 초반에 3연승(카타르, 북한, 중국)을 올려 월드컵 진출을 확정한다는 '이회택의 구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북한과 중국, 사우디아라비아를 차례로 1:0, 1:0, 2:0으로 쓰러뜨리는 저력을 보였다. 그리고 2회연속 월드컵에 진출하는 기쁨을 맛보게된다. 예선전적 9승 2무 무패. 득점 29점. 무실점. 90년 월드컵 대표팀이 에선에서 이룩한 성적은 역대 최고의 기록이었다. 이제 아시아에서 월드컵을 넘보는 나라는 우선 한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퍼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시아와 세계 축구의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는 순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16강이니 8강이니 하는 가슴 벅찬 소리가 국민들의 입에서 쉽게 나오던 것도 바로 아시아의 예선 성적만을 생각한 '우물안 개구리'였음을 확연하게 증명해주는 월드컵이, 세계의 고도 로마에 있었다. 세계 수준과의 엄청난 차이를 피부로 체험하게 된 것이다.
대 벨기에전
한국과 벨기에의 경기는 우리나라 축구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는 한판이었다. 사실 경기 전 우리가 16강 아니 8강까지 노린다는 희망어린 소문이 떠돌았었다. 어찌보면 황당한 얘기를 한셈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아시아 수준에 있질 않았고, 벨기에는 당시 최고 미드필더 중 하나인 엔조 쉬포가버티고 있었다. 당시 유럽 예선전에서 가장 먼저 티켓을 거머쥘 만큼 강팀이었고, 게다가 1순위 그룹으로 분류 되어서 시드를 받았다. 우리가 상대를 몰라도 너무 몰랐었고, 우물안 개구리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고 할 수있다. 나중에 차범근씨도 얘기했지만, 엔조 쉬포를 못잡은 것이 경기내내 질질 끌려 다닌 이유라고 말했다. 스코어는 2:0이었지만, 사실 최인영의 선방만 아니었으면 서너골 더 줄수 있었던 상황이었다.
유럽의 강적 스페인
두 번째 상대인 스페인도 유럽 예선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강국이었다. 경기 시작과 함께 변병주, 김주성 등이 골키퍼와 맞서는 기회를 놓친 한국은 이후 스페인의 기동력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반 23분, 스페인의 미첼이 벗진 발리 슛으로 한국을 유린했다. 1:0. 그러나 전반 43분, 한국의
전광석화같은 동점골이 로마를 뒤흔들었다. 골문에서 30m 떨어진 지점에서 최순호가 얻은 프리킥. 전반 종료 2분을 남긴 마지막 기회. 최순호가 살짝 밀어준 볼을 황보관이 슛팅을 했다. 미사일처럼 뻗어나간 볼은 스페인의 골네트에 그대로 명중했다. 당시 슛팅한 볼의 속도가 114km/h 라고 월드컵본부가 공식 확인한 이 골은 90년 월드컵에서 한국이 기록한 유일한 득점이 되었다. 그러나 후반에 연속 2골을 허용하여 결국 3:1로 패하고 말았다.
마직막 남은 우르과이전
마지막 경기는 우루과이. 전통적으로 남미축구에 강점을 보였던 한국은 마지막 희망을 우루과이에 걸었다. 그러나 주심은 언제나 중립을 고수하지 못했다. 0:0으로 끈질긴 접전을 계속하던 후반 25분, 주심은 수비수 윤덕여에게 돌연 퇴장을 선언하였다. 윤덕여는 당시 우루과이의 콜리에게 턱을 받친 상태였다. 그러나 적반하장격으로 윤덕여가 퇴장을 당한 것이다. 10명이 싸우는 최악의 상황 그러나 끈질긴 수비로 0:0 균형을 유지하뎐 때에 엉뚱한 일이 벌어졌다. 공식기록 후반 45분 정확하게 오프사이드 위치에 있던 우루과이의 혼세카가 헤딩으로 골을 넣었다. 그러나 선심은 오프사이드 깃발을 들지 않았다. 그리고 경기는 정말 분통하게 끝나버렸다.
황보관 선수의 그 슛은 아직도 월드컵 사에서 그림같은 슛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월드컵에는 이와 같은 시원한 슛이 많이 터졌음 합니다. 한국축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