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니까 요새 전라도 비백제설에 마한공정 탓에,
북방 고고학의 태산북두 같은 대가마저 뭔 마한 익산 건마국을 침미다례 일대하고 같은 마한이랍시고
동일시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는데요.
참 통탄할 일입니다만. 뭐 또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닙니다.
같은 전라도 마한이고 건마국이 마한 수장이었으니 요즘 마한 자체로 오해되는 침미다례라고
싸잡아 묶을 수는 있겠죠.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도리어 그 반대입니다.
1. 준왕 세력이 익산 일대에 처음 자리잡을 때 우세한 쪽수와 강력한 군사력으로 익산 근처 주변에 상당한
압박과 긴장 분위기를 조성하고 복종시키려 하자,
준왕 세력에게 복종하기 싫었던 기존 전북 일대 야요이계 세력이 아무래도 오늘날 침미다례 일대로 꽤 빠져나간 정황이
보입니다.
익산 건마국의 마한 종주권은 인정했습니다만, 그것과는 별도로 썩 서로 감정이 좋지 않았을 개연성이 보인단 말이지요.
2. 게다가 또 하나 심상치 않은 게, 위만조선이 망했을 때 그 잔여 세력 중 일부가, 익산을 비롯한 전북 일대에는 아예 발도 못 붙이고, 침미다례 일대로 대거 이주한 정황이 포착됩니다.
전북 서해안 김제나 익산 일대가 물론 평양이나 요동에서 훨 더 가까운 걸 고려해보면,
이들이 굳이 처음부터 원해서 거길 갔을 개연성은 낮다는 거죠.
한마디로 건마국이 강력한 거부권을 행사했을 개연성이 보입니다.
물론 준왕 세력에게 직접적 뿌리가 이어지는 건마국이 준왕의 자리를 빼앗은 위만 잔여 세력을 몹시
싫어했을 가능성은 높습니다만, 거부당한 위만 잔여 세력 입장에선 대단히 기분이 나빴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역시 위만조선에서 이주했던 또 다른 일파는 이런 거부를 겪지 않고
서라벌에 잘만 정착했던 걸 보면 이는 상당한 대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그 당시 서라벌에는 진개 정벌 당시 남하한 고조선계 VS 준왕 세력이 남하할 즈음 발생한 또 다른 고조선 지파
이 두 부류가 팽팽한 세력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으니, 익산 건마국마냥 이들의 이주를 완전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은 또 아니었겠습니다만 결과만 놓고 보면 마한 익산 건마국이 진한 서라벌 사로국에 비해선
다소 포용과 배려가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감정은 당연히 이해가 되지만요.
1+2: 이 지경이 되니 침미다례는 아아주 당연한 일로 익산 건마국을 필두로 한 기존 마한 구주류와는
화합이나 협력이 되려야 될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보면 훗날 백제가 마한 내부에서 새로운 패자로 떠오르자 익산 건마국 일대가
천안 목지국이나 영산강 침미다례와는 달리, 백제에게 대단히 협조적이었을 수밖에 없는 정황이
또 다시 확인되는 것이죠.
물론 건마국이 먼저 접근한 건 아니고 어디까지나 백제국이 먼저 이 큰 균열을 포착하고
이용한 정황이 큽니다만, 벌어진 일만 놓고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