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출처: 불교넷 원문보기 글쓴이: 청담
|
|
각목들고, 이권싸움하는 쓰레기같은 중들은 정신차리기를....
저는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1인 10역을 해내는 엄지 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면서는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며
사람에게 이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았고
막대기 같아져 버린 오른팔을 쓰면서
왜 하나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손이 귀까지 닿는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온전치 못한 오른쪽 귓바퀴 덕분에 귓바퀴라는게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정교하게 만들어주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잠시지만 다리에서 피부를 많이 떼어내 절뚝절뚝 걸으면서는
다리가 불편한 이들에게 걷는다는 일 자체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피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는지,
껍데기일 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피부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남겨주신 피부들이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에 감사했으며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얼마나 정교하고 세심한 계획아래 만드셨는지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감히 내 작은 고통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백만분의 일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고,
너무나 비천한 사람으로, 때로는 죄인으로,
얼굴도 이름도 없는 초라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그 기분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지난 고통마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고통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남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가슴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 누구도, 그 어떤 삶에도 죽는게 낫다라는 판단은 옳지 않습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장애인들의 인생을 뿌리째 흔들어놓는
그런 생각은, 그런 말은, 옳지 않습니다.
분명히 틀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무런 희망 없이 길 위에 고꾸라져 잠을 청하는 노숙자도,
평생을 코와 입이 아닌
목에 인공적으로 뚫어놓은 구멍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 사람도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 자라나는 이름 모를 들풀도,
하나님이 생명을 허락하신 이상
그의 생명은 충분히 귀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삶입니다.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
네...이러고도 삽니다.
몸은 이렇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마음임을 자부하며,
이런 몸이라도 전혀 부끄러운 마음을 품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런 몸이라도 사랑하고 써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드리며...
저는 이렇게 삽니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 지선아 사랑해 中에서...
설악산 입구로 가는 길목이었다. 한 장애인 아저씨가 지나가는 나의 다리를 붙잡았다.
돈을 달라고 하는 줄 알고 돈이 없다고 말하고는 그냥 지나치려했다. 아저씨는 그래도 내 다리를 계속 잡았다.
잠시 후, 그 아저씨는 깔고 앉은 돈 수레 밑에서 핸드폰 하나를 꺼냈다.
나는 아저씨의 행동이 이상해서 그냥 내려다보았다. 아저씨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나는 아저씨의 얘기를 듣기 위해 쪼그리고 앉았다.
아저씨는 '문...자...한...번...'이라고 더듬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철자법이 하나도 맞지 않는 글씨가 적힌 종이쪽지를 내게 보여주었다.
"나 혼자 설악산에서 좋은 구경하니 미안하오. 집에만 있으려니 답답하지? 집에 가면 우리 같이 놀러가오. 사랑하오."
아저씨는 종이를 보여주면서 열쇠고리에 붙여 있는 사진을 마구 흔들었다. 아저씨의 아내인 것 같았다. 아저씨는 걸을 수 없었기때문에 구경을 잘 하지도 못했을텐데. 엎드려서 먼지만 삼키면서도 아내가 생각나서 미안했던 모양이다. 나는 잠시 아저씨 옆에 쪼그리고 않아서 쪽지에 적힌 글자를 문자로 열심히 옮겼다.
그렇게 설악산을 다녀온 후 문득문득 그 아저씨가 생각났다. 비록 몸이 불편한 아저씨지만 그 사랑만큼은 어떤 누구의 것보다 크고 따뜻했다.
오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힘들어 왔습니다. 나를 힘겹게 했던 사람들이 밉고 나 자신이 밉고..
오로지 나의 모습만을 바라보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문득 주위를 보았습니다.
나보다 훨씬 힘겨운 사람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나 자신만 힘든 줄 알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지난 어느 날...
이른 새벽 피곤한 몸을 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 우연히 들었던 라디오에서
한 여자 앵커가 차분히 읽어 주던 이름모를 사람의 글귀가 머리 속으로 울려 퍼집니다.
첫 지하철을 타니 추위에 떨던 몇몇의 노숙자들이 지하철로 밀려 들어왔다.
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나는 그들이
밤새 굶주린 배를 움켜잡고 재빨리 아침 한끼를 먹으려고 스무 정거장이 넘는 무료급식소로
가고 있음을 알았다.
그들에게 연민이 느껴지는 순간
마지막에 탔던 노숙자 한 명의 뒷모습이
나에게 말을 거는 듯 하였다.
"나를 보니 힘내어서 살아갈 수 있겠느냐고...."
"세상엔 너보다 힘들고 비참한 사람이 더 많이 있음을 나를 보고 알 수 있겠느냐고....."
여러분 힘내세요..................................!!!!!
영원한나를 찾아서
바로 참나로부터이니 오직 참나를 찾기에 노력해야 한다.
2.참나가 이날까지 같이 하여 왔고,이날까지 같이 돌아갔는데도
그걸 모르니까 다시 참나를 발견하라고 알려주는 것뿐이다.
3.우리 육신은 참나에서 나타난 가지, 싹과 같으니
가지와 잎사귀인 육신을 자기라 알지 말라.
참나의 뿌리가 있어서 자기라고 여겨지는 육신의 싹이 나온 것이다.
4.사람의 뿌리는 모습이 없어 그것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러나 나무는 뿌리가 보이지는 않지만, 누구도 그 뿌리가 있는 것을의심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아무리 근본이 보이지 않는다 하여 자기의 뿌리를 믿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5.마음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죽게 되면 캄캄한 속에서 전혀 분간을 할 수가 없으므로
돼지집으로 들어가고 까치집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그러나 마음공부를 한 사람은 밝디밝아서 온 방을 고루 비추니 자기뿐만 아니라
그 법을 모르는 같은 식구들도 밝게 살게 될 것이다..
6.별도 늙으면 옷을 벗는다.
옷을 벗고 새 별이 생겨나는데 별 하나에서 둘도 나오고 셋도 나온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살던 습(習)은, 내가 이리 저리 간다 온다 하는 것을 생각하기때문에,
내가 여기에서 살았었다고 생각하니 여기도 하나 붙어있고, 저기서도 살았었다고 생각하니
저기에도 하나 붙어 있다.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을 없애기 위해서 이 공부를 하는 것이다.
7.집이 비면 바깥에서 도둑이 넘보고 침입하듯이,
자기와 주장심(柱杖心)이 완벽치 못하면 다른 정신이 들어오는 수가 있다.
8.내가 주장자를 세우지 못하고 그냥 살아간다면 생사(生死), 윤회(輪廻), 영계(靈界),
세균(細菌)에 끄달리면서 고달프게 사는 삶이 되고 마는 것이다.
9.'나[我]'가 있으니 불안과 공포가 있게 된다.
만약 나가 없다면 두려움이 있을 리 없다. 또 내가 없으니 죽음도 없다.
눈으로 분별해서 볼 때에는 놓고 죽음이 있는 것 같지만 본래는 생(生)도 멸(滅)도 없다.
생멸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쉼 없는 찰나찰나 나투어 돌아가기 때문이다.
일체가 고정불변하지 않고 항상 변화하면서 다른 모습과 형태로 나투기 때문이다.
10.'나'가 있으면 습(習)이 있지만 '나'가 떨어져 나간다면 습도 또한 붙질 못한다.
이 진리를 믿지 아니하기에 온갖 번뇌와 고통을 면치 못하는 것이다.
11.자기 본래면목(本來面目), 참나, 그 실상을 믿고 들어가야 한다.
그것은 현재 자기가 살아 있다는 그 사실만 보아도 명백하게 입증되지 않는가.
12.작년에 심은 수박씨에서 올 수박씨가 다시 나왔으니,
그 모양은 바뀌었지만 씨는 같은 그 씨이다.
그런데 사람은 근본은 이런 수박씨처럼 보이지를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자기 근본을 무의미하게 생각하고 믿지를 않는다.
그 보이지 않는 근본, 그가 바로 우리의 씨앗이며, 실상(實相)이며, 참나임을 알아야 한다
13.모든 것은 마음의 주인공이 하는 것이지 이 육신이 하는 것이 아니다.
육신이 움직이게 되는 것도, 생각나게 하는 것도, 망상이다.
보리다 하는 것도, 악이다 선이다 하는것도 모두 다 그 주인공, 참나에게서 나온 것이다.
14.밖으로 부처님을 믿어서는 아니된다.
부처님은 자신의 근본 그 자체이니 내가 나를 알아야 한다.
15.모든 이름을 떠나서 근본을 찾아야 한다.
부처님이다 미륵님이다 천주님이다 하기 이전 자리, 그 근원에다 놓아야 한다.
일체가 나온 그 자리가 이름하여 부처님이요 창조주이다.
16.사람들은 '자기의 씨(실상)를 찾아라!' 하니까
작년의 씨만 생각하고 작년 씨만 들고 있으려 한다.
비유하자면, 수박더러 '너, 네 씨를 찾아라! 네가 나오기 이전의 본래면목을 찾아라!'
하니까 제 씨는 제 속에 두고서, 작년의 씨를 제 씨인 줄 알고 바깥에서만 찾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바깥에서만 찾는다면 찾아질 리가 없다.
바로 지금 자기 안에, 자기 나오기 이전의 씨가 들어 있는 줄을 알아야 한다.
작년 씨는 화해서 이미 올 씨가 되었으니 바로 그 수박 안에 자기 씨가 있는 줄을 알아야
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항상 지금 이 몸이 있는 것이 원인이 되고 근본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17.상구보리(上求菩리) 하화중생(下化衆生)이란, 내 몸을 이끌고 다니는 근본이 무엇인지, 그 근본의 나부터 알아야 된다는 말이다. 나의 근본을 알면 내 육신을 제도하게 된다는 뜻도 있다.
내 한마음만 깨달으면 내 육신을 이루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포의 마음까지
알 수 있다. 이 육신도 마음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상구보리라는 것은 자기의 근본을 깨닫고자 함이요,
하화중생이라는 것은 자기의 몸을 이루고 있는 수억의 중생을 제도함을 말한다.
그러나 본래 위와 아래가 둘이 아니기에 상구보리하면 하화중생하게 되는 것이요,
하화중생하면 상구보리하게 되는 것이다.
18.자신이 스스로 자기를 제도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가 자기를 제도하지 못하고는 남도 또한 제도할 수 없다.
19.세상에서 아무리 잘난 영웅과 위인이 있다하여도 참나보다는 못하다.
20.잎에서 고장이 났어도 잎을 붙잡지 말고 뿌리를 잡아야 한다.
21.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의 근본인 뿌리를 잘 가꾸어야 한다.
그래야 가지도 잎도 튼튼해지고, 꽃도 피고 열매가 무르익게 되어 맛을 보게 된다.
22.참나는 너무나 가까이있기 때문에 오히려 중생들이 못 보고 있다.
23.지.수.화.풍으로 뭉쳐져 이 날까지 수억겁 년 동안 미생물에서부터 모습을 바꿔 진화하며 여기까지 끌고 왔는데, 당신을 그렇게 끌고 온 그 주인은 과연 누구이겠는가?
24.너 자신을 알라! 자신을 알지 못하면 남을 알지 못한다.
건강한 불교, 신나는 불교, 참회하고, 반성하고, 사랑하는불교
꼭 ! 이루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좋아지는 카페 불교넷
내 남편은 건설현장 근로자다.
말로는 다들 직업에 귀천이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엄연히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칭 노가다라는 직업을 가진 남자를
남편으로 둔 나는
그가 하는 일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고
어쩌다 친정엘 가도 풀이 죽는데,
"남들은 내 남편을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마음에 가끔 길을 가다가도
"이거 얼마예요?"
하고 서투른 우리말로 물어 보는게 아닌가.
아줌마가 천원이라고 답하자
그 두사람은 자기네 말로 뭐라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는게 보였다
아마 비싸다는 표정인 거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선량한 두 사람을 보고
이국 땅에 와 천대 받으면서 일하는
외국 근로자의 입장을 생각했고
또한 힘들게 일하는 내 남편이
잠깐이나마 그립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오늘은 햇빛이 따갑게 내리길래
널었던 이불을 걷으로
옥상에 올라 갔다가 무심코하늘을 보는데
"화인건설" 이라고 쓰여진 곤돌라가 눈에 띄었다.
언젠가 남편이 일하는 곳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남편이 일하고 있는 현장인거 같아
나는 열심히 그 곤돌라 밑으로
남편 옷 색깔을 찾아 보았다.
아!
조그맣게 남편이 보였다.
위험한 난간에서 나무 기둥을 붙들고
왔다갔다 하면서 망치로 못을 치고 있었다.
탕!탕! 못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 순간 나? 울고 말았다.
왜 내 남편은 더운 날
저렇게 땡볕에서 일을 해야만
처 자식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
꼭 저렇게 힘들게 일해야 하나
내려오는 계단에서
이불을 싸안고 오다가 그렁거리는
눈물 때문에 넘어 질 뻔 했다.
저녁을 먹고 남편에게
"다리 주물러 드릴께요 이쪽으로 누우세요"
했더니 눈이 동그래 졌다.
별일 다 보겠다는 표정이다.
나는 다리를 주무르면서
"당신 오늘 6층에서 일했죠"
"어, 어떻게 알았어?" 했다.
"오늘 이불 걷다가 봤어요,
우리 옥상에서 바라보면 왼쪽 끝에서 일했죠?" 했더니
"응" 하고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마도 자기가 고생하는 걸
내가 본게 못마땅한 것 같았다.
"냉커피 한잔 드릴까요?" 했더니
"아 타주면 잘먹지" 한다
사실 남편이
저녁 늦게 커피를 부탁하면 거절 했었다.
그다지 커피를 즐기는 편이 아니어서
밤에 커피를마시면
카페인 때문에 잠을 못자는 편이기 때문이다.
언제인가 밤에 커피를 마신 뒤
새벽까지 뒤척이더니
일 나갔다가 어지럽다고
그냥 집에 온 적이 있은 뒤부터
나는 되도록 늦은 커피는 타주지 않는다.
내마음을 아는 남편은
"내일 일 못 나가면 어쩌려고 커피를 타주지"했다.
"아유 뭐 어때요 하루 쉬면 되지 뭐" 했더니
남편은 빙긋 웃으면서
"우리 블랙 커피 한번 마셔 볼까?"
하고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었다.
"테레비 같은 데서
블랙커피 마시는 사람들 보니까 유식해 보이더라"
나는 웃음을 참으면서
정말로 설탕과 프림을 빼고
남편에게블랙 커피를 내밀었더니
한모금 마신 남편은 얼굴을 찡그리면서
"아우,무식한게 차라리 낫겠다.
못 마시겠다.우리 무식하고 말자"
하는게 아닌가.
하긴 블랙커피를 마신다고 모두 유식하면
무식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 부부는 무식할 정도로 큰 소리로 웃었다.
잠자리에 누운 남편은
"당신 이번에 돈 나오면 바지 하나 사 입어.
거 왜 당신은 멋을 안부리는 거야?
옆집 진영이 엄마 같이
야들 야들한 바지 하나 사입어"했다.
"참 누군 못 사 입어서 안 입는줄 아세요?
당신 땡볕에서 땀 흘리며 번돈으로
어떻게 비싼 옷을 사 입어요?" 했더니
"다 당신하고 윤정이 위해일하는데 뭘 그래.
이번 달에 사입어 파마도 좀 하고"
나는 그만 목이 메었다.
그런걸 행복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
잠깐씩 이렇게 느껴 지는 걸
행복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가끔 남편은
돈 많은 부모 못 만나 배우지 못해서
천대 받는 세상이 원망 스럽다고
울분을 토한 적이 있다.
그런 남편을 볼 때마다 나 또한
남편의 직업에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렇게 오늘 같이 잠깐씩 느끼는 감사함으로
남편 직업에 대한 회의를 잊고
깊은 행복감에 젖어든다.
아, 내일 남편의 점심 반찬을
무엇으로 해 드릴까?
자칭 무식한 우리 부부의 초여름 밤은
시원하게 깊어간다.
걸으면 뇌가 젊어진다
제 1 장 / 뇌를 깨우는 건강한 습관 - 걷기
걷기는 인간의 쾌감이다
걷기와 설렘에는 공통점이 있다
걷기는 뇌를 자극한다
걷기는 건망증을 극복한다
걷기는 의욕을 북돋운다
걸으면 밥맛이 좋아진다
걷기는 비만 치료제이다
걷기는 요통 치료에 효과가 있다
걸으면 고혈압도 치료된다
걷기는 금연 치료제이다
걷는 사람은 뇌가 젊어진다
제 2 장 / 마음의 평화를 되찾아주는 걷기습관
스트레스가 쌓이면 일단 걸어라
자신감을 잃었다면 일단 걸어라
몸이 찌뿌드드하면 일단 걸어라
날씨가 좋으면 일단 걸어라
마음이 울적하면 일단 걸어라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 일단 걸어라
분노가 일렁이는 날, 일단 걸어라
인간 관계로 얽히는 날, 일단 걸어라
할일 없는 날, 일단 걸어라
제 3 장 / 창의력을 높여주는 창조 워킹
왜 창조 워킹이 몸에 좋은가?
하하하 웃으면서 걷기
음악 들으면서 걷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기
시를 지으면서 걷기
자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걷기
사진 찍으며 걷기
관광 지도 보면서 걷기
드라이브하면서 걷기
사랑하면서 걷기
제 4 장 / 감성을 자극하는 사계절 걷기여행
계절의 변화에서 행복을 느낀다
봄 했살 맞으며 걷기
꽃 이름 외우면서 걷기
비오는 날, 신나게 걷기
여름 숲 걷기
여름날, 초저녁 걷기
여름밤, 별 헤면서 걷기
가을날 오후, 맛있는 공기 마시면서 걷기
마라톤 걷기에 도전하기
12월의 거리 누비기
한겨울에 즐기는 새 구경
사계절의 바람을 맞으며 걷기
제 5 장 / 걷기가 즐거워지는 12가지 비결
즐겁게 걷는것이 최고
부드러운 몸, 부드러운 뇌
준비운동, 정리운동으로 유연한 몸 가꾸기
뇌가 좋아하는 시간 찾기
걷기 좋은 옷차림
편하게 걷기위한 도구
수분 보충은 충분히...
