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짓밟았던 그곳... "부차·이르핀은 지금 치유 중입니다."
[르포]
신은별입력 2024. 2. 23. 15:00수정 2024. 2. 23. 19:51
[우크라이나 전쟁 2년, 비극과 모순]
대량 학살 '부차'·비극의 다리 '이르핀'
우크라이나 두 도시 느리지만 회복 중
"상처 여전하지만... 나아지고 있다"
편집자주
전쟁은 슬픔과 분노를 낳았다. 길어진 전쟁은 고민과 갈등으로 이어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년, 우크라이나와 이웃국가의 삶과 변화를 들여다보았다.
2022년 4월 3일 우크라이나 부차 거리에 러시아군에 의해 희생된 민간인 시신이 놓여 있다. 부차=로이터 연합뉴스
2022년 3월 5일 우크라이나 북부 이르핀에서 수도 키이우로 건너는 다리가 폭파되어 다리 아래에서 러시아군의 포격을 피하기 위하여 수천 명의 피란민들이 모여 있다. 이르핀=AP 연합뉴스
'부차'와 '이르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던 2년 전을 되돌아볼 때 적지 않은 이들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에 있는 이들 두 도시를 떠올린다.
부차는 벨라루스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로 진입(2022년 2월 24일)한 러시아가 사흘 만에 점령을 선언한 도시다. 한 달 뒤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수복했을 때 도시는 완전히 파괴되었고 수백 구의 시체가 거리와 집 앞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부차 옆 이르핀은 키이우로 탈출하기 위해 길을 나선 주민들이 이르핀강을 가로지르는 다리가 이미 폭파되어 있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해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타전되며 전쟁의 상징이 되었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다시 찾은 부차와 이르핀은 아직 악몽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회복해내리라는 의지가 넘쳤다.
'집단학살의 도시' 부차
우크라이나 부차 중심부의 안드레이 페르보즈바니 성당 뒷마당에 설치된 '명예의 벽'. 2년 전 러시아군이 살해한 우크라이나인이 집단으로 묻혀 있던 이곳에 희생자를 위한 추모 공간이 들어선 것이다. 벽에는 민간인 희생자 5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부차=신은별 특파원
부차 중심부의 안드레이 페르보즈바니 성당에는 러시아군이 살해한 우크라이나인 116명이 임시로 묻혔던 무덤이 있었다. 이제 그곳에는 무덤 대신 러시아 점령 때 사망한 민간인 5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명예의 벽'이 들어섰다. '1929년생 머드리 미카일로 미카일로비치, 2018년생 코자크 티모피 올렉산드로비치….' '부차에 살았다는 것' 말고는 공통점이 없는 이들의 이름이 은색 명판 위에서 나란히 반짝였다.
그러나 명예의 벽이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시신, 러시아군에 납치되어 생사를 알 수 없는 이들을 위해 벽 곳곳을 비워두었기 때문이다.
부차시청 앞 중심 거리에도 부차 출신 전사자 100여 명의 사진과 사연이 담긴 입간판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2년 전 러시아에 점령당했던 우크라이나 부차에서 만난 잔나는 "당시의 악몽에서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부차=신은별 특파원
죽음이 가득한 공간이지만 부차 시민들은 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부차 시민 잔나는 "점령 당시를 언급하는 건 여전히 힘든 일"이라며 "그래도 파괴된 집들이 새로 지어지고 수리되는 것처럼 우리도 악몽에서 조금씩 빠져나오고 있다"고 말하였다. 또 다른 시민 발레리는 "러시아가 쏜 발사체로 집이 손상되었지만 피해 보상을 위한 국가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았다"며 "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지원을 받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천천히 회복 중"이라고도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이르핀에 지난해 11월 새로 개통한 다리. 수도 키이우와 이르핀을 잇는 다리다. 오른쪽 사진은 2년 전 러시아 침공 당시 파괴된 다리. 침략 당시를 기억하고자 보존할 계획이다. 이르핀=신은별 특파원
'절망의 도시' 이르핀
키이우와 연결되는 이르핀 다리가 있던 곳에는 지난해 11월 새로운 다리가 개통되었다. 폭격으로 무너진 다리보다 널찍하고 튼튼하다. 다만 그 옆에는 2년 전 파괴된 다리가 그대로 남아 그날을 생생히 상기시키고 있었다. 절단된 채 물에 처박힌 다리, 다리가 무너지며 함께 추락한 차량 등이 어지러이 뒤엉킨 이 공간에는 향후 기념관이 들어설 것이라고 한다.
2022년 6월 찾았을 당시 러시아군 포격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던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도시 이르핀의 '3번 학교' 내부(왼쪽 사진). 지난 18일 방문한 학교는 완전히 새로 단장해 있었다. 키이우=신은별 특파원
전쟁 전 '이르핀에서 가장 크고 좋은 학교'로 여겨졌지만 전쟁 후 '가장 많이 파괴된 학교'가 된 '이르핀 3번 학교'도 이제 완전히 새 단장을 하였다. 전쟁 발발 직후인 2022년 6월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보였던 러시아 포탄과 총탄으로 파괴된 흔적은 온데간데 없었다. 꾹 닫혀 있던 문도 이제는 활짝 열려 있었다.
학교는 전쟁 전과 마찬가지로 약 2,000명의 학생을 받고 있다. 아들 2명이 3번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옥사나는 "전쟁 때문에 온·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고 있기는 하지만 학교가 열려서 좋다"면서도 "학생 수에 비해 방공 시설이 좁아 걱정되기도 한다"고 설명하였다.
'집단학살'과 '절망'의 도시, 부차와 이르핀은 전쟁 2년 사이 느리지만 회복의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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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이르핀(우크라이나)=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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