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각
일출의 모습은 시루 위서 보면 장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곳 시루는 아침에는 개방을 하지 않는단다.
새벽길은 아직 사람이 많지 않다.
이럴 때 민가를 둘러보는 것이 조금은 여유로울 것 같아 골목길을 기웃거려 본다.
아직도 분뇨를 이렇게...
냄새가 난다.
아침부터 말할 수 없는 지독한 분뇨냄새다.
이곳은 분뇨를 말이 끄는 수레를 이용한다.
아침부터 인간 원초적인 냄새를 맡으니 기분이 묘하다.
베이징의 후통거리와 비슷하다.
자유여행객이라면 혼자 또는 동행한 일행과 자전거를 빌려
성벽둘레길이나 골목 구석구석의 고민가(古民家)를 돌아보며 관광을 하면 좋겠다.
그래서 고성 안에는 자전거 상회가 여럿 있다.
자전거를 수리도 하지만 여행객들에게 대여도 한다.
사람내음이 바람을 타고 밀려온다.
어디를 가도 사람 사는 모습은 매양 한가지이다.
성안의 민가의 모습은 대부분 우리가 살던 모습으로 우리들의 또 다른 이웃으로 살고 있음이다.
비록 멀리 떨어져있지만 그들도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곳 주민들은 아직도 석탄(石炭)을 이용하여 취사를 하는 집이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골목 곳곳에는 석탄 무더기가 보였다.
우리나라는 연탄이 큰19공탄인 반면에 이곳의 연탄은 작은 9공탄이라는 점도 특이한 모습이다.
평요고성은 많은 역사의 스토리가 숨어있는 도시이다.
그러나 서두에서 밝혀 듯이 제대로 둘러보지 못한 점은 끝까지 아쉬움으로 남는다.
우리가 이 객잔에 도착했을 때 가이드 말에 따르면 이 평요객잔은 예전의 학교를 개조하여
사용하는 건물이라고 했다.
밖으로 나가니 숙소 바로 옆에 박물관이 하나 있다.
무슨 박물관인가 하고 한참을 들여다봐도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아침을 먹고 숙소로 돌아오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
건물 출입구 한쪽에 ‘중국과거박물관’이라고 쓰여 있어 그곳을 들어가 보았다.
사실은 이곳을 들어오려면 150위안의 평요고성을 관광하는 통표를 구해야 하지만 아침 식사 후
돌아가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그대로 관람하는 것이다.
그 안에는 조그마한 전시실이 있고 정말 볼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또 다른 한쪽에는 ‘평요문묘학궁박물관’,
그리고 벽 쪽에는 ‘평요국제촬영박물관‘이라고 되어 있으니 도대체 어떤 박물관인지 헛갈린다.
또한 건물 앞 표석에는 ’평요문묘‘로 되어 있고 …….
길거리 아침시장
이거 완전히 도깨비들이나 찾아다닐 박물관 같았다.
출입문 현수막에는 ’문묘학궁-진상인재요람(文廟學宮-晉商人才搖籃)‘이라는 문구가 있는 걸 보니
문묘인 건 확실하다.
시간이 남아 들어가 보고 싶은데 표를 확인하는 지하철 개찰구 기계 같은 것만 보이고
매표소는 보이지 않는다.
벽면에 붙은 안내판을 보니 아마 우리 놀이공원의 자유이용권처럼
평요고성 내의 시설을 함께 이용하는 표를 끊어야 하는 것 같다.
아침을 먹고 잠시 휴식 후 우리는 가이드를 따라 급히 다시 남대가를 찾는다.
점심 식사 후에는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가이드의 말에 우리 일행은 마음이 급해졌다.
거리로 나가 보니 벌써 사람들이 많이 나와 거리를 메우고 있다.
석두병
길을 가다보니 어제 지나다 보던 그 유명한 석두병아저씨가 벌써 장사를 시작하고 있다.