잘 먹고 잘 걷기
색다른 보폭에 도전해 보기
전국일주, 세계일주를 목표로 걷기
취미를 살리면서 걷기
즐겁게 유쾌하게 걷기
불교넷에서는 바르게걷기 강좌및 걷기동호회 회원을 모집합니다.
다음은 지난 10월 14일 KBS-1TV가 「생로병사의 비밀」 시리즈 가운데 ‘기적의 걷기 치료법 530’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한 내용을 핵심 요약한 것입니다.
1주일에 5일, 하루 30분 정도 걷는 것만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그러나 ‘가벼운 운동’으로만 인식하는 ‘걷기’의 효과는 결코 가볍지 않다. ‘저강도 운동’인 걷기를 장시간 하는 것은 달리기와 같은 ‘고강도 운동’을 단시간 하는 효과를 뛰어넘는다.
걷기는 ‘한국인의 5대 질병’(고혈압·심장병·당뇨병·뇌졸중·암)의 예방을 넘어 치료에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1주일에 5번 30분 걷기, 즉 ‘기적의 걷기 치료법 530’의 놀라운 효과들을 확인해보자.
‘걷기’로 새 삶을 찾은 사람들
걷는다는 것이 단순하고 기본적인 움직임 같지만 한 걸음을 떼는 순간, 우리 몸 속에는 200여개의 뼈와 또 600개 이상의 근육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하고, 모든 장기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된다. 이렇게 걷기는 단순하지만 아주 신비롭고 과학적인 움직임이다.
벤 말론 (46세, 아일랜드)
- 규칙적인 걷기로 체중 감량, 심장병 치료
“큰 효과를 보았습니다. 거의 22㎏의 체중이 빠지고, 매일 걷는 것만으로도 건강상태가 훨씬 좋아졌습니다. 제게 걷기운동은 기적과도 같습니다. 제 생명을 구해 주었거든요. 여러분에게 걷기운동을 강력히 권합니다.”
콜리우스 (36세, 스위스)
- 다리 절단 후 의족 사용. 걷기 운동으로 15㎞ 속도로 뛰기 가능.
“걸음 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골반에 균형을 잡고 근육과 골격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알게 된다면 기적적으로 척추가 바로 서고 자세교정이 됩니다.”
이성수 할아버지(102세, 전남 보성)
복덕방을 운영하는 이성수 할아버지는 지금도 읍내 다닐 때 전혀 차를 타지 않는다. 3살 때부터 걸었다고 하니 한 100년은 걸어다닌 셈이다. 할아버지의 반나절 걸음수는 3594보, 즉 2.5킬로미터에 달했다.
할아버지의 건강 나이를 측정해보았다. 다리근력 테스트에서 놀라운 결과를 나타내었다. 보통 60∼70대 할아버지 정도의 근력을 갖고 있었다. 종합적인 검사 결과 총체적인 신체적 연령 수준은 80세 전후에 해당했다.
‘530 걷기’를 실천하라
장수촌의 기본조건은 산간지방. 지형의 기복이 심해서 많이 걸을 수밖에 없고 공기가 맑고 건조한 환경이다. 이것은 얼마나 많이 걷고 움직이느냐가 장수와 직결된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미 시사주간지 〈타임〉은 얼마 전 “뛰지 말고 걸어라”(Walk, Don’t Run)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1주일에 5차례 하루 30분씩 걷기가 건강의 필수요건이라고 한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걷기는 각종 성인병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필수운동이기 때문에 매일 30분 정도의 걷기를 권고하고 있다. 이 밖에도 수많은 의학 논문들에서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성인병 치료법이 바로 1주일에 5일, 30분씩 걷기이다.
여기서 기억해야 할 숫자는 5일·30분, 즉 ‘530’이다. 그렇다면 최근에 의학계에서 강한 운동이 아니라 ‘530 걷기’, 즉 지속적인 저강도 운동을 강조하는 이유를 무엇일까요?
불교넷에서는 바르게걷기 강좌및 걷기동호회 회원을 모집합니다.
‘파워워킹’으로 균형 잡힌 체형을 가꿔라
대표적인 유산소 운동인 달리기와 걷기를 비교해 보았다. 최대산소섭취량(단위: ㎖/㎏/min)을 비교해보면, 걸을 때 35.85인 수치가 달릴 때는 71.26으로 2배정도 증가했다. 그런데, 필요 이상으로 많이 섭취하여 생기는 활성산소는 세포를 늙고 병들게 한다. 100% 산소에 노출된 쥐는 1주일만에 모두 죽고 말았다. 운동강도가 높을수록 산소섭취량도 커지는데, 저강도 운동인 걷기에 비해 웨이트 트레이닝이나 마라톤은 최소 3배 이상 증가한다.
칼로리 소비량을 비교해보면, 걷기는 142칼로리가 소비된 반면 뛰기는 250칼로리로 2배정도 많았다(30분 기준). 그렇다면 체중감량에도 그만큼 효과적일까?
운동할 때 이용되는 에너지원을 살펴보았다. 운동초기에는 탄수화물이 동원되지만 운동시간이 길어질수록 지방이 소비된다. 따라서 운동강도가 낮아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걷기는 비만의 원인인 체지방을 연소하는데 달리기보다 효과적이다. 실제로 칼로리 소비율을 보면 걷기에서는 지방과 탄수화물이 50 : 50인 반면 달리기는 33 : 67로 지방 소비율이 낮았다. 특히 ‘파워워킹’(빨리걷기)은 칼로리 소비가 높고 심폐지구력, 근력 향상에 효과적이다.
‘걷기’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
8자 걸음은 괜찮은가요?
- 8자 걸음은 발목과 척추에 무리를 주기 때문에 삼가야 한다. 약간 벌어진 11자 걸음이 좋다.
뒤로 걷기가 좋다는데 정말인가요?
-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다리 뒤쪽의 근육을 사용하기 때문에 관절염 예방에 도움이 된다. 단, 넘어질 확률이 높기 때문에 뼈가 약한 노인들은 주의해야 한다.
러닝머신 위에서 걷는 것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나요?
- 땅을 딛고 걸어야 가장 효과적이다. 부득이 러닝머신을 이용할 경우는 발판을 10。경사지게 하고서 걸으면 효과적이다.
아침과 저녁, 어느 때 걷는 것이 더 좋을까요?
- 걷기를 포함한 장시간 저강도 운동은 아침보다 저녁이 좋다. 저녁 7시 무렵의 운동이 가장 효과적이다. 특히 당뇨환자는 야간운동을 해야 효과적인 혈당조절이 가능하다. 성인병 환자는 아침운동을 피해야 한다.
이렇게 걸어라!
1. 파워워킹을 하라
팔을 힘차게 흔들면서 보폭을 넓혀 빠르게 걸어라. 파워워킹은 전신을 사용해 운동효과를 극대화하고 발 전체가 지면에 닿아 하체근육을 강화한다. 상체도 이용하기 때문에 일반워킹보다 2배의 운동효과를 볼 수 있다.
2. 체중의 1% 신발을 신어라
밑창은 적당히 부드럽고 탄력이 있어 발이 쉽게 피로해지지 않게 해야 한다. 앞부분은 발가락을 조금 넓힐 수 있을 정도로 여유 있어야 한다. 운동화 무게는 체중의 1%가 적당하다.
3. 키의 40% 보폭을 유지하라
큰 보폭으로 ‘천천히’ 걸으면 허벅지·종아리 근육을 강화시킨다. 큰 보폭으로 ‘빨리’ 걸으면 심폐기능을 강화시킨다.
4. 15분 간격으로 물을 마셔라
전날 충분한 물 섭취. 당일 운동 2시간 전, 15분 전, 운동 중 15분 간격으로 물 1컵(200㎖)을 섭취하라.
빨리 걸으면 혈압 떨어진다
고혈압 환자가 1주일에 반드시 1시간 이상 속보로 걷는 운동을 하면 혈압이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국립건강·영양연구소와 국립요양소 중부병원이 고혈압 환자 2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1주일에 1시간 이상 빠른 걸음으로 걷는 운동을 하면 혈압이 확실히 내려가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운동량은 한꺼번에 걸어도 좋고 몇 차례 나눠 걸어도 효과는 마찬가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혈압이 높은 사람일수록 효과가 두드러진 것으로 밝혀졌다.
건강한 불교, 신나는 불교, 참회하고, 반성하고, 사랑하는불교
꼭 ! 이루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좋아지는 카페 불교넷
즐거운 삶을 만드는 마음
|
|
틱쾅둑 스님 소신공양 장면 ... 당당한 모습이시네요()()()
|
문수스님의 영롱한 사리 30과 수습 |
| ||||||||||||
|
5월 31일 '4대강 개발 즉각 중지' 유서를 남기고 낙동강 지류에서 소신공양한 문수 스님의 다비장인 연화대에서 사리 30과가 수습됐다. 1,000일 넘게 면벽수행과 일종식 등으로 소신공양을 미리 준비해 온 결과라는 게 스님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도반인 관행 스님은 "문수 스님은 청도 대산사 주지를 스스로 그만두고 2007년 8월께 지보사로 왔다"며 "대산사 주지 당시 천도재를 지내는 것을 비롯해 주지 소임이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다고 말했다. 스님은 '나 자신도 천도하지 못하는 데 내가 누구의 천도재를 지내준다는 게 옳지 않다는 말도 했었다"고 회고했다. 문수 스님은 대산자 주지직을 맡은 뒤 1년여 만에 본사인 동화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지보사로 들어왔다. 지보사 관계자는 "문수 스님은 이곳에 온 이후 두문불출하며 수행에 전념했다"며 "방 안에서 면벽수행만했고, 최근 1년동안은 발우(스님의 밥그릇)도 방밖으로 내놓지 않았고, 몇일에 한번씩 해우소(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걷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보사 신도 가운데 문수 스님의 얼굴을 본 이가 한사람도 없다. 스님은 방과 3m가량 떨어진 해우소를 간간히 다녀왔을 뿐이다. 스님은 지난 1,000일동안 일종식(하루에 한끼만 먹는 것)을 해왔다고 지보사 측은 설명했다. 그러던 스님은 5월 30일 천일만에 문을 열고 나와 아침부터 자신의 방에 쌓여있던 발우 300여개를 공양간으로 날랐다. 총무국장 견원 스님이 발우 닦는 것을 도와주려 하자 스님은 "괜잖다"고 말한 뒤 발우를 손수 닦아 정리하고 자신의 방도 정갈하게 정리했다고 한다. 이발을 하지 않아 산발이 머리도 이날 스스로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님은 이어 이날 밤 10시께 지보사에서 한 도반을 찾아가 30여분동안 얘기를 나눴다. 워낙 말수가 적고 말이 느려 30분동안 나눈 얘기는 수행자의 태도와 소신공양을 앞 둔 스님의 소회만 간단하게 언급했다고 한다. 문수 스님은 "수행자가 벽만 쳐다보고 있는게 옳으냐, 사회적 문제에 대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옳은냐"고 자신에게 반문하듯 말하고는 "스님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내일 내가 소신공양을 해야 4대강 등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스님에게 뭐를 남겨뒀다"고 말했다. 문수 스님이 이 스님에게 남긴 '무엇은' 방 안에 놓여있는 유서였다고 도반들은 짐작했다.
/ 군위 = 이혜조기자 | ||||||||||||
위대한 비구니스승님 문수스님 부도에서 소신공양올리시다
'4대강반대' 문수스님 따르던 여승 '소신공양'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2011.07.14
환속한 사미니(비구니 전 단계의 예비승)가 14일 새벽 1년 전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며 자신의 몸을 불살랐던 문수스님의 부도 옆에서 소신공양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북 군위 지보사의 주지인 원범스님은 이날 오전 < 오마이뉴스 > 와 한 전화통화에서 "새벽 6시 무렵 예불을 드리고 나오는데 문수스님 부도 쪽에서 연기가 피어올라 갔다가 소신공양한 명문(법명)사미니를 발견했다"며 "그때는 이미 숨진 상태였다"고 전했다.
원범스님에 따르면, 명문은 "문수스님이 불러서 간다, 장례는 간소하게 치러 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겼다.
원범스님은 "명문은 '문수스님이 불러서 간다'고 남긴 걸 보면 ('4대강 사업 반대' 등) 문수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소신공양한 걸로 보인다"며 "현재 명문은 군위 삼성병원에 안치해놓았다"고 말했다.
문수스님은 지난해 5월 4대강 사업 반대 등의 유지를 남기고 소신공양했다. 지난 5월 31일 그의 소신공양 1주기를 맞아 군위 지보사에서 부도탑 제막식이 열렸고, 그 부도탑 옆에서 소신공양한 명문이 발견된 것.
이날 명문의 소신공양을 가장 먼저 보도한 < 불교TV > 의 조용수 보도부장은 "명문은 조계종 승적을 버린 뒤에도 머리를 기르지 않고 사실상 스님으로 계속 생활해왔다"며 "지난해 그가 일백일 철야 참회기도를 하는 중에 문수스님이 소신공양하는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조 보도부장은 "이후 명문은 문수스님 옆에 천막을 치고 생활해왔다"며 "얼마 전 1주기 추모행사가 끝났는데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명문은 대학노트 6장의 유서를 남겼다. 4장은 유서이고, 1장은 진관 스님에게 남긴 간단한 글, 나머지 한 장은 아들에게 남긴 글이다.
다음은 유서 전문이다.
스스로 몸을 살라 공양 올리지 않고는
이 고요한 씻김과 평화를 가늠할 수 없으리.
이 인연공덕으로 세세생생 불법을
만나 보살도를 닦아지이다.
저와 인연된 모든 영가들은 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좋은 곳에 태어나소서.
한국 불자 가정에 초기경전이 널리 퍼져서
저희들이 아기적부터 부처님 가르침을 접하게 하소서.
금생의 인연이 다하여
저는 먼저 다음 생으로 넘어갑니다.
제 모습을 보고, 이야기를 들은 모든 분들의 아픔이 어서 치유되기를.
나무 바라바제 비살사구로 벽류리 바라 바아라사야-
문수스님께서 저를 맞아주시니
보내주시는 분은 불교인권위원회의 진관스님이면 좋겠습니다.
곧 새로운 부모님을 만나
딸이 되고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
윤회를 선택한 보살들의 집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오래 슬퍼하지 마시고
다만 정법이 오래 머물도록 애써주십시오.
지나온 모든 인연들께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길!
평안하시길!
몸과 마음이 좋아지는 카페 불교넷
절을 바꿔 지어야 불교가 산다
원성
이제 기와집이 아닌 시대에 맞는 절의 형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1. 절에 왜 갑니까?
“절에 왜 갑니까?”하고 질문을 던졌을 때 어떤 대답이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습니까?
“그냥 분위기가 좋아서요.”라는 대답일 것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절을 떠올리는 건 ‘그곳에 가면 그냥 좋다’라고 하는 관념일 것 같습니다. 그 ‘절’이라는 건 아마도 산사일 것입니다. 산과 어우러지는 풍경 속의 절, 이건 아마 종교가 담긴 그릇으로의 절이기보다는 산의 풍경과 어울리는 분위기가 주는 느낌으로 와 닿는 친근감일 것입니다.
이미 산사 중 큰 절의 대부분은 수행자의 공간이기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관람의 대상으로 변한 지 오래입니다. 오히려 관람편의를 위한 쪽-작은 암자에 대형주차장이 설치되는 등으로 분위기가 바뀌어 가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부처님을 따르는 사부대중을 위한 공간이기보다는 구경꺼리로 전락한 곳이 옛 절이라면 이제는 그야말로 수행처로서 이 시대에 어울리는 절은 어디에 있을까요?
“절에 왜 갑니까?”라는 질문에 이제는 이런 대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공부하러 갑니다.”
불교가 새바람을 타고 있습니다. 사세寺勢를 키워가고 있는 절들의 공통점이 공부를 하는 절이라는 것입니다. 교양대학에서 시작하여 참선, 다도 등 무엇인가를 배울 수 있는 절에 사람들이 몰려간다는 것입니다. 수백, 수천에서 심지어 수만 명의 신도를 수용하는 절들의 공통점입니다.
그 절들은 거의가 도시에 있습니다. 운치에 가까운 분위기를 필요로 해서 찾아가는 산사가 아니라 대도시 한복판에 배움의 열기만큼 사람들이 넘치는 차원이 다른 분위기가 있습니다. ‘무조건 믿어라, 엎드려라, 빌어라’고 하는 수동태 불교가 아니라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 나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기 위해서’ 공부하는 능동태 불교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수는 너무나 미미해서 불자들이 가까이에서 찾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가까운 곳에 있는 많은 절들은 아직 대웅전 하나 번듯하게 지어놓고 거기서 재나 올리는 형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회라는 형식을 갖춘 절에 몇 십 년을 다녀도 부처님이 어떤 분이며 불교가 어떤 종교인지 설명하는 정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절에 가면 내용도 모르는 경을 따라 읽고 어떻게 삶에 적용하여 잘 살아야 하는 지도 모르는 법문을 듣습니다. 어려운 일 앞에서 사주팔자를 묻거나 부적이나 챙기려는 신도들도 적지 않습니다. 조상을 천도해야 집안이 평안하다면서 재를 올리는 것을 부추기거나 자식 잘 되라고 부처님께 매달리는 것이 신행의 전부로 알고 있는 분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렇기에 대웅전 하나 짓고 주지스님 방에 신도 카드나 잘 챙기고 공양간에 큰 방 하나면 족한 것이 이 시대의 불교 신행공간의 전부입니다. 아무리 큰 절이라도 이 형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설계한 동네 한 가운데 지은 도시형 사찰의 공간입니다
인접한 뒷집과 건축물 사이에 작은 공간을 두고 탑을 모셨습니다
이 정원은 반대편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제대로 보입니다
공사비가 모자라니 인접대지의 담을 가리지도 못해서...
