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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16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17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18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 시작기도
오소서, 성령님. 저의 마음을 열어주시어 말씀을 통해 하느님께서 언제나 저와 함께하고 계심을 깨닫게 하소서.
● 세밀한 독서
마태오복음은 오늘의 본문에 나온 다음 구절로 끝을 맺는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28,20) 신약성경의 원문인 그리스어는 문장 안에 ‘내가’라는 주격 대명사를 자주 생략한다. 그리스어 동사는 단수 일인칭, 이인칭, 삼인칭, 복수 일인칭, 이인칭, 삼인칭으로 되어있어서 굳이 주어를 밝히지 않아도 그 동사의 주체가 누군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는 의미심장하게도 주어를 밝히고 있다. 곧 예수님은 당신 제자들에게 다른 그 누가 아니라 바로 ‘내가’ 있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마태오복음서를 처음부터 읽다가 이제 마지막 대목에 이르러서 독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느끼고 있겠는가? 드라마를 볼 때를 떠올려 보자. 마지막 장면이 나올 때가 되면 어느새 시청자는 드라마 속 주인공에게 남다른 애정과 느낌을 갖게 된다. 마태오복음서도 마찬가지다. 가난한 이들과 벗하는 예수님,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예수님, 언제나 사랑으로 대해주신 예수님, 하느님께서 아버지이심을 온몸과 마음으로 보여주신 예수님이 늘 함께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더구나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이 말씀의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자기 삶의 현장을 떠나 산 위로 올라가 땅에 엎드려 경배했다. 그러나 의심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다가가 이르신다.’ 그렇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향한 신뢰심은 엄청난 것이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온전히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그저 다가가셔서 복음선포의 중대한 사명을 맡기실 만큼 제자들을 믿은 것이다.
그분께서 이렇게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었는가? 이 또한 마지막 말씀,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곧 함께하시겠다는 그 결의에 있다. 예수님은 함께하시겠다고 생각하시면 다른 사람들이 비난하는데도 죄인의 식탁에도 함께 있었고, 이방인들과도 어울리셨다. 심지어는 십자가에서 죽음을 감수하실 만큼 함께하시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신 분이었다. 그러니 그분의 이러한 결의만으로도 제자들의 의심은 그분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 묵상
‘엘리 위젤’이라는 루마니아 태생의 유다인 작가는 자신이 겪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의 체험을 「흑야」에 담았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어느 날 독일 군사들이 수용소의 막사 앞에 유다인들을 늘어세웠다. 그러고서 남자 두 명과 어린아이 한 명을 교수대에 매달았다. 어른 남자 둘은 금방 숨이 끊어졌지만, 어린아이의 고통은 무려 반 시간 이상이나 계속되었다. 이때 하느님을 철저히 믿어온 유다인들 사이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느님께서는 어디에 계신가? 그분께서는 도대체 어디에 계시다는 말인가?”
이 물음에 대해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대답해 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어린아이와 함께 교수대에 매달려 계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철저하게 하느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을 것만 같은 그러한 장소에 예수께서 매달려 목숨을 내어놓으심으로써 ‘하느님께서 우리와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하고 계심’을 보여주셨다. 그분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신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 마침기도
주 예수 그리스도님, 당신께서는 언제나 저와 함께하십니다. 슬플 때도, 기쁠 때도, 건강할 때도, 아플 때도 늘 함께하십니다. 당신의 현존을 제가 느끼고 있을 때뿐 아니라, 도저히 느끼지 못할 때도 늘 함께하십니다. 당신께서 ‘임마누엘 하느님’ 언제나 저희와 함께하시는 분임을 잊지 않게 하소서. 저의 부족한 믿음에도 먼저 다가와 주시어 아낌없는 용기와 힘을 주소서. 아멘.
한재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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