석두병이란 과자는 우리나라 텔레비전에도 이 아저씨의 석두 병이 소개되었는데,
작은 검은 조약돌을 솥에 넣고 달구고 거기에 밀가루 빵을 얇게 밀어 넣으면 울퉁불퉁한
과자가 만들어 지는 것으로 5위안이란 가격에 비해 맛은 그리 좋은 펀이 아니라고 한다.
유명한 석두병 상인
눈에 확 띄는 간판이 보인다.
도장 파는 집이다.
"저꺼 뚜오 사오 치엔?"
히히 히히히 내가 중국말을 한다.
어제 저녁 밤새도록 연습한 말이다.
이거 얼마냐는 소리란다.
도장을 파서 주는 값이 20위안이란다.
가만히 생각하니 서울 인사동에서 낙관 석에 도장을 새기려면 약 5만원이란 금액이 필요하다.
가격이 싸기 때문에 질은 그리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되지만 그래도 여행 기념물은 될 성싶었다.
조각을 하는 시간도 약 2분이면 된다고 한다.
한글로 이름을 그려서 이대로 파 달라고 하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마도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글씨가 조금 삐뚤어지면 어떠랴!
그들이 쓰는 글은 한자이기 때문에 내가 부탁한 한글도장은 잘 못 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금방 판 도장을 들고 밖으로 다시 나온다.
물이 끓기 시작한다
윙윙 무슨 소리가 들린다.
사람이 모여 있어 기웃거려 본다. 골동품 상 앞에 놋대야가 있다.
파랗게 동녹이 낀 대야를 어느 여인이 열심히 부비고 있다.
놋쇠로 만든 대야에 손잡이가 있고 그 손잡이를 부비니 물이 끓기 시작한다.
희한한 일이다.
조금 있으니 끓는 물에서 윙윙거리며 소리가 난다.
힘차게 문지르니 점점 소리가 커지며 끓는 물이 하늘로 솟구친다.
그런데 이것이 누구나 다 되는 것이 아니란다.
호기심이 발동하여 나도 한번 해 보려는데 주위에서 누가 뒤를 잡아당긴다.
사진을 찍기위해 연출
뒤를 돌아보니 일행 한 분이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킨다.
어멈……. 그곳에는 한번 만지는데 10위안이라고 쓰여 있다.
물론 내가 중국어를 잘 해서 아는 것이 아니고 눈치로 때려잡아서다.
공연히 금쪽같은 내 돈 10위안이 나의 지갑에서 도망칠 뻔 했다.
이처럼 중국인은 미스터리한 일을 태연히 행한다.
그래서 그런지 중국은 전설이 무척 많다.
평요우육만 해도 그렇다.
길을 걷다보니 한 곳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궁금하여 들어가 보았다.
이곳의 대형마트였다. 도대체 이곳 사람들의 생활상은 어떨까?
이곳의 특산물은 무엇일까?
여러 물품이 있었지만 가장 궁금한 건 이곳 특산물의 하나라는 평요우육(平遙牛肉)이다.
마트 안에는 평요우육이라고 쓴 가게가 제법 여러 가게가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소고기를 비닐포장으로 포장시켜 처음에는
생고기가 아니라 육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현지인 하나가 고기를 사는 것을 보니 육포는 아니고 고기를 종이처럼 얇게 썰어 준다.
모양만 봐서는 썩 맛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맛은 짭짤하고 쫄깃쫄깃한 것이 특징이란다.
이 소고기가 이곳 평요의 특산품이 된 것은 아래와 같은 전설 때문이란다.
옛날 어떤 농부가 집에서 농사일로 소를 키우고 있었다.
늙어 자연사를 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 산 위로부터 바위가 굴러 오더니 소의 등짝에 바위에서 나온
길고 큰 돌침이 박혀 사흘을 울고 죽더란다.
주인이 고생한 소이기에 고기로 취하기가 너무 안쓰러워 그냥 놔두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상처에서 향기가 나고 오히려 숙성이 잘 된 효과가 있어
나중에 별미로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 이러한 맛의 소고기를 평요우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말 웃겨…….
우리나라에선 대부분 정육점마다 잘 숙성된 생고기를 팔고 있지…….