여기서보는 그림은 좀 시원찮지요?
신도 중에 누구라도 풀을 좀 뽑으면 좋으련만...
이렇게 출입문을 열면 작은 홀이 나오고
탑을 마주 하게 됩니다.
합장...^^
이래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배우고 삶에 제대로 반영해가면서 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불교를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는데 그가 세상에 불교를 전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할 것이며 사회에 불법을 널리 전하는 것은 더더구나 어려울 것입니다.
아직 이 정도라도 절을 차리기만 하면 신도들이 모여드니까 구태여 다른 형식을 찾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과연 계속 그렇게 될까요? 만약 어떤 절에 젊은 신도들이 없다면 그 절은 곧 문을 닫아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인데 말입니다.
2. 지켜야 하는 승가의 룰
잘 지어진 대웅전 한 채, 잘 조성된 불상 한 구, 염불 잘 하는 부전스님 한 분만 있으면 절살림 꾸려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불교교양대학마다 공부하기 위해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몰려들고 있으며 출가수행자가 아닌 재가수행자들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도시의 참선도량이 전국적인 조직을 가지고 그 만만치 않은 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교양대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정기법회를 개설하고 어린이, 청소년, 청장년을 대상으로 불교를 가르치는 절만이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미 할머니를 주신도 층으로 하고 있는 사찰은 경영난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불전함과 49재, 천도재 올리는 것으로 주수입을 삼고 있다면 사찰경영은 아주 후진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될 것입니다. 공부하고 수행하는 재가 수행자들은 더 이상 그런 스님들을 외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존경쟁을 넘어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 난국에 출가-수행을 통한 지도, 재가-경제활동을 통한 외호라는 승가의 불문율을 지키지 못하는 무늬만 스님에게는 더 이상 다가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님이 신도에게 무엇을 주어야 신도도 외호라는 의무를 기꺼이 다할 것입니다. 스님은 신도에게 무엇을 주어야 합니까? 업을 가르쳐 재라는 면죄부를 파는 거래는 이제 중단되어야 합니다. 부처님이 가르치신 정도를 나누어야 합니다. 무명을 밝혀 광명을 얻는 그 길을 가르쳐야 합니다.
이 룰만 지켜진다면 사찰의 경영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정도를 가르치는 스님이 있고 그것을 배우는 신도가 있는 사찰은 번창일로에 있습니다. 물질의 충족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을 불법을 통해 채우려고 하는 이들이 날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에서 최빈국最貧國중의 하나인 티베트의 불교가 최부국最富國인 미국의 정신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불교야말로 현대인이 안고 있는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대안 중의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는 그 형식에 있어 시대적 상황에 제대로 적용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3. 타종교에서 배우는 해법
개신교의 경우 아무리 작은 교회일지라도 교육하는 공간을 꼭 만듭니다. 일주일이면 하루 이상 교회에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새벽 예배를 비롯하여 휴일 예배는 꼭 참석할 뿐 아니라 어린이부터 청소년, 청년부, 장년부 등 연령 대에 맞는 모임을 만들어 예배하고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신자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집에서도 식사할 때 하는 기도부터 좋은 일, 나쁜 일을 막론하고 기도로서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높여 찬양합니다. 그 모든 근거는 성경에 있으며 성경의 구절대로 생각하고 실천하려합니다. 이러한 신행의 바탕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성경 공부의 결과입니다.
매주 한번이상 두세 번을 참석하여 우리말로 된 성경책으로 아주 쉽게 공부를 하기에 일년이면 성경을 알게 될 것이고 십년내로 전도를 할 수 있을 것이며 몇 십 년이 되면 그가 바로 목사와 다름없는 권한을 위임받는 장로가 됩니다.
출입구 문을 열면서 작은 홀을 만납니다
이 홀에서 이 작은 절의 분위기를 봅니다
칼...금강도입니다^^
탑을 보며 합장을 하고 예를 올린 뒤에 뒤로 돌아섭니다
그리고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납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찬란한 빛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이제는 부처님을 만납니다
찬란히 떨어지는 빛
그리고 부처님
깊고 높은 공간에서 떨어지는 빛입니다
우주 대광명
석가모니 부처님
그리고 좌로 돌면 3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만납니다
2층은 요사채에 해당하는 신도들의 공간입니다
공양간, 입식의 주방과 식당이 있고 대중방이 두칸 있습니다
3층은 법당입니다
한층을 다 쓴다고해도 면적은 서른 평이 못됩니다
연면적이 100 평에 없는 것이 없습니다 ㅎㅎㅎ
계단을 밝히는 천창입니다
도시 사찰의 여건상 전면으로는 창을 거의 두지 않았지만
천창으로 떨어지는 빛이라 더 밝은 공간-별 세계입니다
3층에서 4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입니다
4층은 스님의 공간입니다
신도들과 구분해서 스님의 사생활이 보호되지요
3층에서 2층을 내려다 봅니다
깊고 높은 통로를 따라 세상을 잠시 잊을 수 있을지요
작은 절이지만 깊은 절입니다
그렇게 공부할 수 있는 신도들의 공간이 교회에는 충분히 마련되어 있습니다. 어디 그 뿐 입니까? 이제는 중규모 이상의 교회를 신축할 때는 신자는 물론이고 마을의 사람들까지 이용할 수 있는 탁아시설, 공부방, PC방 등의 편의시설을 제공하여 교회에 너무나 자연스럽게 올 수 있도록 합니다.
우리나라에 들어 올 때부터 의료사업, 교육사업을 통해 사회화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고 지금은 무료급식을 통한 사회사업에 참여하는 등의 대 사회 활동에 너무나 적극적입니다. 그 모든 것이 시대에 맞는 방법이 아니면 외면당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일지라도 세상에 나올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기독교를 10이라고 보고 불교를 100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기독교는 10 중에서 8이나 9를 세상에 맞추어 쓰고 있지만 불교는 100 중에서 4나 5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할 것입니다.
신도들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 배우고 익히는 공간, 세상과 나누는 공간이 절에 있어야 합니다. 대웅전은 엄청 화려하게 장엄을 해 놓지만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추우며 절하고 기도하는 데만 맞게 되어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침대에서 잠자고 식탁에서 밥을 먹으며 책상에서 공부합니다. 가부좌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이들은 법당에 다리를 틀고 앉는 그 자체가 고역입니다. 이러한 젊은이들을 절로 불러들여도 생활습관에 맞지 않는 공간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습니다.
그들이 교회에 가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간에 익숙해지지만 절에 왔을 때는 시작부터 끝까지 불편할 뿐입니다. 마음을 내어서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익숙해지는 노력을 요구하는 것은 한발 뒤진 포교방법입니다.
할머니 불교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신행공간을 바꾸려하지 않는 것은 왜 입니까? 불상 주변만 잘 장엄하면 절하나 먹고 사는데 큰 지장 없다는 거드름을 아직 부리고 있습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그에 맞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불교에는 거의 모든 것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제 바꾸어야 합니다. 절도 현대식으로 바꾸고 경전도 한글로 읽고 가르치며 세상이 불교에 바라는 모든 것을 제공해야 합니다.
그 답은 다른 종교에서 배우면 가능합니다. 교회는 오래 전에 뾰족탑의 형식을 버렸습니다. 절도 기와집의 형식을 버려야 합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한글로 가르치고 편한 말로 세상에 말씀을 전했습니다. 절에서도 경전부터 한글로 독송하고 쉽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나누어야 합니다.
찾아오는 이 막지 않고 가는 이 잡지 않는다는 거만한 포교 방식을 버리고 교회처럼 찾아가는 전도를 배워야 합니다. 마당에서 추위와 더위를 참으며 법회를 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환경을 제공해야 합니다.
이제 바꾸지 않으면 우리 스스로 부처님을 외면하게 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입니다.
4. 젊은이들에게 종교를 물었더니
젊은이들에게 종교를 물었습니다. 무교라고 대답하는 사람 중에 많은 이들이 부모님은 불교지만 자신은 종교가 없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기독교라고 대답하는 이는 모태신앙이라고 얘기합니다.
어릴 때부터 가족이 모두 자연스럽게 매주 교회에 다니게 되기에 종교의 선택여지가 없이 기독교를 종교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반면에 불교가 집안의 종교이지만 할머니나 어머니만 절에 다닐 뿐 다른 가족들은 초파일이나 절에 가볼 뿐이니 종교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인 불교의 가정입니다.
이 모든 이유가 사찰이 시대에 맞지 않은 건축물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정기법회가 개설되어 있는 경우일지라도 그들 입장에서는 뜻 모를 한자로 된 경을 중얼거리고 다리를 포개고 앉아 몇 시간을 참아내어야 하는 인고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한 번 따라 나섰다고 해도 다음은 없을 것입니다.
법당에 피아노가 있는 절이 많지만 찬불가를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절이 얼마나 있습니까? 몇 권 분량의 많은 찬불가가 있지만 정해진 몇 곡 이외에 따라 부를 수 있도록 가르치는 절이 없으니 기껏 원력을 내어 만들어진 찬불가도 무용지물이 되고 있습니다.
가르치고 배우는 분위기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위기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건물의 형식이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이 없기에 어릴 때부터 기꺼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적습니다. 장엄한 대웅전은 아이들에게 맞는 환경이 아닙니다. 아이들은 다리를 틀고 앉는다는 것 자체가 고문일지도 모릅니다.
뜻 모르는 반야심경을 외우도록 강요하는 것도 또 다른 고문이겠지요. 기독교인에게 주기도문은 불자에게는 반야심경 일터인데 주기도문은 그냥 내용을 알게 되지만 반야심경의 뜻을 아는 불자들은 얼마나 되나요? 반야심경의 뜻을 물으면 몰라도 암송만 하면 그 공덕이 무량하다면서 배우려는 의지를 꺾어 버립니다.
우리의 삶에는 심오한 경지를 깨닫는 것보다 쉽게 행동에 옮길 수 있는 가르침이 더 필요합니다. 스님들이 득도한 알지 못하는 한자게송보다는 절에 틀어 놓은 법구경 테이프 구절이 힘든 세상을 이겨나가는 데는 약이 됩니다.
팔만사천법문이 중생의 근기에 맞추기 위한 약방문이라면서 그 처방을 제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없기에 약으로 쓰지 못해 시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약방문이 한글로 되어 있다면 마음의 병으로 야위어가는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사회생할 약으로 쓸 것인데도 한자라는 포장지에 싸여서 서고에 잠자고 있습니다.
한자로 된 팔만대장경은 CD로 만들고 동판으로 만들어 길이길이 보전하면서도 한글로 만든 대장경은 만들었다는 얘기는 들었으나 절 어디에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한자로 된 글을 한글 음으로 옮겨서 독송하기는 하지만 왜 한글로 풀어놓은 가르침은 외면합니까?
한글을 만들 때 언문이라고 소홀하게 대접을 받은 것처럼 한자로 읽어야만 독송 공덕이 있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부처님은 배우고 익혀 실천해야만 공덕이 있다고 금강경에서 누누이 강조하셨건만 가르치지 않으니 배우기 어렵고 배우지 않았으니 익히지도 못해 몇 십 년을 다닌 할머니는 아직 사주팔자를 절에서 묻고 스님께 부적을 달라고 합니다.
이제 배우고 익힐 공간을 만듭시다. 그렇게 만든 공간에서 스님들이 정재淨財로 공부한 그 가르침을 신도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부대중이 청정한 승가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조상을 천도해서 자손이 무탈하고 사업 잘되는 기도가 영험한 산사에 운집하는 신도가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배우고, 제대로 된 삶의 길을 깨달은 스님에게 공부하기 위해 모이는 곳이라야 이 시대의 정법도량이라 할 것입니다.
이 도량에서 젊은 불자들이 끝없이 나오게 될 것입니다.
5. 이 시대에 필요한 절의 형식
목탁소리가 시끄럽다는 민원이 구청에, 동사무소에 접수됩니다. 그 옛날 낭만처럼 들리던 교회당 종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동네에 들리는 목탁소리를 사람들이 참아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 계속 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절에도 가끔 절에 접해있는 아파트에서 찾아와 시끄럽다고 크게 항의를 하곤 합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로 그 입장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 교회나 절을 지으려고 하면 그렇게 민원이 빗발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시내에서 열리는 야단법석은 바로 이웃에게 고통을 주는 것이 됩니다. 다종교 사회에서 내 종교를 위해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 대웅전을 짓고 마당에서 부족한 공간을 해결하는 법회방식을 바꾸어야할 때가 되었습니다.
평상시에는 몇 사람이 참석하는 사십구재나 천도재 정도만 해결하고 초파일이나 큰 법회에는 마당에서 신도를 수용하는 그런 사찰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교회나 성당처럼 법회에 참석하는 모든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집회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2층으로 들어가는 계단의 자리입니다
왼쪽에 요사에 해당하는 대중방 두칸, 남녀 화장실, 셔워장과 식당이 있습니다
위에서 떨어지는 빛으로 이 공간은 늘 밝지요
왼쪽에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외관 정면의 까만 돌이 있는 자리입니다
계단 공간의 심심할 수 있는 여지에 리듬을 주지요
난 한 분이 그 자리에 앉고 불화 한 점이 벽을 채웁니다
식당 공간의 전경입니다
주방 왼쪽에 작은 대중방이 있고 맞은 편에 더 큰 방이 있습니다
넓은 테이블이 스무 분이 함께 공양을 할 수 있습니다
주방은 오픈 카운터와 함께 두어서 간단하게 공양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절은 공양주가 없어서 모두 셀프 서비스입니다
차려서 먹고 설겆이까지 스스로 해결합니다
집은 조촐하게 지었지만 주방의 기기는 고급입니다
스스로 차려 먹고 설겆이를 하지만 즐겁게 할 수 있도록...
괜찮습니까?
3층으로 올라왔습니다
내려다보면 작지만 깊은 공간을 더 깊게 느낄 수 있지요
위에서 떨어지는 빛이 신선합니다
법당의 이름은 智悲光殿입니다
지혜롭지만 모든 걸 거둘 수 있는 마음을 밝은 빛으로 키우는 곳인가요?
그래서 이 절은 빛이 좋습니다
법당의 전경입니다
불단도 조촐하게 차렸습니다
서가모니 부처님 한 분만 모셨습니다
스님의 품성이 느껴집니다
1층의 작은 홀에 있던 금강도,
그리고 단아한 공간...
3배를 올리고 돌아서면 법당이 그야말로 가르치고 배우는 공간임을 알게 됩니다
이 절은 재를 올리지 않습니다
항상 법을 논하는 법석이 펼쳐집니다
남쪽에서 들어오는 빛
문살에 비치는 빛이 한가롭습니다
정적이 흐르지만 법을 담는 열정은 늘 뜨거운 곳이지요
이 절의 이름은
새(元) 밝은(曉)의 중심(center)
원효센터입니다
여름에는 비와 더위, 겨울에는 추위에도 항상 신도들을 좋은 환경에서 신행활동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처님 앞이니까 더위와 추위도 이겨내야 한다고 강요하는 구태를 버려야 합니다. 이제는 집집마다, 차마다, 직장마다 에어컨이 있는 환경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에게 지금의 사찰환경은 너무 가혹한 것입니다. 그래야 매주 법회가 열릴 수 있습니다.
신도들만을 위한 환경이 많이 필요합니다. 지금 사찰에 신도들을 위한 공간이 있기는 합니까? 대웅전에서 삼배 올리고 공양간에서 밥 한 그릇 먹을 수 있는 대중방 이외에 어떤 공간이 있습니까? 다른 종교에는 크고 작은 교육실에 신도회를 위한 사무 공간, 탁아실, 성가연습실, 독서실 등등 신도들이 교회에서 살다시피 할 수 있는 각종 공간에 편의시설까지 풀 서비스를 하고 있는데도 사찰에는 그 어떤 서비스도 제공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아직 불교신도가 2000만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면 부처님의 복덕은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정말 2000만 명의 불자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사찰을 지으면서 대웅전 장엄하는 정재를 산 부처를 위해서 지출이 되어야 합니다. 사찰건축을 도시에서도 무조건 목조로 지어야 한다는 편견-우선 돈이 엄청 들어가면서 실용성이 떨어집니다-을 버리면 해결방법은 여러 가지로 나올 수 있습니다.
콘크리트로 지으면서도 목조의 형식을 따르게 되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찰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훌륭한 건축가들이 많이 있지만 이 기와집이라는 사찰 형식을 고수하는 불교계의 분위기 때문에 시대에 맞는 좋은 사찰을 작품으로 표현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형식을 타파한 서울 양재동의 능인선원의 경우 훌륭한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나 성당의 경우에도 뾰족탑을 포기함으로서 훌륭한 작품으로 새로운 형식이 계속 지어지고 있습니다.
6. 이런 공간이 있어야 이 시대의 절
할머니 불교가 아니라 모든 이의 불교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재를 지내는 공간이 아니라 법회와 교육이 열리는 공간으로 탈바꿈해야 합니다. 새로 지거나 중창되어지는 절에서 동양최대의 불상이니 천불전, 만불전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어느 경전에서 부처님의 모습을 크게 만들거나 화려하게 만들면 공덕이 클 것이라 되어 있습니까? 사구게 하나라도 제대로 전하면 그 공덕이 갠지즈 강의 모래알만큼 많은 금은보화로 공양하는 공덕보다 많을 것이라 하셨건만 아직도 절을 치장하고 큰 불상이나 많은 불상을 조성하는데 정재를 쏟아 붓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이 시대의 불교는 그 미래를 어디에 근거를 두고 열어가고 있습니까? 수행자의 처소나 의복, 음식은 비를 가리거나 몸을 가리며 건강을 유지하면 족하지만 가르침을 전하는 방법은 시대에 맞게 개선되어야 합니다.
