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건 정말 나의 길인가.’ _ god <길>
무엇이든 될 수 있어서 모든 것이 불안했던 나의 10대 시절. 그때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가수 그룹 god(groove over dose)의 노랫말은 나에게 큰 도전이자 위로가 되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정말로 그랬다. 믿는 가정에서 태어나 어렸을 적부터 신앙생활을 했고, 나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 굳게 믿었지만, 어쩔 수 없이 밀려오는 불안함과 두려움은 때때로 나의 영혼을 잠식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가수 god의 노래가 아닌 하나님(God)의 말씀을 읽었다면 지금쯤 나의 길이 달라졌을까?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애석하게도(혹은 다행스럽게도) 나의 10대는 성경책 대신 온통 가요와 영화로 가득 차 있었다. 대중문화를 경계하는 기독교 담론을 접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가 다니던 교회는 상대적으로 대중문화에 열린 입장을 가지고 있었고, 무엇보다 영화를 좋아하시던 어머니를 통해 나는 나를 둘러싼 환경보다 더 넓고 다양한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해외 한번 나가본 적 없었던 나에게 MTV가 보여준 오색찬란한 세상이란!
그렇게 대중문화를 섭렵하며 내가 깨달은 것은 영화나 드라마 같은 대중적인 콘텐츠만이 아니라 그것을 전달하는 미디어가 가진 ‘설득의 힘’이었다. 이런 미디어를 이용해 기독교적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기독교 대학에 진학하며 커뮤니케이션을 전공으로 선택한 배경에는 이렇게 진지하고 뜨거운 마음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순진하고 아둔한 생각인지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전공 수업을 통해 다양한 지식을 쌓으면서 나는 미디어가 단순히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고 서로 소통하게 만드는 통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의 발달은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물, 사물과 사물 사이를 초연결하고 있으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소통과 관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가 이미 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직접 경험해본 것처럼 말이다.
또한 미디어를 매개로 생산되는 대중문화는 고정적이고 단일한 차원을 갖기보다는, 특정한 사회 내에서 정치 및 경제적 요소 등에 영향을 받으며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맥락에서 대중문화는 하나의 의미체계만이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이 공존하고 있으며,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경합을 벌이는 지극히 ‘정치적’ 장소이다. 일례로 같은 사건을 놓고 해석을 달리하는 언론이나,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에 대항하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나 가요를 오늘날 우리는 쉽게 떠올려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대중문화는 그동안 교회에서 자주 이야기했던 것처럼 기독교와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러한 관계 설정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대중문화 안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희생, 용서와 같은 기독교적 메시지가 담겨있으며, 또 때로는 그와 반대되는 가치관이나 재현이 나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나는 학생들에게 대중문화를 단순히 유희나 소비의 대상이 아닌 ‘진지하게 들여다 볼 대상’으로 대할 것을 요청한다. 대중문화가 이토록 역동적인 장소라면 그것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무턱대고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스스로 읽어낼 수 있는 능력과 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위 문화연구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능동적 수용자’를 길러내는 것, 그것이 나의 일차적인 교육 목표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는 학생들에게 대중문화를 통해 교회를 향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할 것’을 권면한다. 최근 들어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재현이 많아지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현실에서 사람들은 교회의 어떤 모습에 실망했기에 그와 같은 가상적 이미지에 크게 공감하는 것일까? 만약 이와 같은 측면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는 교회를 향한 사람들의 기대와 소망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연구자로서 나는 교회에서 활용되는 미디어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변화에 주목하고, 또 교회 안에서 통용되는 커뮤니케이션 실천은 어떠한지 면밀히 관찰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익숙한 언어나 미디어, 말하거나 듣는 관습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관계와 주체의 모습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연구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람과 교회, 교회와 세상 사이에 다리를 놓고 싶다. 이 글을 시작하면서 인용했던 god의 노래는 알 수 없는 길에서 방황하는 자신의 모습을 한탄하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위해 “오늘도 걸어간다”라고 노래한다. 이 노래가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 불혹에 접어든 나에게 여전히 큰 도전과 위로가 되는 이유이다.
첫댓글 대중문화를 통해 교회를 향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하고...