더구나 돼지고기로 대패 밥처럼 얇은 고기는
최하위급의 고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병요의 소고기는 한(漢)나라 때의 문헌에서 발견될 만큼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평요일대의 지형과 기후가 목축에 적합하기도 하지만 그 가공법이 훌륭하여
예로부터 전국적으로 유명하였다.
평요를 지나던 서태후는 평요의 소고기를 맛보고
황제의 진상품으로 선정하기도 하였으며,
1956년 전국 농산품품평회에서 ‘명품’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하긴 서태후는 중국의 용처럼 어디 안 끼는 곳이 없고나.
미스터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중국의 황당한 미스터리 하나를 언급하고 지나가야겠다.
내용인즉슨,
2002년 6월 중국 귀주성 평당현(平塘縣) 장포하곡(掌布河谷)에
2억 5천년정도 된 것으로 추정되는 큰 바위가 갈라지면서 갈라진 단면(斷面)에
놀랍게도 6자의 선명한 글자(글자높이 30센티미터 정도)가 쓰인 것을 이곳의 주민이 발견한 것이다.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黨亡)이란 글자다.
이를 기이하게 생각한 평당현에서 중앙정부에 심의를 요청하고
2003년 8월부터 중국 저명 지질학자, 국가지질평가 위원회, 중국과학원 지질학부 부주석,
유명 고생물학자, 지질학 교수 등 30여명의 지질분야 중국의 권위자들이 고찰을 시작하였고,
그 결과 2억 5천년된 바위가 약 500년 전쯤 충격으로 바위가 갈라지면서
숨겨져 있던 글자가 자연적으로 표출되었으며 반대편 음각의 바위도 찾았다고 한다.
이거 원 믿거나 말거나이다.
물론 인위적으로 조각한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고
그래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글자라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하지만 2008년까지는 대부분 중국언론매체들은 ‘중국공산당’(中國共産黨)이라는
5자의 글자에 대해서만 보도를 하고 구성석(求星石),- '구원의 별과 같은 바위'라고 부르며
오히려 중국공산당의 체제선전을 위해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을 했지만
누가 보아도 여섯 번째 글자인 ‘망’(亡)자는 더 크고 선명하게 보인다.
‘중국공산당망’(中國共産黨亡)중국공산당은 망한다.
길이 7미터, 높이 1미터, 무게 100톤의 거대한 바위가 떨어지면서
단면(斷面)에 숨겨져있던 글자가 나타난 것이 하늘의 예언인지 모르겠으나
중국공산당으로서는 소름끼치는 일이다.
장자석(藏字石)인데…….
바위의 단면에서 자연적으로 이런 글자가 나타난 것이 신기하고 기이한 일인데,
마치 누가 조각한 것처럼 믿기 어려운 미스터리이다.
하얼빈일보(2005/11/9)는 ‘천하제일기석(奇石)’이라고 장자석의 ‘중국공산당’(中國共産黨)이라는
5글자의 내용만 보도했다고 한다. (중국 사이트 인용)
여섯 번째 글자인 망할 ‘망’(亡)자는 각도가 다르고 더 크게 나타난 것이 특이하다.
장자석(구성석)은 국가급 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입장료(50위안)를 받고 있는데…….
입장표에는 귀주성 평당현 ‘장포 구성석 경구 문표(掌布 求星石 景區 門票)’이라고 씌여있다.
거리 노점상들 중에 모자상인들이 많다.
여러 가지 모자들이 있어 구경을 하는데 앞에 아가씨들이 모자를 산다.
마음에 드는 모자가 있어 다시
"저꺼 두오 사오 치엔" 이다.
그리고는 다음 말을 못한다.
이때 하바별시님이 나서서 흥정을 시작한다.
모자 한 개당 40위안을 달란 단다.
그때 앞에서 모자를 사던 아가씨들이 우리에게 한 개당 15위안만 주라고 손짓하고 떠난다.
어찌어찌해서 2개에 32위안을 주기로 하고 모자를 산다.
거리 공연
갑자기 풍악소리가 들린다.