가르침을 전하고 배우며 익히는 공간은 전무하다시피하고 자꾸 불상을 모시고 조성하는 공간만 화려하고 거창하게 만든다면 불교의 미래는 우상을 숭배하는 종교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산 부처이며 미래의 부처인 신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승가의 새로운 면모를 만들어나가야 될 때입니다.
신도들이 산 부처이며 미래의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뒤집어쓰고 있는 무명이라는 껍질을 벗게 하여야 합니다. 그 작업을 우리는 수행이라고 합니다. 그 수행의 공간이 강당이며 참선방이며 모임을 위한 각종 장소입니다.
그 장소는 옛날의 마루바닥이 아니라 책상이 놓여지고 컴퓨터, 오디오 등 첨단 교육기자재가 설치되어지는 이 시대의 새로운 사찰환경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마루바닥에서 절 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명상이나 요가가 아니라 수행으로서의 참선이 이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교육되고 실수實修되어야 합니다.
불교는 우리의 전통과 함께 해왔습니다. 다도, 꽃꽂이, 전통음악 등 이 시대의 문화로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교육 또한 포교의 한 방법으로 아주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을 위한 공간이 만들어진다면 포교사나 강사는 신도들이 충분히 담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간이 없기에 하기 어려운 일상 속의 수행이나 세상을 향한 적극적인 포교, 필요한 공간만 갖추어진다면 명포교사, 명강사로 그 역할을 다할 인재들이 묻혀 있습니다. 해마다 수백 명의 포교사가 지역의 불교교육기관에 배출되지만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으며 불교문화를 통해 포교에 기여할 문화포교사들도 그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천만 불자들이 부처님의 법을 올바르게 배우고 배운 바를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시급한 것이 그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맞는 사찰의 전형을 만드는 것이 그 어떤 불사만큼 시급하고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 불교계에서 목조기와집이나 콘크리트로 만드는 가짜 목조 기와집의 형식만 포기할 수 있다면 이러한 기능을 담은 작은 규모의 포교당에서 대형 사찰까지 자유로운 형식으로 설계하여 포교의 새 시대를 열 수 있습니다. 포교의 새로운 시작을 새 그릇에 담아 열어 보기를 발원합니다.
7. 새로운 형식의 사찰, 제안 하나
도시에는 너른 마당을 가진 절을 짓기가 힘이 듭니다. 땅값이 워낙 비싸기 때문입니다. 확보 가능한 땅에다 3층 이상 집을 지어야 합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마당을 두고 좌우로 요사채를 놓는 전통사찰의 모습에 익숙한 불자들은 한 건물에 사찰의 기능이 다 들어와 있는 사찰을 받아들이기에 어려울지 모릅니다.
우선 1층에는 주차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주차장이 없이는 1가구 1차량의 시대에 맞는 포교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능한 만큼 많이 확보하는 것이 좋습니다. 주차장을 만들고 난 뒤에는 진입공간을 독특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일주문의 개념입니다. 차안과 피안을 나누면서 하나로 만드는 공간이죠. 불이의 장不二의 場이라 이름을 짓습니다.
2층은 요사채 영역입니다. 종무소와 공양간, 스님의 처소, 대중방 등이 들어갑니다. 이 층에는 다목적 공간이 들어가야 합니다. 공양도 하고 차도 마시며 문화 강좌도 할 수 있는 홀을 중심으로 다른 실들이 배치됩니다. 신도들이 함께 어우러져 만남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바라밀의 장波羅密의 場이라 칭합니다.
3층은 법당이 들어갑니다. 기존 전통사찰의 전각은 횡으로 긴 평면을 가지고 있어 공간 활용에 있어 많은 사람을 수용하기에는 불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를 종으로 긴 형태로 바꾸면 같은 면적으로도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습니다. 1평이면 약 2사람을 수용할 수 있으니 30평의 공간이 있으면 60명 정도의 법회를 할 수가 있습니다. 50평이면 100명은 함께 법회를 볼 수가 있는 것이지요. 정혜의 장定慧의 場이라 부릅니다.
여기서 바라밀의 장을 두개층으로 나눌 수 있으면 동적 공간과 정적 공간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2층은 신도들의 공간으로 쓰고 3층은 스님의 공간으로 확보를 합니다. 신도들의 공간은 공양간과 다각실 및 대중방을 넣어 다소 자유로운 공간으로 만듭니다. 스님의 공간은 스님들의 처소와 다목적 공간 및 도서실 등을 배치하여 수행의 공간으로 구성하게 됩니다.
이제 층으로 나누어진 공간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이 장치는 바로 계단실입니다. 흔히 계단은 수직으로만 생각하지만 길이 방향으로 펼치면 아주 극적인 공간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마치 산사의 경사진 각 공간을 연결하는 계단처럼 만들어내면 아주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산에 접한 대지일 때는 2층에 마당을 만들 수가 있고 도심에서는 옥상을 이용하여 외부공간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글을 통해 설명이 충분하지 않겠지만 바라밀의 장을 제대로 구성해야 한다는 것이 제가 제안하는 내용 중에서는 가장 중요합니다.
건축가라는 직업을 가진 저로서는 오랫동안 이 문제를 고민해 왔습니다. 물질이 우선인 이 시대에 불교가 다해야 할 역할은 정말 중차대하다할 것입니다. 포교란 단순히 신도를 모은다는 것을 뛰어넘어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에게 감로수를 제공해줄 수 있다는 측면으로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매머드 규모로 큰 댐같이 재형사찰을 만들어 수도를 통해 불법을 알리는 것이 지금의 포교 시스템이라면 이제는 옹달샘 같은 포교당이 곳곳에 들어서 가까이에서 목마름을 해결해 주어야 하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그 포교당의 형식이 이와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어나서 들르고, 출근하며 들르고 퇴근하면서 들를 수 있는 제대로 만든 편한 작은 절이야말로 포교의 최일선에서 젊은 불교, 이 시대의 불교, 감로수 같은 불교로 바꾸어내는데 큰 역할을 할 것입니다.
8. 불교의 미래를 위한 불자건축가의 역할
건축가는 건축주를 대신해서 집을 짓는 모든 과정을 총괄하는 역할을 합니다. 건축주는 집을 짓기 위한 대지와 공사비를 제공하고 건축가는 건축주로부터 그 권한을 위임받아서 준공할 때까지 책임을 다하게 됩니다.
건축주가 건축가를 선정하는데 심사숙고를 해야 하는 것은 나를 대신하여 건축가가 집 짓는 일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건축주가 집을 짓는 일에 밝다면 손발을 대신할 사람만 있으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건축주 본인처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건축가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절은 예사로운 집이 아닙니다. 더구나 일반적인 기와집이 아닌 제가 제안하는 내용이 담기는 새로운 형식의 절이라면 신행생활이 돈독한 불자임은 물론이요 건축에도 아주 뛰어난 능력이 있는 이라야 할 것입니다. 돈독한 신행생활을 바탕으로 스님의 입장에서, 신도의 입장에서 서로 필요한 사항을 알아야 할 것이며 절에 대한 오랜 전통을 이어서 새로운 형식으로 담아낼 수 있는 답을 찾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집은 한 번 지어지면 다시 지을 수 없기 때문에, 또한 절이란 그 집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성스러운 공간의 분위기를 잘 유지해야하기에 설계자로부터 시공자, 내부공간의 장엄까지가 일관성 있게 진행될 수 있도록 선정되어야 합니다. 그 중에 설계자의 요건은 앞에서 말한 자격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불사의 관계자로부터 절대적인 신임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스님을 비롯한 불사관계자가 제시하는 절을 짓는데 필요한 의견을 충분히 받아들여서 전체적인 구성을 단계로 나누어 보고를 해야 합니다. 전체적인 예산은 향후 증축 및 관리를 위한 부분까지 반영하여 설계를 진행하여야 합니다.
지금은 제한된 예산으로 1단계를 진행하고 추후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최종단계로 완성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한정된 예산에 맞추어 집을 짓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집을 완성하는 데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돈에 맞추어 그 만큼의 집을 짓게 되면 나중에 예산이 확보되더라도 더 돈을 들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장엄하는 부분은 얼마든지 나누어서 할 수 있지만 전체적인 뼈대는 한 번 손을 대어버리면 더 이상 고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최종적인 결과까지 설계를 진행하여 단계별로 나누어 집을 지어야 최종결과물의 완성도가 보장될 수 있습니다.
스페인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백년을 두고 아직도 짓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래 지을 수는 없겠지만 예산이 한정되어 있다면 단계를 나누어 진행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건축가는 그 모든 과정을 염두에 두고 진행을 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불자이면서 유능한 건축가가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상을 만드는 이를 불모라고 하듯이 불사를 수행하는 건축가는 절을 짓는 장인으로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에 다른 조건은 변할 수 없지만 건축가의 선정은 임의로 할 수 있기에 심사숙고하여 이 모든 능력을 구비한 사람이 선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간혹 목조가 아닌 자유로운 형식의 절이 지어지고 있지만 앞에서 제안한 내용이 반영된 절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을 뿐 아니라 있었다 하더라도 제대로 반영하여 설계할 건축가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절을 짓고자 하는 분이 있으시다면 꼭 제대로 된 건축가를 찾아서 앞에서 제안한 내용을 꼭 반영하여 진행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불교의 역할, 새로운 절을 통해 구현할 수도 있습니다. 불교의 미래의 한부분이 신도의 역할이 포함된 새로운 공간의 사찰에서 희망차게 열리게 될 것입니다.
원성 합장
몸과 마음이 좋아지는 카페 불교넷
나를 닦는 백팔배
김영동의 생명의 소리(朗誦 김신기)
모든 생명을 지극히 내 안에 모시고
살림의 장을 확산해 나가는
생명과 평화를 위해 108배를 올립니다.
절은 번뇌망상 없애고 혼침 없애는데 큰 효과
절수행만으로도 깨달음 얻을 수 있어...
불·법·승 삼보께 귀의하는 지극한 마음의 표시가
예배(절)이다. 신심은 돈독하게 하기 위해서는
물론 발원과 참회를 목적으로 지극 정성으로 일배,
일배 정성스럽게 108배, 1000배, 1080배, 3000배,
일만배를 하게 된다.
이렇게 지극한 마음으로,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하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선천진심(先天眞心)이 발현하여 지혜가
밝아지고 마음이 순일해져 부처님의 바른 법을 보게 된다.
삼장법사는“절에서 일곱 종류가 있다”고 했다.
즉 여러 가지 마음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몸도 절을 하고, 마음도 절을 하는 신심례.
사심 없는 마음으로 깨끗한 지혜의 마음으로 절을 하는
발지청정례. 내 마음이 온 우주법계에 가득 차도록
절하고 그 자체로 명상에 들어가는 편입법계례.
절하는 그 자체를 하나의 수행으로 삼아 정견에 의해
정성스럽게 절하는 정관수성례. 우주실상이
자타가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관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절하는 실상평등례. 절 그 자체로 일심이 되어 끊임없이
절을 계속하는 무진례 등이 있다.
또 게으름이나 자만심을 피우며 하는 아만례.
명예를 얻기 위해 가식으로 하는 구명례가 있다.
그 외에 나보다 못한 이를 대할 때 커다란
연민의 마음으로 대하는 대비례. 상대방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겠다는 총섭례가 있다.
절하는 공덕에 대해『보현관경』에서는
‘언제 어느 때나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예배하고
대승의 경전을 읽으며 또한 제일의(義)의 매우 깊은
공법(空法)을 한 순간 만이라도 생각한다면
실로 헤아릴 수 없는 겁의 생사죄를 멸하고
빠른 시일 내에 도(道)에 들게 된다’고 했다.
『업보차별경』은 부처님 전에 예배하면 열 가지의
뛰어난 공덕을 성취하게 된다’고 했다.
열가지 공력이란 묘색신을 얻는 것. 말을 함에
사람들이 다 믿는 것. 큰 위의를 갖추는 것.
부처님께서 호념해 주시는 것.
무리에 처해 두렵지 않는 것 온갖 사람들이
다 가까이 따르는 것. 큰 복의 보답을 갖추는 것.
명을 마친 뒤엔 왕생하는 것.
그리고 속히 삼매(열반)를 증득하는 것을 말한다.
절은 수행의 한 방편으로 신심도 증강시키고
공덕도 쌓고, 번뇌망상을 없애주고 혼침을 제거해 주고
무기에 떨어지지 않게 해 준다.
절은 깊이 오랫동안 수행하면 집착이 사라지고
일념이 되고 무념이 되고 몸과 마음이 텅 비고
경계가 고요해 지고 삼매에 들어 자성을 보게 된다.
한편으로 절 그 자체가 요가로서
몸과 정신의 수련을 도와준다.
세계적 요가학자 젠스 휴이트는
‘절은 모든 요가의 집대성’이라 극찬했다.
절은 선도의 기공법이 들어 있어 내로는 오장육부,
생리기능이 강해지고 외로는 근육,
관절, 뼈가 튼튼해진다.
수승화강이 잘 되어 각종 성인병에 효과가 탁월하고
스트레칭의 효과가 있어 목·허리 디스크,
어린이들의 성장, 발육, 관절의 불완전 결합에
아주 효과적이다.
모든 병의 근원은 마음과 전생에 의해 이루어진다.
절을 지극하게 함으로 모든 스트레스가 풀리고
각종 정신질환, 불면, 불치의 병이 참회하고
업장을 소멸하므로 다 치료될 수 있다.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모든 번뇌 망상이 제거되고
순수한 생명의 기의 흐름이 우주 만유의 기의 흐름과
합일되는 것이 도(道)인 것이다.

|
오늘도 하ㄹ를 시작합니다.....봉사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며 | |||||||||||||||||||||||||||||||||||||||||||||||||||||||||||||||||||||||||||||||||||||||||||||||||||||||||||||||||||||||||||||||||||||||||||||||||||||||||||||||||||||||||||||||||||||||||||||||||||||||||||||||||||||||||||||||||||||||||||||||||||||||||||||||||||||||||||||||||||||||||||||||||||||||||||||||||||||||||||||||||||||||||||||||||||||||||||||||||||||||||||||||||||||||||||||||||||||||||||||||||||||||||||||||||||||||||||||||||||||||||||||||||||||||||||||||||||||||||||||||||||||||||||||||||||||||||
| |||||||||||||||||||||||||||||||||||||||||||||||||||||||||||||||||||||||||||||||||||||||||||||||||||||||||||||||||||||||||||||||||||||||||||||||||||||||||||||||||||||||||||||||||||||||||||||||||||||||||||||||||||||||||||||||||||||||||||||||||||||||||||||||||||||||||||||||||||||||||||||||||||||||||||||||||||||||||||||||||||||||||||||||||||||||||||||||||||||||||||||||||||||||||||||||||||||||||||||||||||||||||||||||||||||||||||||||||||||||||||||||||||||||||||||||||||||||||||||||||||||||||||||||||||||||||
| |||||||||||||||||||||||||||||||||||||||||||||||||||||||||||||||||||||||||||||||||||||||||||||||||||||||||||||||||||||||||||||||||||||||||||||||||||||||||||||||||||||||||||||||||||||||||||||||||||||||||||||||||||||||||||||||||||||||||||||||||||||||||||||||||||||||||||||||||||||||||||||||||||||||||||||||||||||||||||||||||||||||||||||||||||||||||||||||||||||||||||||||||||||||||||||||||||||||||||||||||||||||||||||||||||||||||||||||||||||||||||||||||||||||||||||||||||||||||||||||||||||||||||||||||||||||||
|
정말 답답한 일이다. 불교계에 불교는 없고 ‘대한불교조계종’만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때가 많다.(이하 조계종은 대한불교조계종을 말한다.)
100여개가 넘는 많은 종단이 있고 불교계 대표기구인 한국불교종단협의회에 가입한 종단만도 27개임에도 한국불교는 조계종만 있는 것인 양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불교 언론을 보아도 기사의 80%이상이 조계종에 초점을 맞추어져 있다. 방송 또한 마찬가지이다.
신행단체나 시민단체도 그렇다. 태고종의 한국불교청년회나 나누우리, 진각종의 사회복지재단과 문화복지연대, 천태종의 복지재단과 새터민ㆍ다문화 사업기구 등을 제외하면 거의 다 조계종 성향을 지닌 단체이다. 딱히 조계종 소속이 아니라도 신행활동을 조계종 사찰이나 단체에서 했고 연대나 지원활동도 조계종과 관련해 진행되니 다른 종단은 안중에 없다.
이렇게 말하면 ‘그렇지 않고 중립적인 위치에 있다’고 볼멘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어쩌다 다른 종단을 조명해 줄 때는, 조계종 자체 내에서 해결이 안 되었을 경우나 마지못해 연대가 필요할 때가 대부분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조계종, 불교 아우르는 시각 부족하다
이렇게 된 큰 이유는 조계종이 1954~62년 이후 여러 조건들을 바탕으로 거대종단으로 자라났음에도 전체를 아우르는 시각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태고종을 비롯한 이웃종단들이 균형추 역할을 해 주어야 함에도 현실적으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에 근본 원인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문제와 원인과 해답과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조계종의 분규가 일어났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표현한다. “불교가 큰 일 났다”고. 왜 조계종에서 일어난 싸움인데 불교가 큰 일 났다고 하는가? 조계종과 정부가 마찰을 빚을 때도 언론 등은 “정부가 불교와 마찰을 빚고 있다”고 표현한다. 비록 조계종이 불교의 주류종단이기는 하지만, 조계종이 불교의 전부가 아닌데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어리석음(痴)의 죄일까? 속임(欺)이나 아부(綺)의 죄일까?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신행단체의 조계종 등록도 문제지만 또 하나의 초미의 관심사인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도 그렇다.
불교인선언은 조계종화쟁위원회에서 초안을 마련해 교계 및 일반 언론을 통해 발표하여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내용과 과정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법응ㆍ마성ㆍ원두스님이 했다. 주 내용은 창조(創造)와 주재(主宰)를 긍정하는 신(神.The God.Jehovah)을 인정하고 따르는 종교와 그것을 부정하는 종교인 불교가 어떻게 같은 진리관을 가졌느냐는 것이고, 따라서 삿된 견해를 가진 이들에게 바른 견해를 일러 주어야 함에도 어찌 그것을 포기하느냐는 것이었다.
‘불교인선언’ 발표 주최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
그런데 최근 성안을 발표할 시점이 오자 조계종에서 묘한 방편을 썼다. 발표의 주관은 조계종화쟁위원회로 하고 주최는 한국불교종단협의회로 한다는 것이다. 정말 ‘급하면 불교이고 어려운 것도 불교이며 평화롭고 쉬운 열매는 조계종’이라는 말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이런 결과를 가지게 되었는지 조계종과 종단협의회는 밝혀야 한다. 과정과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 주장이 옳더라도 문제이다. 하물며 주장도 문제가 있는데 과정과 절차에도 하자가 있다면 더더욱 문제라 아니할 수 없다.
종단협의회는 상임이사회의 결의와 총회의 결의를 거쳐야 하지만 그것은 행정적인 절차이고 각 종단에서 동일한 절차와 방법으로 의견발의와 수렴의 절차를 거쳐서 종단협의회에서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모으는 행정적인 절차를 거쳐야 바람직하고 유효한 결의이다. 그런데 그런 과정과 결의를 거쳤다는 소식을 들은 바가 없는데 갑자기 주최가 종단협의회로 결정됐다니 이렇게 신속한 결정력을 가진 불교계의 구조가 놀라울 따름이다.
'종교평화 실현을 위한 불교인 선언'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정과 절차가 평화롭고 밝지 않으면 그 효과 또한 평화롭고 밝은 것이 될 수 없다. 이해가 되는 주요구성원들이 모여서 과정과 절차를 평화롭고 정의롭게 진행해서 내용을 잘 마련하되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나중도 좋으며 신들과 인간의 이익과 안락을 추구하고 문장력과 호소력도 좋은 선언문’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발표주체를 화쟁위로 할 것인지, 조계종으로 할 것인지,종단협의회로 할 것인지를 제대로 된 절차 속에서 결정하고 발표해야 한다. 이웃 종교와 사회에도 마찬가지의 과정을 거쳐서 확산을 유도해야 한다.
계율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어떤 학자가 쓴 글과 한 말 가운데 “비구승단이 아닌 경우는 승가라고 할 수 없다”는 표현이 있었다. “계율의 입장에서 살펴볼 때 조계종 이외의 소속 종단 분들은 스님이라고 볼 수 없다”고도 하였다.
계율 강조하면서 범계자엔 침묵
이번에 조계종 스님 중 유명한 어떤 이는 ‘어느 곳에 누구랑 간 것은 맞지만 계율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않았다’고 언론과 인터뷰했다. 얼마나 엄청난 표현인가? 그런데 왜 아무도 말이 없나? 그를 따르는 이들도 말이 없고, 그를 반대하는 이들도 말이 없다. 학자도, 시민단체도 말이 없고 언론도 말이 없다. 무슨 이유인가? 무슨 관계가 있어서 그런가? 정상적으로는 말이 없고 문제가 생긴 자만이 다툼에 활용하고 있지 않은가?
율장의 정신을 제대로 따르자면 소소계(小小戒)는 버려도 좋다고 부처님께서 말했다는 아난의 말처럼 다른 조목은 바뀌어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근본적인 것은 아무래도 포살(uposatha.布薩)과 자자(pravarana.自恣)일 것이다. 현재 조계종은 종단적으로 포살을 하고 있지만 내가 소속한 종단은 자자는 물론 포살도 하지 않고 있어서 스스로 반성할 여지가 많음을 부끄럽게 고백하고자 한다.
한편 “율장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포살과 자자를 하지 않는 종단은 전통종단이라고 할 수 없다”는 지적을 가슴 아프게 받아들인다. 물론, 종단 따라 수지하는 계율이 다를지라도 그 나름의 포살과 자자를 해야 온전하다는 말이다.
법현(저자거리 열린선원 원장, 태고종 전 부원장, KCRP종교간 대화위원)
아 버 지
** **
아흔을 넘긴 아버지를 지게에 태워 금강산 유람을 다녀온 아들 혼자서 오르기도 힘들다는 금강산을 아버지를 모시고, 그것도 지게에 태워 관광을 다녀온 이군익(42)씨 이씨는 아버지를 지게에 모시고 금강산에 오르는 사진이 한 언론사의 독자투고란에 나면서 인터넷상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둔 평범한 가장 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이씨를 인천에서 23일 만났다. 금강산 가문, 1만2000봉 8만여 남으개 암자가 있다던 디…......." 지난 봄, 아버지 이선주(92) 씨가 독립기념관 나들이 길에 언뜻 금강산 얘기를 꺼내셨다.
한 해 전 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내신 아버지가 적적해하실까 싶어 한창 산으로 들로 모시고 다니던 때다"중학교 다닐 적에 집에 처음으로 전기가 들어왔지요 충남 서산 빈농에서 자랐습니다.
7남매의 막내인 저까지 대학 공부를 시키시 느라고 평생 허리 한 번 못 피신 아버지 십니다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예 아버지, 금강산 아니라 그 할아버지라도 모시고 가겠습니다. 다짐했지요. 6월 아버님 생신즈음 해 금강산 여행을 보내드리자고 형제들과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가 산에 오르시는 건 불가능한 일, 산길이니 휠체어도 무용지물일 터였다 어떻게 하면 아버지께서 금강산 절경을 마음껏 눈에 담으실 수 있을까, 며칠 밤을 고민했습니다.
아버지를 등에 업고 가면 될 것 같은데, 기력이 쇠진하시니 아들을 단단히 붙드시지 못할 일이걱정이고…그런데 번뜩 산에서 나무하던 생각이 나는 겁니다. " 불현듯 어릴 적 지게지고 산에 올라 나무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 지게에 아버지 의자를 만들면 되겠구나. 나무 지게는 무게 때문에 여행 내내 지기 어려울 듯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가볍고 강한 알루미늄 지게- 그 때부터 아버지를 모실 수 있는 지게를 만들기 위해 설계도를 그려 지게를 만들어 줄 기술자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모두들 '못 만든다며 손사래를 치거나 터무니없는 공임을 요구했다. 집과 직장이 있는 인천을 비롯해 서울 곳곳을 뒤져가며 한 달여 동안 임자를 찾아다녔지만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지게'를 만들어주겠다는 기술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수일을 헤맨 끝에 지인의 도움으로 간신히 등산용 지게에 특수용접을 해 금강산 유람을 위한 '아버지 전용 지게'가 탄생했다 지게 지느라 온 몸 피멍이 들고…...... 아버지께서 좋아하시니 기쁘기 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북측 안내원이 지게를 보고 정색을 하며 뭐냐고 묻는 겁니다. 아버님 모실 지게라고 했더니 연세를 묻더군요. 아흔 둘에 아들 등에 업혀 금강산 가신다고 했더니 호탕하게 웃으면서 그럽디다.
"하하하" 통과하시라요. 지게와 그 위에 앉으신 아버지 덕분에 여행 내내 이씨 일행은 단연 스타였다. 초여름 날씨에 혼자 걷기도 험한 산길을 아버지와 한 몸이 되어 오르는 이씨를 보며, 연배 높은 관광객들은 이씨 일행을 만날 때마다 다가와 어깨를 두드려주며 격려했다.
젊은이들은 차마 다가오지 못하고 이씨가 아버지를 업고 한 발 한 발 떼는 모습에 시선을 모았다 함께 금강산에 오른 큰 누나 이춘익(62)씨와 형 이관익(55)씨도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막내 동생의 효행에 힘을 보탰다. 그렇게 아버지를 업고 천선대로 귀면 암으로, 구룡폭포로… 이 씨는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들에게 짐이 될까 한사코 업히기를 거부하시던 아버지도 "저기가면 뭐가 있더냐?" 아이고, 저게 그림이여 경치여." 질문에 감탄사를 연발하시며 어느덧 금강산 구경에 흠뻑 취하셨다. 지게 무게는 줄잡아 15kg이상. 아버지가 올라앉으시면 60kg이 넘는다. 이씨는 "산행이 이어지면서 무게를 이기지 못한 어깨와 팔이 뻗뻗하게 굳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어린애 모양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고 말했다.
"금강산 온천에 갔더니 동행한 우리 형님이 깜짝 놀라시는 겁니다. 지게 지는 동안 실핏줄이 터졌는지 상반신 전체가 거의 피멍이더라고요. 형님이 울컥하시는데, 제가 웃자고 했습니다. 아흔 넘으신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금강산 구경을 마음껏 하셨는데, 얼마나 좋냐구요." 이씨 집 마당 한편의 작은 정자에서 가슴 따뜻한 금강산 유람기를 듣는 동안 말귀 어두운 그의 노부는 묵직한 감동이 담긴 아들의 얘길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사이사이 불혹을 넘긴 아들을 두고 "우리 막내가 일곱 놈 중에 제일 예뻐. 제일구엽고 아버지라면 아주… "충남 서산서 평생 농사일만 하셨던 아바지....... 내가 남한 땅 안 밟어본 디가 없고 금강산까지 구경했으니 갈 데도 없는 겨 인제. 효심 깊은 아들 자랑에 입이 말랐다. 이 모습을 이씨의 아내 이연희(39)씨도 시종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부모가 귀찮다고 지게에 저다 버리는 가 하면... 지게에 아버님을 업고 금강산 유람이 왠 말............ 이런 효자가 어디에 몇이나 있을까? 다시금 부모님께 못다한 불효을 빌면서.............. 가슴 찡한 마음으로.......이 글을....
아버지우리 아버지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우동 한 그릇" - 구리 료헤이 / 우동 한 그릇(一杯のかけそば) - 해마다 섣달 그믐날(12월 31일)이 되면 일본의 우동집들은 일년중 가장 바쁩니다. 삿포로에 있는 우동집 <북해정>도 이 날은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이 날은 일 년중 마지막 날이라서 그런지 밤이 깊어지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빨라졌습니다. 그러더니 10시가 지나자 손님도 뜸해졌습니다. 무뚝뚝한 성격의 우동집 주인 아저씨는 입을 꾹 다문채 주방의 그릇을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는 달리 상냥해서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은 주인여자는, 임시로 고용한 여종업원에게 특별 보너스와 국수가 담긴 상자를 선물로 주어 보내는 중이었습니다.
"네, 아주머니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요오코 양이 돌아간 뒤 주인 여자는 한껏 기지개를 펴면서, "이제 두 시간도 안되어 새해가 시작되겠구나. 정말 바쁜 한 해였어." 하고 혼잣말을 하며 밖에 세워둔 간판을 거두기 위해 문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 때였습니다.출입문이 드르륵, 하고 열리더니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섰습니다. 여섯 살과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사내애들은 새로 산 듯한 옷을 입고 있었고, 여자는 낡고 오래 된 체크 무늬 반코트를 입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주인 여자는 늘 그런 것처럼 반갑게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렇지만 여자는 선뜻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 머뭇 말했습니다. "저…… 우동…… 일인분만 시켜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은, 다 늦은 저녁에 우동 한 그릇 때문에 주인 내외를 귀찮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해서 조심스러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주인 아주머니는 얼굴을 찡그리기는커녕 환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네. 자, 이쪽으로." 난로 바로 옆의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주인 여자는 주방 안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여기, 우동 1인분이요!" 갑작스런 주문을 받은 주인 아저씨는 그릇을 정리하다 말고 놀라서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다가 곧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네! 우동 1인분!" 그는 아내 모르게 1인분의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서 삶았습니다.
짐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 여기 우동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가득 담긴 우동을 식탁 가운데 두고, 이마를 맞대며 오순도순 먹고 있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계산대 있는 곳까지 들려왔습니다. "국물이 따뜻하고 맛있네요." 형이 국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습니다. "엄마도 잡수세요."
동생은 젓가락으로 국수를 한 가닥 집어서 어머니의 입으로 가져갔습니다. 비록 한 그릇의 우동이지만 세 식구는 맛있게 나누어 먹었습니다. 이윽고 다 먹고 난 뒤 150엔(한화 약 1,500원)의 값을 지불하며,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공손히 머리를 숙이고 나가는 세 사람에게 주인내외는 목청을 돋워 인사를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후, 새해를 맞이했던 <북해정>은 변함없이 바쁜 날들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다시 12월 31일을 맞이했습니다. 지난해 이상으로 몹시 바쁜 하루를 보내고 10시가 지나 가게문을 닫으려고 하는데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두 명의 사내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습니다. 주인 여자는 그 여자가 입고 있는 체크 무늬의 반코트를 본 순간, 일년 전 섣달 그믐날 문 닫기 직전에 와서 우동 한 그릇을 먹고 갔던 그 손님들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여자는 그 날처럼 조심스럽고 예의바르게 말했습니다. "저…… 우동…… 1인분입니다만…… 괜찮을까요?" 주인 여자는 작년과 같이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여기 우동 1인분이요!" 주방 안에서, 역시 세 사람을 알아 본 주인 아저씨는 밖을 향하여 크게 외쳤습니다. "네엣! 우동 1인분!" 그러고 나서 막 꺼버린 가스레인지에 불을 붙였습니다. 물을 끓이고 있는데 주인 여자가 주방으로 들어와 남편에게 속삭였습니다.
"저 여보, 그냥 공짜로 3인분의 우동을 만들어 줍시다." 그 말에 남편이 고개를 저었습니다. "안돼요. 그렇게 하면 도리어 부담스러워서 다신 우리 집에 오지 못할 거요." 그러면서 남편은 지난해처럼 둥근 우동 하나 반을 넣어 삶았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아내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여보, 매일 무뚝뚝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인정도 없으려니 했는데 이렇게 좋은 면이 있었구려." 남편은 들은 척도 않고 입을 다문 채 삶아진 우동을 그릇에 담아 세 사람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식탁 위에 놓인 한 그릇의 우동을 둘러싸고 도란도란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 소리가 주방 안의 두 부부에게 들려왔습니다. "아…… 맛있어요……"
동생이 우동 가락을 우물거리고 씹으며 말했습니다. "올해에도 이 가게의 우동을 먹게 되네요." 동생의 먹는 모습을 대견하게 바라보던 형이 말했습니다. "내년에도 먹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머니는 순식간에 비워진 우동 그릇과 대견스러운 두 아들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이번에도, 우동값을 내고 나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을 향해 주인 내외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 말은, 그날 내내 되풀이한 인사였지만 주인 내외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도 크고 따뜻함을 담고 있었습니다.
다음 해의 섣달 그믐날 밤은 어느 해보다 더욱 장사가 잘 되는 중에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북해정>의 주인 내외는 누가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밤 9시 반이 지날 무렵부터 안절부절 못하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0시가 지나자 종업원을 귀가시킨 주인 아저씨는, 벽에 붙어 있던 메뉴를 차례차례 뒤집었습니다.
금년 여름부터 값을 올려 <우동 200엔>이라고 씌어져 있던 메뉴가 150엔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2번 식탁 위에는 이미 30분 전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이 놓여졌습니다. 이윽고 10시 반이 되자, 손님의 발길이 끊어지는 것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어머니와 두 아들, 그 세사람이 들어왔습니다. 형은 중학생 교복, 동생은 작년에 형이 입고 있던 점퍼를 헐렁하게 입고 있었습니다. 두 형제 다 몰라볼 정도로 성장해 있었는데, 아이들의 엄마는 여전히 색이 바랜 체크 무늬 반코트 차림 그대로 였습니다.
"어서 오세요!" 역시 웃는 얼굴로 맞이하는 주인 여자에게 어머니는 조심스럽고 예의바르게 물었습니다. "저…… 우동…… 2인분인데도…… 괜찮겠죠?" "넷!…… 어서 어서 자, 이쪽으로……" 세 사람을 2번 식탁으로 안내하면서, 주인 여자는 거기 있던 <예약석>이란 팻말을 슬그머니 감추고 주방을 향해서 소리쳤습니다.