거리 공연
거리 공연
사람들이 길 가로 물러서니 길 공연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각양각색의 병졸차림을 한 사람들이 옛 복식으로 지나간다.
뒤를 이어 어제저녁 인상쇼에서도 본 듯한 여인들이 이상한 손짓을 하며 지나간다.
마치 우리나라의 가장행렬과 같다고나 할까?
아니 그보다는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연등행열과 같다.
우리 일행은 가이드를 따라 주마간산 식으로 거리를 보며 지나간다.
황주를 만드는 도가 안
시루 앞에 이르자 가이드가 우리를 한 상점으로 안내한다.
산시성에서 가장 유명한 술 황주를 만드는 장승원(長昇源)이라는 점포란다.
장승원 매장
내가 지금은 아무리 좋은 술을 내 앞에 가져다 놓아도 못 마시지만
예전에 한 가닥 술을 마신다고 할 때는 중국의 8대명주가
모태주, 분주, 대곡주, 소홍주, 대봉주, 죽엽청주, 오가피주, 오량액주 라는 것쯤은 안다.
황주
물론 여기에는 이름도 못 낄 북경홍성이과두주같은 값싸고 독해 서민들이 마시는 술을
좋아했지만…….
아~~~~ 옛날이여~~~~
점포 안쪽에는 황주를 만드는 도가가 있고 누룩을 발효시키는 용기와 증류방법 등이 있다.
지금 9대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8대가 공장에서 술을 만들고 9대인 청년이 점포에서
술을 팔고 있단다.
가격은 200ml 한 병에 30위안이고 고급주는 60위안이란다.
7대 사장님이 하바별시님께 붓글씨를 써 선사
마침 7대 주인이던 노인께서 우리 하바별시님에게 붓글씨 한 점을 써 선사하기에
나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어 일필휘지로 그림을 한 장 그려 답례로 들였다.
에고 그런데 그 서태후가 맛있다고 하루저녁 술값을 거하게 지불했다는 황주
한 방울도 구경을 못했으니 장승원의 주인들이 무척 인색하구나…….ㅋㅋㅋㅋㅋㅋ
일승창에서
평요의 西大街는 한마디로 청대 "월스트리트"라고 말할 수 있다.
최초의 중국은행격인 표호(票號)가 이곳에서 창조되었다고 한다.
표호는 현재의 어음이나 수표 같은 것으로 무거운 화폐를 대신했으며
표호중 기장 번성한 곳이 "일승창기"로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청왕조 도광 32년(1906년)에 중국 전역에 표호가 51개이고
평요방(지점)은 전국에 404개가 되었다고 한다.
옛날 표호장이 타던 마차
많은 돈을 번곳이라 그런지 중국인과 중국계 사람들이 많이 찾고 있었다.
잘못하다가는 가이드를 놓칠 것 같다.
가이드가 서대가를 찬찬히 감상할 기회를 주지 않고 식당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서두르는 것은 호텔의 짐을 빼야할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란다.
그래! 새벽에 나오자마자 처음 맡은 것이 분뇨 마차냄새지…….
그 지방의 분뇨 냄새를 맡았으면 모두 본 것이나 다름없는데 무얼 더 보겠다고 기웃거리겠는가?
점심이나 맛있게 먹고 건강하게 다니면 된다.
고성에는 아직도 볼 것이 많아도 말이다……
첫댓글 똥장군도 보았고...
그 냄새로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잠시 다시 그날로 돌아갔다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늘 감사히 감상합니다.
평안하소서.
슬기님의 글을 보면서 성수기에 다시 한반 가고픈 생각이 드네요. 너무 좋은 재미난 사진이많군요.
저는 전혀 본것이없어서....
사진을 보면서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그 때 그 곳의 그 사람들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이선생님 안녕하세요 강릉 소나무입니다 잘계시죠
늘 상대를 배려해주는 선생님의 여행 스타일을 생각하며 다시한번 여행길에서
뵙기를 기대합니다
슬기샘님 멋 있습니다.
비범한 여행기, 즐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