"여기 우동 2인분이요!" 그 말을 받아 주방 안에서 이미 국물을 끓이며 기다리고 있던 주인 아저씨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네! 우동 2인분, 금방 나갑니다!". 그는 끓는 국물에 이번에는 우동 세 덩어리를 던져 넣었습니다. 두 그릇의 우동을 함께 먹는 세 모자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어느 해보다도 활기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들에게 방해될까봐 조용히 주방 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주인 내외는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서로에게 미소를 지으며 흐뭇한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평소에는 무뚝뚝하던 주인 아저씨도 이 순간만큼은 기분좋게 웃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의 대화는 계속되었습니다. "시로도야, 그리고 쥰아 오늘은 너희 들에게 엄마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구나." "……고맙다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형인 시로도가 물었습니다. 어머니의 말이 이어졌습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돌아가신 아빠가 일으킨 사고로 여덟명이나 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잖니?. 일부는 보험금으로 보상해 줄 수 있었지만 보상비가 모자라 그만큼 빚을 얻어 지불하고 매월 그 빚을 나누어 갚아왔단다." "네…… 알고 있어요." 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습니다. 주인 내외는 주방 안에서 꼼짝않고 선 채로 계속해서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빚은 내년 3월이 되어야 다 갚을 수 있는데, 실은 오늘 전부 갚았단다". "네? 정말이에요 엄마?" 두 형제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그래, 그 동안 시로도는 아침 저녁으로 신문 배달을 열심히 해 주었고, 쥰이는 장보기와 저녁 준비를 매일 해 준 덕분에 엄마는 안심하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할 수 있었단다. 그것으로 나머지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던 거야." "엄마, 형! 잘됐어요! 하지만 앞으로도 저녁 식사 준비는 제가 계속할 거예요." "저도 신문 배달을 계속할래요! 쥰아, 우리 힘을 내자!" 형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고맙다. 정말 고마워!" 어머니는 아이들의 손을 움켜쥐며 눈물을 글썽거렸습니다. 그걸 보며 형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엄마, 지금 비로소 얘긴데요, 쥰이하고 제가 엄마한테 숨긴 게 있어요. 그것은요…… 지난 11월에, 학교에서 쥰이의 수업을 참관하러 오라는 편지가 왔었어요. 그리고 쥰이 쓴 작문이 북해도의 대표로 뽑혀 전국 작문 대회에, 출품하게 되어서 수업 참관일에 그 작문을 쥰이 읽기로 했다고요, 하지만 선생님이 주신 편지를 엄마께 보여드리면…무리해서 회사를 쉬고 학교에 가실 것 같아서 쥰이 일부러 엄마한테 말을 하지 않고 있었대요. 그 사실을 쥰의 친구들한테서 듣고…제가 대신 참관일에 학교에 가게 됐어요". 어머니는 처음 듣는 이야기에 조금 놀랐지만 금방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서?……" "선생님께서 작문 시간에, 나는 장래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쓰게 했는데 쥰은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서 냈대요. 지금 그 작문을 읽어 드리려고 해요. 사실 전 처음에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만 듣고는, 여기 '북해정'에서의 일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에 쥰 녀석, 무슨 그런 부끄러운 얘기를 썼지?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쥰이의 작문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자, 지금부터 읽어드릴게요." 시로도는 그러면서 교복 상의 주머니에 접어서 넣어 두었던 종이 두 장을 꺼내어 펼쳤습니다. 쥰의 작문을 읽어 내려가는 시로도의 목소리는 작지만 낭랑하게 우동 가게에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 아빠는 운전을 하다 교통 사고를 내서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그런데 피해자들 모두에게 보상을 해주기 위해선 보험금으로도 부족해서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그 때부터 우리 가족의 고생은 시작되었다. 엄마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셨고, 형은 날마다 조간과 석간 신문을 배달해서 돈을 벌었다. 아직 어린 나는 돈을 벌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엄마와 형은 나에게는 아무 일도 하지 못하게 했다. 대신 나는 저녁이면 시장을 봐서 밥을 해놓는 일을 했다. 내가 해 놓은 밥을 엄마와 형이 맛있게 먹는 걸 볼 때 나는 행복하다.
나도 우리 식구를 위해 작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이다. 빚을 하루라도 빨리 갚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절약하는 생활을 했다. 엄마의 겨울 코트는 아주 오래 되어 낡고 해어졌지만 해마다 꿰매어 입으셔야 했다. 그러던 중에 재작년 12월 31일 밤에 우리 가족은 우연히 한 우동 가게를 지나치게 되었다. 안에서 흘러나오는 우동 국물의 냄새가 그렇게 맛있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우리 형제의 마음을 알았는지 엄마는 우리에게 우동을 사 주시겠다고 했다. 우리는 그 말이 반갑고 고마웠지만 우리 형편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선뜻 가게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형과 나는 망설이다가 딱 한 그릇만 시켜서 셋이서 같이 먹자고 엄마한테 말했다. 한 그릇이라도 우리에게 우동을 먹이고 싶었던 엄마와, 우동 국물 냄새에 마음이 끌린 우리 형제는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문 닫을 시간에 들어와 우동 한 그릇밖에 시키지 않는 우리가 귀찮을 텐데도 주인 내외는 친절하고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주인 내외는 양도 많고 따뜻한 우동을 우리에게 내놓았다. 그러고나서는 문을 나서는 우리에게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하며 큰소리로 말해 주었다. 그 목소리는 마치 우리에게, '지지 말아라! 힘내! 살아갈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가족은 그 후 일 년이 지난 작년 섣달 그믐날에도 그 우동 가게를 찾아갔다. 여전히 우리는 형편이 나아지지 않아 우동은 한 그릇밖에 시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 날도 마찬가지로 주인 내외는 친절하고 따뜻하게 우리에게 우동을 대접해 주었다.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 하는 인사도 여전했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중에 내가 어른이 되면 힘들어 보이는 손님에게 '힘내세요! 행복하세요!' 하는 말 대신 그 마음을 진심으로 담고 있는 ' 고맙습니다!' 하고 말해줄 수 있는 일본 최고의 우동 가게 주인이 되겠다고." 주방안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주인내외의 모습이 어느새 보이지 않았습니다. 형이 동생의 작문을 읽어 내려가는 사이 두 사람은 그대로 주저앉아 한 장의 수건을 서로 잡아당기며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고 있었습니다. 시로도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쥰이 사람들 앞에서 이 작문 읽기를 마치자 선생님이 저한테, 어머니를 대신해서 인사를 해 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너는 어떻게 했니?" 어머니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형에게 물었습니다. "갑자기 요청 받은 일이라서 처음에는 말이 안 나왔어요…… 그렇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이렇게 말했어요. 여러분, 항상 쥰과 사이좋게 지내줘서 고맙습니다…… 작문에도 씌어 있지만 동생은 매일 저녁 우리 집의 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방과 후 여러분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일찍 집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도 도중에 돌아와야 하니까 동생은 여러분들한테 몹시 미안해 했습니다. 솔직히 저는 동생이 <우동 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작문을 읽기 시작했을 때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을 펴고 커다란 목소리로 읽고 있는 동생을 보는 사이에, 한 그릇의 우동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그 마음이 더 부끄러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 한 그릇의 우동을 시켜주신 어머니의 용기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형제는 앞으로도 힘을 합쳐 어머니를 보살펴 드릴 것입니다. 여러분, 앞으로도 쥰과 사이좋게 지내 주세요." 시로도의 말이 끝나자 어머니는 두 형제를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세 사람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습니다. 다정하게 서로 손을 잡기도 하고, 무슨 이야기인가 나누며 웃다가 서로의 어깨를 다독여 주기도 하고, 작년까지와는 아주 달라진 즐거운 그믐밤의 광경이었습니다. 올해에도, 우동을 맛있게 먹고 나서 우동 값을 내며 "잘 먹었습니다."라고 머리를 숙이며 나가는 세 사람에게 주인 내외는 일 년을 마무리하는 커다란 목소리로, "고맙습니다! 새해엔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큰소리로 인사하며 배웅했습니다.
다시 일 년이 지나 섣달 그믐날이 되자 <북해정>의 주인 내외는 밤 9시가 지나고부터 <예약석>이란 팻말을 2번 식탁에 올려놓고 세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다음해에도, 그 다음해에도 2번 식탁을 비워 놓고 기다렸지만 세 사람은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북해정>은 장사가 잘 되어, 가게 내부 장식도 멋지게 꾸미고 식탁과 의자도 새로 바꿨지만 2번 식탁만은 그대로 남겨 두었습니다. 단정하고 깨끗하게 놓여져 있는 식탁들 가운데에서 단 하나 낡은 식탁이 중앙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어째서 이런 게 여기에 있지?" "낡은 이 식탁은 이 가게에 어울리지 않아." 이렇게 의아스러워하는 손님들에게 주인 내외는 '우동 한 그릇'의 사연을 이야기해 준 뒤 이렇게 덧붙이는 걸 잊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식탁을 보면서 그 때 그 사람들에게 받았던 감동을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식탁은 간혹 손님들에 대한 배려와 따뜻함을 잃어가는 우리 내외에게 자극제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느 날인가 그 세 사람의 손님이 와 주었을 때, 이 식탁으로 맞이하고 싶습니다." 그 이야기는 '행복의 식탁'으로서, 손님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습니다. 일부러 멀리에서 찾아와 우동을 먹고 가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그 식탁이 비기를 기다렸다가 우동을 먹고 가는 사람들도 있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가족들이 찾아와 새롭게 결심을 다지고 돌아가기도 하는 등 그 식탁은 상당한 인기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후 몇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섣달 그믐날이 되자 <북해정>에는, 이웃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이웃 사람들이 가게문을 닫고 모두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5, 6년 전부터 <북해정>에 모여서 섣달 그믐의 풍습인 <해 넘기기 우동>을 먹은 후 제야의 종소리를 함께 들으면서, 새해를 맞이하는 게 하나의 행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밤도 9시 반이 지나자 생선 가게를 하는 부부가 생선회를 접시에 가득 담아서 들고 오는 것을 시작으로, 주위에서 가게를 하는 30여 명이 술이나 안주를 손에 들고 차례차례 모여들었습니다. 가게 안은 순식간에 왁자지껄해졌습니다. 그들 중 몇 명의 사람들이 2번 식탁을 보며 말했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2번 식탁은 비워 두었구먼!". "이 삭탁의 주인공들이 정말 궁금하다고". 2번 식탁의 유래를 그들고 알고 있었습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어쩌면 금년에도 빈 채로 , 신년을 맞이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인 내외는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은 비워 둔 채, 다른 식탁에만 사람들을 앉게 했습니다. 2번 식탁에도 앉으면 좀 더 여유가 있으련만 비좁게 다른 자리에, 모여 앉아 있으련만 비좁게 다른 자리에 모여 앉아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가게 안은 우동을 먹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각자 가져온 요리에 손을 뻗치는 사람, 주방 안에 들어가 음식 만드는 걸 돕고 있는 사람, 냉장고를 열어 뭔가를 꺼내고 있는 사람 등등으로 떠들썩했습니다. 이야기의 내용도 다양했습니다. 바겐세일 이야기 금년 해수욕장에서 겪은 일, 돈 안내고 달아난 손님 이야기 며칠 전에 손자가 태어났다는 할머니의 이야기등으로 가게는 왁자지껄했습니다. 그런데 10시 30분쯤 되었을 때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입구로 쏠리며 조용해졌습니다.
코트를 손에 든 신사복 차림의 청년 두 명이 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자, 다시 자신들이 나누던 이야기를 마저 하기 지작했습니다. 가게 안은 다시 시끄러워졌습니다. "미안해서 어쩌죠? 이렇게 가게가 꽉 차서…… 더 손님을 받기가……". 주인 여자는 난처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기모노를 입은 부인이 고개를 숙인 채, 앞으로 나오며 두 청년 사이에 섰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쏠렸고 부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저…… 우동…… 3인분입니다만…… 괜찮겠죠?". 그 말을 들은 주인 여자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변했습니다. 그 순간 10여 년의 세월을 순식간에 밀어젖히고 오래 전 그 날의 젊은 엄마와 어린 두 아들의 모습이 눈앞의 세 사람과 겹쳐졌습니다. 여주인은 주방 안에서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고 있는 남편에게 방금 들어온 세 사람을 가리키면서 말을 더듬었습니다.
"저…… 저…… 여보!……". 반가움과 놀라움으로 허둥대는 여주인에게 청년 중 한 명이 말했습니다. "우리는 14년 전 섣달 그믐날 밤
셋이서 1인분의 우동을 주문했던 사람들입니다. 그 때의 한 그릇의 우동에 용기를 얻어 세 사람이 손을 맞잡고 열심히 살아갈 수 가 있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이곳을 떠나 외가가 있는 시가현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저는 금년에 의사 국가 시험에 합격하여 대학병원의 소아과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종합병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 병원에 인사도 하고 아버님 묘에도 들를 겸해서 왔습니다. 그리고 우동집 주인은 되지 않았습니다만 은행원이 된 동생과 상의해서 지금까지 저희 가족의 인생 중에서 가장 사치스러운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섣달 그믐날 어머니를 모시고 셋이서 이곳 <북해정>을 다시 찾아와 3인분의 우동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듣고 있던 주인 내외의 눈에서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넘쳐흘렀습니다.
입구에서 가까운 거리의 식탁에 앉아 있던 야채 가게 주인이
처음부터 죽 지켜보고 있다가,
급한 마음에 우동가락을 꿀꺽 하고 삼키며 일어나
모두에게 들릴 정도로 외쳤습니다.
10여 년간 이 날을 위해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기다린, 섣달 그믐날 10시 예약석이잖아요, 어서 안내해요 안내를!" 야채 가게 주인의 말에 비로소 정신을 차린 여주인이
그제야 세 사람에게 가게 안의 2번 식탁을 가리켰습니다.
"잘 오셨어요.… 자, 어서요.…… 여보! 2번 식탁에 우동 3인분이요!".
주방 안에서 얼굴을 눈물로 적시고 있던 주인 아저씨도
정신을 차리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네엣! 우동 3인분!"
그 광경을 지켜보며 가게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환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습니다.
가게 밖에는 조금 전까지 흩날리던 눈발도 그치고,
<북해정>이라고 쓰인 천 간판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희들 각 가정에서 기도를 합니다.
어떠한 절차나 방식이 없이 무작정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새벽에 일어나 참선을 하고 금강경을 읽고 또 사경을 하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무절제한 기도가 오히려 상을 높이고 아상에 사로 잡혀서 결국 정신분열환자 가되고 그리고 남들하고도 화합이 안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변하는 것을 우리 불교 에서는 많이 보았습니다.
참선을 하다보면 50마가 있습니다. 참선하는 과정에 겪게되는 여러가지 경우를 마장으로 분류 한것인데 만약 어떤보살님이 아침에 기도하다 관세음보살을 보고 또 천당에 가서 놀다 왔다면 마치 자신이 관세음보살인것 처럼 상이 높아져서 엉뚱한 사람으로 변합니다. 이 정도되면 어지간한 부처님 말씀이나 스님들 말에는 귀에도 안들어오지요.
그리고 또 비심(悲心)이라고 있습니다. 이에 걸리면 상추를 뜯다가도 상추에서 하얀물이 나오면 슬퍼서 웁니다. 또 낙옆이 떨어져도 슬퍼서 울지요. 이것도 무서운 마장입니다. 다른 예는 희심( 憙心)에 걸리면 항상웃고 정신나간 사람마냥 희죽거리지요. 이것도 무서운 마장입니다. 심지어는 참선하는 와중에 부처님을 친견해도 이 또한 마장인 것입니다. 결국 이런저런 참선을 하고 그 경계를 넘나들지만 중요한 것은 처음 시작하기 전하고 공부한 이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이 그대로 있다는 것입니다.
성철스님이 법분했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는 소리는 중국의 청운거사가 한 말인데 처음 공부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물이 물이 더랍니다. 하지만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보니까 산이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니더랍니다 그러나 막상 공부를 다하고 나서 보니까 본시 처음보았던 산은 산이고 물이 물이더라는 것이지요.
본래 그대로 인데 망상에 잡혀서 산이 산으로 안보이고 물이 물로 안보이는 이치처럼 우리가 기도를 할때 조심해야하며 정법기도를 해야 합니다. 아예 엉터리 기도는 안하는게 좋구요. 잘못하다가 귀신들어서 내림굿하는 보살들이 많지요. 산 (山) 기도 한다고 설치고 다니다가 신 받고 정신분열환자 되어 가정에 파탄이 나는 경우를 여러분들도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법을 스님들은 일러주지 않기에 신도들은 스님들 하는 방식대로 하게 됩니다. 물론 처음으로 아침 일찍일어나 참선하고 앉아 있으면 마치 수행자나 된 것처럼 또 무엇을 쉽게 얻을 것 같은 자신감에 차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 변하는 이치처럼 기도원력도 변하고 삿된 길로 가는 것입니다.
출가한 승려들이야 지들 정신이 나간든 말던 관계없지만 가정을 가진 정상적인 신도분들은 이런길로 가면 개인은 만족할지라도 가정이 파탄이일고 또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는 등의 많은 문제점들이 양산이 됩니다. 쉽게 말해서 마치 신선이된 것 같이 스님이 된 것 같이 망상에 잡히고 대리만족한다는 것이지요.
해서 소승은 여러분들에게 가장쉽게 할 수 있는 기도법을 일러 줄까 합니다. 우리는 불제자 입니다. 해서 반야심경정도는암송해야하고 암송을 못하더라도 자주 읽어야 합니다. 하지만 신도들이 공부도 안된자들이 금강경을 읽고 있니다. 그런경문은 스님들이나 읽고 그 가르침을 쉽게 신도분들에게 이치를 설명하면 되지 신도들이 여시아문하고 앉아있으면서 읽어 봐야 망상에 잡히고 맙니다. 중들이 이치를 모르기에 그냥 읽어라 읽다보면 뜻을 알게 된다 고합니다만. 소승은 절대 안닙니다. 우선 기본 기도법을 알고 심력을 근력을 키운 다음에 차차해도 늦지 않으며 처음부터 초심자가 할기도는아니다는 것이지요..
흔히들 승려들이 자신도 모르면서 그냥하는 말이 하다보면 알게 된다고 무책임한 말을 지껄입니다만 우리 신도분들은 이를 잘 가려야 합니다. 아니면 뜻도 모르면서 관세음보살 석가모니불 등 정근을 강요하는데 이것도 아닙니다.
그냥 우리가 대화 하듯이 하면됩니다. 교회에서 많이 사용하지요 그냥 부처님이 옆에 있다고 생각하고 예를들면, 아침 공양하기전에 합장하고 편하게 " 부처님이 한알의 곡식에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스며 있습니다. 이 음식으로 배고픔을 달래며 오늘 하루도 남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하면됩니다. 그냥 쉽게 하세여 대화 하듯이 어려운 단어 쓴다고 기도가 되는것 아닙니다. 그리고 기도는 본인이 예정한 그 시간에 그자리 에 있는 것입니다.
아침에 3시에 기도 하련다고 약속을 했으면 어떠한 유혹이 있더라도 그 시간을 지키도록 노력하는것이 기도입니다. 이런다고 빠지고 저 핑게로 빠지고 하면 기도가 안됩니다. 오늘 못하면 내일하면 되지 하는 생각은 절대 안됩니다.
해서 본인에게 맞는 시간을 정하고 무리가 안되게끔 조금씩 조금씩 하다보면 기도 시간도 늘어나고 재미도 생깁니다. 그리고 완전히 기도가 몸에 맞을때 화두를 들고 수행하는것이지요. 그것은 전문 수행자들이 하는것이지 재가 신도들이 하는것이 아닙니다. 스승이 없이 하다보면 마장에 빠지고 그경계를벗어나지못하고 맙니다. 반드시 기도를 할때는 전문 스승이 있어야만 기도를 잡아주고 길을 알려줍니다..
소승이 권장하는 기도법은 이렇게 합니다. 1.-먼저 아침에 일어나면 우선 정신을 차리고 적당한 잔에 맑은 물을 받아서 일정한 장소 (주부는 주방한쪽.남자는 거실이나 서재등)에 청결히한 다음에 물을 부처님에게 올립니다. (사찰의 아침 예불시와 같음)
2,- 그리고 향을 피웁니다
3.-그 다음에 정신을 차리고 호흡을 고릅니다 이를 입정이라 합니다.
4.-그리고 천수경의 신묘정구 대다라니를 3회 정도 암송이나 독송을 합니다.책 읽듯이.. .-그리고 참회진언을 10회 반복합니다 (참회진언-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10회)
5.-그리고 개인발원문을 작성하여 축원을 해줍니다. ( 편지지에 본인이 알고있는 각 가정의 애로사항을 파악하여 그 사람들에게 소원이 이루어지고 행복 하게 해다라고 쓴 다음 읽는것입니다.)
6. 그리고 108배를하거나 그냥 오늘할일에 대해서 간단하게 정리하는시간을 갖습니다. (주의할 점은 아직 참선 한다고 명상에 들어가지마십시요 마장에 빠집니다.)
이상과 같이하고 자리를 정리하고 마칩니다. 그러면 하루가 훨씬 편안하고 행복해집니다. 그냥 쉽게 재미로 하세요 많은 것 하려고 하지말고 욕심도 마장입니다.
저녁기도는 아침기도의 반대로 하면 됩니다.
저녁은 우선 잠자기 전에 아침에 부처님에게 올린 청정수를 화분이나 일정한 곳에 비우고 다시 향을 피운 다음에 이번에는 반야심경을 1회독경합니다. 그리고 간단히 오늘을 정리한 다음에 마치면 됩니다. 이런 식으로 기도를 하면 쉽고 또 마장에 빠지지 않으며 우선 아침저녁으로 내자신의 정신이 맑아지고 하루를 계획하에 시작하고 마무리를 지을수가 있습니다.
기도 하는 방법
그리고 참회진언을 여러번 독송 한다.
참회진언 "옴 살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저녁기도는 아침과 같은 순서로 하되 신묘장구 대다라니를 하지 말고 반야심경을 1번 독송한다.
십악참회( 불자로써 열 가지 지켜야 할 계율) 않을 뿐만 아니라, 이 사회에 많은 해악을 끼치게 됩니다.
나모라 다나다라 야야 나막알약 바로기제 새바라야 모지 사다바야 마하 사다바야 마하가로 니가야 옴 살바 바예수 다라나 가라야 다사명 나막 가리다바 이맘알야 바로기제 새바라 다바 니라칸타 나막 하리나야 마발타 이사미 살발타 사다남 수반 아예염 살바 보다남 바바마라 미수다감 다냐타 옴 아로계 아로가 마지로가 지가란제 혜혜하례 마하모지 사다바 사마라 사마라 하리나야 구로구로 갈마 사다야 사다야 도로도로 미연제 마하 미연제 다라다라 다린나례 새바라 자라자라 마라 미마라 아마라 몰제 예혜혜 로계 새바라 라아 미사미 나사야 나베 사미사미 나사야 모하자라 미사미 나사야 호로호로 마라호로 하례바나마 나바 사라사라 시리시리 소로소로 못쟈못쟈 모다야 모다야 매다리야 니라칸타 가마사 날사남 바라 하리나야 마낙 사바하 싯다야 사바하 마하 싯다야 사바하 싯다유예 새바라야 사바하 니라칸타야 사바하 바라하 목카싱하 목카야 사바하 바나마 하따야 사바하 자가라 욕다야 사바하 상카섭나녜 모다나야 사바하 마하라 구타 다라야 사바하 바마사간타 니사시체다 가릿나 이나야 사바하 먀가라 잘마 이바 사나야 사바하
그냥편하게 하는것이 중요합니다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기도입니다."
오후 5시경 노스님께서 올 7월에 미국에서 돌아와 살고 있는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전제로 사귄 것이 아니었다. 자신은 구속 받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냥 서로 사랑하고 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는 결혼을 요구 했다. 그래서 반대를 계속했는데 그 남자가 ‘그러면 우리 결혼식은 올리지 않더라도 혼인 신고라도 하고 계속 살면 좋겠다. ’라는 간절한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그 남자를 무척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아이를 가지자고 이야기 했고, 계속 거절하다가 결국 임신을 하게 되어 아이를 놓게 되었다. 결혼 전 혼인 신고도 하고, 임신을 하자 시가로부터 구박이 아주 심했다. 큰 아이(딸)가 자라자 아이 공부를 위해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다. 새로운 여자 만나 아이까지 놓고 살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먼저 한국으로 들어갔다. 그 후 몇 년 동안 미국에 아이들을 키우고 살면서 많은 고생을 하였는데, 이때 미국인을 만나 사랑을 나누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그 미국남자를 너무 무서워하고 싫어하여 결국 금년 8월 한국으로 돌아와 남편과 합가하여 살게 되었다. 사내아이를 또 낳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이에 강력히 반해하여 남편과 각방을 쓴지가 오래 되었다. 여기서 그녀는 심한 정신적 갈등을 겪고 우울증까지 걸리게 되었다. 아이를 놓기 싫었는데 또 아이를 가져야 한다니 정말 싫었다. 이제 자신도 남편에 의지 하지 않고 스스로 돈을 벌어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이 전공한 ‘컴퓨터 그래픽’으로도 돈을 벌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녀는 심한 정신적 갈등으로 우울증에 빠져 정신과 치료를 받기까지 하였고 이렇게 먼 곳까지 상담을 받으러 온 것이다. 남편과 시댁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자기 기분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일 뿐이다. 결혼을 하고 살면 권리도 있지만 의무도 있다. 위 불자는 자신의 권리만 찾고 자기 기분만을 찾는 것이 옳고 현명하다는 생각에 빠져있다. 그런데 불자님은 항상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자유롭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자유롭고 싶으면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면 됩니다. 만일 결혼해서 살고 남편 돈으로 살아가려면 남편의 생각도 이해하고 알아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남편 돈으로 살면서 자신의 생각만 하고 자유롭게 되기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극단적인 이기주의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마음을 가진 죄 참회합니다. 어리석은 행동을 한 점 참회합니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남편에게 참회합니다. 아이들에게 참회합니다. 시어머님께 참회합니다. 그 미국인 남자에게도 참회합니다. 부모님에게도 참회합니다.’이렇게 108배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참회하시기 바랍니다.” 건강한불교, 신나는불교, 참회하고, 반성하고, 사랑하는불교 꼭 ! 이루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좋아지는 카페 불교넷 (클릭하세요)
▶ 예절 ★. 법우(法友)란 무슨 뜻입니까? ▣ 사찰의 문 문밖을 속계, 문안을 진계라 부름 * 부처님의 세계를 지키는 사천왕을 모신 문 : 일명 봉황문 * 서쪽에 광목천왕-여의주,새끼줄 가짐 * 북쪽에 다문천왕-보탑을 가짐 * 모든 번뇌와 망상을 벗어나 깨달음을 얻는 문 * 중생과 부처, 선과 악, 유와 무, 공과 색 상대적 개념에 의한 모든 *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불로 봉안한 불전(금당) *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을 주불로 봉안한 불전(대광명전)-화엄종 주불 석가모니불(화신)/ 비로자나불(법신)/ 노사나불(응신) * 아미타부처님을 봉안한 주불전-주불전이 아닐 경우 미타전 * 약사여래부처님을 모신 불전-만월전으로도 부름 * 미륵부처님이나 미륵보살을 모신 불전-용화전으로도 부름 *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불전-부속 전각일 때는 관음전이라 부름 *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염라대왕 등 10왕을 함께 모시면 시왕전 * 부처님의 제자 16나한을 모신 전각-500나한을 모신 나한전 * 부처님의 일대기를 8장면으로 도해한 그림이나 조각을 모신 전각 * 석가모니 부처님의 영산회상도를 모신 전각-영취산 설법모임 그림 * 치성전여래를 모신 전각 또는 북두칠성을 부처님화한 전각 * 산신(주로 호랑이)을 모신 전각-삼성각은 산신,칠성,독성을 모심 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密多時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관자재보살(우주전체와 한몸이며.. 시공을 넘어서 자유자재 하시며..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도 중생의 고통을 관찰하시고 중생에게 안락과 행복을 주시는 분)이 반야바라밀다(일체 모든 법(法)이 공(空)임을 아는 참다운 지혜를 얻어 열반에 이르러 해탈의 경지에 이름)를 깊게 행할 때에...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오온((① ‘색(色)’: 물질요소로서의 육체 ② ‘수(受)’: 어떤 대상에 대해 느끼는 것인데 고통,행복, 슬픔,기쁨등의 느낌의 감수(感受)작용 ③상(想)’: 심상(心像)을 취하고 판단하여 개념,관념이 형성된 것을 상(想)이라 하는데 예를 들면 사람이 어떤 사물을 보고 이쁘다/추하다 좋다/나쁘다를 생각으로 분별하는 것. ④행(行): 어떤사물을 보고 저것을 갖고 싶다라거나, 지나가는 여자를 보면서 음심이 생기는 것이나, 저 사람을 도와 주고 싶다거나 죽이고 싶다하는 생각 자체가 마음속으로 하는 행동이며 이것이 선업(善業),악업(惡業)을 쌓는 원인 이 된다. 즉 실제적으로 행동하는것 뿐만 아니라 마음만으로도 업장이 쌓여 형성 이 된다. 이것을 행(行)이라 함. ⑤식(識):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하여 아는것으로 눈으로 인식하는 것은 안식(眼識)이고 귀로 인식해 들이는 것은 이식(耳識)이며 코로 인식하는 것이 비식(鼻識)등인데.즉 육근(眼耳鼻舌身意)에 의지 한 육식의 작용을 의미)) 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시고 시바세계의 온갖 고통과 재앙을 구제하였다. 舍利子 사리자 사리불(Sariputra: 부처님 10대 제자중에 지혜 제일이며, 부처님 제자중 단연 으뜸이었으며, 부처님의 수제자였음)이여... 色不異空 空不異色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色)은 공(空)이요 공(空)은 색(色)이다. '물질 요소로서의 육체는 무아(無我)하고 만물은 무상(無相)하여 영원하지 않고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수시로 변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모두 서 로 인연이 되어 잠깐 생겨나며 결코 저절로 생기지는 않고, 인연에 따라 존 재 하다가 사라진다. 느낌/지각/형성/의식도 무아(無我).무상(無相)하다. 그러므로 색(色: 육체 및 만물)은 공(空)하다.' 色卽是空 空卽是色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色)은 공(空)이며 , 공(空)은 곧 색(色)이다. '숲속에서 눈을 감고 명상하다 삼매에 든후 눈을 떠보면 숲속에 나무들과 수풀들이 공(空)함을 볼수 있다. 즉 눈에 보이는 것들은 아지랭이요, 연기같이 초당 수천번 깜빡이고 번들 거리는 파동체임을 알수 있다. 금강경 사구계(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모든 현상계 는 꿈과 같고 환술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은 것이며, 또한 이슬 같고 번갯불 같은 것이다. 마땅히 이와 같이 볼 줄 알아야 우주의 실체를 바로 보게되고 마침내 여래(女來)를 보리라.)에서도 이와 같은 언급이 있다. 受想行識 亦復如是 舍利子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수상행식(受想行識) 또한 공(空)하다. 사리불(Sariputra)이여..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不垢不淨 不增不減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불증불감 이 모든 만물은 서로 공(空)하여 태어남과 죽음도 없는것이며, 더러움과 깨끗함이란 것도 없고, 더 증가되거나 감소되는 것이 없다. '모든 만물은 하나의 거대하고 유동성의 파동의 에너지체로써 관찰자가 인식을 했을때는 입자로 변한다. 아인슈타인의 E=MC^2의 공식에서 볼 수 있듯이.. 에너지는 질량(물질)으로 질량(물질)은 에너지로 환원이 가능하다. 온 삼라만상에 나투어진 파동 에너지에서 관찰자가 일부를 인식하면 파동이 입자로 바뀐다. 그 파동에너지의 양은 일정하여 가감도 없으며 더러움과 깨끗함도 없고, 태어남도 죽음도 없다. 단지 관찰자로서의 인식이 관념을 낳고 형성을 이룬다. 즉 만물은 파동 에너지체의 일부가 입자로 환원되었을 뿐이다.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이러한 까닭에 공(空)가운데에는 색(色)도 없고 수상행식(水想行識)도 없다.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 사실상 눈,귀,코,혀,몸,뜻도 없고, 빛,소리,냄새,맛,촉각,법도 없다.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눈으로 보이는 세계도 없고 의식의 세계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고 어리석음 이 다함도 없다.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無智亦無得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무지역무득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도 없고 고통과 고통의 원인과 고통을 없애는 것과 고통을 없애는 길도 없고 지혜도 없고 지혜를 얻는 것도 없다. '실상 중생의 내면엔 이미 보리심(청정하고 적멸하며 지혜가 가득한 깨달 은 마음)을 이미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어디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심해에 파묻힌 보물선을 찾듯이 내 내면속에서 찾으면 되니..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찾기만 하면 더이상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없고 고집멸도라는 거룩한 진리도 필요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강을 건너는 목적을 달성 했으면 땟목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以無所得故 菩提薩陀 依般若波羅密多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중생의 내면에 이미 보리심이 있으니..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살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故心無罣碍 無罣碍故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마음에 걸림이 없고 마음에 걸림이 없는 까닭에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무유공포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두려움이 없고 전도된 헛된 생각을 아주 떠나서 완전한 열반에 이르게 된다. 三世諸佛 依般若波羅密多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들은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하므로 =故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고득아뇩다라삼먁삼보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보리심)을 찾는다. 故知般若波羅密多 고지반야바라밀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是大神呪 是大明呪 是無上呪 是無等等呪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가장 신비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며 가장 높은 주문이며 그 어떤 것과도 견줄수 없는 주문이다.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능제일체고 진실불허 이 주문은 능히 일체 고통을 없애고 진실하며 허망하지 않다. 故說般若波羅密多呪 卽說呪曰 고설반야바라밀다주 즉설주왈 고로 반야바라밀다의 주문을 말하니 다음과 같다.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저 언덕에 가자, 저 언덕에 다 함께 가자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저 언덕에 가자, 저 언덕에 다함께 가자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娑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 가자 가자 저 언덕에 가자, 저 언덕에 다 함께 가자 언덕은 피안의 세계로써 불성(佛性),도(道),태극(太極),무극(無極), 태허(太虛),리(理), 하나님, 한마음, 한얼등으로 표현 할 수도 있다. ====> 클릭 http://blog.daum.net/dldmstn52/12780910 마하반야바라밀(摩詞般若波羅蜜) 큰 법을 실천한다는 뜻으로 대(大)와 승(乘)을 합쳐서 칭하는것이 보통이지만 실은 대(大)와 승(乘)의 뜻이 각각 다르다. 그러나대와 승의 뜻은 서로 떨어질 수 없을 만큼 진리로운 뜻을 함께하고있기 때문에 대승이라고 부른다. 이 지혜는 때묻은 마음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의 성질인 진여성(眞如性)에서 발생한다. 지혜는 진여성의 빛이라는뜻에서 혜광(慧光)이라 하고 또는 지혜의 등이라는 뜻에서 혜등(慧燈)이라고도 칭한다. 지혜는 어두운 마음을 밝히고 사물을 바르게 관찰하는 것이라고 해서 정지(正智)라고도 하며 삼라만상의 진리를 바르게 가려내는 것이라고 해서 택법(擇法) 간택(簡擇)이라고도 칭한다. 그리고 만물의 진리를 관찰한다는 뜻에서 관(觀)이라고도 한다. 이 지혜는 또 진여(眞如)를 반연하여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리지(如理智)라고 한다. 보리는 지혜와 깨달음을 뜻하고 열반은 번뇌망상이 없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뜻한다. 그러므로 바라밀다는 불교의 모든 수행에 바라밀다의뜻이 있으며 염불하고 참선하며 성불하고자 하는 수행은 모두 바라밀다이다. 이러한 수행사상에 의하여 대승불교의 수행사상을 요약하여육바라밀(六波羅蜜) 또는 십바라밀(十波羅密)이라고 한다. 이들 육바라밀과 같은 수행덕목은 대승불교의 수행덕목을 집약화한 것으로서보살들이 수행하는 덕목이다. 육바라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물론 육바라밀의모든 덕목이 각각 제일이라는 해석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러 수행덕목을 실천하는데는 지혜가 있어야 올바로 수행할수 있기 때문에 지혜바라밀을 제일이라는 해석이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여러 수행덕목을실천하는데는 지혜가 있어야 올바로 수행할수 있기 때문에 지혜바라밀을 제일이라고 한다. 반야심경의 사상도 지혜바라밀의 실천에 역점을 두고 있다. 마하반야바라밀다 라는 심경의 사상은 지혜로써 공(空)의 진리를 바로 깨닫고 보리와 열반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뜻이다. 공성은 만법의 진리인 진여성(眞如性)을 의미하기 때문에 공성을 관조하여 깊은 진리를 깨달으면 곧 성불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바라밀이 제일이며 동시에 반야심경이 제일이라고 할수 있다. 마하반야바라밀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큰 지혜의 완성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특별히 관심할 것은 장차 완성한다든가 어떤 조건이 붙은 완성이 아니라 이미 완전하게 완성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무엇이 어떻다고 설명할 수 없는, 생각이나 마음을 초월한 무한 절대의 완성, 진리 본연의 완성을 뜻합니다. Mahāprajñāpāramitā mahāprajñāpāramitā 마하반야바라밀다 - 위대한 지혜의 완성 mahā : 위대한 prajñā(女): 반야, 지혜. pāramitā(女): 波羅蜜多. pāram> pāra(形) + m(對): (副)저멀리, 건너서. itā(女)>ita(과거수동분사)> √i: 가다. 보시다시피 '마하반야바라밀다'까지가 한 단어입니다. 글꼴를 변화하시면 조금 다른 느낌이 있으니 참고하세요 내가 이런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온유함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건강한 불교, 신나는 불교, 참회하고, 반성하고, 사랑하는불교 꼭 ! 이루겠습니다. 몸과 마음이 좋아지는 카페 불교넷 옛날에 두 스님이 오랜 토굴수행을 마치고 길을 떠났습니다. | |||||||||||||||||||||||||||||||||||||||||||||||||||||||||||||||||||||||||||||||||||||||||||||||||||||||||||||||||||||||||||||||||||||||||||||||||||||||||||||||||||||||||||||||||||||||||||||||||||||||||||||||||||||||||||||||||||||||||||||||||||||||||||||||||||||||||||||||||||||||||||||||||||||||||||||||||||||||||||||||||||||||||||||||||||||||||||||||||||||||||||||||||||||||||||||||||||||||||||||||||||||||||||||||||||||||||||||||||||||||||||||||||||||||||||||||||||||||||||||||||||||||||||||||||||||||||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멀리서 사람이 찾아오게 하라. -공자
가지를 잘 쳐주고 받침대로 받쳐 준 나무는 곧게 잘 자라지만, 내버려 둔 나무는 아무렇게나 자란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남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해 주는 말을 잘 듣고 고치는 사람은 그만큼 발전한다. -공자
군자가 이웃을 가려서 사는 것은 환난을 막기 위함이다. -공자
군자는 도(道)를 근심하고 가난을 근심하지 않는다. -공자
군자는 말에는 더디지만, 일을 함에는 민첩하다. -공자
군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말이 서툰 사람의 말에도 귀담아 듣는다. -공자
군자는 말이 행함보다 앞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공자
군자는 모든 것을 공경하나 신체의 공경함을 가장 으뜸으로 생각한다. 신체란 부모의 가지이니 어찌 공경하지 아니하랴? 그 몸을 공경하지 못하면 이는 곧 부모를 상하게 함이며, 부모를 상하게 함은 뿌리를 상하게 함이니, 그 뿌리가 상하면 가지도 따라서 망하게 된다. -공자
군자는 세 가지 경계할 바가 있다. 젊었을 때는 혈기가 잡히지 않았기에 여색을 경계하고, 장년이 되면 혈기가 바야흐로 굳세므로 다투는 것을 경계하고, 늙으면 혈기가 이미 쇠하였음으로 탐욕을 경계하라. -공자
군자는 스스로 재능이 없음을 근심하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않는다. -공자
군자는 타인의 좋은 점을 말하고 악한 점을 말하지 않는다. 반대로 소인은 타인의 좋은 점은 말하지 않고 악한 점만 말한다. -공자
군자는 행위로써 말하고 소인은 혀로써 말한다. -공자
군자에게 용맹만 있고, 예가 없으면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소인에게 용맹만 있고, 예가 없으면 도둑이 된다. -공자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政事)를 논하지 말아라. -공자
길은 가까운 데에 있다. 그런데도 이것을 먼 데서 구한다. -공자
나는 하루에 세 번 나 자신을 반성해 본다. 남을 위해 충을 다했는가, 친구와 사귀어 신(信)을 지켰는가, 배운 것을 남에게 전했는가 하고. -공자
나라를 다스리려면 식량을 충분하게 마련하고 무기를 충분히 마련하여 국민들이 위정자를 믿게 하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위정자를 믿지 않으면 정치를 해나갈 수 없다. -공자
나라의 질서가 바로잡혀 있을 때에는 돈이나 지위가 없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된다. 그러나 나라가 어지러울 때는 돈이 있고 지위가 높다는 것이 수치이다. -공자
나무가 먹줄을 좇으면 곧아지고, 사람이 충간(忠諫)함을 받아들이면 거룩해진다. -공자
나쁜 일을 하여 하늘에서 죄를 받으면 빌 곳이 없다. -공자
남들이 듣기 싫은 성난 말을 하지 말라. 남도 그렇게 너에게 대답할 것이다. 악이 가면 화가 돌아오니 욕설이 가고 오고 매질이 오고 간다. -공자
남에게 듣기 싫은 성난 말을 하지 말라. 남도 그렇게 너에게 대답할 것이다. 악이 가면 화가 돌아오니 욕설이 가고 주먹이 오간다. -공자
남의 충고를 달갑게 받아들여라. 그러나 윗사람이나 친구간에 너무 자주 충고나 간언(諫言)을 하지는 말라. -공자
내 가르침은 간단하고 그 의미를 쉽게 터득할 수 있다.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그 전부이다. -공자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 -공자
내 자신을 심하게 탓하고 남을 가볍게 책망하면, 원망을 멀리하게 된다. -공자
널리 배워서 뜻을 도탑게 하며, 간절하게 묻되 가까운 것부터 잘 생각하면 인(仁)이 그 속에 있다. -공자
높은 낭떠러지를 보지 않고서야 어찌 굴러 떨어지는 근심을 알고, 깊은 연못에 가지 않고서 어찌 빠져 죽는 근심을 알겠느냐? 큰 바다를 보지 않고서야 어찌 빠져 죽는 근심을 알겠느냐? 큰 바다를 보지 않고서야 어찌 풍파에 시달리는 근심을 알겠느냐? -공자
늙은 사람들은 편하게 모시고, 친구들은 진실한 마음으로 대하고, 젊은이는 부드럽게 대하게나. -공자
다른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의 몸도 내 몸같이 소중히 여기라. 내 몸만 귀한 것이 아니다. 남의 몸도 소중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 그리고 네가 다른 사람에게 바라는 일을 네가 먼저 그에게 베풀어라. -공자
다름 아닌 자신에게 전력을 다하고 충실하라. 자기를 내버려두고 남의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람은 자신의 갈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공자
다음의 네 가지를 두려워해야 한다. 첫째, 도의에서 벗어나는 것. 둘째, 학문을 게을리하는 것. 셋째, 정의를 듣고도 실행치 못하는 것. 넷째, 착하지 않음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를 항상 두려워하고, 그렇지 않았을 때는 즉각 반성하고 고쳐야 한다. -공자
단단한 돌이나 쇠는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깨지기 쉽다. 그러나 물은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깨지는 법이 없다. 물은 모든 것에 대해서 부드럽고 연한 까닭이다. 저 골짜기에 흐르는 물을 보라 그의 앞에 있는 모든 장애물에 대해서 스스로 굽히고 적응함으로써 줄기차게 흘러, 드디어는 바다에 이른다. 적응하는 힘이 자제로와야 사람도 그가 부닥친 운명에 굳센 것이다. -공자
당신이 알고 있을 때는 똑똑히 알고 있다고 말하고 잘 모르고 있을 때는 솔직하게 모른다고 시인하는 것이 바로 참된 지식이다. -공자
대중의 소리를 막는 것은 강을 막는 것보다 어렵다. -공자
덕이 높은 사람은 외롭지 않다, 반드시 그를 따르는 이웃이 있기 때문이다. -공자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다. -공자
말하고자 하는 바를 먼저 실행하라. 그런 다음 말하라. -공자
맑은 거울은 형상을 살피게 하고, 지나간 옛일은 이제 되어질 일을 알게 한다. -공자
모든 것이 참되면 그것이 밖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공자
모든 사람이 그를 좋아하더라도 반드시 살피고, 모든 사람이 그를 미워하더라도 반드시 살펴야 한다. -공자
모욕은 잊어버리고, 친절은 결코 잊지 말아라. -공자
무례한 사람의 행위는 내 행실을 바로 잡게 해주는 스승이다. -공자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없고, 사람이 너무 살피면 벗이 없다. -공자가어(孔子家語)
물처럼 스며드는 중상과 피부에 느껴지는 모략이 통하지 않는다면 가히 총명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공자
사는 것도 모르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 -공자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원망하지 않는 것은 또한 군자답지 아니한가. -공자
사람은 서로의 입장과 처지를 바꿔 생각해야 한다. -공자
사람은 어질더라도 배우지 않으면 현명해지지 못한다. -공자
사람이 돈 있고 지위를 얻었을 때는 품격을 지키기는 쉽다. 불우하고 역경에 처했을 때, 그 품격이 시들지 않고 보전되어 있는 사람이 참된 품격의 사람이다. 그러므로 불행한 환경에 처했을 때일수록 처신을 잘해야 한다. -공자
사람이 큰 도덕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일은 없을지 모르지만, 작은 도덕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일은 꽤 많다. -공자
서로 위하는 마음. 네 스스로 원하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행해서는 안 된다. -공자
썩은 나무에는 조각을 할 수 없고, 썩은 흙으로 쌓은 담은 흙손질을 할 수가 없다. -공자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서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러워한다면 그런 사람과는 더불어 의논할 수가 없다. -공자
선을 보거든 아직도 부족한 것같이 하고, 악을 보거든 끓는 물을 만지는 것처럼 하라. -공자
선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으로써 갚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화로써 갚는다. -공자
세 가지 길에 의하여 우리는 진리에 도달할 수가 있다. 그 하나는 사색에 의해서이다. 이것은 가장 높은 길이다. 둘째는 모방에 의해서이다. 이것은 가장 쉬운 길이다. 그리고 셋째는 경험에 의해서이다. 이것은 가장 고통스러운 길이다. -공자
세 사람과 같이 있을 때 그 중 두 사람은 나의 스승으로 삼을 수 있다. 한 사람이 좋은 말과 행동을 한다면 그것을 배울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의 말과 행동이 옳지 못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거울로 삼을 것이다. -공자
세 사람이 걸어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공자
순전(純全)한 완벽은 오직 신에게만 발견된다. 우리들의 삶이란 사실 신께 가까이 가는 과정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며 악한 것이 악한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인간은 좋은 것에 가까이 간 것이며 그만큼 악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공자
시를 읽음으로써 바른 마음이 일어나고, 예의를 지킴으로써 몸을 세우며, 음악을 들음으로써 인격을 완성하게 된다. -공자
신용을 잃어버리면 설 땅이 없게 된다. -공자
실수하여 고치지 않으면, 곧 그것을 실수하고 만다. 실수하여 고치는 것을 꺼리지 말라. -공자
자기 반성을 엄중히 하고, 다른 사람을 꾸짖는 일을 가볍게 하면 남의 원망이 멀어진다. -공자
자기 자신을 존중함과 같이 남을 존중하자. 남이 자기 자신에게 해주기를 원하는 바 그것을 남에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아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 그 이상 가치있는 것은 없다. 이것이 처세하는 최상의 비법인 것이다. -공자
자신의 가난함을 부끄럽게 여기는 일이야말로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다. 오직 부끄러워 할 일은 가난을 극복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일이다. -공자
자연을 먼저 터득한 사람은 성인이다. -공자
작은 일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큰일에 낭패하고 만다. -공자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를 잘못이라 이른다. -공자
젊은 시절은 일년으로 치면 봄이요, 하루로 치면 아침이다. 그러나 봄엔 꽃이 만발하고, 눈과 귀에 유혹이 많다. 눈과 귀가 향락을 쫓아가느냐, 부지런히 땅을 가느냐에 그 해의 운명이 결정된다. -공자
정치의 으뜸가는 요체는 국민의 신망을 얻는 것이다. -공자
죽고 사는 것은 명(命)에 있고, 부(富)하고 귀하게 되는 것은 하늘에 있다. -공자
중용의 덕은 지극한 것이다. -공자
즐거워하되 즐거움에 빠지지 않고, 슬퍼하되 상심하진 말라. -공자
지혜를 얻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사색에 의한 것으로, 가장 고상한 방법이다. 두 번째는 모방으로 가장 쉬우나 만족스럽지 못한 방법이다. 세 번째는 경험을 통해 얻는 방법으로 가장 어려운 것이다. -공자
진실과 신의를 지키고 정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 덕을 높이는 길이다. 세상 사람들은 사랑하면 그가 살기를 원하고, 미우면 그가 죽기를 원한다. 도대체 남이 살기를 원하고 또 죽기를 바라는 것은 모순이 아니고 무엇인가. 덕 있는 사람은 이런 모순을 범하지 않는다. 군자의 덕은 바람이요, 소인의 덕은 풀이다. 풀은 바람이 불면 반드시 바람에 쏠려 따르게 마련이다. 군자의 덕을 본받자. -공자
진실은 모든 존재의 근원이며 종말이다. -공자
진짜 결점은 자신의 결점을 알면서도 고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이다. -공자
집안에 예절이 있으므로 어른과 아이의 분별이 있고, 규문(閨門)에 예가 있으므로 삼족(三族)이 화목하다. 조정에 예가 있으므로 삼족이 화목하다. 조정에 예가 있으므로 벼슬에 차례가 있고, 사냥에도 예가 있으므로 융사(戎士, 병사)가 숙련되고, 군대에 예가 있으므로 무공(武功)이 이루어진다. -공자
착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지란(芝蘭)의 방에 들어간 것 같아서 오래 되면 그 향기를 느끼지 못하니 더불어 그에게 동화된 것이다. 착하지 않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치 절인 생선가게에 들어간 듯하여 오래 되면 그 냄새를 느끼지 못하니 ? 피? 더불어 동화된 것이다. 단(丹)을 지니면 붉어지고, 칠을 지니면 검어지니 군자는 반드시 자기와 함께 있는 자를 삼가야 한다. -공자
착한 일을 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복으로 갚고, 악한 일을 하는 자에게는 하늘이 재앙으로 갚는다. -공자
천자가 참으면 나라에 해가 없고, 제후가 참으면 큰 일을 이루고, 관리가 참으면 승진하고, 형제가 참으면 집안이 부귀하고, 부부가 참으면 일생을 해로하고, 친구끼리 참으면 이름이 깎이지 않고, 자신이 참으면 재앙이 없어진다. -공자
첫째, 젊을 때에는 혈기가 안정되니 못한 지라 색(色)을 경계해야 한다. 둘째, 장년에 이르면 바야흐로 혈기가 강한 지라 투쟁을 경계해야 한다. 셋째, 노년에 이르면 혈기가 이미 쇠한 지라 탐욕을 경계해야 한다. 이 세 가지를 경계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손쉽고 성공적인 처세의 지름길이다. -공자
총명하고 생각이 뛰어나도 어리석은 듯함으로 지켜야 하고, 공덕이 천하를 덮더라도 겸양하는 마음으로 지켜야 한다. 용맹이 세상을 진동하더라도 겁내는 듯함으로 지켜 나가며, 부유함이 사해(四海)를 차지했다 하더라도 겸손함으로써 지켜야 한다. -공자
큰 도가 행해지면 사람은 자기 부모만을 부모로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공자
평소에 공손하고, 일을 하는데 신중하고, 사람을 대하는데 진실하라. 그러면 비록 오랑캐 땅에 간다 할지라도 버림받지 않을 것이다. -공자
하나님은 존경하되 멀리하라. 그것이 백성의 바른 길이다. -공자
하늘에 죄를 지으면 용서를 빌 곳이 없다. -공자
하늘은 말하지 않는다. 사시가 운행되고 만물이 잘 자라고 있는데 하늘이 무엇을 말하랴. -공자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자는 살고, 하늘의 이치를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 -공자
학문을 아는 자는 이를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자는 이를 즐기는 자만 못하다. -공자
학문을 좋아하는 자와 함께 가면 마치 안개 속을 가는 것과 같아서, 비록 옷은 젖지 않더라도 때때로 물기가 배어든다. 무식
한 자와 함께 가면 마치 뒷간에 앉은 것 같아서, 비록 옷은 더럽혀지지 않지만 그 냄새가 맡아진다. -공자가어(孔子家語)
한 말은 반드시 실행에 옮기고 실행하면 반드시 성과를 거두라. -공자
항상 겸손하라. 겸양과 친절은 곧 예의 기본이다. -공자
현명한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의 내부에서 찾고, 어리석은 사람은 모든 것을 타인들 속에서 찾는다. -공자
화살이 과녁을 벗어나면 훌륭한 사수는 다른 사람에게 핑계를 돌리지 않고 자신의 솜씨를 탓한다. 현명한 사람도 이와 같이 행동한다. -공자
효자의 어버이 섬김은 살아서는 공경을 다하고, 봉양함에는 즐거움을 다하고, 병드신 때에는 근심을 다하고, 돌아가신 때는 슬픔을 다하고, 제사 지낼 때엔 엄숙함을 다해야 한다. -공자
"만우절" 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좋아지는 카페 불교넷

첫댓글 옴마니반메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